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ni Jaffer 가 남편에 대한 추도사를 하기전 300명쯤 모인 추도객들을 둘러 보았을때, 그녀는 장례식장 뒤편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훌쩍 큰 낯익은 백인 청년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청년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내 텔레비젼 스크린에서 그를 보았음을 상기해 냈다.
그는 David Lee 였다. Knicks 소속 선수로 알려졌던.
"전 그가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Jaffer 가 말했다.
"그리고 전 그가 장례식을 방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어 저 사람 데이빗 리네' 라고 수근거리지 않도록 장례식장 맨 뒤편에 서서 조용히 제 남편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시간 NBA 의 보안 직원이었고 그 대부분의 시간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보냈던 Scott Jaffer 의 장레식은 7월 11일 치뤄졌다. 리브론 제임스의 all-about-me ESPN 쇼가 방송되고 얼마뒤 골든스테이트로의 사인엔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지고 난 후 데이빗 리는 그의 고향인 세인트루이스에 머물고 있었다.
예정되어 있던 농구 캠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뉴욕으로 막 돌아오려던 그에게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jaffer 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우리의 보안, 약물 테스트등을 챙겨 주곤 했어요."
Lee 가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였어요. 매일밤 우리에게 농담을 던졌죠. 그가 3년동안 암과 투병했다는 걸 우린 아무도 몰랐어요."
뉴욕 닉스의 일원이 된지 5년 후, 그는 닉스 멤버로서 해야할 마지막 일을 하기 위해 토요일밤 뉴욕에 도착했고 자신의 차를 몰고 맨하튼의 웨스트 사이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Airmont 로 향했다.
그는 팀의 많은 스ㅤㅌㅐㅍ들이 라스베가스에 있는 서머리그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 그의 급작스런 소속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 팀을 대표해 참석하고 싶어했다.
그 '팀' 은, 물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라는 더 높은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Lee 를 포기해야 했다.
그가 Jaffer 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닉스팀 내부에 돌기 시작했고 그들 중 상당수는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지난 2월 Dick McGuire - 팀의 사랑받던 organizational lifer - 가 사망했을 때 David Lee 는 팀의 선수들중 유일하게 장례식에 참석한 멤버였다.
몇 주 후 닉스의 1970년 우승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축하행사가 하프타임에 있었는데, 리는 팀의 선수들 중 라커룸에서 나와 코트사이드에서 그 행사를 지켜본 유일한 Knick 이었다.
그가 "이번 시즌 나의 최악의 게임" 이라고 말했던 밀워키와의 게임이 끝나고 조차 그는 Willis Reed, Bill Bradley 와 대화하기 위해 시간을 따로 할애했는데, 이 둘은 그에게 지난 40년간 팀에 도움이 될만한 멋진 재능을 가진 선수중 하나라고 칭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땐 진짜 최고였죠."
7월까지만 해도 뉴욕에 남기를 바랬던 그에게 그때를 회상하는 건 조금 더 슬픈 일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종종 이야기해요. 이 도시와 팀에 헌신적인 사람에 대해서요."
리의 에이전트인 Mark Bartelstein 이 말했다.
"지금에 와서 벌어진 일들은, 그들이 말했던 그대로예요. 모든 스포츠를 통털어 가장 위선으로 가득차 보여요."
(“At the end of the day, it is what it is, the hypocrisy of the whole
world of sports.” )
닉스에서 가장 사랑받고 인기있었던 리의 케이스는, 클리블랜드를 떠난 리브론 제임스의 팀에 대한 낮은 충성도와 함께 묶어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팀도 물론 자신들의 이익에 가장 부합되는 일을 한다. 미안하다는 말 없이.
리의 이적 소식은 제임스와 그의 친구들 - 웨이드, 보쉬 - 의 떠들썩한 뉴스들로 인해 완전히 묻혀 버렸다. "그는 게임당 20점을 기록하고 거의 12리바운드 가까이 잡아 냈어요. 근데 그들이 (리의 소식을) 완전히 묻어 버렸죠." Bartelstein 이 말했다.
타이밍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이번에 리는 그가 2005년 1라운드 마지막인 30번째 픽으로 뉴욕에 들어올 때만큼의 좋은 타이밍을 잡지는 못했다.
"가장 후회되는 건, 안정적인 위닝팀에서 뛰지 못했다는 거예요."
리가 말했다.
"49명의 선수들과 세명의 헤드코치가 팀을 거쳐 갔어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그냥 사실일 따름이죠."
NBA 설문조사에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는 압도적으로 리보다 더 다이내믹하고 강한 선수로 평가됐다. 리는 매 시즌 - 그의 점프슛을 포함해서 - 발전하고 있었으며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지만 한번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 보지 못했다. 리는 - 아마레에게 100mil 에 가까운 계약을 선사한 - 닉스에게 2년간의 준비기간 후 리브론을 잡기 위한 준비가 끝나자 그를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왜 아마레에게 100mil 을 줬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죠."
리가 말을 이었다.
"음, 만약 리브론이 뉴욕에 왔으면, 사람들은 그가 500mil 의 가치가 있다고 얘기할 거예요."
하지만 리브론은 오지 않았고, 이제 질문이 하나 새롭게 떠오른다. 앞으로 2년간 카멜로 엔써니같은 수퍼스타가 닉스로 오지 않는다면, 과연 아마레가 데이빗 리가 했던 것만큼 팀에게 헌신적일 수 있을까?
더이상 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서부로 갔고, 그의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수비지향적인 센터 Biedrins 와 함께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파워포워드 자리에서 플레이할 것이다. 그는 워리어스의 탈렌트넘치는 젊은 가드들인 Stephen Curry, Monta Ellis와 함께 수백 수천번의 픽앤롤 플레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워리어스의 구단주는 Chris Cohan 에서 보스턴 셀틱스의 마이너 파트너 Joe Lacob, 만덜레이 엔터테인먼트의 Peter Guber 로 바뀌었고, 이는 리에게 팀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 준다.
"전 우리팀이 더이상 리빌딩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젊은 코어들을 가지고 있죠."
이번주 그는 USA 대표팀 연습을 위해 떠난다. 아마레도 그곳에 있다. 그곳에서 그와 포지션 경쟁을 하게 된다. 만약 리가 대표팀에 승선하게 된다면 그는 8월에 터키에서 열리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리는 다음달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프랑스와의 연습경기를 위해 돌아오게 된다.
지난주 맨하튼 거리를 걷는 일은 리에게 흐뭇하고 기쁜 경험이었다.
"'당신을 떠나보내게 되어 무척 슬퍼요.' 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Marni Jaffer 는 만약 당신의 남편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할 단 하나의 선수를 골라야 했다면 Lee 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Scott 은 젊었을 때 농구를 했죠. 그는 농구를 잘 알고 있었고, David Lee 를 무척 좋아했어요. 매일밤 집에 와서 그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는 Lee 의 빅팬이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Lee 는, Warrior 팀의 일원이 된 그는 떠났다. all in the name of progress.
첫댓글 I Love Basketball 게시판에 Walk-Off 님이 쓰신 글을 스크랩해왔습니다. 어쩌면 우린 뭔가 더 큰걸 잃은걸수도......
이렇게 성숙한 선수를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더욱 슬픕니다. 물론 비지니스라지만 이럴 때마다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감동이네요 이대리 ㅠㅠ
아 멋진 친구네요.. ...
지난 시즌동안 정말 열심히 해주었는데 ㅡ,.ㅜ 우리 완소 멋진녀석 닉스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멋진모습 꾸준한 완소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이대리와 함께한 몇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ㅠㅠㅠㅠㅠ
정말 닉스 프랜차이즈로 오래오래 남앗으면 좋았을텐데... 유잉같은 대형센터가 있었으면 4번자리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을텐데 말이죠...
가서 진짜 넘버원되고 퍼스트팀들고 해라. 대리야...T T
데이빗리 진짜 굿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