세계 멸망 후를 위한 지침서
조지아주 북동쪽 언덕에 수수께끼 건물이 세워져 있다. 조지아 가이드스톤으로 알려진 돌 구조물은 높이 16 피트 (4.8 미터), 무게 20 톤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석판에 이집트의 상형 문자, 힌디어, 스와힐리어 등 8 개 언어로 세계의 멸망 후의 문명을 재건하려는 생존자를 위한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태양의 궤도를 본뜬 것 처럼 세워져 있고, 그 틈새에서 북극성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가이드 스톤은 누가 만들었는지 수수께끼 상태인데 고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 미시간호의 스톤 헨지
미시간 호수의 바닥에서 연구자가 소나를 사용해 난파선 조사를 하고 있었을 때, 수심 40 피트(12 m) 지점에서 스톤헨지 같은 구조물을 발견했다.
바위가 원형으로 배치되어 마스토돈과 같은 조각이 되어 있는 바위다. 인간과 마스토돈과 공존하고 있던 후빙하기 시대와 일치하는 1 만년 전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해저 유적
일본의 요나(与那)국섬 남쪽으로 있는 약 80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가라앉아 있다.
처음에는 지각 현상으로 생각했지만 조각과 직각으로 잘린 바위를 보면 인간이 만든 정교한 계단 같은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1995년 스킨다이버에 의해 발견됐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바다에 침몰되어 있는 석상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앞바다에는 클레오 파트라의 궁전이라고 여겨지는 유적이 가라앉아 있다.
1500년 전 지진으로 인해 동상등의 인공물과 함께 수몰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바알베크의 신비한 돌
거대한 로마 사원의 유적은 그리스나 로마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바알베크에도 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시대에 파괴되었지만 54개의 기둥 중 6개는 아직 남아있다.
지난 수십 년의 전란 탓에 방문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다행히도 이 장엄한 고고학 유적의 파괴는 면했다. 왜 이 곳에 이렇게 많은 돌을 깍고, 어렵게 나르며 건물을 세웠는 지는 알 수 없다.
파묻힌 고대의 거대한 스톤서클
튀르키예 남부,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스톤헨지보다 수 천년 오래된 거석 서클이 3개 있다. 이러한 고대의 스톤서클은 수렵 채집 민족에 의해 지어졌다.
이 거대한 스톤서클을 건조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므로 처음으로 사회가 마을의 수준까지 발전한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 거대 거석이 있는 이유는 모르지만 의도적으로 매장되었는데 이 일대가 성경의 에덴 동산을 기반으로 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스트섬
지구 상에서 가장 고립된 섬인 이스터 섬은 칠레에서 서쪽으로 3,700km 떨어진 삼각형 모양의 화산섬이다. 황량한 해안 구릉지로 둘러싸인 이 섬은 '모아이'라는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해졌다.
모아이 석상은 서기 1250년 부터 1500년 까지 섬 개척자가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었다. 가장 무거운 석상은 86 톤이나 나가 이것을 만들고 나르는데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남아있는 모아이의 절반 가까이가 모아이 채석장 부근에 아직 남아 있지만 많은 수가 섬 주위 돌 플랫폼으로 옮겨졌다.
영국 스톤 헨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으로 알려진 스톤헨지는 영국 위루토시아 주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진상으로 나열된 직립 거석과 그것을 둘러싼 흙으로 둘러싼 작은 성으로 구성됐다.
기원전 2500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400 년 이상에 걸쳐 만져지고 있다.
이것이 생긴 것에 대한 다양한 설과 추측이 있지만, 아직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졌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세계 최대의 수수께끼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마추피추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잉카 제국의 도시.
페루 안데스의 가파른 산의 평탄한 정상에 숨겨진 존재 덕분에 스페인 정복자에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지만, 1911년에 고고학자 하이람빙엄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이 곳의 바위들은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쌓여 있다.
조사에서 서기 1450년경 잉카의 왕 빠챠쿠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잉카도시보다는 비교적 작은 마을이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상적인 유럽 전 시대의 유적이다.
오랫동안 이는 여러 가능성 중에서 특히 고대 이집트인, 페니키아인 혹은 그리스인들의 업적이라 여겨져 왔는데,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너무나 열등하여 이렇게 대단한 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쇼나 족의 창조물이었으며 부유한 무역 제국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인정받고 있다.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건물인데 전성기에는 약 18,000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넓이 1800 에이커 (720만㎡)로 11 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었다. 아직 왜 이 위치에 유적이 버려진 것인지, 뚜렷한 이유는 찾지 못하고 있다.
페루의 차빈 데 우안타르의 유적
기원전 900년경 잉카 이전 차빈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로 건축되었다.
왜 챠빈 문화가 소멸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지진 등의 심각한 환경 변화가 원인이라는 설이 주류다. 또한 주변의 다른 문명과의 권력 투쟁으로 소멸했다는 설 등도 있다.
산호의 성, 잃어버린 사랑의 기념비
신장 150 ㎝, 몸무게 45 ㎏의 남자가 어떻게 몇 톤의 무게나 나가는 산호를 이용하여 복잡한 바위 정원을 만든 것일까?
플로리다 홈스테드 산호의 성은 라트비아 이민자 Ed Leedskalnin의 잃어버린 사랑의 기념비이다.
에드는 1923 년 결혼식 직전에 약혼자에게 차여 이 정원을 만들기 시작, 완성시키는데 생애를 걸었다. 1951 년 에드가 죽은 후에도 공사는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한 에드가 어떻게 혼자서 이 산호의 성을 만들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