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寸志)'란 '속으로 품은 작은 뜻(寸心)'과 '자그마한 뜻을 나타낸 선물'이라는 뜻이다.
사전적 풀이로 볼 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특히 교육현장에서 이 아름다운 말이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1969년 그러니까 47년 전, 내가 첫 발령지인 작은 도시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그때는 '촌지'란 말이 있는지도 몰랐고 뜻도 몰랐다.
콩나물시루처럼 한 학급이 60명이었고, 더 시골에서 유학 온 학생들도 많아 대부분이 가난했다.
우리 반엔 고아원 아이도 두 명이나 있었다.
햇병아리 여선생의 순수한 열정은 이런 환경에서도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순수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며 선생이 스승으로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
학기 초, 담임교사는 가정방문부터 해야 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 한 동네 사는 아이들을 예닐곱 명씩 짝지어 데리고 차례로 가정을 방문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난다.
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최고의 예우로 깍듯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나보다 연배가 한참 위인 학부형을 만난다는 사실부터가 편한 일이 아니었다.
삶은 계란을 대접하기도 하고, 사과를 깎아 통째로 손에다 쥐어주며 권하기도 하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흐뭇한 추억으로 기억 속에 차곡차곡 챙겨두고 있다.
너무 오래되어 학생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촌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며칠 무단결석을 한 아이가 있어 근처에 사는 아이에게 결석 사유를 알아오라고 했더니, 이튿날 그 아이 외숙모님이 학교에 담임인 나를 찾아왔다.
교무실에도 들어오지 않고 운동장에서 아이가 결석한 사유를 들어야 했다.
결석 사유는 생각나지 않아도 외숙모님은 또렷하게 생각난다.
밭에서 김매다 바로 달려온 듯한 모양새에 환하게 웃는 순박한 표정이 너무도 순수하게 보였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석사유를 들어보니 합당해서 그리 처리하겠다고 하자,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지갑에서 100원짜리 동전 세 개를 꺼내 내 손에다 쥐어주는데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놀라서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그 순박한 얼굴 표정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을 바꿔야 했다.
"선생님예, 점심을 대접해 디리야(드려야) 마땅하겠지만예, 바쁘실 거 같아서예, 자장면이라도 사잡수시이소오 예..."
이렇게까지 간곡하게 이야기하며, 동전이 도로 돌아오지 않게 내 손을 손바닥으로 감싸 쥔 채 놓지 않았다. 시큰한 감동이 밀려오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300원'이면 그 당시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농촌 가정에서는 더더욱 적은 액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장면이 150원이었으니, 외숙모님이 점심 대접한다고 같이 중국요리점에 가서 먹어도 될 300원이었다.
내 월급이 30,000원 정도였던 시절, 기억 속에 참으로 감동적으로 남아있는 촌지 수수 장면이다. 조용하고 진솔한 300원 촌지, 나는 이것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전이 말하는 진정 아름다운 촌지가 아닐까?
세월이 흘러 나도 아이를 키우며 그 촌지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30년 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좋은 성적을 받거나 상장을 받으면 인사를 했다.
심심찮게 촌지에 얽힌 괴담수준의 이야기가 들리던 시절이지만, 나는 최대한 '촌지'의 아름다운 뜻을 살리려 노력했다.
47년이면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뀐 긴 세월이다.
어린 묘목이 어른 나무가 되고도 남은 세월이다.
묵직한 강산이 다섯 번 바뀌었다면 가벼운 인간세상은 쉰 번도 더 바뀌었을 것 같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참으로 복잡하다.
그 복잡한 세상에 얽혀있는 이해관계는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도 다투었다고 하니, 둘 이상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길 것이다.
이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이해관계를 지름길로 해결하고 싶은 심리가 '뇌물'이 아닐까 싶다.
뇌물이란 것도 근원은 '아름다운 촌지'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역사에서 뇌물사건은 원시시대에도 있었을 것 같다.
그때는 가벼운 애교 수준, 그야말로 '촌지'에 그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신문에 연일 터지는 'ㅇㅇ게이트'라는 말도 처음에 나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마치 내가 47년 전 '촌지'라는 뜻을 몰랐던 것처럼. 알고 보니 줄서기 싫어 '새치기'하는 것이었다.
큰 돈뭉치로 상대를 유인해 일을 불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세상에 누가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런 게이트 사건은 계속 터지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결국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이 되어 사회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드디어 최근에 '김영란법'이라는 것이 탄생했다.
정확히 그 내용은 모르지만, 공직자나 우리 사회 지도자급 사람들에게 뇌물을 떠나 촌지 수준으로 돌아가라는 뜻인 듯해 나는 속으로 환호하고 있다.
학교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자식 보호라는 본능이 발동해 더 시끄러웠다.
급기야 스승의 날 행사를 없애는 등 참으로 비교육적인 처방을 내리기도 했지만 그게 어찌 답이 되겠는가. 모두가 촌지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때마다 300원 촌지를 생각하며 심호흡을 한다.
2016.5.
첫댓글 지금도 촌지 라기보다 헬스장 에서 수고 하시는 사람들에게 명절 이라고 수고비 를 준다고 나서서 즐겨 거두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모른체 할 수도없고요.ㅋㅋ
명절 앞두고 그렇게 나서서 활동하는 사람이 있지요.
마음이 안 내켜도 내켜도 내게 되지요.
아우님 맛갈나는 글 읽기에 요즈음 인트넷 자주 찾게 되요.

촌지 남의 눈에 들킬까봐 시집을 사서 봉투를 드린적이 있어요,
수고 많이 하신 스승에게 감사의 뜻이라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꼭 학기 말 에 드렸으니까요,
언니, 인터넷 동호회와 재경홈 활성화를 위해서 좋은 모습입니다.
고맙습니다.
옛날에 아이들 선생님께 대부분 그렇게들 했지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고마워서 좋아서 드리고싶어서 아랫사람이 드리는 촌지는
따뜻한 정의 모습이라 보기좋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촌지는 아름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