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에 올 여름은 말 그대로 피서(避暑)가 절실하다. 우뚝 솟은 산자락이 널찍한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이 깃든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강원도 영월. 어린 임금의 비극적인 운명을 따라 걷다 순박하고 무구한 인심에 위안 받는 이곳은 8월 한더위에도 기꺼이 떠나볼만한 여행지다.
시원한 계곡을 즐길 수 있는 법흥사
푸른 계곡이 반겨주는 적멸보궁 법흥사
대웅(大雄)은 위대한 인물, 즉 석가모니를 일컫는 말로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공간이자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전당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석가모니불을 모시지 않았음에도 가람의 중심이 되는 법당이 있으니 바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신라의 승려 자장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강원도 영월의 법흥사와 평창의 상원사, 경남 양산의 통도사 등에 나누어 봉안했는데 이들을 가리켜 ‘5대 적멸보궁’이라 칭한다. 불상이 석가모니를 상징한다면 진신사리는 석가모니 그 자체다. 때문에 이들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법당에서 사리를 모신 탑이나 계단이 보이도록 창을 뚫어놓은 것이 큰 특징이다. 불교도들에게 적멸보궁은 가장 신성한 기도처다. 영월의 깊숙한 산골에 자리한 사찰인 법흥사에 일 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법흥사 적멸보궁 전경
법흥사는 자장이 가장 마지막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로 창건 당시 이름은 흥녕사였다.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 1900년대 들어 법흥사로 이름을 바꾸고 적멸보궁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은 탓에 오래된 절집의 고즈넉한 맛은 조금 부족하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하지만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울창한 전나무 숲과 굽이굽이 서너 번의 모퉁이를 돌아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사자산의 우람한 산자락은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부 가파른 계단이 있긴 하지만 거리가 길지 않고 중간에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수각이 자리해 어르신들이 오르기에도 부담이 적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숲길
적멸보궁에 들어서면 뒤편의 사리탑과 자장이 수도했다는 토굴이 바라보인다. 이 투박한 사리탑에 실제로 부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데, 기록에는 자장이 진신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자산 어딘가에 숨겨둔 채 이곳에 적멸보궁을 지었다고 전해지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사자산 주변에 무지개가 뜨면 어딘가 숨겨져 있는 진신사리가 광채를 발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적멸보궁 뒤에 자리한 사리탑과 토굴
적멸보궁을 둘러본 후에는 보물 제612호로 지정된 징효대사 부도비도 꼭 챙겨보아야 한다. 옛 흥녕사를 크게 중흥시킨 인물인 징효대사의 행적을 적은 이 비석은 강렬한 인상의 거북이 모양 받침돌과 네 마리 용이 새겨진 몸체가 잘 보존되어 진취적인 기상을 드러낸다. 그 옆에는 적멸보궁 사리탑과 비슷한 크기와 형식을 지닌 징효대사의 부도탑도 자리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징효대사 부도비
또 법흥사 주차장 아래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잠시 걸음을 쉬며 한여름의 무더위를 씻기에 좋다. 깊은 산그늘 덕분에 바람은 시원하고 물빛은 한없이 맑다.
돌탑이 자리한 법흥사 계곡
곳곳에 뭇 사람들의 기도와 바람을 담은 크고 작은 돌탑이 자리해 여타의 계곡과는 다른 엄숙한 분위기도 이채롭다.
법흥사 근처에서 맛보는 도토리묵밥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 도토리빈대떡
뗏목타고 우리나라 한 바퀴, 한반도뗏목마을
영월에는 독특한 행정구역명이 있는데 앞서 소개한 법흥사가 자리한 무릉도원면과 김삿갓계곡이 자리한 김삿갓면, 그리고 선암마을이 자리한 한반도면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반도지형
한반도면의 원래 이름은 서면으로, 한반도지형을 똑 닮은 선암마을의 유명세 덕분에 지난 2009년 한반도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마을을 지나는 평창강이 굽이치며 형성된 한반도지형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늘 위에서 우리나라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전망대 우측 계단에서 본 한반도지형
여름에는 전망대 주변으로 무궁화가 만발해 한반도지형의 특별한 정취를 더한다.
전망대 주변 만발한 무궁화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은 입구에 가파른 계단과 곳곳에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이어져 걷기 편한 신발과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하길 권한다. 왕복 30~40분 정도의 산책로는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걷기에 무리가 없고, 계단 아래 수돗가에선 땀을 씻어낼 수도 있다.
전망대로 가는 산책로
선암마을로 내려가면 색다른 뗏목체험도 가능하다.
한반도지형을 보다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뗏목체험
강변마을의 전통 운송수단인 뗏목을 복원해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반도지형을 보다 자세히 돌아볼 수 있는데, 여름에는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강물에 발을 담근 채 즐기는 뗏목체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포항 호미곶을 오묘하게 빼닮은 절벽은 가까이에서 보면 더욱 신비롭다.
여유로운 뗏목체험
뗏목은 한반도 지형의 남한 지역만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삼팔선 부근에서 “여기서부턴 군사분계선이라 넘어갈 수 없다”는 해설사의 재치 넘치는 설명이 듣는 재미를 더한다.
뗏목체험을 위해 승선하는 어르신
뗏목체험은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여름에는 햇볕이 뜨거운 한낮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를 선택하길 추천한다. 또 나루터에는 음료와 아이스크림, 감자전 등을 판매하는 주막이 있어 잠시 더위를 피하기 좋다.
마을 주민과 함께 노를 젓는 관광객
슬프도록 아름다운 유배지, 청령포
영월을 여행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조선의 여섯 번째 임금 단종이다.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오른 단종은, 일 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이 중심이 된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지금의 창경궁인 수강궁으로 쫓겨나고 만다.
강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청령포
겨우 목숨은 구했지만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세조에게 단종의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터. 사육신 사건을 핑계로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된다.
단종이 머물던 어소
지금도 배를 타지 않고선 접근이 어려운 청령포는 강물과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단종을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시켰다. 스스로 ‘육지 속의 외로운 섬’이라 칭한 청령포에서 어린 임금은 한양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 같은 역사를 알고서 찾아간 청령포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마음 한편을 저릿하게 한다.
단종어소에 재현된 유배시절
배를 타야 당도하는 청령포
청령포로 향하는 배는 정해진 운행 시간이 따로 없고, 한명의 관광객이라도 있으면 바로 운행한다는 점에서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청령포로 향하는 배 안
나룻배를 타고 청령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소나무들이 시선을 끈다.
청령포의 울창한 소나무 숲
특히 단종이 머물던 어소 근처의 소나무들은 마치 신하의 예를 갖추듯 허리를 굽힌 모양인데, 그 중 한 그루는 아예 담장 너머까지 가지를 뻗어 어린 임금의 깊은 슬픔을 위로하는 듯하다.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600년의 소나무는 유배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과 서글픈 울음을 보고 들었다하여 관음송이란 이름이 붙었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함께한 관음송
관음송 뒤편으로는 한양에 홀로 남겨진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이 자리해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린 임금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겁고 비극적이었던 운명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종이 한양과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은 망향탑
청령포 내의 주요 유적지는 나무데크와 계단으로 연결돼 어르신들이 여행하기에 편리하다. 나룻배도 수시로 운행되니 비운의 임금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둘러보길 추천한다.
걷기 편한 데크길
청령포 부근의 곤드레밥
어린 임금의 넋을 위로하는 장릉·선돌
1457년 큰 홍수가 청령포를 덮치면서 단종은 영월읍내에 자리한 객사 건물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고립된 섬을 겨우 벗어났지만 그 해 10월, 결국 열일곱의 어린 임금에게는 사약이 내려진다. 실록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단종이 사약을 든 금부도사가 도착하자 스스로 목을 맸다고 전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단종의 운명은 비참했다. 야사에 따르면 강물에 함부로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처음에는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거두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 지금의 위치에 안장했고, 200여년 후인 숙종 때 이르러서야 단종의 명예가 회복되면서 장릉은 단출하나마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단출하게 꾸며진 단종의 능
입구에 엄홍도의 충심을 기억하는 정여각이 세워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와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거나 희생된 충신과 종친들의 위패를 모신 충신각도 자리해 여타의 조선왕릉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단종과 함께 희생된 이들의 위패를 모신 충신각
조선왕릉은 한양을 중심으로 사방 백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장릉은 이를 벗어난 유일한 왕릉으로 그 주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말해주는 듯하다. 또 대부분의 왕릉은 정자각 뒤편의 나지막한 언덕에 마련되는데 장릉은 산줄기 높은 곳에 은거하듯 자리하고 있다.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장릉의 정자각
비탈진 계단을 따라 장릉 가까이 다가서면 칼을 든 자에게 목숨을 빼앗겼다고 하여 무신석 없이 문신석만 세워진 호젓한 능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장릉은 이 계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완만한 평지고 곳곳에 시원한 그늘과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마련돼 있다.
장릉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책로
장릉 입구에 자리한 단종역사관에선 단종의 짧았던 생과 길고 길었던 유배길, 참담했던 유배생활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전시돼 꼭 한번 들러볼만하다.
단종의 생을 돌아보는 단종역사관
역사관 내에 전시된 단종의 유배길
장릉에서 자동차로 3분이면 영월10경의 하나이자 명승으로 지정된 선돌을 만날 수 있다.
영월10경의 하나로 꼽히는 선돌
서강의 유려한 물줄기를 배경으로 마치 누군가 일부러 쪼개어 놓은 듯 신비로운 형상을 한 선돌은 예부터 수많은 문인들이 시로 읊었던 절경이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선돌과 서강, 평화로운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는데, 전망대 옆 언덕에 마련된 작은 철제 계단에 서면 이 같은 풍광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선돌전망대에서 보는 서강의 푸른 물줄기
영월읍내 서부시장의 메밀전병
여행정보
추천 여행 코스(당일 코스)
청령포 → 장릉 → 선돌
추천 여행 코스(2박 3일 코스)
첫째 날: 법흥사 → 한반도뗏목마을 → 한반도지형 전망대 → 별마로천문대
둘째 날: 장릉 → 선돌 → 청룡포 → 서부시장 → 관풍헌
셋째 날: 고씨동굴 → 조선민화박물관 → 난고김삿갓유적지
[문의] -법흥사: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 033-374-9177 / http://www.bubheungsa.kr -한반도뗏목마을: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선암길 70 / 010-9399-5060 -한반도지형 전망대: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한반도로 555 / 1577-0545 -청령포: 강원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33 / 033-370-2657 -장릉: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 033-370-2656 -선돌: 강원 영월군 영월읍 선돌길 / 1577-0545 -영월관광안내: 1577-0545 / https://www.yw.go.kr/tour
[관광지 무장애 정보]
-법흥사 *장애인 주차구역 없으나 주차장 여유로움 *장애인 화장실 있음 *가파른 계단 때문에 적멸보궁까지 휠체어 접근 어려움
-한반도뗏목마을 *이용시간: 봄, 가을 09:00~17:00 여름 09:00~18:00 (기상상황에 따라 이용 불가) *이용요금: 뗏목체험 성인 6,000원 소인 4,000원 (2인 이하일 경우 20,000원) *장애인 주차장 있음 *장애인 화장실 있음 *뗏목에 휠체어 탑승 어려움
-한반도지형 전망대 *연중무휴 이용 가능하나 야간산행 제한 *이용요금: 무료 *장애인 주차장 있음 *장애인 화장실 있음 *계단과 울퉁불퉁한 바윗길 때문에 휠체어 이동 어려움
-청령포 *이용시간: 09:00~18:00 (입장마감 17:00) *이용요금: 성인 3,000원 청소년 및 군인 2,500원 어린이 2,000원 경로 1,000원 (도선료 포함, 영월군민 50% 할인) *장애인 주차장 있음 *장애인 화장실 있음 *나룻배에 휠체어 탑승 어려움 *자갈길로 일부 구간 휠체어 이동 어려움
-장릉 *이용시간: 09:00~18:00 (입장마감 17:00) *이용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국가유공자, 장애인, 65세 이상 무료) *장애인 주차구역 있음 *장애인 화장실 있음 *단종역사관 출입구에 휠체어 경사로 있음 *가파른 계단 구간 휠체어로는 능 앞까지 접근 어려움 *휠체어 대여가능 *단종역사관 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있으나 다소 좁음 *단종역사관 지하1층 엘리베이터 옆 심장제세동기 비치
-선돌 *장애인 주차구역 없으나 주차장 여유로움 *장애인 화장실 있음 *선돌까지 일부 구간 울퉁불퉁한 흙길로 휠체어 이동 어려움
이동정보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역(무궁화호, 약 2시간 20분 소요) ↔ 영월역 -[버스] 서울고속버스터미널(1일 4회, 약 2시간 30분 소요) ↔ 영월시외버스터미널 동서울터미널(1일 13회, 약 2시간 20분 소요) ↔ 영월시외버스터미널 -[영월 내 관광지 이동 정보] 영월역 버스정류소 이용/ 한반도지형 전망대 (35, 37번 버스) 영월역 버스정류소 이용/ 청령포 (1, 1-1, 1-2, 1-3번 버스) 영월역 버스정류소 이용/ 장릉, 선돌 (33, 61, 78번 버스) 영월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소 이용/ 법흥사 (50, 61번 버스 타고 주천버스정류장에서 57-1번 버스 환승) 영월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소 이용/ 한반도지형 전망대 (35, 37, 37-1번 버스) 영월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소 이용/ 청령포 (1-1번 버스) 영월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소 이용/ 장릉, 선돌 (33, 61, 78번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