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 이야기 /이인해
어려서부터 가장 쉽게 상위에 올려지는 반찬이 매운탕이었다. 돈 주고 사 올 수 있는 찬거리래야 일 년에 몇 번 간고등어나 꽁치, 동태 두서너 마리였다, 자반 고등어는 구워서 할아버지 아버지 겸상에 놓고 나면 애들은 어른들자시는 입구경이나 했다. 남으면 다음 끼니에 다시 드려서 그것을 맛보기는 별따기였다. 동태국을 끓이면 동태 두어 마리를 무 삐져 넣고 큰솥에 잔뜩 끓여서 고기 토막은 어른들 그릇에 넣어드리고 내 그릇에는 꽁지 정도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동태국 맛이 왜 그리 좋았는지 지금도 아련하고 절실하다.
매운탕은 얼게미나 활치만 들고 나가면 도랑에서 새우나 붕어 미꾸라지를 잔뜩 잡아 애호박이나 감자를 넣고 끓여서 식구 벌로 한 그릇씩 퍼주니 어른들 눈치 볼 일도 없고 무공해 풋고추나 고춧가루가 넉넉히 들어간 그것의 얼큰한 맛에 식후 개운함이 더할 나위 없었다. 영양가도 그땐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순수 단백질이라 사람 몸에 좋고 아무리 먹어도 해롭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물고기를 잡는 재미는 또 어떤가? 가을바람이 불고 벼가 익을 무렵 학교서 집으로 달려와 얼게미를 들고 나가면 민물새우가 도랑 풀섶에 널널해서 한 번만 떠도 그 한 컵씩은 잡혔다. 한 시간여 큰 깡통에 잔뜩 잡아 집에 오면 가족들이 대환영이고 어머니와 누님 세 분이 상위에 한 웅큼씩 올려놓고 풀 쓰레기를 일일이 골라내서 매운탕을 끓이는 것이다. 저녁 등잔불 아래 새우를 가리던 누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여름에는 우쩍 자란 볏논에 물을 빼고 도구탕 이라는 도랑을 친다. 벼농사의 한 과정인 논 그루기 배수로인 것이다. 그때 논물 싹 빠져나간 넓은 논에서 새끼를 친 송사리나 미꾸리들이 그 도구탕으로 다 모여든다. 끝에 얼게미를 단단히 대놓고 풀단을 만들어 도구탕을 밀어부치면 고기들이 전부 얼게미 안에 들어서 단번에 한 얼게미가 된다. 미꾸리가 듬성 듬성 섞인 송사리는 독오른 푸른 고추를 길이로 잘라 넣고 감자를 넣어 끓이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겨울에는 땅땅 언 물고를 도끼로 깨고 삽으로 진흙을 퍼서 깨낸 얼음 위에 펼치면 미꾸리들이 꿈틀거린다. 많지는 않으나 그것 두어 사발 넣고 무를 썰어 넣은 매운탕은 물고기가 귀한 겨울에 특별히 좋은 반찬이다. 지금은 개울도 논도 농약으로 오염되어 민물고기는 씨가 말라서 생각해 보면 그때가 그립다. 따라서 자연보호가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절실해진다.
요즘은 낚시로 붕어를 잡아 매운탕을 맛볼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낚시는 그것대로 건전한 취미 활동이라 나는 평생 낚시와 매운탕을 즐기며 살았다. 두껍게 얼음이 언 겨울 저수지에 구멍을 뚫고 낚시를 드리웠을 때 월척이 올라오는 꿈같은 풍류는 사파 세계의 허접스런 고뇌를 날려 버리기 쉽다. 그래서 낚시를 모르는 친구들과 가끔 서로 빈정거리며 싸운다. 무슨 청승으로 저수지 둑에 앉아 찌를 드려다보냐 는 게 그들의 비웃음이고 나는 당신들은 태공의 높은 경지를 영 모르고 죽을 것이다. 라고 내 취미의 자랑을 펼친다. 그들은 매운탕만은 대체적으로 맛있게 먹는 약점이 있어서 낚시를 따라가 야외에서 끓인 매운탕의 진미에 감동하곤 한다. 가끔 나는 고기를 많이 낚은 날 시인 친구들을 호명 해 본다. 매운탕을 끓일 수 있을 만큼 잡았으니 장소를 정해 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톡방에 금방 알림이 이뤄져서 고기만 가지고 가면 모처럼 친구들과 만남이 이루어지고 걸판지게 매운탕 소주 잔치가 벌어진다. 오래 매운탕을 끓이다 보니 맛을 내는 비결도 터득하게 됐다. 고기는 쓸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양념으로 고춧가루 고추장 마늘은 물론 생강과 후추가 꼭 들어 가야한다. 끝으로 한 숟갈 내외의 설탕으로 비린내를 제거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시인 친구들과 매운탕 잔치를 한 지가 일 년은 넘은 듯하다.
특별히 매운탕을 좋아하던 초등학교 동기가 있다. 객지서 수십 년 살고 귀향하여 청주에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보니 바로 이웃에 그 친구가 살고 있어 퍽 반가웠다. 수십 년 못 본 사이 생긴 그 집 가족들과도 인사를 하고 가끔 식사도 같이했는데 내가 낚시 다녀오는 저녁 매운탕을 끓이고 그 친구를 부르니 그야말로 그는 매운탕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기를 잡으며 그 잘 먹던 그를 생각했고 그가 즐거워하니 낚시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만년에 초등학교 교장이던 그는 정년을하고 가까운 고향으로 들어가 고향집에서 한가히 살았는데 수개월 전 그 동네 사는 후배를 만나 인사하는 중에 그가 혈액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했다. 아프다는 말 돌아갔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않은 그의 부인이 원망스러웠다.
이젠 낚시대를 펴놓고 매운탕을 끓여놓고 떠나간 그를 생각해야 하나 보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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