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나라 스페인(Spain)<4>
<10> 발렌시아(Valencia)
스페인의 중동부, 투리아(Turia)강 어귀의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 발렌시아는 인구 260만으로 스페인 제3의 도시이다. 유럽에서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로 유명한데 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그늘에 가려 이름이 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유물 유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광도시로서 세비야(Sevilla)나 그라나다(Granada)보다도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대규모의 예술 과학 단지가 들어서면서 볼거리도 많아지고 도시경제도 활성화되는 등 차츰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발렌시아는 AD 2세기에는 로마가, 11세기에는 무어족이 발렌시아 왕국 수도로, 13세기에는 아라곤 왕국, 15세기에는 카스티야 왕국이 차지하는 등 역사의 도시이며, 15세기에 세워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실크 거래소 ‘라 론하(La Ronja de Seda)’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에서 제일 크고 오래되었다는 ‘중앙시장(Mercat Central)’ 등이 있고 가톨릭 건물들도 많은데 특히 ‘100의 종탑도시’로 알려졌을 만큼 문화와 역사의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전통음식 ‘파에야(Paella)’가 처음 만들어진 곳도 이곳이라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발렌시아는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있는 성 안의 구도시(舊都市)와 성 바깥의 현대 첨단 예술과학기술단지를 중심으로 신도시(新都市)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1박만 하였기에 구도심의 유물유적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발렌시아 대성당(정면) 발렌시아 대성당(후면) 화려한 성당 내부모습
발렌시아 구도심 가운데에 있는 대성당(Valencia Catedral)은 13세기 중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건축했다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문은 18세기 바로크(Baroque) 양식, 후문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 측면의 문은 고딕(Gothic) 양식 하는 식으로.... 암튼 굉장히 고풍스럽고 내부 장식 또한 화려하다. 그런데 이 발렌시아 대성당이 유명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하였던 성배(聖杯) 진품을 보관하고 있는 사실이다.
성배(聖杯) 성배보관 벽감 수많은 성배들......
성배(Grail)라면... 최후의 만찬 이후 사라진 성배를 찾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찾아 헤맸던....
‘성배를 찾아서’ 등 영화로도 수없이 찍었고, 실제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단을 조직하여 수없이 성배를 찾아 떠났다고 하는데 성배는 죽은 사람도 되살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중세의 고전 ‘아더왕(King Arthur) 이야기’에 성배를 찾아나서는 기사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후 수많은 문학 작품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영화로도 셀 수 없이 많이 제작되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성배를 찾아서’에서는 엄청난 모험 끝에 마침내 찾아내는데 성배는 신비한 힘이 있어 수많은 종류의 잔들 중에서 가짜를 잡으면 잡은 사람이 잿더미로 변하고, 진짜 성배는 물을 담아 상처에 부으면 감쪽같이 상처가 아물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성배는 그 후 또다시 영원히 사라진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장소인 모로코의 ‘에잇 벤하두(Aït Benhaddou) 요새’를 보고 왔는데 붉은 진흙으로 쌓아올린 전형적인 아프리카 요새로 엄청나게 멋있고 신비로웠던 기억...
발렌시아 대성당은 들어서자마자 옆쪽에 있는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소박한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옛날 지하묘지로 사용되었던 동굴이 나타나고 실제로 해골도 놓여있다. 여러 개의 방을 지나며 귀중한 성화(聖畫)와 성물(聖物)들을 감상하고 위로 오르면 드디어 성배를 전시한 방이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수많은 잔들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성배일까? 2000년 전,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열 두 제자들과 같이 앉아 빵을 나누면서 ‘이 잔은 내 피의 잔이니...’ 하시며 포도주를 담아 제자들 입에 대어 주셨던 바로 그 잔!! 방안에 들어서면 장 속에 수십 개의 잔들을 전시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큰 잔, 작은 잔, 황금 잔, 은색 잔, 옥색 잔.... 화려한 장식을 한 잔, 소박하게 아무런 장식이 없는 잔...
첫 번째 사진의 나무로 깎은 것처럼 보이는... 저 잔이 진짜 성배가 아닐까? 전시품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참고로 두 번째 사진의 저 벽감(壁龕)의 한 가운데 유리 상자 속에 저 첫 번째 잔이 들어 있다. 첫 번째 사진은 내가 인터넷에서 따다 옮겨놓은 것이다.
북문(Torres de Serranos) 북문의 뒷모습 성문 회랑 성문 위의 모습
발렌시아 구도시로 가려면 성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성벽은 모두 없어지고 성문만 두 개 남아 있다.
예전에 북문으로 불렀다는 ‘세라노스문(Torres de Serranos)’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데 어마어마하게 크고 멋지다. 19세기 초, 나폴레옹군이 쳐들어왔을 때 견고한 이 발렌시아 성벽에 막혀 결국 되돌아갔다고 하는 튼튼한 성이었는데 성벽은 흔적도 없고... 성문만 남은 것이다.
성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시가가 되는데, 성문의 뒷면은 두 번째 사진처럼 다섯 개의 구멍이 있는 이상한 모습이다. 측면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입구에서 표(2€)를 끊으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양쪽 탑은 중간부분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건너다닐 수 있고 벽 안쪽은 방들이 있는데 원래는 무기고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문 위로 올라가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제법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는데 대부분 이름 있는 볼거리들은 구시가지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모두 걸어 다니면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은 ‘콰르트문(Torres de Quart)’이라고 하는데 후문 격으로 매우 좁지만 높다랗고 웅대한 모양이 볼만하고, 북문이 모가 난데 비하여 이 문은 둥근 원기둥 모양이다. 특히 이 문의 둥근 벽면에는 옛날 전쟁 당시 대포와 총탄 세례를 받은 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우리는 작은 문을 통해서 구시가로 들어섰는데 좁은 골목길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붐비는데 좁은 골목길 틈새로 너무나 아름다운 첨탑이 보인다. 물어보았더니 ‘산타 카타리나 수녀원의 첨탑’이란다.
라 론하(실크거래소) 라 론하 내부 후문(Torres de Quart) 산타 카타리나 탑
또 하나 발렌시아의 자랑으로 ‘라 론하 실크거래소(La Ronja de Seda)’가 있다. 발렌시아의 황금기였던 15세기에 지은 건물로, 당시 발렌시아 대성당을 지었던 건축가 ‘뻬레 꼼테(Pere Compte)’가 지은 건물이라고 하며 전형적인 고딕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져서 지중해 건축을 대표한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고 하며 1996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겉모습도 아름답지만 실크 상인들이 모여 실크를 거래했던 방들도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데 섬세하게 조각한 기둥에서부터 천정까지 완전히 예술작품이라 할 만 하며, 굉장히 큰 방들이 수도 없이 많다. 지하에는 실크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던 방들도 있는데 각각 용도에 따라 모두 특징이 있다. 둥그렇게 지어진 건물들 가운데는 제법 넓은 공간도 있어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비르헨 광장(Plaza de la Virgen) 성 요한(St. John)성당 중앙시장 웅장한 시장건물
구도시 중앙에는 ‘비르헨 광장(Plaza de la Virgen)’이 있는데 제법 넓고, 가운데는 큰 분수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광장 가운데 있는 분수에는 조금 높은 곳에 남자가 누워있고 그 둘레에는 8명의 소녀가 물을 붓고 있는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남자는 도시 옆을 흐르는 ‘뚜리아 강(Río Turia)’의 상징이고 물을 붓는 소녀들은 강의 8개 관개수로(灌漑水路)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광장에서는 매년 ‘라스 파야스(Las Fallas)’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광장 가운데에 성모상을 모셔놓고 사람들이 꽃을 헌화하는 축제라고 한다. 광장 뒤쪽의 커다란 8각 탑이 있는 건물이 대성당인데 이 부근에 여러 개의 다른 이름의 성당들이 몰려있어서 이름들이 헷갈린다.
‘발렌시아 중앙시장(Valencia Mercado/Mercat Central)’은 1928년에 문을 연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역사가 거의 100년이 되었는데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부 건물모습과 널찍하고도 기능적인 내부시설 등 극히 현대적인 모습이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상품들은 질적으로 최고급만 취급하며 비교적 좋은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발렌시아는 오렌지의 도시로 유명한데 부근에는 오렌지 농원이 많아서 질 좋은 오렌지가 많이 생산되고 특히 오렌지의 맛이 좋다고 한다. 즉석에서 짜 주는 오렌지 주스가 유명하다던가....
식료품, 과일가게 시장 입구 잡화코너 하몬(Jamón) 가게
우리가 갔을 때 시장 앞 광장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고 한 쪽에는 끝이 안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어떤 유명인의 싸인을 받으려고 서있는 줄이었다. 옆 사람에게 슬쩍 물었더니 유명한 가수(Singer)로, 사람들은 즉석에서 파는 그 사람의 CD를 사가지고 싸인을 받고 같이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 CD가 엄청나게 팔리겠다는 생각....
전통음식 파에야 미겔레테 탑 도자기 박물관
이곳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스페인의 전통음식 파에야(Paella)는 불린 쌀에다 갖은 양념을 하고 토끼고기를 넣고 볶아서... 한번 먹어보자고 시켰는데 우리 돈 1만 3천 원 정도로 꽤 비싼 편이지만 양이 제법 많아서 저거 하나로 둘이 배부르지는 않았지만 한 끼는 충분했다. 그런데... 정말 맛있다. 저것은 닭고기 파에야인데 전통 토끼고기 파에야는 없냐고 물었더니 고급 식당에나 가야 있다는 대답이다.
스페인 전통음식인 파에야는 스페인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옛날 로마인들이 이곳 이베리아 반도로 처음 왔을 때 언덕마다 덤불이 많고 토끼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히스파니아(Hispania)였다.
라틴어로 히스파니아는 ‘토끼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다른 이름인 에스파냐(Espana),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사람들을 히스패닉(Hispanic).... 이 모든 말의 어원이다.
그리하여... 토끼가 많은 고장이었으니까 토끼고기 요리가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근처에 멋진 조각품들로 외부를 장식한 건물이 있다. 지금은 도자기박물관이라는데 예전에는 궁궐이었던 모양으로 정식 명칭은 ‘마르케스 아구아 궁전(Palacio Marques dos Aguas)’ 이었다고 한다.
외부의 조각들이 너무나 멋져서 한 컷... 들어가지는 않았다. 광장에서 보이는 첨탑은 1420년에 완공된 ‘미겔레테탑(Torre del Micalet)’으로 발렌시아 대성당의 종탑인데 꼭대기에 오르면 시내가 한눈에 조망된다고 한다. 첨단 과학예술단지라는 신도시를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스페인의 대도시 발렌시아(Valencia)는 상상 외로 볼 것이 많은,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