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런 감상문이 무엇 그리 중요 할까요. 이 공연을 통해서 어떤 한 사람의 감성이 울림을 받고, 움직임을 느꼈다면 그 것만큼 더 중요한것이 어디 있을까요. 이번 공연을 통해 한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 주무른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이미 이 레포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느끼고 돌아왔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팜플렛의 맨 뒷장을 잘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이공연의 의의가 참 잘 드러나 있는 문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전통악기, 개량악기, 실용악기를 활용하여 시도되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의 보편적인 조화와, 이를통한 창작음악의 활성화를 바라는 작곡가들의 모임이다" 고개가 끄덕여 짐과 동시에 우리는 왜 이런 공연을 많이 보아야 하며 많이 생각하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공연을 보고 감상문을 써내려 간 많은 학생들 중에 국악공연이 익숙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를 입으로 뻥긋 하고 있지만 실제로 오페라나 뮤지컬, 대중음악만큼 관심사 안에 들어와 있지 못한것이 사실이니까요. 저또한 그러했었기에 팜플렛 뒷장 한켠의 그 문장을 읽고 고개가 끄덕여 졌습니다.
저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세가지를 생각하면서 보았습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과 느낌, 작곡가의 의도와 감정, 곡을 이끌고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음악에 대한 심취. 이렇게 개인적인 제 나름대로의 기준과 시선과 느낌으로 본 주옥같은 곡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겠습니다.
공연의 첫무대를 열어준 「해무(海霧)」는 조원행씨가 작곡한 곡으로 단소와 가야금으로 연주되었습니다. 말그대로 바다안개를 그린 작품입니다. 팜플렛에서 이것을 확인한 후 저는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눈을 뜨고 음악을 들으려니 자꾸만 단소와 가야금에 시선이 가서 악기에 빠져들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 가야금 줄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는걸까...저게 단소 소리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을 떨치고 일단 눈을 감는 쪽을 택한것이죠. 공연장이 단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안개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왜 옛날 이야기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죠. 엽전 한닢으로 이방을 가득 채울수 있는 것을 구해오라고 하니 한아이가 촛불을 사와 불을 붙여 방안을 밝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이야기에서 방을 가득채운 촛불의 불빛처럼 저는 단소의 소리가 마치 안개처럼 그윽하게 온 공연장에 퍼지며 채우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고요하지만 또 고요하지만은 않은 연주. 가야금 특유의 울리는듯 끊어지는 소리의 연속들로 파도를 연상케 했습니다. 마치 안개가 스치는 파도 위를 날아가는 날개 젖은 나비가 된 느낌으로 이 곡을 들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해무의 맑은 안개가 걷힐때쯤 김만석씨의 「달의 환상」이란 곡이 시작되었습니다. 악기가 교체되고 연주자가 등퇴장 하는 사이에 저는 무용와 음악을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악기를 들고 검은 정장을 정갈하게 입은 연주자들이 나오면, 조명이 켜지기 전 의상을 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넘겨 빗어 올린 무용수들이 교대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같은 마음 같은 심정으로 작품을 준비하는 모습이 생각나서 그래서 였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곡인 달의 환상은 가야금과 장구로 연주되며 그중에서도 가야금이 주를 이룬다고 할수 있겠죠. 장구는 주된 연주를 하지는 않지만 분위기 조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해설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수십번을 다시 읽었다는......마지막에 나지막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가 가야금으로 연주되면서 끝나는 이곡은 "순수로의 회상"이라는 부제를 달아주고 싶은 곡입니다.
「거문고가 보이는 풍경」은 전인평씨의 곡으로 물론 거문고가 이끌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놀랐던 것은 시상식 때 수상하기 직전에 "두구두구"울리는 낯익은 소리의 서양 타악기가 등장한 점이었습니다. 스네어라는 악기인듯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타악기 밑에 튜블러벨로 보이는 종소리가 나는 악기가 있었습니다. 걱정한바와 달리 의외로 서양 악기와 꽤 잘 어우러지고 있었고 특히 간간히 들어가는 튜블러 벨 소리는 마치 신비로운 세계로 향하는 레이스 커튼을 살며시 열어 제치는 듯한 환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곡에서는 거문고 연주자 세명의 열정적인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가야금의 흐르는 듯한 소리와는 달리 조금은 더 강하고 조금은 더 굵은 거문고의 소리에 둘을 비교할수 있었고, 특히 가야금과 달리 술대로 뜯어서 연주하는 모습이 색달랐습니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술대로 줄을 뜯지 않고, 빠르게 반복하여 거문고의 모든 줄은 밀면서 연주하였는데 그때 거문고에서 한번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야금이 여자라면 거문고는 마치 남자라는 느낌을 받은 곡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드디어 오윤일 교수님의 「6월 어느 날」순서가 되었습니다. 제앞에 앉아 계시던 교수님께서 자세를 다잡아 앉으시며 두손을 한번 꼭 맞잡는 모습이 수능시험장 밖에서 기도하는 부모님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군대갔다 돌아오는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동양의 바이올린인 해금이 등장하자 기대가 되었습니다. 정말 의아했던 것은 건반이었습니다. 피아노도 아닌 디지털 음색의 건반이 과연 어떤 소리로 잘 어울릴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감상했습니다. 역시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푸른 아카시아 숲사이로 난 들판으로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눈을 감고 가야금의 바람에 몸을 맡긴채 한없이 달려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뭔가 퍽퍽한듯 하면서도 아련한 소리, 색체로 표현하자면 연한 베이지색을 연상케 하는 해금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곡입니다.
「인연(因緣)」......참 좋아하는 말중에 하나입니다. 유문식씨의 이 곡은 오래전에 써 놓았다가 이제야 발표하는 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왠지 더 숙성된 듯 깊고 성숙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악보가 오래 뭍혀져 있었다고 해서 음악이 진짜로 더 성숙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지만, 먼지쌓인 악보를 꺼내어 후~불어서 악보대에 살며시 올려놓고 연주를 시작하는 모습처럼 보여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악기들이 모두 쏟아져 나오자 저는 자세를 고쳐앉고, 마음을 다스려 듣기 시작했습니다. 대금의 중후하면서도 한국적인 음색과 피리의 강한 소리와 함께 해금, 가야금, 장고가 어우러 졌습니다. 저는 피리를 부는 여자에게 잠시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긴호흡으로 피리를 불며 너무나도 빠져들어 있는 모습과 재차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는 모습에, 이곡이 이토록 아름다울수 있는 것은 저런 연주자들의 노력이 한몫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문득 연상된 곡. 마치 갑돌이와 갑순이가 맞절하는 장면이 포개지는 것 같기도 하고,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이어지는 것이 마치 정말 어쩔수 없이 얽혀지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그리고자 했던 작곡가의 마음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섯번째 「어머니」란 곡은 김은경씨의 곡으로 이 또한 "6월 어느날"처럼 건반이 등장했습니다. 여운을 남기는 듯한 역할의 건반으로 곡 전체를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감싸주는 느낌을 주었던 6월 어느날처럼 이 곡역시 그랬습니다. 어머니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말해보고자 하는 작곡가의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어머니의 자장가 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어머니의 아픔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보듬어 안겨있는 듯 포근한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도......우리 엄마가 마음속에서 오롯하게 떠오르며 공연장의 공기가 왠지 엄마의 품처럼 따뜻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란 곡이 끝난 후 저는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독한 향수의 향기에 취한 것처럼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미처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국악이란 매력에 빠져 여섯곡을 듣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일곱번째 곡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기증에서 달아나게 해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베이스 기타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뭐 요즘 하도 퓨전 음악이다 뭐다 해서 전통악기과 서양악기를 혼용 하는 추세이므로 건반이나 벨의 등장은 그러려니 했는데 밴드 공연에서나 볼법한 베이스기타와 가야금이 사이좋게 나오니 놀랄수 밖에요.「Moonlight」는 최훈씨의 곡으로 최훈씨는 국악을 공부한 앞의 작곡자들과는 조금 다른 프로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순서 까지 꾸벅꾸벅 졸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힙합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가야금을 연주하는 여자 연주자도 가야금을 앞에둔 사람과 어울리지 않게 턱과 어깨를 리듬에 맞춰 흔들었습니다. 음향의 문제때문에 베이스가 나와야 할 부분에서 나오지 않아 중간에 끊고 다시 처음부터 연주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여자와, 베이스 기타를 든 남자. 안어울릴 듯 했던 그들의 음색이 점점 이상하리만큼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너무너무 신기했습니다. 역시 음악은 하나일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악기는 한국악기끼리 한국적인 음악을 연주할때에 가장 아름다운 진가를 발휘할수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며...」는 김대진씨의 곡으로 '집중하지않고 편안하게 들을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의도처럼 저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정말이지 재즈넘버를 듣는 기분으로 감상할수 있었습니다. 편한하게 흘러가는 음악. 이곡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정말이지 안어울릴것 같은 피리와 기타의 조화는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음악적 실험에 도전하는 이 모임의 의도만큼이나 당찼습니다.
마지막 곡 「란(蘭)을 위한 노래」는 아버지로써의 계성원씨로 딸 유민에게 바치는 곡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 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쏟을것 같은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약간 리코더의 소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 소금과 베이스가 함께 연주하였습니다. 소금 연주자는 아주 외소한 체격의 한 남자였습니다. 근데 그 사람의 소금연주가 저의 감성을 자꾸만 움직였습니다. 슬픈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는 것은 대부분이 시각적인 효과 때문이라지만, 단지 소금의 소리가 누군가의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물론 이 곡이 슬픈 곡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버지로써의 그 절절한 딸에대한 마음이 너무나도 잘 녹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금 연주자의 그 미세한 손끝의 떨림과 자신조차 벌써 그 음악에 빠져있는 모습. 그 연주자의 감정변화를 저는 그 연주자의 눈을 보고 알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첼리스트 장한나나 지휘자 정명훈을 잘 보면 말하고 있지 않지만, 눈을 감고 있지만 그들의 감정을 온몸을 통해 느낄수 있습니다. 그것 처럼 세상에 둘도없을 아버지의 딸을 향한 마음을 저는 그 연주자를 통하여 더 깊이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금의 소리를 어떤 언어로 형언할수 있을까요. 저는 이 공연을 통해서 다시한번 강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모든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절대 언어로는 못다 형언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와같이 아무리 아름답고 예쁜 말을 사용해서 감상문을 적는다고 해도 제가 마음으로 들은 이 음악들을 진정으로 써내진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어쩔수 없는 이성과 감성의 차이이니까요.
백번 듣는게 한번보는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책속의 국악을 이해하기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국악을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20053509 무용학과 임아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