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훼손 논란 휩싸인 ‘제주들불축제’ 존폐 기로에
타 지역 산불 발생으로 축소 개최
“생태계 파괴”vs “관광 실익 크다”
숙의형 정책개발 의제 청구 제출
수용 땐 의견수렴 거쳐 최종 결정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을 태우는 들불축제가 올해 다른 지역 산불 등으로 축소 개최된 후 생태계 훼손 논란에 휩싸이면서 존폐의 기로에 섰다. 제주시 제공
제주의 대표축제로 꼽히는 들불축제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생태계 훼손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녹색당은 도민 749명의 서명을 받아 ‘들불축제를 재검토해 달라’는 내용의 숙의형 정책개발청구인 서명부를 제주시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 숙의형 정책개발심의위원회’는 이달 중 논의를 통해 수용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청구인 서명부를 확인한 결과 중복과 주소 확인이 어려운 서명을 제외한 유효 청구인은 664명으로 집계됐다. 제주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의 기준(주민 500명 이상)을 충족한 것이다.
행정부지사가 당연직 의장을 맡는 숙의형 정책개발심의위는 들불축제가 숙의형 정책개발 의제인지를 확인한다. 정책개발 의제로 정해지면 원탁회의, 공론조사, 시민배심원제 등에서 의견 수렴 방식을 정한다. 사업 주체인 제주시는 이를 바탕으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존폐를 결정한다.
정책개발청구심의위 구성은 2018년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국제병원 개설 관련 숙의형 정책개발 이후 2번째이다.
김성중 제주도 행정부지사는 “숙의형 정책개발심의위는 어떤 방식으로 도민들의 의견을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정할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축제 존폐에 대한 논쟁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태민 제주도의회 의원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 놓기를 없앤다는 발상은 축제 산업과 관광 제주의 실익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오름과 생태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이보다 더한 실익이 있기 때문에 개최 일정과 생태계 보전 등에 대한 문제를 보완한 축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들불축제는 기름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오름에 불을 놓는다는 점에서 환경 훼손 우려가 크다. 탄소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불 놓기가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김효철 곶자왈사람들 공동대표는 “오름을 태운다는 것은 점차 숲으로 변해야 하는 자연적 군락 변화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생명체를 산 채로 태우는 일이다”며 “탄소중립을 위해 매년 수백만 그루의 나무 심기를 하고, 한쪽에서는 오름을 태우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탄소를 배출하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들불축제는 봄이 오기 전 해충을 없애기 위해 목장이나 들판에 불을 놓았던 풍습에서 유래됐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1997년부터 시작됐다. 당초 정월대보름에 맞춰서 열렸는데 겨울 추위와 강풍으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2013년부터 3월로 옮겼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으며 지난해와 올해는 강원지역 산불 발생 등 여파로 축제 하이라이트인 불 놓기 행사가 금지됐다. 작은 화산체인 새별오름 가운데 38만 ㎡를 태우는 것이 축제의 백미다. 들판에 솟아오른 거대한 오름이 불타면서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오름 불 놓기 당일에만 15만 명의 도민과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유망축제, 최우수축제, 문화관광축제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임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