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소통과 사회적 소통
이동재(시인·소설가·문학박사)
풍경 하나. 이상의 오감도烏瞰圖가 1934년 7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하자 “무슨 개수작이냐”, "내용을 알 수가 없다”라는 등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 15회 만에 조기 중단되었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때론 소통하지 않는 방법으로 소통하며, 그 자체로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기도 한다. 이해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많든 적든 사회적으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풍경 둘.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고” 운운하는 혁명 공약이란 걸 발표했다. 문제가 많은 사건이었으나 그들이 내건 공약엔 현실과 부합하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나서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다시 정권을 장악한 그의 후배는 “정의 사회 구현”을 국정 모토로 내걸었고, 그의 정권을 이어받은 친구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백 명의 자국민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자가 말하는 정의와 살인자가 말하는 범죄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그들의 집권기 내내 괴로웠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귀를 막고 살고 싶었다.
풍경 셋.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모 방송국의 모정당 후보 토론회에서 사회자가 지난 1년 동안 읽었던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대부분의 후보자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고 대답했다.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경로는 다양하다. 하지만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인간들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고, 또 실제로 당선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평균 종합독서량이 4.5권이었음을 고려하면 일국의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인간들의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국민 수준의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파렴치한 정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풍경 넷. 어느 날 갑자기 일종의 ‘정치적 사고’로 정권을 틀어쥐게 된 검사 출신의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들먹이며 말끝마다 자유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가 집권 몇 개월 만에 정치 경제 외교 국방 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보여준 행동과 국정 운영 방식은 그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만들었으며, 그가 말하고 있는 자유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입만 벌리면 구라라는 ‘입벌구’란 말이 떠돌고 있다. 말이 뜨면 민심이 뜨고, 민심이 뜨면 세상은 망한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더니, 다시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언어가 문학적 언어와 경쟁을 하는 듯한 사회는 불행하다. 예술에서의 불통은 그 자체도 소통일 수 있지만, 정치에서의 불통은 곧 죽음이다. 말끝마다 ‘소설 쓰고 있네!’라며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이 단순히 꾸며낸 거짓말이 소설이 아니라, 말이 될 법한 얘기를 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상식적인 사실조차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저들은 저들끼리 계속 자기들만의 소설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럴수록 사회에는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언어를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고, 그 말이 반어인지 ‘셀프 디스’나 ‘셀프 풍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사회는 혼란의 도가니로 직행한다. 정치인들이 삼류작가만도 못한 사소설이나 계속해서 써 갈기며, 그들의 언어가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딴 나라말 같은 자폐 언어로 전락할 때 그 사회는 병들어간다.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도 결국은 대다수의 힘 없는 국민일 테니 그것이 문제다. 그래도 한나라를 딴나라로, 새누리를 헌누리로, 국민의 힘을 국민의 짐으로 알아서 읽어낼 줄 아는 국민이니, 저들보다 일 년 평균 무려 4.5권의 책을 더 읽는 성숙한 국민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풍경 다섯. 서기 660년, 의자왕 20년, “왕도의 시정 사람들이 까닭도 없이 누가 잡으러 오기나 하는 것처럼 놀라 달음질하여 나동그라져 죽은 이가 1백여 명이었고, 재물을 잃어버린 것은 이루 셀 수조차 없었다.”라고 김부식의 『삼국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해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했다.
서기 2022년 10월 29일, 윤석열 정부 5개월,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느닷없이 골목으로 몰려가다가 158명이 압사했다. 이 참사에 대해 그분의 멘토라고 알려진 유튜버 천공(본명 이병철?, 최종학력 초2?)은 "엄청난 기회가 온 것”, “좋은 기회는 자꾸 준다.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래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 세계가 우릴 돌아보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봄은 또 오고야 말겠지만,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 문제다. 천박한 법가의 무리와 기레기들, 그리고 이들 DNA를 내면화한 정치인들이 판치는 이 허접한 시절을 시인은, 그리고 진짜 소설가들은 또 어떤 언어로 견뎌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오늘도 그는 검사스럽지만, 그의 임기도 오늘 또 하루가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