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오신 뜻 묻자, “오래 앉았더니 피곤하구만!”
수행자는 자신이 부딪친 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향림선사의 답을 기다려야만 했다.
선사의 답은 언어의 꾸밈을 벗어나 있었다.
담박하여,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막아버렸다.
너무 자상한 것인가, 아니면 너무 박절한 것인가….
향림 징원(香林澄遠, 908~987)선사는 운문(雲門)선사의 법제자로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향림사(香林寺)에 40년간 주석하셨다.
여러 기록을 보면 자질이 뛰어나진 않았으나 대단히 성실한 분이었던 것 같다. 스승 운문선사를 18년 간 모셨는데, 다음의 대화를 18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고 한다.
운문 “원시자(遠侍者)!”
징원 “예.”
운문 “그게 무엇이냐?”
스승이나 제자나 어지간하다고 하겠다.
징원스님은 늘 종이옷을 입고 다니면서 스승의 말씀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모여 <운문광록(雲門廣錄)>이 되었다. 깨달음을 이룬 뒤 향림사에 주석하며 후학을 지도하기 40년, 80세에 입적하셨다. 아래의 문답은 향림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 강설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라도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의 본래모습을 깨달은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은 이에게 문제 될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상대가 날카로운 질문을 할 때 그저 피하기만 한다면 어찌 뛰어난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상대를 파악하고 지도할 능력이 없다면 헛된 이름만 얻었을 뿐이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자리는 우선 그렇다 치더라도,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덤빌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선지식이라면 이런 놈을 만났을 때 본때를 보이는 법이다.
➲ 본칙 원문
擧 僧問香林 如何是祖師西來意 林云 坐久成勞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스님이 향림선사께 여쭈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향림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래 앉았더니 피곤하구나.”
➲ 강설
질문을 던진 스님은 이미 달마대사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달마대사의 이력 따위나 또는 통상적인 설명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불교가 널리 전파된 마당에 왜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시어 소림사 뒷산 동굴에서 9년이나 벽만 보며 앉아 있었는가?’
수행자는 사실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부딪친 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질문자는 미치기 직전인지도 모른다. 수행자의 의심은 절박한 것이다.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향림선사의 답을 기다려야만 한다.
향림선사는 위대한 스승 운문선사 밑에서 18년이나 참구하여 깨달았던 분이다. 그래서일까? 향림선사의 답은 언어의 꾸밈을 벗어나 있다. 너무 담박하여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접근을 막아버렸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참 피곤하구만!” 너무 자상한 것인가, 아니면 너무 박절한 것인가.
아하, 오래 앉았다고 하니 또 달마대사의 9년 면벽을 떠올리시나? 이미 삼천포로 빠졌다.
어둠 속에서 밝음을 보려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 어리석은 상태에서는 지혜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 송 원문
一箇兩箇千萬箇 脫却籠頭卸角駄
左轉右轉隨後來 紫胡要打劉鐵磨
일개량개천만개(一箇兩箇千萬箇) 여기 사용된 개(箇)자는 흔히 물건을 헤아릴 때 사용되며, 한 개 두 개 등의 뜻임. 사람일 경우에도 인(人)자를 생략한 채로 사용됨. 여기에서는 ‘한 사람 두 사람 천만 사람’이라는 뜻.
농두(籠頭) 짐승의 입에 씌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굴레.
각타(角駄) 타(駄)자는 馱자와 같은 자이며 발음도 ‘타’와 ‘태’로 쓰임. ‘각타’는 짐승의 등에 양쪽으로 나눠 실은 짐.
자호요타유철마(紫胡要打劉鐵磨) 자호화상이 유철마를 칠 수 밖에 없지. 이 얘기는 자호선사와 유철마 비구니의 일화에서 가져 온 것임. 원오선사는 평창에서 자호선사가 유철마를 찾아 갔다고 하고 있으나, <전등록>에는 유철마가 자호선사를 찾아 뵌 것으로 되어 있음.
자호(紫胡) 자호 이종(紫胡利蹤, 800~880)선사. 자호(子胡)선사 또는 신력(神力)선사라고도 함. <전등록>권10에 다음 기록이 있음.
어릴 때 유주(幽州)의 개원사(開元寺)에 출가하여 나이가 차자 구족계를 받았다. 후에 남전 보원(南泉普願)선사의 법제자가 된 후 바로 구주(衢州)의 마제산(馬蹄山)에 가 띠집을 짓고 살았다. 이후 옹천귀(翁遷貴)라는 이가 자호산을 기증하여 절을 짓게 하니 안국원(安國院)이다. 선사는 이곳에서 오래 후학을 지도했다.
어느 날 유철마라는 별명을 지닌 비구니가 와서 인사를 여쭈자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유철마가 아닌가?”
“외람되오나 그렇습니다.”
“왼쪽으로 도는 맷돌인가, 오른쪽으로 도는 맷돌인가?”
“화상께서는 뒤집힌(顚倒) 말씀 하지 마십시오.”
대사가 바로 후려쳤다.
유철마(劉鐵磨) 생몰 연대 미상. 당대(唐代)의 비구니 스님. 속성은 유(劉)씨. 워낙 거칠고 상대하기 힘들어 ‘쇠맷돌(鐵磨)’이라는 별명으로 불림. 담주의 위산(潙山)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그 산의 어른이셨던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에게 지도를 받고 깨달았다고 함.
➲ 송
한 사람 두 사람 천만의 사람이여,
굴레를 풀어 버리고 등짐을 벗었구나.
➲ 강설
달마스님께서 오신 뜻을 두고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굴레에 갇히고 등짐을 진 것처럼 부질없는 짐을 지고 있었을까? 설두스님은 향림선사의 말 한마디로 그 모든 굴레와 등짐을 벗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고 칭찬했다. 이처럼 극찬을 아끼지 않다니…. 하지만 스스로 굴레와 짐을 자청한 것이니 어찌 향림선사가 굴레를 벗겨주고 등짐을 내려주겠는가. 착각들 하지 말라!
➲ 송
좌로 돌고 우로 돈다는 그 말을 따르니,
자호 선사가 유철마를 칠 수 밖에 없지.
➲ 강설
마치 거칠 것 없는 것처럼 다 갈아버리던 유철마가 자호선사의 말에 끌려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듯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를까? 그래서 설두스님은 이 얘기를 가져와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호선사의 몽둥이를 맞지 않으려면 정신 차려라. 무엇이 달마스님이 오신 뜻이냐? 아차차! ‘오래 앉았더니 피곤하다’고 되뇌지 말라. 향림선사의 몽둥이가 날아들기 직전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