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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한상윤 단편소설
시어머니가 무쇠 솥 걸린 아궁이에 솔가지를 꺾어 넣으면서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흘끗 보고 말했다.
“편지 경대 위에 뒀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한 지경에 모린 내게 혹 반가운 소식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군데군데 젖은 솔가지는 잘 타지 않았다. 연기가 이맛돌을 핥고 냇내만 났다.
“물 더웠을 테니 저녁 먹고 목욕하렴.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야.”
나는 종당으로 올라가 방문 고리를 당겼다. 툇마루로 올라서서 허리를 굽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편지는 가마반드르한 기름때에 절은 시어머니의 경대 위에 있었다. 피봉을 찢었다.
....갓 태어난 돼지새끼가 에미 젖도 빨아보기 전에 실의에 빠진 주인의 쇠스랑 끝에 찍 혀 잿더미에 던져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너의 애로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힘이 되어주지 못해 안타깝다. 이런 때는 속히 손을 떼는 일만이 능사일 줄 안다.
편지 갈피에는 소액의 우편환이 끼어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된 동생에게 작은 오빠는 자별하게 마음을 썼다. 편지는 나의 언 몸을 휘감아보고 사라진 한 자락의 더운 바람이었다. 편지를 봉투에 넣어 서랍에 던지고 뒷문을 열었다. 가파른 돌산이 굴뚝과 추녀 밑까지 바투 다가와 있다. 산중턱에 그물이 나무들을 의지해서 둥글게 둘러쳐져 있었다. 그 안의 칠면조들이 키 큰 밤나무가지와 홰에 올라앉아 날갯죽지에 긴 목을 틀어넣고 밤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들뜬 벽지 안쪽에서 흙이 한 줌씩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벽장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반가부좌를 튼 두어 자 높이의 석가모니불상이 다홍빛 비단방석 위에 모셔졌고, 놋쇠 촛대에서 촛불이 조용히 타올랐다. 만수향 냄새며, 시어머니가 불공을 드렸을 터였다.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검은 구름 떼가 낀 거울 속에 기미 슬고 겉늙은 여자의 얼굴이 담겼다. 왼쪽 눈썹 위의 그리마 같은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태호의 손에 다부지게 들렸던 주머니칼의 예리한 날이 뇌리를 스쳤다. 그 애는 큰오빠가 화류계 여자와 보쟁여 얻은 아들이었다. 큰오빠는 가끔 태호의 시득시득한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시장 통을 돌아, 고무신을 사 신긴다든가 바지를 사 입혀 한껏 단장시켜 들여보내곤 했다. 그 외에도 돼지 순대나 인절미 같은 것을 배불리 먹였는데 그런 때의 태호에게서 나는 어머니가 없는 아이임을 확인했다. 헐렁하고 철이 늦거나 이른 옷을 입은 태호를 큰오빠가 싸고 돌 때의 완강한 벽과 대문 안에 밀어 넣고 돌아선 다음의 외톨이, 그 상반된 사태는 종종 내 가슴 밑바닥에 웅숭깊게 도사린 질투심과 잔인성을 일제히 흔들어 깨웠다. 그 날도 태호는 뺨에 좁쌀 같은 소름이 돋은 채 머릿속 피부가 새파랗게 드러나도록 이발을 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가슴에 값진 크레파스가 안겨 있었다.
나는 재빨리 대문 밖 동정을 살폈다. 큰오빠가 대장간 쪽으로 막 돌아섰다. 태호는 나를 보자 바지 주머니에서 꽃무늬 박힌 유리구슬 한 움큼과 하얗게 날이 서고 기름칠 된 주머니칼을 꺼냈다. 나는 태호 가슴에 안겨진 크레파스에 정신이 팔렸다. 내 책가방 주머니에 있는 크레파스를 생각했다. 손가락 마디만 하게 토막이 났고 색상이 도화지에 잘 흡수되지 않아 이리저리 밀리는 싸구려 제품이었다. 그나마도 없는 색깔이 많았다. 아버지의 얼굴 그리기에서 나는 오십 점을 받았다. 얼굴을 연두 빛, 머리칼을 보랏빛, 눈, 코, 입을 검정빛으로 칠을 했었으니까.
나는 태호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간교한 웃음을 웃었다. 태호야, 고모가 딱지 스무 장 접어줄까? 싫어. 오늘부터 매일매일 연필 깎아 줄께. 싫어, 나두 칼 있어. 태호는 유혹에 한 가지도 말려들지 않았다. 나는 초조했다. 이제부터 부엌에 있는 위리 언니더러 엄마라고 부르지 마. 너 엄만 도망갔어. 수원 살아. 나는 오달지게 씨부려 뱉고 크레파스 곽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마당에 흩어진 것을 한 개도 남기지 않고 고무신 발로 뭉갰다. 그 꼴을 지켜보던 태호가 고개를 들었다. 주머니칼이 날을 반짝 세웠다. 칼 박힌 손이 쳐들렸다 싶은 순간, 나는 이마에 화기를 느꼈고 끈끈한 것이 벌레처럼 기어 내렸다.
시어머니는 봉당에 서서 무명 앞치마를 모아 쥐고, 어깨와 머리에 앉은 재를 털면서 말했다.
“오늘이 반공일(토요일) 아니냐. 형주가 왜 늦느냐.”
“제 작은외삼촌한테 심부름 보냈어요.”
“뭔 일로 보냈냐. 친정에는 군소리 하지 마라. 뒷간과 사돈 간은 멀어야 해.”
나는 툇마루 한 옆에 놓인 개다리소반을 들어다가 밥상 보자기를 젖혔다. 파리가 상 위로 왱왱 날아들었다.
“짐승이 있어 그런가, 쉬파리가 많쿰.”
시어머니는 밥상 위에서 팔을 홰홰 저었다. 텃밭에서 뽑은 열무와 배추로 담은 시퍼런 김치와 장아찌, 파를 굵직굵직 썰어 넣은 막된장찌개가 덩그렇게 놓였다. 시어머니는 행주치마 허리를 끌러 말더니 방안에 던지고 몸뻬 바람으로 밥상 앞에 앉았다. 수저를 들면서,
“그래, 칠면조는 얼마나 팔았니?”
하고 물었다.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말과 일이 같기란 썩 어려운 게야, 하고 말했다.
“형주 애비만 살았다면 네가 왜 이 고생을 하겠냐.”
시어머니는 걸핏하면 죄 많은 늙은이가 혼자 된 며느리 그느르고 산다고 말했다. 나와 눈길 맞추는 일이 드물었다. 흐리마리한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달구지길 건너편의 들녘으로 시선을 보냈다. 무망중에 잃은 아들의 무던한 성품과 남편 정 그리면서는 살아도 자식 정 그리면서는 못살겠더라고, 소싯적 남편의 방랑벽을 자식 하나 키우면서 능히 견디었음을 말하고 싶으리라. 아들의 상악골을 관통한 스무 해 전의 총성이 난삽하게 울리는 듯 시어머니는 손끝을 가늘게 떨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내게 유복자를 낳게 했다.
“늙은 어미 말 한사코 거역하고 데모에 뛰어들더니 제 명에 못 죽었어. 자식이란 겉 낳지 속 낳는 게 아니더군.”
마당에 땅거미가 슬금슬금 기어 내렸다. 밭둑 여기저기의 밤나무 우둠지마다 패기 시작한 벼이삭 같은 꽃을 허들지게 달았다. 매미가 이악스럽게 우는 여름 한철, 이 집은 산그늘에 묻혔다. 말복을 지나면 내의를 입었다. 추위가 길었다. 겨우내 내린 눈이 해토머리가 돼야 녹았고 양지바른 뒷간 근처에 붉은 땅이 손바닥만큼 드러났다. 뚝배기 언저리에 시어머니와 나의 수저 부딪는 소리만 이어졌다. 시어머니는 수저를 놓고 몸뻬 허리의 고무줄을 늘이어 손을 깊숙이 디밀었다. 꼬깃꼬깃 접은 누런 봉투를 꺼내어 내 앞에 밀어 놓았다.
“사료 사오너라.”
아들의 상반기 분 연금 봉투였다. 시어머니는 눈구석을 적삼 고름으로 씻었다. 눈이 침침할 터였다. 목덜미에 얹힌 갓난아기 주먹만한 쪽에서 백통비녀가 실없이 떨어졌다. 시어머니는 반백의 파슬파슬한 머리털을 고무장갑을 낀 것만큼이나 큰 손으로 함함히 해주었다.
“사료는 더 살 필요 없어요. 서둘러 처분해야죠.”
“하루 이틀 새에 다 팔 순 없잖냐.”
“팔지 못하면 내버리기라도 해야지요.”
“내일 아침 당장 먹일 모이가 한 바가지도 없단 말이다.”
“굶겨버리세요.”
“저 애가? 산 짐승을 굶긴다는 게 말이나 되냐?”
지난 해 2월, 나는 열다섯 해 가까이 몸담아 일하던 교단을 떠났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 그네를 타다가 낡은 쇠줄이 끊어지면서 버팀목 모서리에 이마를 찧고 사흘 만에 죽었다. 뇌진탕이었다. 이해와 용서를 비는 나의 간곡함을 저버리고 학부모 측에서 교장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법정투쟁을 벌였다. 늘그막의 호봉만 높아진 내가 그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붙어 있기란 남다른 뻔뻔스러움이 필요했다. 나는 교무실 안의 천덕구니였다. 사건을 무마시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집 근방의 암자에 공양주 보살로 있는 시어머니의 식객 노릇을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백여 호가 될까 말까한 마을의 지서주임이던 시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진 뒤 살림은 기울었지만 산목숨에 거미줄 치는 법 없다고, 괴롭거든 망설이지 말고 퇴직하라고 종용했다.
그날도 나는 신문이 배달되기 전에 잠이 깨었으므로 풀 이슬 맺힌 논둑이며 성남시와 잇는 달구지 길을 걸어보고 돌아왔다. 툇마루에 앉아 한 잔의 쓴 커피와 산으로부터 내려온 풋내 나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신문을 펼쳤다. 야산에서 칠면조를 방목하는 사진과 기사가 3면에 산뜻하게 실려 있었다. 성계 2백 마리를 70평에서 키우는 면적의 경제성, 질병에 강하고 돼지 다음으로 사료 효율이 높으므로 자본의 순환이 빠른 점, 육류를 금기하는 고혈압 환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육질의 특성을 소개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울 뒤의 산은 칠면조를 방목하기에 적당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에서부터 1킬로미터 가까이 격리된 것이며 눈앞에 펼쳐진 흔한 풀밭, 밤나무 숲을 가로질러 흐르는 맑은 골짜기 물이 그랬다. 내가 칠면조 사육장이 밀집한 문정동 버스 정류소에서 하차한 것은 은실 같은 햇살이 투명하게 퍼져 오른 이른 아침이었다.
남한산 기슭으로 진입하는 질펀한 들녘에는 수 없이 많은 비닐하우스들이 들어찼고, 주변의 산에는 눈이 희었다. 비닐하우스와 흰 눈 위에 쏟아졌다가 날아온 바늘 같은 햇살은 근시인 내 눈을 적잖게 괴롭혔다. 눈시울을 좁히고 안경을 검지 끝으로 밀어 올렸다. <한일칠면조분양>의 화살표 방향으로 발길을 떼었다. 옷깃으로 쌀랑한 바람이 파고들었다. 코트 깃을 세웠다. 제방을 낀 물줄기가 살얼음 밑으로 흰쥐처럼 달리다가 멈추고 그러다가 꾸물꾸물 맴돌곤 했다. 망망대해처럼 보이는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칠면조들이 청동색 깃털을 번쩍이며 기개 있게 거닐었다.
낯선 사람의 기척에 놀라 긴 목을 곧 세우고 눈을 두릿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대쪽 갈라지는 듯한 탁한 울음소리는 미친 듯 껄껄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마디마디 끊으며 자지러뜨리는 기교는 절박하게 호소하는 듯했다. 약속한 듯 번차례로 울어대는 소리가 산기슭을 쩌렁쩌렁 울렸다. 방대한 사육현장에 압도당하며 나는 업자와 마주 섰다.
“우리 협회에서 추진 중인 사업이 넷이 있습니다. 첫째, 안양에 통조림 공장을 세울 부지를 확보했으며, 둘째, 칠면조 내장을 이용한 스프를 가공합니다. 삼양라면 회사와 협약됐죠. 셋째,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위탁으로 소비시켜 주겠다고 나섰으며, 넷째, 롯데 . 신세계 백화점에 냉동 판매 대리점을 한 곳씩 두었습니다.”
그는 명함을 한 장 주었다.
“분양된 지 7개월 지나면 암컷은 알을 낳는데, 본 협회에서는 개당 1천 원에 사들입니다. 원하시면 부화시켜서 마리 당 1천8백 원씩에 분양해 드립니다. 판로는 절대 책임져요. 1년 가까이 되면 수컷의 체중이 10 내지 15키로 그램으로 불어나는데, 키로 당 2천5백 원입니다. 추위에 약하므로 초추에서 중추로 넘기는 한 달 동안만 비닐하우스에 난로를 피우십쇼. 그 기간만 넘겨주면 방목이 가능합니다. 경험이 없는 분은 4분지 1만 실패할 각오를 하십쇼.”
“분양 절차는 어떻게 되지요?”
“오늘 계약하시면 20일 뒤에 분양됩니다. 계약분이 7천수를 넘었습니다만, 그 안에 한두 번 들러 주십쇼. 다른 분의 몫을 빼보겠습니다.”
나는 나의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굳이 다른 사람 몫을 빼달라고 은밀히 부탁했고, 그 안에 꼭 오겠다고 말했다. 애초 3백 마리를 분양받고 계약금만 지불하려던 계획을 바꿔 5백 수 분양가 전액을 선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끼들을 한 달 동안 키워 낼만한 비닐하우스를 형주와 마당 한 가운데에 짓고 업자를 찾아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라면상자에 부화된 지 4주가 지난 새끼들을 담아 주면서 업자는 말했다.
“2주쯤 된 놈들을 그 시세에 분양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경험이 없으신 것 같아, 2주 더 키워 날개가 많이 자란 놈을 드리는 겁니다. 실패율이 거의 없는 시기지요.”
나는 그의 후의에 몇 번이고 감탄했다. 열 개의 상자 속에서 노란 부리를 여닫으며 놈들은 악머구리 끓듯 했다. 나의 시야는 뱀 껍질 같은 깃털에 싸인 어린 생명들로 가득했다. 어린 생명들에게 부어질 모성이 들끓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야전 침대를 한 대 들여놓고 함께 자며, 새끼들에게서 잠시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전등도 밤새껏 켜 두었다. 온 . 습도에 주의하며 밤잠을 설쳤다. 아카시 잎을 잘게 썰어 익힌 좁쌀이나 계란 노른자와 버무려 먹였다. 그러나 추위에 약해 겹겹으로 몰려 잠드는 버릇 때문에 압사가 많았다. 구석에 더미를 이루고 잠 든 놈들을 헤쳐 주는 내 손에는 조류 특유의 뜨끈한 체온이 전해졌다. 고열의 어린 것 입에 젖을 물릴 때처럼 가슴이 저렸다. 마이신과 흑두병 예방약을 사료에 적당량 배합시켜 먹였지만 까닭 모르게 배나 목이 희멀겋게 부어 죽고, 잠든 사이 고양이나 살쾡이에게 가슴살을 뜯기고 죽었다. 아침마다 다리가 뻣뻣이 굳어 모로 자빠진 놈을 집어내면서 나는 극심한 낭패감에 빠졌다. 문득문득 일손을 놓았다.
1년 후 살아남은 암놈이 알을 낳기 시작한 때는 분양받을 때의 2분지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수놈 한 마리가 암놈 네다섯 마리를 거느릴 정력이 있다고 했다. 필요한 수놈의 숫자는 정력이 쇠퇴할 경우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2,3십 마리다. 60마리가 넘는 수놈들은 사료를 축내는 족속일 뿐이다.
나는 분양 업자를 찾아서 활기차게 나섰다. 버스를 내려 남한산 기슭 초입에서 잠시 눈을 들었다. 순간 나는 아, 하고 신음 같은 탄성을 질렀다. 누더기처럼 찢어진 비닐이 바람에 펄럭였고 반원형의 비닐하우스를 버티고 있던 각목이나 대나무가 함부로 꺾인 채 뒹굴었다. 산 밑을 휘돌던 괴성과 청동색의 은성한 깃털을 자랑하며 기개 있게 거닐던 칠면조의 자취는 간 곳없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전신으로 더운 피가 줄달음을 쳤다. 몸의 기력이 발바닥으로 남김없이 빠지는 듯했다. 무릎이 휘청했다. 다시 걸었다. 칠면조를 사육하고 있을 비닐하우스가 한 곳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한산 기슭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나의 기대는 적중하여 단 한 동의 사육장이 후미진 골짜기에 남아 있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해거름에 낯선 거리에서 만난 불 밝힌 창처럼 나를 턱없이 감동시켰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어 각목에 비닐을 허술하게 붙인 문짝을 열고 들어갔다. 사내 하나가 등을 둥그스름하게 굽혀 이쪽에 돌려대고 앉아 각목에 박힌 못을 노루발장도리로 뽑고 있었다. 한옆에는 국방색의 낡은 야전 침대가 반 접혀 세워졌고, 취사도구가 설음질도 안 된 채 어수선하게 양동이에 담겨 있었다. 난로에는 불기운이 없었고 산그늘에 덮인 북향의 하우스 안은 썰렁했다.
“말씀 좀 여쭙겠어요.”
그는 일손을 멎고 고개를 들었다. 나이 사십이 훨씬 넘었음직한 마른 대추 같은 얼굴이었다.
“칠면조를 분양하던 업자들은 어디로 갔나요?”
“댁은 뉘슈?”
“1년 전에 분양받은 사람예요.”
“댁도 당했구먼. 신문, 텔레비전에 선전 많이 했지. 어리석은 사람 돈 뜯어먹고 깨끗이 날랐소. 나도 오기로 버티긴 하오만, 돌부리 차야 제 발 아프지. 사료 대를 당할 수 없어서 볏짚을 썰어 먹인다오. 산 짐승 굶길 수는 없고 차라리 제 풀에 병이라도 들어 몰살했으면 좋겠소. 저 꼴 보우.”
그는 칸막이 된 사육장 문을 열었다.
“볏짚이나마 하루 세 번 꼬박 먹일 수만 있으면 다행이겠소. 이젠 한번으로 줄여야 할까봐요.”
“통조림공장이니 냉동 판매 대리점이니 하던 말들은 어떻게 됐어요?”
“다 그럴 듯한 사기극이었소.”
나는 올 것이 왔음을 확인하자, 어이없게도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헛웃음이 비어져 나올 것 같았으므로 입술을 앙당그러지게 다물고 사육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연 실색을 하고 말았다. 놈들은 나이는 꽤 먹었을 법한데 털빛으로 알아보게 마련인 암 . 수의 구별도 되지 않았다. 몸을 돌이켜 볼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공간에 털이 몽땅 빠진 칠면조들이 들어차 있었다. 비듬투성이의 맨살이 드러난 칠면조의 사육장 안은 연말을 맞은 여자 목욕탕과 흡사했다. 놈들은 벌거벗고 아우성쳤다.
“왜 털이 없습니까?”
“영양부족이우. 저희들끼리 털을 뽑아 먹는다오.”
아닌 게 아니라 놈들은 목을 빼어 제 부리 앞에 막아선 동료들의 옆구리, 목덜미, 넓적다리에서 깃털을 콕콕 집어 끼륵끼륵 넘겼다. 살인적인 아귀다툼이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면서 문을 닫았다. 사내에게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고 서둘러 나왔다.
내가 키운 칠면조들은 한 아름에 들어올리기도 어렵게 충실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성의 유희도 자유스러웠다. 수컷은 꽁지깃을 쥘부채처럼 펴고 교태를 보이는 암컷의 주위를 맴돌다가 등을 짓누르고 올라섰다. 의뭉스럽다. 꽁지깃을 수굿하고 젖꼭지 같은 살점을 내밀었다. 암컷은 진달래꽃 색깔의 깔때기를 솟구쳐 빠르게 흡입했다. 황망히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뜨려는데 장끼가 놀라 갈참나무 아래 낙엽더미에서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시어머니는 울 밖에다 까치집 같은 둥지를 싸리나무 가지로 만들고 점판암 슬레이트 조각으로 비 가림을 해주어 알을 여남은 개씩 안겼다. 한 놈은 날갯죽지 밑으로 보송보송 마른 새끼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사료가 담긴 사기대접과 물 양재기를 부리 밑에 놓아 주고는, 허기진다, 무슨 효도 보겠다고 먹으러 나오지도 않냐, 하면서 몸을 가붓이 들어 둥지 밖으로 꺼내 앉혔다. 방금 껍질을 깨고 나와 끈끈하고 누리끼리하게 젖은 놈이 사타구니에 끼었다가 비실대며 일어났다. 한번은 사료 양동이를 들고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고 했다. 알을 품던 어미가 이틀째 둥지를 나가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끼니를 거르고 온 산을 헤맸다. 등산객이 한 짓 아닐까요?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렴, 그들도 사람일 텐데 새끼 품는 어미를 집어 가겠냐? 시어머니는 그렇게 말해 놓고 혹 그럴지도 모른다 싶었는지 허기 사람처럼 독한 짐승도 없느니라, 하고 한숨을 쉬었다.
하루 뒤 해질녘에 시어머니는 얼굴에 웃음을 담뿍 떠올리면서 치마폭에 칠면조를 담아 안고 낙엽송 사이를 빠져 나왔다. 목이 말랐던 게야, 물 떨어지는 바위 밑에 웅크리고 있더구나. 시어머니는 앞가슴을 젖혀 보이면서, 이것 보렴, 했다. 가슴뼈가 아른거렸고 주변의 살이 울혈이 져 있었다. 툇마루에 헌 옷가지를 깔아 젖은 몸을 앉히고 한 자락으로 등을 덮었다. 비트적거리며 까막까막 졸았다. 두어 시간 뒤 어미는 죽었는데 시어머니는 농밀한 악취를 풍기는 알과 함께 뒷간 옆 두엄자리에 묻었다.
형주는 교모를 벗어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팔에 가방을 걸친 채 산모퉁이를 돌아왔다. 울타리가 없었으므로 산을 끼고 반원처럼 풀숲에 깔린 오솔길이 툇마루에 앉아서 빤히 보였다. 나는 설음질통에 빈 그릇들을 집어넣다가 총총히 달려가 가방을 받았다.
“작은외삼촌 만나 뵈었니?”
“내일 태호 형하고 같이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형주는 비누 그릇과 수건을 들고 마당길을 걸어 밤나무 아래 냇가로 갔다. 나는 저녁상을 차렸다. 형주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밥상머리에 앉았다.
“칠면조 좀 팔아보실 수 있다던?”
이 때, 무슨 일들이 있느냐, 하면서 시어머니가 말참견을 했다. 나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칠면조 좀 처분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하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더 묻기를 그만두고 댓돌 위에서 고무신을 찾아 발에 꿰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뜩찮다는 안색이었다. 줄에 희끗이 널린 빨래를 걷어 안고 허리를 두드렸다. 형주가 밥상을 물리고 제 방으로 건너간 뒤, 부엌으로 갔다. 시커멓게 그을은 서까래에 달라붙은 거미줄이 기류를 타고 일렁거렸다. 살강 아래쪽의 흙벽이 큰 고양이가 넘나들 만큼 무너졌다. 수수깡 외가 형해처럼 드러났다. 약쑥이며 떡갈나무 잎이 비에 씻긴 싱그러운 얼굴로 기웃거렸다. 고무함지에 물을 차랑하게 채웠다. 옷가지들을 훌훌 벗고 부뚜막에 던졌다. 나는 흰 구름 속에 갇힌 듯 비누거품을 뒤집어쓰고 수건으로 살을 문질렀다. 몸의 비눗기를 물질로 씻어 내린 다음 물기를 말리고 옷을 주워 입었다.
시어머니 곁에 이부자리를 깔고 몸을 눕혔다. 시어머니가 뒤치락거리는 기미더니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태호라면 네 큰 오라버님 자제분 아니냐?”
“네.”
“지금은 맘 잡았는가.”
태호는 아득하게 너른 전답 수천 평을 물려받았다. 부동산 투기바람을 타자 일부를 뚝 떼어 팔았다. 손쉽게 태호의 손에 챙겨진 지폐 뭉치는 종잇장처럼 놀아났다. 그를 건축업자로 운수업자로 탈바꿈시키더니 급기야 어둡고 눅진한 골방의 투전꾼으로 전락시켰다. 문득 작은오빠가 태호를 데리고 온다는 사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쑤셨다. 형주의 방에서는 늦게까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쩍새가 울어댔다.
두어 달 전, 태호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서 친정나들이를 갔었다. 아내를 얻고 아이를 낳아 적으나마 스스로 벌어 아내와 자식을 먹이며 입히는 즐거움을 알기를 바랐다. 매화나무 가지 끝 끝마다 수수알갱이처럼 꽃망울이 부풀고 있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울안의 아카시 숲이 아우성치듯 푸르름을 더해 갔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태호는 자기의 아내가 된 여자와 저를 길러 준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 둘러앉은 자리에 만취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비에 젖은 머리칼 틈으로 엿보이는 눈빛에는 냉소가 서려 있었다. 편한 자세로 앉아 고개를 들었다. 나는 태호의 섬뜩한 눈웃음에 빨려들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칠면조 사업은 잘 되우?”
태호는 내 대답이 나오기 전에 다음 말을 이었다.
“훈장질 하던 솜씨 아깝소. 칠면조 똥구멍이나 들여다보고 살다니.”
붉은 벽돌담장 쪽의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발을 지켜보던 작은오빠가 태호의 말을 잘랐다.
“지나간 기억들에 매달려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다. 앞을 내다보고 항상 새롭게 살아야 해.”
그 이후로도 태호는 종종 나의 소식을 묻더라고 했다. 나의 패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나는 이날 밤을 숫제 하얗게 밝히다시피 했다.
시어머니는 처마 끝에 분홍색 연꽃등을 달았다. 도라지 . 시금치 . 콩나물 . 고사리 . 나물 반찬을 장만하며 즐거워했다. 시어머니는 벽장문을 활짝 열었다. 불상 앞에 촛불을 켰다. 형주와 내게 절을 시켰다. 소원을 어김없이 풀게 해달라는 절이었다. 108개의 염주를 헤아리고 108개의 염주가 끝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이놈의 짓, 소용없는 짓,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어머니는 왜 남편 앞세우고 과부 며느리와 애비 없는 손자 데리고 연금으로 살게 됐느냐고 마음속으로 퍼부었다. 통곡하듯이 오체투지는 수 없이 반복됐다. 시어머니는 화평한 낯빛이었다. 회색 장삼을 걸쳤다. 가늘고 흰 테의 돋보기를 콧등에 걸쳤다. 불경을 꺼내 한 가운데 쯤을 폈다.
“앉아라. 한 구절만 읽어줄 테니 잠시 들어라. .....사람의 성질은 마치 들어갈 구멍을 알 수 없는 덤불과 같이 알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의 성질은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괴로워하는 사람이니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서 고행을 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다른 이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니 생물을 죽이고 기타 여러 가지의 참혹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시어머니는 돋보기를 벗고 책을 덮었다. 고개를 들었다. 안개가 망사처럼 휘감긴 검단산 허리로 시선을 보냈다.
태호와 작은오빠가 밤나무 숲 오솔길에 나타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풀숲을 스치는 그들의 발자국소리는 투박하고 빨랐다.
“어서 오우. 먼 길에 애 썼우.”
시어머니는 작은오빠의 손을 답삭 잡았다. 작은오빠는 시어머니에게 답례를 보낸 다음 사육장을 건너다보았다.
“한 마리도 남길 것 없다. 속히 처분해야지 적자가 누적되면 곤란해.”
작은오빠는 적이 침울해 했다.
“몇 마리나 처분해 줄래?”
작은오빠의 말에 태호는 두 팔을 마주 걸어 손을 양쪽 겨드랑이 밑에 두고, 몇 마리요, 모두? 하고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2백 여 마리 돼.”
“얼마요?”
나는 이 물음에는 말문이 막혔다. 태호의, 선을 자르듯 분명한 질문이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어느 군주가 저렇듯 당당할 수 있을까.
“한 마리에 얼마요?”
태호가 종 주먹을 대듯 퍼붓는 수치(數値)에 대해 이처럼 백지일 수가 있는가. 나는 뇌수의 장애나 질병 따위로 정신작용의 발달이 저지되고 연령에 비하여 지능단계가 낮은 사람처럼 멍청했다. 작은오빠의 채근하는 듯한 눈길과 마주친 다음 겨우, 주고 싶은 대로 줘, 하고 말했다. 입속말처럼 아주 작은 소리로. 태호는 사육장 쪽으로 걸어가 울안을 둘러보았다.
“우선 한 마리만 얼큰하게 술안주로 볶아 보슈. 들바람 쐬며 작은아버지랑 소주 한잔 마실라오.”
태호는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만 원 권 지폐를 뽑았다. 왼손으로 허리를 휘어잡고 세어 넘겼다. 작은오빠는 골짜기 물 떨어지는 바위 밑으로 걸어가더니 손과 얼굴을 씻으며 서성거렸다.
“이 많은 숫자를 어떻게 처치할 테야?”
나는 1백만 원을 들고 얼굴에 마른 웃음을 띠며 물었다.
“양로원 . 고아원 . 극빈자 찾아다니며 사회사업가 행세 한번 할래요.”
태호는 어색하게 싱긋 웃었다. 나는 온몸의 모공에 친친한 바람이 스미는 듯한 고약한 기분과 피부가 갯솜처럼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 때문에 연방 이마에서 볼 . 눈두덩 . 귓불 등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산 채로는 운반하기가 불편하겠어. 아예 도살해서 라면박스에 꾸려줘.”
태호는 내던지는 말처럼 씨부리고 몸을 돌렸다. 태호와 작은오빠가 어깨 너머로 담배연기를 뿜어 날리면서 산기슭을 내려갔다. 나는 사료 양동이를 찾아 들고 울안으로 들어갔다. 나무토막으로 양동이의 중동을 탕탕 두들겼다. 곳곳에 흩어져 거닐던 칠면조들이 뒤뚱거리며 몰려왔다. 청동색의 물결이 밀려오는 듯했다. 나의 다리는 순식간에 놈들의 억척스러운 식욕에 휘감겼다. 사료 바께쓰와 나무토막을 내던지고 살이 포동포동 찐 암컷 한 마리를 붙잡았다.
“형주야.”
나는 칠면조를 안고 사육장을 나와 기슭을 내려오며 높은 소리로 불렀다. 형주는 열린 방문으로 핏기 없는 얼굴을 비쭉 내밀었다.
“이것 좀 죽여라.”
나는 부엌에서 창칼을 들고 나왔다.
“저 개울가로 가.”
형주는 칼과 칠면조를 양쪽 손에 하나씩 받아들고 어정쩡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뭘 하니? 외삼촌이랑 태호 형 술 한잔씩 한다잖아. 너도 고기 좀 먹어야 해. 대학인지 생지옥인지 얼굴이 누렇게 떴어. 죽을 노릇이지, 원.”
나는 수다를 떨면서 밤나무 아래 개울을 건너 작은오빠와 태호를 바라보고 재촉했다. 형주는 별말 없이 몸을 돌이켜 개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무쇠 솥에 물을 길어다 붓고 아궁이에 솔가지를 꺾어 넣었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솔가지는 연기 한 움큼 없이 불길에 싸여 시원시원 타들어 갔다.
물이 더웠다. 형주가 칠면조 발목을 쥐고 부엌문 앞에 섰다. 칠면조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부리로 선혈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형주의 손에서 발목을 건네어 받아 쥐고 솥뚜껑을 밀었다. 수증기가 부옇게 떠올랐다. 칠면조를 대야에 담고 바가지로 더운 물을 떠 부었다. 몸뚱이가 고루 젖었다. 구수하고 탑탑한 깃털과 살 냄새가 콧속으로 스몄다. 옴포동이같은 피부가 젖은 털 사이로 허옇게 드러났다. 냇가로 가 빨랫돌 위에 놓고 털을 밀었다. 태호의 게걸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 뭣하냐?”
시어머니는 내 손에 것을 내려다보다가 기가 막힌 듯 몸을 돌이켰다.
“내 뭐랬니. 친정에는 아쉰 소리 말라 했지.”
시어머니는 비틀걸음으로 내게서 멀어졌다. 배를 갈라 내장을 뜯고 똥집에 칼자국을 내어 모래를 털었다. 갈비뼈 사이의 선짓덩이를 손끝으로 후벼 흐르는 물에 던졌다. 각을 뜨고 토막을 내어 냄비에 담았다. 부엌으로 갔다. 얼큰하게 양념장에 재워 석유곤로에 올려놓고 불을 댕겼다. 나는 툇마루로 올라서서 헌 구두가 얹힌 선반 위에서 비닐 끈 뭉치와 가위를 찾아 들었다.
“형주야, 엄마 좀 도와줘야겠다.”
그 많은 칠면조를 도살하려면 서둘러도 해 지기 전에 끝내기는 어렵지 싶다. 어쨌든지 일을 벌이고 늦으면 마을로 내려가 일손을 얻어 보리라 작정하면서 나는 사육장 쪽으로 걸어갔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형주는 아무 말 없이 그러나 결코 유쾌할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내 뒤를 따랐다.
“이 놈들을 다 죽여서 달래요?”
“할 수 없지 않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궁지에 몰린 우리를 도와주는 건 내 살붙이 밖에 없는 거다.”
나는 두어 자 길이로 비닐 끈을 자르며 초근초근 타일렀다. 형주는 사료 통에 모이를 한 옴큼씩 더 부어주면서 눈치 없이 접근해 온 놈의 발목을 손쉽게 거머쥐었다.
“이리 안고 오너라. 발목부터 묶자.”
형주의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린 두 손에는 이내 칠면조의 긴 목이 틀어 잡혔다. 동체를 물주머니처럼 늘어뜨리고 날개를 푸득거렸다. 형주는 입을 꾹 다물고 팔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손목이 부르르 떨렸다.
“저 애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미간을 찌푸리고 이블 다물지 못했다. 형주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어깨 너머에서 휘둘러 허공에 호를 그린 다음 바위 모서리에 모질게 내리쳤다. 모로 자빠져 발버둥이를 치자 형주는 다가가 목을 느긋이 밟았다.
“넌 비닐 끈으로 발목이나 묶어.”
가슴을 달구어진 돌로 지질러놓은 듯 했으므로 내 목소리는 모질음을 쓰듯 고통스럽게 끌려나왔다. 칠면조의 거동이 잠잠해지자 형주는 발길로 가슴의 이쪽저쪽을 뒤적거려 주고 몸을 돌렸다. 울안의 삼엄한 공기에 놈들은 목을 곧추세우고 구석구석 몰려다녔다. 이미 사료 통에 모이를 한 옴큼씩 떠 부어 유혹할 수는 없었다. 형주는 날렵한 동작으로 놈들의 뒤를 쫓았다. 매번 손끝에서 아슬아슬 빠져나갔다. 형주는 돌연히 걸음을 늦추더니 산기슭 위쪽으로부터 그물을 떼었다. 사육장 한 가운데 섰던 갈참나무 둥치에 떼어낸 그물 한 자락을 걸었다. 형주의 손끝을 안타깝게 피해 다닐 공간이 절반으로 좁혀진 셈이다. 쫓기는 놈들의 단말마의 고함이 해가 설핏해진 골짜기를 잦게 누볐다.
나는 비닐 끈의 양쪽 끝을 잡아 매듭을 짓고 그 고리[環]에 매듭을 되 집어 넣어 칠면조의 목에 씌웠다. 나뭇가지의 그루터기에 걸었다. 여기저기서 설죽은 칠면조들이 나무둥치를 안고 안간힘을 썼다. 마지막인 듯한 동작이 끝난 뒤의 칠면조는 너무 길어진 목이며 체중이 불편스러웠으리라. 형주가 즐비한 칠면조 두름을 멍하니 둘러보다가 방금 나꾼 칠면조를 가랑이 사이에 눕히고 날개를 양쪽 발로 밟았다. 멱줄 띠에 칼끝을 박았다. 갈퀴 같은 발톱이 형주의 사타구니를 긁적대었다. 느닷없이 날갯죽지가 빠지고 홰를 치면서 까치걸음으로 두어 걸음 달아났다. 형주의 얼굴과 옷섶에 핏방울이 튀었다.
“엄마, 우리가 이 짓 꼭 해야 돼요?”
형주는 소맷부리로 얼굴을 문지르며 분노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형주의 왼쪽 손등에 살점을 뜯기고 핏물이 돋은 자국이 있었다. 칠면조의 발톱이 스친 모양이었다.
“이것아.”
나는 질겁하여 갈참나무 잎을 하나 따 들고 달려갔다. 상처에 잎을 붙이고 비닐 끈을 돌려 매려는데 내 손에서 형주의 팔이 억세게 빠져나갔다. 형주가 중심을 잃고 부리를 열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칠면조에게 성큼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형주의 슬리퍼 뒤축에 칠면조의 목이 으스러지게 눌려 있었다. 형주의 입가에 쾌재를 부르는 듯한 미미한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너희들, 그 죄 어떻게 받을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이 꼴을 보아야 한단 말이냐.”
엷은 물빛 갑사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낡은 구슬지갑을 든 시어머니가 울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름이 치는 듯 손수건으로 연방 콧등을 닦으며 등을 돌렸다.
“어디 가시게요?”
“미꾸라지 한 사발 사서 방생 할란다.”
나는 고리 만들던 비닐 끈을 든 채 늙은 나무뿌리와 돌무더기와 낭창거리는 나뭇가지를 피해서 주춤주춤 기슭을 내려가는 시어머니를 우두망찰 바라보았다. 처마 끝에 매달린 연꽃등이 샛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그늘이 해를 따라 자리를 옮겼으므로 태호의 승용차는 햇살 속에 방개처럼 엎드려 있었다. 시어머니가 징검돌을 디디며 내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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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섬세한 묘사가 뛰어난 소설입니다.
一讀을 권합니다^^*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가상한 중년사내가 있어서
'그랴,그렇담 <고리>를 세 번 필사해서 보내보시라'
그가 보낸 습작을 보아하니 기간도 짧고 비문장 투성이라
습작 좀 시켜보려는데, 한 소금쯤 지나 '어쩐지 끔찍하여
제 성향에 맞질 않습니다.'
'그려, 그려! 그렇담 성향에 맞는 소설 많이 써 보시라'
한 반 시간쯤 턱 고이고 로댕 흉내 내는 중에 '에구, 제가
쪼금 성미가 급해서요. 스승님, 시키는대로 해 볼게요.'
하여 지금, 고심 중이랍니다. 이걸 받아 말아~차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