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견제” 독재자 아들과도 손잡은 바이든… “남중국해 철통 방어”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회담
中과 분쟁 의식 “동맹 강화는 당연”
수송기-경비정 등 지원하기로
WP “독재 책임묻는 노력에 찬물”
미국을 방문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왼쪽)이 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필리핀과 중국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두 대통령은 미-필리핀 안보 동맹 강화 등을 논의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일 미 워싱턴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중국해를 포함한 필리핀 방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1990년대 상원의원 시절 필리핀의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던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아버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가족에 대해 “독재자”라며 날을 세우는 등 악연이 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필리핀과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 “필리핀 방어 위한 美 약속 철통같다”
미 백악관은 이날 정상회담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양국 간 동맹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며 필리핀에 수송기와 해양 경비정 등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역시 “남중국해와 아시아 태평양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양국이 동맹 강화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미국과 필리핀은 1951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동맹을 맺었다.
‘중국 견제’는 이번 회담의 핵심 현안이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대표적이다.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이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이 이 지역에 ‘구단선(九段線)’이라는 해상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한 뒤 선 안의 90%가 자국 관할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6년 중국 측 주장이 유엔해양법협약에 위배된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 결정을 부정하고 있다.
당초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당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친중(親中)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악연에도 친미(親美)로 노선을 확실히 바꿨다.
● 中견제 위해 ‘독재자 아들’에게 손 내민 美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정상회담은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 축재한 재산을 환수하고 독재의 책임을 물으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독재자 가문의 후계자에게 구애하고 있다”고 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1960∼80년대 20여 년간 필리핀을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필리핀에서 계엄령을 선포해 반대파 수천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집권 기간 동안 부정 축재한 재산도 100억 달러(약 13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코스 일가는 1989년 필리핀에서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했는데, 1996년 미 연방법원은 마르코스 일가에 “고문 등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20억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마르코스 일가는 판결에 불복해 자산을 팔았고 이후 미국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향해 “마르코스 일가를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기지 임대를 유지하기 위한 레이건의 열망 때문”이라며 비판에 앞장섰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아들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축하 전화를 걸었다. 국가원수로서 외교적 면책특권을 갖고 있다며 미국 방문길도 열어 줬다. 마르코스 일가의 불법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설치됐던 필리핀 ‘바른정부위원회(PCGG)’의 루벤 카란사 전 위원장은 “미국은 미군에 문을 열어줄 문지기로 마르코스가 필요하고, 마르코스는 정권 유지와 외교적 면책을 위해 미국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청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