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86m)를 등정하는 일이 그에겐 그저 하루 일과에 불과하다. 베테랑 네팔 셰르파(등반 안내인)인 카미 리타 셰르파(54)가 생애 29번째 기록을 세운 지 열흘 만에 다시 올라 30회 등정 신기록을 세웠다고 AFP 통신이 22일(현지시간) 전했다.
카미 리타는 이날 오전 전통적 경로인 남동쪽 산등성이를 이용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했다. 열흘 만에 다시 에베레스트를 발 아래 둔 그는 역대 산악인 가운데 가장 많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기록을 늘려갔다. AP 통신에 따르면 그의 등반을 조직한 세븐 서밋 트렉의 밍마 셰르파는 정상의 그와 짧게 얘기할 수 있었다며 "몸 상태가 좋으며 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에 행복해 한다"고 전했다. 현재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인데 올시즌에는 더 이상 등반하지 않고 며칠 안에 집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일반적으로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데 며칠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짧은 시간에 여러 번 오르는 산악인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셰르파는 네팔의 한 종족 이름이자 성(姓)이기도 하며, 더 넓게는 등반 안내인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에베레스트 맨'으로도 불리는 카미 리타는 1970년 히말라야 깊숙한 마을 타메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은 성공적인 등반가를 길러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텐징 노르가이도 이 동네 출신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친과 형이 산악 안내인으로 장비도 부실하게 산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봤던 카미 리타는 곧 그들의 뒤를 따랐다. 1994년 5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당국이 등반을 통제한 3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8000m 이상 다른 고봉들로 넓히면 K2를 비롯해 로체, 마나슬루, 초오유 등을 모두 44차례나 등정했다.
그는 2018년 다른 두 경쟁자 셰르파들을 앞질러 22번째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 세계 최다 등정 기록을 세웠다. 두 경쟁자 모두 은퇴한 상태다. 이듬해 5월 15일과 21일, 일주일이 채 안되는 사이에 두 차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기도 했다. 에베레스트 23번째와 24번째 등정이었다. 지난해 5월에도 17일과 23일 두 차례 오르며 에베레스트 28회 등정까지 기록했다.
카미 리타는 29회 등정 기록을 세운 지난 12일 AFP통신에 "기록을 세워 기쁘지만, 기록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깨진다"면서 "내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함으로써 전 세계가 네팔을 인정하도록 도움을 준다는 점이 더 기쁘다"고 말했다. 2019년 인터뷰를 통해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며 "그저 일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기록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쟁자는 파상 다와 셰르파인데 지난해 27회까지 공동 기록을 갖고 있다가 이제 격차는 3회가 됐다.
숙련된 등반가로서 그는 수많은 팀을 이끌어 에베레스트 정상에 이르는 길에 로프를 고정했고, 매년 등반시즌에 더 안전한 등반을 하기 위해 훈련에 몰두하곤 한다. 최근 몇년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갈수록 커짐을 목격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22년 AFP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예전에 눈이 있던 곳에 돌이 드러난 것을 보고 있다. 에베레스트만이 아니라 다른 산들도 눈과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네팔인 산악 안내인의 중요성을 옹호하며 이들의 기여를 널리 인정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2021년 인터뷰를 통해 "많은 해외 산악인들이 우리 도움 없이는,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산들의 정상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다.
네팔 국적이 아닌 이들 가운데 최다 등정 기록은 누가 갖고 있을까? 영국 글로스터셔주 출신의 켄튼 쿨로 카미 리타와 나란히 지난 12일 정상을 밟아 18차례를 기록했다. 그 역시 산악 안내인으로 이전에는 그의 성취를 아주 낮게 평가했다. 그는 2022년 AFP 인터뷰를 통해 "훨씬 더 많이 정상을 밟은 셰르파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여성 최다 등정 기록은 락파 셰르파가 갖고 있는데 2022년에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10번째 등정을 기록했다.
한편 올 시즌에도 에베레스트를 찾는 이들이 비명에 스러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실종된 몽골인 등반가 Usukhjargal Tsedendamba와 Prevsuren Lkhagvajav이 지난 17일과 19일 차례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네팔관광청 관계자는 북아일랜드 등반가 다니엘 폴 패터슨(40)과 네팔인 안내인 파스 텐지 셰르파(23)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서 추락, 지난 21일 이후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네팔 정부는 지난달부터 다음달까지 올 봄 등반시즌에 400명가량의 입산 허가를 내줬다. 거의 모든 산악인이 현지 셰르파를 고용하기 때문에 대략 800명정도가 등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지난해 세계 최고봉을 발 아래 둔 이는 600명 이상이었다. 하지만 정상을 향하다 18명이 목숨을 잃어 최악의 등반시즌 중 하나로 기록됐다.
AP에 따르면 올시즌 벌써 450명 이상 에베레스트를 발 아래 뒀다고 현지 관리들은 전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에 따르면 왕지안(70)이 지난 21일 정상을 밟아 중국인 최고령 등정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