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7:24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개역개정판)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개역개정판)
시편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개역개정판)
고린도후서 7장에는 기쁨이 엿보인다.
세상적 기쁨이나, 개인적 기쁨이 아닌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기쁨
9절 말씀처럼
너네가 근심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 근심이 회개로 이어졌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11절 말씀도 주목해 보아야겠다.
고후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개역개정판)
고후 7:11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여러분이 나타낸 그 열성, 그 변호, 그 의분, 그 두려워하는 마음, 그 그리워하는 마음, 그 열정, 그 응징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 잘못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번역성경)
간증함과 변증, 두려움, 사모함, 열심 이런 것들은 이해가 되는데
얼마나 분하게 하며?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다?
시편 7편이 생각났다.
정말 사랑하는 7편 17절 말씀도 있지만
다윗이 이 시를 지었던 이유도 좀 흥미로웠다.
표제는 이러하다.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히브리어 ‘쉭가욘’에서 나왔다는 ‘식가욘’은 일종의 격정적인 찬송가라고 한다.’
‘방황하다’, ‘비틀거리다’ 라는 뜻의 ‘솨가’를 원형으로 하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격한 감정으로 쓴 시인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개혁 당시의 시편찬송가나
찬양사역자 나무엔(김성호 평화운동가..)의 찬양처럼 잔잔하고 담백한 멜로디와는 매우 다를 것 같은
격정적인 음율이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시는 다윗이
베냐민인 구시와 같이 적대적 위치에 있던 이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면서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해 달라고 간구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3편부터 시작된 다윗의 극적인 상황과 감정은
7편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베냐민인 구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구시가 구스(에티오피아? 예멘?)과 무슨 관계인지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 것을 보니
다윗은
성경에 기록된 것 이외에도
고난을 많이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자기 잘못도 많았을 것이고
억울한 부분도 많았겠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구시는 아마도 다윗이 왕위를 노린다는 말을 사울에게 했던 것 같다.
이미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직후부터 다윗이 미웠겠지만
구시의 말이 트리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억울함을 당할 때
사람들은 대개
당사자를 찾아가서 따지거나, 심지어 복수하거나
사람들에게 호소하며 자신을 변호하는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그러나 다윗이 어느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는 기록은 잘 안보인다.
그는 하나님께로 피했다.
- 뭐, 요나단 행님에게 가서 좀 따지듯이 말한 적은 있다.(삼상 20:1)
사람에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어서 그런지
다윗은 그 영적 원리를 알았던 것 같다.
억울함의 최종 심판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나의 억울함에는
사실 가해자조차 별 관심이 없다.
인간은 대개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할 뿐이다. (욥 39:2)
온 우주에서 나의 억울한 마음을 아실 단 한 분
비록 욥기 마지막 장면처럼 짠! 하고 나타나셔서(욥 39:1)
사이다 결말을 내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 아실 이 단 한 분
오직 하나님이시다.
방패가 되어주시는 분(시 7:10)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시 7:11)을
믿지 않는 자들은, 사과 하나 따 먹은 죄로 온 인류를 연좌제로 엮어버리는 성격파탄으로 볼지도 모르겠으나
그 분노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에서 기인하였으며
뜨거운 여름날, 자식을 위해 모기를 풀스윙으로 잡아내는 분노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해 본 자들은 알 것이다.
믿는 자들은 알 것이며
지혜로운 자들은 더 깊이 깨달을 것이다.
그 분이 찾으시는 것은 회개하는 마음이다. (시 7:12)
나도 하나님 앞에서 그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아도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잠 7:24)는 말씀에 순종하며
회개의 영이 임할 때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 7:10)을 통해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자리로 이끈다. (고후 7:1)
루터와 칼빈 이후 신학은 법정적이고, 법률적인 경향이 강해졌다는데
하나님께 나아가 호소한다는 것은 '법정'에 서는 것과 같다.
그 공의로운 법정에서는
자신의 죄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초딩들은 엄마라는 판사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기 바라겠지만
다윗과 같이 성숙한 이들은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공의의 실현을 구한다.
다윗은 저놈을 죽이고, 저를 살리소서 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워달라(시 7:9)고 기도했다.
억울할 때에도
자기 정당화와 합리화, 승리(에 따른 이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공의를 갈망해야 한다.
그 공의로운 갈망 앞에서만
하나님과 그 공의로우심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과 허물, 약점도 보게하실 것이다.
‘억울함'을 대하는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
세상이 알아내지도, 살아내지도 못할 삶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과의 그 지지고 볶고 했던 모든 과정 가운데
마침내 발견했던 그 감정
바로 기쁨이다. (고후 7:4)
자신의 깨끗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 없이도
그 깨끗한 마음이 드러나는 잔잔한 승리를 배경으로 하는 (고후 7:1)
찬양으로 이어지는
참 된 기쁨이다.
시 7: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개역한글판)
첫댓글 https://youtu.be/LsREjNUWil8?si=RuL17bEfnVAIl3nY
PLAY
https://youtu.be/EjCkdIZwJPM?si=YW9sZewcVETnDsbd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