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요 산길
소한이 지난 지 사흘째인데 간밤 겨울비가 살짝 뿌렸다. 올 겨울은 그간 겨울다운 추위를 보여주지 않은 포근한 날씨였다. 거기다가 비도 잦은 편이다. 일기예보엔 이번 비가 내리고 나면 본격적인 추위가 올 것이라 한다. 일월 둘째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서 반송시장으로 향했다. 노점에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한테 김밥을 두 줄 마련해 배낭에 담았다.
동정동에서 북면으로 넘나드는 버스를 타서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달천계곡으로 들었다. 외감마을 동구 밖 논에는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미나리를 키웠다. 그 미나리는 천주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 찾아올 산행객들에게 인기리에 팔려나갈 것이다. 나는 달천계곡 입구에서 남해고속도로 지선 곁으로 들어 터널을 앞두고 숲으로 올랐다. 단감나무과수원이 끝나고 오리나무 숲이 나왔다.
무척 오랜만에 양미재 숲을 찾았다. 봄에는 취나물이나 바디나물을 뜯느라고 자주 들렸다. 여름에서 시원한 숲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영지버섯을 찾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낙엽이 질 무렵 산정마을을 찾아 농주를 빚어 파는 할머니 댁에서 곡차를 든 이후 처음이니 서너 달 된 셈이다. 부엽토가 쌓인 산길에 깔린 가랑잎은 잦은 비에 습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미끄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양미재를 앞둔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워낙 일찍 길을 나섰는지라 그제야 날이 완전히 밝아왔다. 양미재는 십자형 갈림길이었다. 바로 넘으면 구고사와 산정마을이 나온다. 왼쪽으로 오르면 농바위를 거쳐 천주산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가면 작대산이다. 나는 작대산으로 가는 산등선을 올랐다. 시야가 트인 산등선에 오르니 내가 거쳐온 외감마을 앞 들녘과 남해고속도로가 드러났다.
비가 그친 뒤 낮은 구름이 낀 하늘이었다. 가깝고 먼 산과 골짜기엔 안개가 겹겹이 끼었다. 멀리 창원컨트리클럽과 정병산이 보였다. 화양고개 머너로 주남저수지가 어렴풋하고 그 뒤로는 진영신도시였다. 그 뒤 봉화산 아래가 노무현대통령 묘역이다. 구룡산에서 이어진 산등선은 화양고개를 지나 백월산에서 바위봉우리로 맺혀졌다. 내가 선 산등선 바로 아래는 감계지구 신도시였다.
낮은 산봉우리는 하나 넘어 내리막에서 더 가파른 비탈을 올랐다. 봉우리 갈림길에 감계로 내려간다는 등산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북면 온천지구와 낙동강이 설핏 드러났다. 구름이 걷혀가는 때라 멀리 동쪽으로는 부산의 금정산 고당봉이 보였다. 북쪽으로는 낙동강 건너 밀양 덕대산과 창녕 화왕산 봉우리들도 가까워보였다. 나는 감계로 내려가질 않고 작대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작대산은 청룡산으로도 불린다. 정상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자에 올라 주변 산하를 한 번 더 조망했다. 여태 세 시간 넘게 걸어와도 산행객을 한 사람도 만나질 못했다. 아무리 겨울철이라지만 일요일은 산을 오를 사람들이 있을 법도한데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반나절이든 한나절이든 산속에 들어 산행객을 한 사람도 만나지 않은 때를 운수 좋은 날이라 부른다.
점심때가 일렀지만 정자에서 가져간 김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보충시켰다. 이후 북사면 비탈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섰다. 사람들이 잘 다니질 않아 가시덤불을 헤쳐가야 했다. 발아래 골짜기는 레이크힐스 골프장이었다. 벼랑 따라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서면서 삭은 참나무등걸에서 상황버섯을 몇 줌 땄다. 임도가 가까워지자 무기마을에서 올라온 듯한 두 사내가 칡을 캐고 있었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샘물을 발견했다. 누군가 맑은 샘물이 대롱으로 빠져나오도록 해두어 물을 받아먹기 쉬웠다. 소목고개를 넘으니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였다. 그곳에서 집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들길을 더 걷고 산마루를 넘어 지인 농장을 찾아갔다. 지인은 한동안 내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며 이민 간 줄 알았다는 농담을 건네 왔다. 귀로에 빈 배낭엔 무청 시래기를 채워왔다. 17.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