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덤벙 주초(柱礎)
둥글넓적한 자연(自然) 그대로의 돌을 다듬지 않고 건물(建物)의 기둥 밑에 놓은 주춧돌을 덤벙 주초(柱礎)라고 부른다.
어느 날 오랜만에 내 얼굴을 본 할머니가 물으셨다.
“얼굴이 왜 그렇게 어둡냐?”
할머니는 한쪽 눈을 실명(失明)하셨고, 목소리를 통해 사람을 분간하실 정도로, 다른 쪽 시력(視力)도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런 할머니의 눈에 손자(孫子)의 힘든 얼굴이 비친 모양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다 잘 풀릴 거니까.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니라.”
어떤 위로(慰勞)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나였다.
하지만 덤벙덤벙 살라는 말은 꽤 인상적으로 마음에 꽂혔다.
물론 그게 어떤 삶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몇 년이 흘렀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덤벙 주초’란 것을 알았다.
강원도(江原道) 삼척(三陟)에 “죽서루(竹西樓)”라는 누각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 누각의 기둥이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한 것이다.
길이가 다른 17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졌다.
짧은 다리도 있고 긴 다리도 있다.
이렇게 초석(礎石)을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 주초’라 불린다.
순간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야.”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 놓을 줄 아는 여유(餘裕)가 놀랍다.
그래서 할머니의 말뜻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평탄하지 않다.
반반하게 고르려고만 하지 말라 ‘덤벙 주초’ 처럼 그때그때 네 기둥을 똑바로 세우면 그만이다.
그렇습니다.
세상(世上)은 언제나 가만있지 않고 흔들거립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重心)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의 기둥을 잘 세워야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서둘지 말고 조급(躁急)하지 말고, 욕심(慾心) 부리지 말고, 남과 비교(比較)하지 말고, 자기(自己)만의 삶을 살아갈 일입니다.
ㅡ 옮긴 글 ㅡ
첫댓글 이 글을 읽으면서 초반부에서부터 삼척의 죽서루를 떠올렸는데 글을 읽어가니 역시나 나중에 죽서루에 대한 언급이 나오네^^
관동팔경의 제1경인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축사적으로도 글에서와 같이 독특한 방법으로 누각의 기둥돌들이 세워져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