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맛집
막걸리엔 어울림의 문화가 응축, ‘주막’을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12호(2020. 11.15)
서형원 (서울대 경제87-92) 과천 별주막 대표
“28년 동안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 고유의 술과 특산물을 접하게 됐죠. 산지에서 제철 음식과 전통주를 즐기다 보니 입맛이 여간 까다로워진 게 아니에요. 웬만한 식당, 술집 갖고는 만족할 수 없었죠. ‘별주막’은 한편으론 제가 좋은 술, 좋은 음식 먹고 싶어서 차린 가게입니다.”
서울대 동문이 주점을 운영하는 것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러나 서형원(경제87-92) 별주막 대표만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인생 스토리는 더욱 드물다.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군 제대 후 전업 사회운동가로 투신, 2006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시의원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경제학도-환경운동가-기초단체 의원-주점 사장. 이 모두를 꿰뚫은 서형원 동문을 10월 28일 과천 별주막에서 만났다.
“1994년 즈음 환경문제가 시민운동의 한 축으로 부상했습니다.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경제학은 환경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데 꼭 필요합니다. 자연환경의 파괴를 초래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산업 활동과 경제 시스템이니까요. 그 시스템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정치입니다. 무소속으로 시의원을 지내고 2014년 녹색당 후보로 과천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유죠. 개인적인 패배보단 선거에 헌신했던 분들의 실망과 좌절을 무겁게 받아들여 정계에서 물러났습니다.”
일견 서 동문의 환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 같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의 최일선, 자영업계에서 별주막은 그의 이상을 증명해 보일 ‘실험실’이기 때문. 환경운동 하던 시절 쌓아 올린 산지 생산자들과의 긴밀한 네트워크 덕분에 벌교 쭈꾸미, 통영 생굴과 멍게, 영산포 홍어, 홍성 친환경 돼지고기, 목포 조기, 공주 알밤묵 등 전국 30여 곳의 산과 들, 바다에서 정직한 땀으로 거둬들인 농수산물이 빠르게 공수된다. 수입 농산물, 화학조미료, 유전자조작 식재료 등 돈벌이에 치우쳐 건강한 식탁을 위협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요즘 고품질 친환경 먹거리는 그에 상응하는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게 서 동문의 지론. 올바른 생산활동을 독려하게 되니, 또 다른 성격의 환경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주막에서 손님상에 올리는 모든 술과 음식은 제가 직접 그 생산과정을 지켜본 것들 입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예요. 대한민국 1호 민속주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는 지역 어르신들이 직접 디디신 누룩으로 빚어 다른 지역에선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맛을 지녔고요. 지리산 민박집에서 빚은 ‘꽃잠’ 막걸리는 쌀을 100번 씻는 정성으로 단맛보다 막걸리 고유의 맛을 추구한 게 특징입니다. 진천 ‘덕산쌀막걸리’는 허영만 화백이 만화 ‘식객’을 통해 소개했고, 막걸리 마니아들에게 최고로 꼽히는 정읍 ‘송명섭막걸리’는 식품명인 송명섭 선생이 본인 이름을 걸고 빚는 수제 막걸리예요.”
전통주점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서형원 동문. 막걸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음은 물론이다. 술평론가 허시명(국문81-85) 동문이 대표로 있는 막걸리학교 28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그 자부심이 대단하여 ‘막걸리학교 수료가 내 최종 학력’이라고 말할 정도.
2016년 1월 문을 열어 2018년 프랜차이즈 등록, 같은 해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착한 프랜차이즈 사업에 선정됐으니 별주막은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개업 초기엔 ‘막걸리=값싼 술’이란 인식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영리단체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일하던 때와 달리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고.
서 동문은 막걸리와 주막 문화에서 한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말한다. 집집마다 술을 빚어 느긋하게 즐겼던 우리 전통이 일제강점기 들어 탄압받았고, 압축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음주문화에 억눌려 있었다고.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해진 지금은 평등하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문화가 뿌리내려, 주막이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호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도 반상의 구분 없이 함께 먹고 자고 마시던 곳이 주막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막걸리가 당길 때는 소주나 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와는 기분이나 분위기가 달라요. ‘먹고 죽자’보단 ‘마시고 풀자’는 정서가 강하죠. 그런데 한국 사람조차 주막을 영어로 ‘코리안 이자카야’라고 써요. 우리 술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얕은 겁니다. 프렌차이즈로서 별주막을 성공시켜 김치, 불고기처럼 ‘주막(JUMAK)’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막걸리학교 동문이 군포 산본에 별주막 2호점을 개점했다. 막걸리만 25가지, 청주와 숙성주를 포함하여 37가지 전통 술을 선보인다. 겨울을 앞두고 과메기, 생굴 겉절이 등 새로운 메뉴가 대폭 추가됐다. 총 30석 규모. 포장 및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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