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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가지 않은 길[오늘과 내일/하임숙]
출처 동아일보 : http://www.donga.com/news/Column/article/all/20200224/99838120/1
여태 가보지 않았던 길 들어선 기업들… 위기의 끝에 기회를 찾아낼 수 있기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경제는 정말 역사상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국민의 일상이 마비됐으니 경제계가 멀쩡할 수 없다.
처음엔 자동차업계가 마비됐다. 전선 다발을 만드는 부품공장들이 중국의 춘제가 길어지면서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한국의 자동차 공장들이 줄줄이 섰다. 이 제품은 엄청난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 기업들이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갔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조차 멈춰 세운 바이러스의 파괴력에 대해 길게 놀랄 틈도 없었다. GS홈쇼핑 직원이 확진자 판정을 받으면서 홈쇼핑 방송이 사상 처음으로 3일간 재방송으로만 진행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들은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다녀갔으면 일단 매장을 폐쇄하고 있는데 주말 사이 확진자가 무서운 기세로 늘고 있어 대체 어디까지 매장이 폐쇄될지 짐작조차 못할 지경이다. SK하이닉스는 한 신입 교육생이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교육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대규모로 자가 격리했다. 주말 사이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구미공장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폐쇄됐다.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곳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 우한시에 있는 포스코 공장은 춘제 기간 내내,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용광로만은 계속 가동하고 있다. 용광로는 한 번 세우면 쇳물이 굳어 이를 재가동하는 데 무려 4개월이 걸리기에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계속 가동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철강 재고가 공장에 그저 쌓이고만 있고, 심지어 너무 양이 많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 중이다. 중국 내 물류 가동이 되지 않아 옮기기로 결정을 해도 시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번 중단하면 재가동에 1개월 반이 걸리는 석유화학업계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여행은커녕 집 밖으로 아예 나올 생각을 않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수요가 급감하자 재고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 제품은 그나마 안전성이라도 높지 석유화학 제품은 보관하다가 자칫 누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업계, 여행업계, 호텔업계는 직원들 월급 반납에 강제 무급휴가를 동원하고 있다. 영세한 기업들이 파산하는 일도 이미 일어나고 있다. 2년간 최저임금 급상승에 주52시간제를 겪은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쳤다. 지난해가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올해 초반에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끼던 기업들이 지금은 숨만 죽이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해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다. 감염 확산세가 언제쯤 진정될지, 국민들이 언제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할지 말이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늘 손을 잡고 다니는 친구다.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우리는 기회를 찾아냈다.
모든 게 불분명하지만 단 하나 명백한 건 가지 않은 길은 곧 이미 간 길이 된다는 점이다. 이미 간 길의 좋은 점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곳이 지식의 영역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이번의 경험이 우리 사회의 위기대처 능력을 키우기만 한다면 그 또한 최악은 아닐 것이다.
하임숙 경제부장 artemes@donga.com
한계와 고정관념 그 너머
빛viit은 인간이 의지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다. 또한 종교적 이론이나 규율에 갇혀 있지도 않다. 만약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것일 뿐 우주마음의 것은 아니다.
빛viit은 우리에게 무한(無限)의 차원으로 다가오기에 이 힘을 마주하는 우리의 마음이 한계를 초월하여 열려 있다면 빛viit과 함께 나타나는 변화 또한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우리의 꿈,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한계와 고정관념 너머 시공간을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해서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밤하늘을 찬란히 수놓는 수많은 별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 빛viit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작은 생명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우주마음을 닮아 나온 빛viit 마음이 심어져 있다. 이 빛viit마음으로 되돌아가 우리 생각부터 활짝 열어보자. 지금도 우주근원의 빛viit은 모든 인간의 한계를 넘어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출처 : ‘빛명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초판 1쇄 발행 2009/09/14
2017/12/15 초판 40쇄 기념판 P. 274
김영환 몬시뇰
2014년 2월 1일,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그분이 임종하셨습니다.”
이날 새벽 1시50분경 그가 83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인연을 이어온 김영환 몬시뇰이었다.
문득 딱 한 달 전인 1월 1일 저녁의 일이 떠올랐다. 빛viit과 함께 오래 인연을 맺어온 울산 전형미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빛viit 선생님 여기 안 오세요?”
“거기가 어딘데?”
“여기 가톨릭병원입니다. 몬시뇰님이 오늘 밤을 못 넘긴답니다. 가까운 지인들도 와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예정입니다. 의료진들은 몸에 붙은 의료기기들을 떼면 99% 운명하실 거라고 합니다. 의식도 없는 상황이라 마지막 얼굴을 뵙는데 빛 선생님이 안 보여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연락을 못 받았는데…….”
“선생님께 연락이 안 갔다고요?”
몬시뇰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연락이 닿아야 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없었을까? 짐작이 갈 만했다. 위급할 때마다 내가 가면 그가 깨어났으니 이런 기적을 지난 10여 년간 수차례 지켜본 간병인도 지칠 만도 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임종광력을 줘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톨릭 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하니 저녁8시 반이었다. 면회가 끝나고 외부인은 출입금지인 상황이라 간신히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9시 반이 되어서야 병실로 들어갔다.
“저, 정 선생님, 사실은 오늘 신부님이 달고 계신 호흡기를 뗀 뒤에 바로 부검을 하기로 했답니다. 도대체 이미 10년 전에 끝났어야 할 명줄이 어찌하여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는지 의학적으로 검사를 해보기로 했답니다. 이미 교구청에서도 그리 허락이 난 모양입니다. 이제 어쩌지요?”
나를 기다리고 있던 전형미 교수가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뭐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 몬시뇰이 빛viit을 받고 삶을 연장 받았다는 걸 아는 몇몇 의사들이 그걸 부정이라도 하듯 나서서 주선을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들어가 봅시다.”
나는 병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나를 보자 주치의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빛viit을 준다는 그분이 바로 이 분입니까? 택도 없는 소리 마시오. 안 오기로 했잖소? 오늘은 안 됩니다. 12시에 끝내고 내일 아침 7시에 부검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편안히 가십시오, 라고만 하시오!”
의사는 나를 윽박지르듯 말했다. 이미 교구청에서도 허락을 받아놓았으니 이제 호흡기만 떼면 끝날 일을 내가 망쳐 놓을까봐 겁이 난 모양이었다. 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병실을 둘러보았다. 김 몬시뇰과 가까운 지인들이 슬픈 얼굴로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젊은 여성 한 사람도 와 있었다. 당시 효성여대에 근무하던 안젤라 씨의 딸 혜인이었다. 김 몬시뇰이 어린 시절부터 학비 지원은 물론 스승과 조부 역할까지 맡아 도와주던 사이였다.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내 눈 좀 보고 가시면 안 돼요?”
그녀는 친손녀처럼 자신을 아껴주던 김 몬시뇰을 붙잡고 슬피 울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지인들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생각한 대로 빛viit의 세상으로 가라고 임종의 빛viit을 드리기로 했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고 지금까지 이 상태로 10여 년을 버텼다는 게 기적이라고 했던 주치의 말이 떠올랐다.
“신부님, 이젠 정말로 떠나시는군요.”
나는 의식도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뼈만 남은 김 몬시뇰을 보다 눈자위가 뜨거워졌다. 1970년쯤이던가, 김 몬시뇰은 박상태 신부의 수석보좌신부로 내가 복사를 보던 계산 성당으로 부임해왔다. 그때부터 나와 몬시뇰은 때론 형제처럼 친구처럼 때론 사제처럼 허물없이 지내온 분이었다.
문득 김 몬시뇰이 첫 빛viit 만남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1988년 그 당시 김 몬시뇰은 효성여대 총장 부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어느 날 김 몬시뇰이 내게 걱정스레 말했다.
“내 눈이 왜 이러지? 조간신문을 보는데 글씨가 쪼개져 보이기 시작하네. 눈이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눈을 쉰 다음, 다음 날 기도를 하기 위해 성서를 펴는데 글이 또 쪼개져 보이는 거라. 이제 곧 총장 부임을 하면 각종 문서 처리 및 결제 업무가 많을 텐데 큰 걱정일세. 아무래도 안과를 가봐야겠네”
김 몬시뇰은 대구의 한 유명 안과 의사를 찾아갔다.
“신부님 큰일 났네요. 글자가 쪼개져 보이는 건 눈의 어떤 부분에 손상이 간 건데 이건 현대의학으로는 방법이 없습니다. 약도 치료 방법도 없고……, 원인을 정확히 모르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 몬시뇰은 답답한 마음으로 물었다.
“한국의 의술로는 수술 정도는 해볼 수 있겠으나 성공 확률이 20~30%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술을 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실명할 수도 있으니 불편하더라도 이대로 참고 사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김 몬시뇰은 그 길로 서울 유명병원을 찾아갔지만 똑같은 대답만 들었다.
“한 의사가 내게 눈은 독일의 의술이 최고이니 독일로 가보라고 권했네. 거기서 한방, 양방, 대체의학까지 병행해서 시술을 하고 있던 터라 의학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더군.”
김 몬시뇰은 한 의사의 권유로 독일로 날아가 안과 분야의 최고 의료진을 만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의사 역시 독일 의료기술로도 원인을 밝힐 수 없으니 치료방법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김 몬시뇰은 큰 실망감을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앞으로의 삶은 물론 곧 다가올 대학 총장 부임 등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몬시뇰은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다급하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자네, 6개월 전쯤 나하고 나는 이야기 기억하는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지 뭔가?”
“아, 그때 말인가요?”
나는 6개월 전 김 몬시뇰을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순간 그의 눈에 어떤 이상이 감지되었다.
“신부님, 눈에 뭔가 이상이 있습니까?”
“뭐? 내 눈이 어때서? 잘만 보이는데?”
김 몬시뇰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다.
“지금 그 상태에서 6개월쯤 지나면 눈에 글자가 흐트러져 보일 겁니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빛viit을 받으시면 증상을 멈출 수 있는데 지금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6개월 뒤에 받으시렵니까? 좋을 대로 하십시오.”
“에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뭘 그렇게까지, 나중에 받지 뭐.”
그때까지만 해도 빛viit의 힘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적으로 그걸 느껴 본 적이 없던 김 몬시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빛viit을 줄 수 있겠는가? 현대의학으로는 내 눈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네. 빛viit을 받으면 괜찮아지겠나?”
김 몬시뇰은 잔뜩 두려운 목소리로 물었다.
“빛viit을 받으시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약속 장소와 빛viit 받을 시간을 정한 후 전화를 끊었다.
마침내 총장 취임을 며칠 앞두고 남산동 주교관 내 사제들만의 특별미사실로 들어갔다. 김 몬시뇰은 성당 십자가 앞에 앉았다.
“여기서 빛viit을 다오.”
나는 십자가 앞에서 빛viit을 달라는 신부님의 청이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종교에서 말하는 마귀나 사탄 등 나쁜 귀신들은 십자가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도 염주나 부적을 쓰면 귀신이 무서워하고 일부 민속학자는 정화수를 뿌려 악귀를 쫓는 민간풍습도 있다고 주장했다.
항간에서 어떤 종교인들은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신이나 귀신이 붙어서 해주는 일이라고 억지주장을 퍼뜨렸다. 빛viit은 법당이든 교회든 길거리에서든 그 어느 곳에서도 그 힘을 구애받지 않고 빛, 공기, 물이 함께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함께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나는 이미 그런 걸 모두 포용하고 초월하였지만 김 몬시뇰은 그걸 알기에 일부러 십자가 앞이라는 성스러운 장소를 택한 것이다.
김 몬시뇰은 마침내 두 손을 벌리고 앉아 빛을 받은 자세를 취했다.
“맑아져라!”
나는 한마디로 빛viit을 보냈다. 우주 근원에서 오는 생명 에너지, 빛viit은 어떤 행위나 이론 등이 필요하지 않았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물론 김 몬시뇰도 놀라서 서로 눈을 떠 마주 보았다.
“니 뭐하노? 이거 머리카락 타는 냄새 아이가? 라이터로 머리 찌지는 줄 알았다.”
“그러게요. 타는 냄새가 왜 나죠?”
신부님은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만져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건 머리카락이 실제로 탈만큼 어떤 인위적이니 힘이 가해진 게 아니라 우주의 빛viit에 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김 몬시뇰과 내가 각자의 머리를 매만지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창가에서 ‘타탕’ 하며 돌멩이가 유리에 부딪히는 마찰음이 두세 차례 강하게 들렸다. 유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이건 빛viit이 아주 강하게 올 때 가끔 함께하는 강력한 반사음이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에너지도 이런 반사작용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다만 생명에너지 빛viit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무한 능력의 힘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불가능한 물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김 몬시뇰은 그 순간 옆에 있던 성서를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됐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글씨가 깨져 보여 성서를 읽을 수 없었던 김 몬시뇰은 두 눈을 감싸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소리쳤다.
“누가 이 빛viit을 두고 마귀냐 사탄이냐 하고 감히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 장소를 택한 게 죄송스럽고 겸손하지 못했던 것 같구나.”
김 몬시뇰은 합장을 하고 두 눈을 감고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 날 빛viit의 기적, 빛viit의 현존을 실제로 체험한 김 몬시뇰은 빛viit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다 버리고 긍정적인 자세로 계속해서 묵상에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기적이다! The God of Miracle!”
묵상에서 개어난 김 몬시뇰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이 성스러운 빛viit을 두고 우선 오해나 혹평부터 해대는 현실이 참 안타깝구나. 어릴 때부터 너를 지켜보고 빛에 대해 불신에 찬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이젠 아니다. 6개월 전의 예고부터 시작해 지금 내가 체험한 이 기적을 보건대 네가 하는 일은 최첨단 과학이나 그 어떤 종교의 의식으로도 할 수 없는 초종교적이고 초과학적인 일이다. 빛viit으로 내 눈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았잖느냐?”
빛viit을 두고 초과학, 초종교,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한 건 김 몬시뇰이 처음이었다.
이후 김 몬시뇰은 효성여대 총장에 취임하여 총장 직무를 잘 마치고 91년에는 몬시뇰에 서임되었다. 그리곤 대구 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학장, 교수로 활동하다가 정년퇴임 후에는 다시 중국 해북으로 사목(司牧) 활동을 떠날 만큼 건강하게 일했다.
김 몬시뇰은 평소 자신이 몸소 빛viit의 능력을 받고 빛viit의 힘을 믿는 까닭에 빛viit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을 많이 추천해 주었다. 특히 빛viit의 힘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내가 집필한 『행복을 주는 남자』의 추천사를 기꺼이 써준 일은 지금도 큰 고마움으로 남는다. 당시 고위 성직자 입장에서 종교 밖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빛viit의 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가장 먼저 스스럼없이 그 일을 해주었다.
“내가 본 사실을 그대로, 양심대로, 원칙대로, 소신대로 쓰는 건데 누가 뭐라 그러든?”
김 몬시뇰은 흔쾌히 나와 자신의 관계를 비롯해 빛viit에 대한 긍정적인 힘에 대해 긴 서문을 써주었다.
2000년 즈음, 사단법인 빛viit명상이 자리를 잡아갈 때였다. 종교계, 학계, 법조계 할 것 없이 빛viit의 힘에 대해 오랜 세월 검증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 가운데 김 몬시뇰은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뒤에서 나와 학회를 지탱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당당히 빛viit의 현존을 증거 해주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지팡이를 손에서 놓던 날 함께 이를 지켜보고 후일 이 일을 증거 하기도 했다. 특히 의 · 과학이나 종교로 불가능한 많은 외부 인사들의 사례를 가져와서 함께 하고 일본의 이찌가와 국회의원을 초청해 일본이나 미국의 의학으로도 불가능한 난치병을 빛viit으로 완벽하게 치유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몬시뇰은 내게 말했다.
“빛viit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그 일로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건 참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베푸는 일 또한 베풀었던 일을 남에게 절대 드러내지 마라. 그것이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다. 요즘 수재의연금이나 기부금을 내고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기부를 하든 기증을 하든 본인의 선행이 어떤 방식으로 크고 작든 알려지게 되면 그것은 하늘의 복이 되지 않는다. 세간에 알려지면 말과 평판으로 그 복을 받았기 때문에 사후의 복을 받을 수 없다.”
김 몬시뇰은 행여 내가 빛viit으로 인해 교만이나 자만에 빠질까 염려하여 미리 경계를 하도록 일러주셨다.
“아, 신부님과의 세상적인 인연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김 몬시뇰의 추억들이 스냅사진처럼 스쳐 지나가자 나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컥 슬픔이 차올랐다. 계산 성당 복사시절부터 시작해서 그의 추천으로 첫 직장인 호텔에 발을 들이게 된 일이며, 빛viit의 힘을 널리 알려온 과정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나는 다시 마음이 움직였다.
“신부님, 눈 뜨세요!”
함께 모인 사람들이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빛viit을 주었다.
“잠시 의식을 되찾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가십시오. 10분 뒤에 깨어날 겁니다.”
나는 순간 우주마음의 뜻을 담아 무의식적으로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를 지켜본 의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 뒤통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긴 당연히 그럴 만했다. 죽음 직전, 의식불명에 빠진 사람이 다시 의식을 되찾는 건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정확히 10분이 지나 전 교수가 쫓아 나와 소리쳤다.
“빛viit 선생님, 깨어나셨어요!”
병실로 다시 들어가 보니 김 몬시뇰이 두 눈을 뜨고 기적처럼 깨어나 있었다.
“세상에, 어떤 의학이나 과학, 기도 그 무엇도 안 되던 사람이 깨어났잖아!”
사람들이 잔뜩 흥분하여 외쳤다.
“신부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하십시오.”
지인들이 하나둘 신부님과 고별인사를 나누었다.
내 차례가 되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좀 더 머물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눈빛이 전해져 왔다.
“신부님, 좀 더 살고 싶으십니까?”
나는 신부님을 보며 물었다. 신부님이 눈을 깜빡였다.
“어느 정도 필요하십니까?”
내가 묻자 신부님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1년입니까? 아니면 한 달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신부님은 다시 또 눈을 깜빡였다.
한 달, 신부님은 자신이 누워있는 동안 못다 한 마지막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부님, 이제 한 달간 삶의 기회를 더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입니다. 정리 잘하십시오.”
나는 생명 원천의 주인이신 그 분의 뜻에 따라 다시 그에게 빛viit을 주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1개월로 다시 연장되었다.
“빛viit 선생님, 정말 그게 가능한가요? 빛viit이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생명연장까지 가능합니까? 한 달을 더 살게하는 일까지 말입니다.”
한 지인이 놀라 물었다.
“내가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수녀님, 목사님, 스님 등 수많은 성직자들이 이 빛viit을 만나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당당하고 스스럼없이 빛viit을 이야기하신 분이기에 가능합니다. 두고 보십시오. 의료진 말대로 내일 운명하실지, 한 달 더 사시게 될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병실을 나왔다.
그 후 김 몬시뇰은 한 달 동안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이 선종한 후 부검을 한다는 소리를 누워있는 상태에서 들었다며 완강하게 반대를 하였다.
“누가 나를 부검하느냐? 안 된다!”
그러던 2014년 2월 1일 그야말로 딱 한 달 후 울산 전형미 교수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빛viit 선생님, 김 몬시뇰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며칠 더 지나거나 하루 이틀 앞당겨 선종하셨다면 저희도 의료진도 선생님의 예언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딱 한 달 만에 돌아가셨어요.”
전형미 교수는 슬픔과 놀라움에 휩싸여 전했다.
‘신부님,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나는 빛viit과 함께 행복한 선종으로 들어가신 김 몬시뇰에게 우주근원으로부터 오는 영혼의 빛viit을 드렸다.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4월 17일 초판발행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35-47
학회장님의 든든한 버팀목이셨던 김몬시뇰님의 빛에 대한 확신과 당당함으로 마지막 정리의 시간을 가지셨네요
김몬시뇰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무한의 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빛의 힘 오늘도 감사로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 빛이야기는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모든 한계와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빛과 함께
가치있고 보람된 삶을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빛과 함께하는 삶을 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학회장님의 든든한 버팀목 이셨던 김영환 몬시뇰님의 빛이야기 다시 읽어보아도 감동입니다.감사합니다.
학회장님과 김영환 몬시뇰님의 빛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초과학 초종교 초자연적인 빛
우주마음과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말씀, 감사합니다.
빛의 터 찰라의 기적의 우주 근원으로 부터 오는 영혼의 빛viit을 빛마음님 학회장님의 특은의 선처의 생명원천의 주인이신 그 분의 뜻에 따라 다시 빛viit의 힘... 드리심을 받으신 몬시뇰 신부님의 종교계.학계.법조계. 할 것없이 빛viit의 힘에 대해 오랜 세월 검증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그 가운데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뒤에서 학회장님.학회를 지탱해주었을 뿐만아니라 초종교 초과학적인 처음 말씀인정.입증해 주심에도 빛의 세상.나라로 가시게 임종광력을 줘야겠다심의 느낌.더 빨리 받으셨다면 아쉬움을 남긴채 첫빛만남 성당십자고상앞때의 "맑아져라 "기적빛viit과 함께 행복한 선종의 크신 노고와자비의참사랑을...
세상의 그 어떤 힘이 생명을 좌지 우지 한다는 말입니까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 만이~~ㅇ
오래전에 회합때 학회장님께서 몬시뇰 신부님께서 임종하셨다고 하시면서 힘들때 많이 의지가 된분이라고 . 그리고 우리학회에 많이 힘이 되어 주셨다면서 말씀 해주셨습니다
두분의 아름다운 인연
소중한 빛이야기 읽으 면서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