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인연법(因緣法)과
연생법(緣生法)을 말하리라.
어떤 것을 인연법이라 말하느가.
이른 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것이니,
곧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識)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을 인연하여 닿음(觸)이 있고,
닿음을 인연하여 느김(受)이 있고,
느낌을 인연하여 애착(愛)이 있고,
애착을 인연하여 취함(取)이 있고,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老) 죽음(死)이 있다.
그리고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연생법[緣生法:인연을 무생(無生)의 입장에서 설한 법]이라 하는가.
이른 바 무명과 행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세상에 나오시지 않거나
이 법은 항상 머물러 있는
법의 머무름이요,
법의 세계로서
그것이 여래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나타내어 드날리신 바이니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나아가서는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세상에 나오시지 않으시거나,
이 법은 항상 머물러 있는
법의 머무름이요,
법의 세계로서
여래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나타내어
드날리시는 바이니,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 · 병 · 죽음 · 근심 · 슬픔
번민 · 괴로움이 있다'
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은
법의 머무름(法住) ·
법의 공함(法空) ·
법의 한결 같음(法如) ·
법의 그러함(法爾)이다.
법은 한결 같음(如)을
떠나지 않고
법은 한결같음과
다르지 않으며,
분명하고 진실하여
뒤바뀜이 없이 연기(緣起)를
그대로 따르나니
이것을 연생법이라 한다.
곧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닿음 · 느낌 · 애착 · 취함 · 존재 ·
남과 늙음 · 병 · 죽음 · 근심 ·
슬픔 · 번민 · 괴로움이니
이것을 연생법 (緣生法)이라 한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이 인연법과
연생법을 바르게 알고
잘 보아 과거를 구하여
'내 과거 세상은 있었던가 혹은 없었던가.
내 과거 세상은 어떤 종류였던가.
내 과거 세상은 어떠하였던가'라고
말하지 않고,
미래를 구하여
'내 미래 세상은 있을 것인가.
혹은 없을 것인가.
어떤 종류일까.어떠할까라고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며,이것은 어떤 종류인가.
어떻게 이것이 있는가.장래를 위해
누가 마침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중생은 어디에서 왔는가.
여기서 사라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마음으로 망설이지도 않는다.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범속한 견해를 일으키어
얽매이며,
이른 바 나라는 견해를 말하고
중생이라는 견해를 말하여
얽매이며,
수명(壽命)이라는 견해를 말하여
얽매이며,
꺼리고 싫어하며
즐겁다는 견해를 말하여
얽매이면,
그 때에 거룩한 제자는
그 모든 것을 다 끊고 다 알아,
그 근본을 끊기를
타라나무 줄기를 끊는 것과 같이 하여
미래 세상에 있어서
나지 않는 법(不生法)을 이룬다.
이것을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가
인연법과 연생법에 대하여
실답게 바로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권 12, 인연경(因緣經)
*무명
인간의 괴로움 또는 근본 번뇌를 의미하는 불교교리.
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갖가지
심오한 해설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
인간 생사의 근원을 밝히는
12연기(緣起)의 첫머리에 나오는
무명은 ‘나’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나’를 범부이게끔 하는 근원이며,
모든 번뇌의 근본이요
일체 악업(惡業)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본업경 本業經≫에서는
“무명은 일체법(一切法)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대승의장 大乘義章≫에서는
“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무명은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이다. 그 본체에는 지혜도 밝음도 없다.” 고 하였다.
≪구사론≫에서는
“무명의 모습은 사제(四諦)와 삼보(三寶) 및 업(業)의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데 있다.”
고 하였으며,
≪유식론 唯識論≫에서는
“무명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하여
미혹되고 어리석은 것을 본성으로 삼고,
능히 지혜를 결박하여 일체를 잡되고 물들게 하는 것으로서 그 업을 삼는다.”
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기신론 起信論≫에서의 무명에 대한 해설이다.
≪기신론≫에서는
무명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최초의 한 생각을
근본 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 근본 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게 또는 거칠게 일어나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고 하였다.
무명은 불교의 기본 교리로서
불교가 여러 부파(部派)로 나누어진 뒤에도
인간의 괴로움을 설명하는
근본 교설로 채택되었고,
2종 무명·
5종 무명·
15종 무명 등으로
무명을 세분하여 해석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 당시부터
무명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되었고,
선종에서는 독자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성을 뜻하는
법성(法性)과의 일체로 파악되었다.
무명 법성 일체설 에서 볼 때
법성과 무명은
마치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다.
무명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원래가 물이다.
얼음이라고 하지만
물의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사람의 심성은 본래 얼음이 아니나
법성의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일 뿐,
어느덧 홀연히 생겨난 무명은
곧 근본 깨달음인 본각(本覺)의 법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무명법성일체설은
우리 나라 선종에서도
뿌리를 내려 무심선(無心禪)을
정립하기에 이르렀고,
번뇌와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실천적 규범을 낳기도 하였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一心)을 설명하면서,
일심 이외에 별다른 법이 없으나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심을 미하게 되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육도(六道)를 윤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원효는 이 무명을
잠재적인 충동력이라고 보았다.
곧 이 충동력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동요하게 되지만,
무명 자체는 아직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다.
즉, 무명은 일심을 동요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파악하였고,
이 무명의 충동력이
계속해서 일심의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게 될 때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명은
모든 고통스러운 결과의
가장 원초적인 원인이 되며,
이 무명을 없앨 때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원효)
『원효사상』-세계관-(이기영, 홍법원, 1967)
집필자 김선근"
*아함경/니까야/청정도론에서도
명확하게 나와 있듯이
해탈의 문이 바로 空입니다.
空 그 자체에는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다하는 것도 역시 없기 때문에,
이 空은 모든 것을 벗어난 해탈의 문인 것이죠.
하지만 중생은 반대로 해탈을 해석합니다.
뭔 실체가 있어서 그게 영원한 기쁨인 해탈을 얻는다.....
라고여기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완전히 거꾸로 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세속의 종교나 철학이나,
세속의 도 닦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프로필
空山. 천영필
시인, 재가수행자
문경 하늘재 관음리 출신
스토리문학 등단
시집 《반야심경 》《세월아이》《엘리제를 위하여》등 다수
문예춘추, 우리시 등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