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喜怒哀樂(희로애락)
Written by. 완두콩이
e-mail. minhyun8410@daum.net
제2장.
"뭐해, 안들어 오고?"
장소에 상관없이 아무데나 너부러져 있는 옷가지들, 거실 탁자 위에 굴러다니는 맥주캔, 먹다만 피자, 과자봉지까지ㅡ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차게 만드는 어지러진 집안꼴에 현관에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과연, 내가 발딛을 틈이나 있는걸까. 제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그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란 말이다. 난 신경도 안쓰이는지 옷을 훌렁 훌렁 벗어던지면서.
"저기 쇼파에 앉아 있어. 나 옷 좀 갈아입고 나올께."
최지안은 셔츠의 단추를 반쯤 풀었을 때야 내가 신경쓰였는지 옷이 가득 쌓인, 드레스룸처럼 보이는 방으로 사라졌다. 나의 무심한 눈빛을 알아챈걸까.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쭈뼛거리며 쇼파로 가서 똑바로 앉았다. 가방도 벗어 한 쪽에 가지런히 잘 놓아두고.
"후, 좀 치우지··· 혼자 사나."
"빙고ㅡ!"
혼잣말 한 것 뿐이었는데··· 언제 나와서 들은건지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틀어 그 곳을 바라보면 하얀색 후드티에 계절감을 잊은건지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를 입은 최지안이 서 있었다. 보일러를 튼 건지 냉기만 가득하던 집 안이 점점 훈훈해져 오고 있긴 했지만ㅡ.
"작년 가을까진 이모랑 같이 살았는데ㅡ 결혼해서 이젠 따로 살아."
"···그래?"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걸까. 아님, 익숙해진걸까. 아무 말도 못하는 나 때문인지 주저리주저리 혼자 살게 된 이유를 늘어놓는 최지안이였지만, 내가 해줄 말은 딱히 없어 보였다. 나의 의미없는 되물음에 예쁘게 눈웃음 지어보인 최지안은 긴 다리를 움직여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이젠 수행평가 하자. 뭐부터 하면 돼?"
"짝을 소개하는 영작하는거니까··· 우선 서로에 대해 알아야겠지."
"어떻게?"
"내가 먼저 질문할께. 넌 대답만 하면 돼."
"에이···. 시시해."
대체 뭘 기대한걸까. 흥미가 사라진 듯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아예 눈까지 감아버리는 최지안을 흘낏 노려보았다. 시선을 돌리다 문득 눈에 띈 벽걸이 시계.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집에서 날 신경조차 안쓴다지만,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 나도 자야할거 아니냐고ㅡ.
"후우···. 집중 좀 해주면 안돼? 빨리 끝내고 싶다고, 난."
"집중하고 있어. 물어봐."
"가족···사항은?"
"엄만 하늘나라. 아빤··· 죽지 않았다면 어딘가 살아 있을테고. 성질 고약한 이모 하나. 끝."
"···"
어쩜··· '아침은 토스트, 점심은 된장찌게, 저녁은 고등어조림 먹었어'라고 일상을 말하듯 내뱉을 수 있는걸까.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최지안의 얼굴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느라 다음 질문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최지안의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다음 질문."
"아, 응. 취미는?"
"음악 듣는거."
"특기는?"
"노래."
"음악··· 많이 좋아하나봐?"
"우리 밴드부 엄청 유명한데ㅡ '樂'이라고 못들어봤어? 나 거기 보컬이잖아."
아··· 알진 못하지만, 들어본 적은 있었다. 1, 2학년 내내 여자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그 이름 '樂'ㅡ 즐기다란 뜻, 음악이란 뜻, 좋아한다는 뜻을 동시에 지닌···. 보통 '락'이라 불리는 듯 하지만, 극성인 애들은 '요'라 부르기도 했다. 이름처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밴드라면서. 관심없는 나조차도 너무 들어서 익숙한 그 유명한 밴드 멤버들 중 한 명이 너였다니.
음악 얘기를 하자 드디어 관심이 생긴듯 눈을 뜬 최지안이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설마ㅡ 몰랐어? 실망인데."
"그런 걸로 실망하면 곤란해. 모든 사람이 너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너···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이렇게 말해? 아니면, 내 관심 끌려고 일부러 이러는거야? 우와, 그렇다면 꽤 성공인데."
벌떡 몸을 일으켜 앉은 최지안이 내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새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장난기로 가득차 반짝거렸다. 난, 너야말로 모두에게 항상 이렇게 가볍고 진지하지 못하냐고 톡 쏘아붙이려다 참았다. 대신 어이없다는 눈길로 쳐다보니 작게 웃어보인 최지안이 다시 쇼파에 기대며 '다음 질문ㅡ'이란다. 그런데, 갑자기 울려대는 생소한 핸드폰 벨소리. 느릿하게 쇼파에서 일어난 최지안이 방으로 들어가자 벨소리가 멈췄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개념없는 이는 대체 누굴까.
"혜주 누나? 아아···."
"어쩌지ㅡ 오늘은 먼저 손님이 와있어서 말이야."
한 쪽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통화를 하던 최지안이, 날 한 번 힐긋 쳐다보며 대답했다. 손님? 뭐, 구지 따지자면 녀석에게 난 손님일테지만··· 뭔가 풍기는 뉘앙스가 묘했다. 별로인 느낌에 살짝 인상이 구겨졌지만, 최지안은 여전히 통화하기에 여념 없었다. '집 앞이라구?'라는 말과 동시에 베란다로 나간 최지안이 아래를 슬쩍 내려다 보다가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인데ㅡ.
"좋아. 미안하니까 다음 번엔 서비스 팍팍 해줄께. 에이··· 부끄럽게."
"소문··· 사실이네."
"뭐? ···아, 아니야. 누나 운전 조심하구, 다음에 봐."
'타악ㅡ'
"소문이라니?"
"너 바람둥이라고 소문 자자해. 듣던대로라서ㅡ."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 번 어깨를 으쓱, 해보인 최지안이 다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아니, 앉았다기 보다 누웠다고 하는게 더 맞을 듯 싶다. 여전히 자세 불량ㅡ. 습관적으로 자세가 바르고 꼿꼿한 나와는 심하게 대조적인 모습.
쓸데없이 잡아먹은 시간 때문에, 더욱 속도를 내서 질문을 해나갔다. 다행히도 최지안은 성실히 대답해주었고ㅡ. 어느 정도 녀석에 대해 소개할 분량의 문답이 끝나가고 있었다. 새벽 1시 40분을 가리키는 시계. 영작도 해야하고, 최지안 녀석의 물음에 나도 답해주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는데ㅡ
"후아, 졸립다···."
"자면 안되는거 알지? 너도 수행평가 해야되잖아."
"흐응, 글쎄."
영작도 해야하고, 최지안의 질문에 대답도 해줘야 하고ㅡ 언제 다할지 막막했다. 밤이라도 새야되나···. 또 그러고 싶진 않아서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녀석에게 물은 것을 토대로 대충 영작을 해나가고 있었다. 특별히 어려운건 없었으니까 쓱쓱 해나가고 있는데ㅡ 그런 날 쳐다보던 최지안이 졸린듯 눈가를 스윽 비비더니 나른하게 물었다.
"넌 질문 다 끝낸거야?"
"적어온건 몇 개 더 남았는데··· 이 정도만 해도 될거 같아서. 시간도 늦었고."
"너 영어 잘해?"
"그냥 불편하지 않을만큼. 성적에 해되지 않을만큼."
내 대답에 '우와, 우와'라는 감탄사만 남발하던 최지안이 조용해졌다. 영작을 하다말고 자는건가 싶어서 쳐다봤더니 '이름이 뭐야?'란다. 자는건 아니구나.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안 말해줬네, 여태까지.
"민··· 여울."
"여울이? 예쁜 이름이네···. 남자친구 있어?"
남자친구라···. 그 순간, 어느 한 사람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남자친구라 칭하기도, 또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관계의 그가. 결국, '없다'라고 말하려는데 욱신거리는 심장.
그렇게 최지안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질문들만 긴 텀을 두고 던져왔다. 덕분에 집에 가지도 못하고 영작을 하며 그 쓸데없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간간이 해줄 뿐. 자꾸만 감겨오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며 영작을 해나갔다. 그랬는데ㅡ 이상하게도 그 이후엔 기억이 없다. 불행하게도.
뭔가 갑갑한 느낌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건 부들부들한 새까만 머리칼.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ㅡ 눈을 아래로 내리깔자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내 허리를 껴안은채로 아기처럼 곤히 잠들어있는 최지안이 보였다. 깜짝 놀라 무자비하게 녀석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켜 앉자 익숙치 않은 가구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꼴로 자고 있던거지. 난 분명 영작을···.
"좀 살살 깨우지."
"최지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단추가 다 풀린 블라우스 앞섶을 그러쥐고 금방 일어나 부스스한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순진무구한 얼굴이 날 마주했다. 공중에서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길 몇 분···. 드디어 잠이 완전히 깬 건지 말똥말똥한 눈빛의 최지안이 날 보며 씨익, 웃어보이는거 아닌가.
"수행평가 하다가 잠들었길래···. 불편해보여서 침대로 옮겼는데?"
"넌 왜 여기서 잤는데? 아니, 그것보다··· 내 옷이 왜이래?"
"원래는 쇼파에서 잤는데 춥고 불편해서 들어왔어. 네 옷은··· 니가 벗었잖아. 기억 안나?"
"···거짓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최지안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최지안은 '어어ㅡ 진짠데'라며 혼잣말을 내뱉더니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정하자, 진정. 우선, 어제의 일을 떠올려보자.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생각나는건 없었다. 내게 잘 때 옷을 벗는, 그런 고약한 취미가 있었나···. 하긴, 언제나 잠옷으로 갈아 입고나서야 잠에 드는 나이기에 교복을 입고 자는건 답답했을지도 몰랐다.
더이상 문제로 삼기엔 다른 데는 너무나도 멀쩡했기에 단순한 실수로 묻어두고 그냥 넘어가려는데ㅡ
"우와, 나 진짜 억울해. 너··· 매력 없거든?"
"···"
"가슴도 작은게."
최지안의 마지막 말에 내 이성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후, 하늘이시여.
#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클릭해주시고 관심가져주셔서 너무 놀랐어요.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힘도 나고, 앞으로 더 열심히 써서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밖엔···.
무엇보다 꼬릿말 달아주신 '당신만으ls2'님, '나쁜&당당한 여자'님, 'ㅎ천재임돠'님, '파란시간'님, '여여여여여ㅋㅋㅋㅋ'님, '[포샵·에센]'님 너무 너무 감사드려요. 답글로도 달아뒀지만, 너무 감사드리고 감동 억만개 받았답니다.
소중한 댓글 너무 감사했어요.^^
아, 잠시 소설 얘기를 하자면ㅡ,
'희로애락' 비축분이 지금 6편 정도 더 남아있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꺼번에 다 올려드리고 싶은데, 이 소설이 생각보다 한 편 쓰는데 굉장히 시간을 잡아먹더라구요.
그만큼 고심 끝에 쓰고 있단 거겠죠. 비록 이 정도의 소설일지라도··· 전 무척 애쓰고 있답니다.
그래도 하루에 한 편! 씩은 꼭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실 연재할 수 있도록 많이 사랑해주세요.^^
첫댓글 재밋어요!^^ 작가님힘내세요~
네네, 덕분에 힘이 불끈 불끈 난답니다.^^ 이번에도 소중한 첫 댓글 감사요~
ㅋㅋ재밋어요오오오오아귀여워
와와, 감사합니다. 무려 댓글까지!!! 지안이가 좀 귀엽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
쪽지 보고 바로 왔어요~작가님 화이팅~ !
앞으로도 쪽지 서비스는 계속됩니다. 완결까지 쭉ㅡ^^ 덕분에 힘 많이 얻고 가요, 너무 감사합니다.
여울이한테 맞을말만 골라서 하는군요~ㅋㅋ 쪽지고맙습니다^^
그러게요, 지안이가 좀 짓궂네요. 쪽지 서비스는 계속 해드릴게요. 어제에 이어 너무 감사드리요.^^
얼른담편두 보고싶네요!!`
와, 소중한 댓글 감사드려요. 다음편은 내일 꼭 올려드릴게요. 성실연재하도록 할테니 많이 지켜봐주세요.^^
재미있어요~~~~~다음편기대할꼐요~~^^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더 재밌는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편 많이 기대해주세요. 감사해요.^^
진짜잼나요 성실연재해주실꺼죠ㅠ 진짜완결까지 꼬옥 보겠습니다화.이.팅.
어제에 이어서 오늘 또! 성실연재 꼭 하도록 노력해야죠. 얼른 얼른 써야할텐데, 한 편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ㅠ 할 일 없을때마다 소설 구상에 소설쓰기 돌입하고 있답니다. 완결까지 꼭 함께해주세요.^^
성실연재해주세요~~재미써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네, 꼭 그러도록 할께요! 소중한 댓글 감사해요.^^ 덕분에 많이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