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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灣電視台-熱線追蹤-甄宓
(위를 클릭하여 유트브에 들어가시면 보다 상세히 洛神賦가 생기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국어 방송이라서 물론 제한적이지만 자막이 나오므로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漢末 河北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袁紹는 建安 5年(200년) 10월 官渡大戰에서 조조에게 패한 뒤에 冀州로 돌아가서 2년 뒤에 병으로 죽었다.
그가 죽자 조조는 그의 아들 曺丕를 데리고 3년 동안 원소의 세 아들들과 河北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마지막에 조비가 원소이 저택을 기습해 들어가 당시 하북 제일 미인으로 소문났던 원소의 둘째 아들 袁熙의 아내인 견씨(甄氏)를 잡아갔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인으로서 董卓의 여인으로 바쳐진 貂嬋은 중국 역대 4대 미녀의 한 사람으로 그 미색으로는 그 다음이었다고 하지만
재주를 따지면 이름이 복(宓)이라던 이 甄氏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조비의 전리품으로 잡혀간 이 아름다운 여인은 나이가 조비보다 많아, 조조에게조차 사랑을 받았으며, 조비의 아우인 曹彰과 曹植에게도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조식이 이 여인을 지극히 사모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가 자식들과 함께 다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형제들간의 화목을 위해 견씨를 큰 아들 조식에게 맡기게 했다 한다.
이 조치에 가장 반대하면서 침식을 잃고 마음 고생한 사람이 조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엔 조비와 살게된 견씨는 조비의 아들 曹睿와 딸을 낳게 되었지만 늘 신세를 한탄하며 자살까지 하려하던 견씨에게 조식은 백마를 선물하며 도망가기를 권유하기도 하면서
연상의 여인이며 형수인 견씨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견씨는 그 보답으로 옥패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10 여 년의 세월이 흐른 220년 자신을 닮아 문학에 재능이 있는 조식을 편애하던 조조가 죽자,
조비는 위왕이 되었다가 열 달 뒤에 다시 후한의 마지막 황제 獻帝의 양위를 받아 위 황제가 되었다.
황위에 오른 조비는 헌제의 두 딸을 비로 취하고, 과거 경쟁자였던 형제들을 핍박하고 제거해나가기 시작했다.
조비의 바로 아래 아우인 조창은 조비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하며, 넷째 조웅은 지래 겁을 먹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가장 뛰어났던 조식은 허울뿐인 封地를 받아 전전하였는데 그런 중에도 계속 첩자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늘 조비는 조식을 제거하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 武宣皇后 卞氏에 의해 구명되었고, 그 유명한 七步詩도 이런 과정에서 생겼다고 한다.
조식의 보좌진들도 조비에 의해 하나하나 모두 제거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조식은 할 수 없이 자신의 封地로 돌아갔다.
조비는 아버지의 조식에 대한 편애와 조비의 자기 아내인 견씨를 사랑했다는 것이 괘씸했고,
의심이 많던 조비는 자신의 아들 조예가 인물이 훤출한 것은 견씨 부인의 전 남편 원소의 아들 원희의 친아들이리라는 의심과,
빼어난 자태의 딸은 조식의 여식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조비에게는 견씨부인과 헌제의 두 딸 외에 곽부인을 비로 두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기 시작한 견씨를 멀리하기 시작하며 여걸이라던 곽씨부인을 총애하기 시작했고,
조비의 황위를 선양받는데 공헌했던 이 곽부인은 견부인을 모함하고 결국 폐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중랑 棧潛이 "제왕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밖에서 돕지 않으면 안에서 돕는 것이 있었다.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이 여기에 있고 성하고 쇠함이 이를 쫓아 된다
(在昔帝王之治天下 不惟外輔亦有內助 治亂所有 盛衰終之)"라는 상소를 올려 반대하였다.
내조라는 말은 처음 이렇게 내궁의 법도와 황후의 인덕을 뜻하는 말로 생겨 쓰였으나 오늘날은 아내가 가사를 잘 돌보아 남편이 바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으로 씌이고 있다.
어쨓든 이런 상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조비는 黃初 2년 甄后에게 자결을 명하고 곽부인은 죽은 견후의 머리를 뜯고 입을 쌀겨로 메워 관도 없이 묻었다.
황초3년(222년) 魏文帝 조비는 아우 조식을 조정에 불러들여 견후가 쓰던 옥 베개를 하사하며 조롱하였다.
견후를 짝사랑했으니 그녀가 평소에 베고 자던 베개나 안고 살라는 것이었다.
옥 베개를 받아들고 藩國으로 돌아가던 조식은 洛水를 지나다가 형수 견후를 생각하며 한 편의 글을 남기게 되니 천하명문의 하나로 꼽히는 洛神賦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洛神賦
黃初三年 余朝京師 還濟洛川 황초삼년 여조경사 환제낙천
황초 3년에 나는 경사(낙양)에 입조하였다가 돌아가는 길에 낙천을 지나게 되었다.
古人有言 斯水之神 名曰宓妃 고인유언 사수지신 명왈복비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이 물에 선녀가 있으니 그 이름이 복비라.
感宋玉對楚王說神女之事 遂作斯賦 其辭曰 감송옥대초왕설신녀지사 수작사부 기사왈
송옥이 아뢴 초왕과 무산신녀의 일에 느끼는 바 있어 이 賦를 짓는다.
余從京師 言歸東藩 여종경사 언귀동번
나는 경사를 떠나 동녘 번국(封地)으로 돌아가네.
背伊闕 越轘轅 經通谷 陵景山 日旣西傾 배이궐 월환원 경통곡 능경산 일기서경
이궐산 등지고 환원산을 넘어 통곡을 지나 경산에 이르니 이미 해가 저물고
車殆馬煩 爾乃稅駕乎蘅皐 차태마번 이내세가호형고
수레가 위태롭고 말이 지쳐 물가 풀밭에서 수레를 쉬며
秣駟乎芝田 容與乎楊林 말사호지전 용여호양림
지초 무성한 밭에서 여물을 먹이며 버들 숲에 앉아
流眄乎洛川於是精移神駭 유면호낙천어시정이신해
흘러가는 낙천을 바라보매 문득 정신이 산란하였네
忽焉思散 俯則未察 仰以殊觀 홀언사산 부즉미찰 앙이수관
홀연히 생각이 흩어져 굽어보아도 보이지 않고 우러러 보아도 달랐는데
覩一麗人于巖之畔 도일려인우암지반
바윗가에 서 있는 한 미인을 보았네.
爾迺援御者而告之曰 爾有覿於彼者乎 이내원어자이고지왈 이유적어피자호
이에 호종하는 이를 불러 묻기를 자네도 저 이가 보이는가
彼何人斯 若此之豔也 피하인사 약차지염야
저이는 누구이기에 저토록 고운가
御者對曰 臣聞河洛之神 名曰宓妃 어자대왈 신문하락지신 명왈복비
호종하는 이가 답하기를 제가 듣기로 낙수의 신을 복비라 이르는 바,
則君王之所見也 無乃是乎 즉군왕지소견야 무내시호
군왕께서 보신 이가 그가 아닐까 하나이다.
其狀若何 臣願聞之 余告之曰 기상약하 신원문지 여고지왈
그 모습이 어떠한지 소인도 궁금하다 이르매 대답하기를
榮曜秋菊 華茂春松 영요추국 화무춘송
가을 국화처럼 빛나고 봄의 소나무처럼 무성하구나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飄兮若流風之廻雪 방불약혜경운지폐월 표표약혜류풍지회설
엷은 구름에 가린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원이망지 교약태양승조하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박이찰지 작약부거출록파
가까이서 바라보니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
穠纖得中 脩短合度 농섬득중 수단합도
섬려한 모습과 아담한 키마져 모두가 알맞고 적합하니
肩若削成 腰如若素 견약삭성 요여약소
그 어깨는 일부러 조각한 듯하고 그 허리에는 흰 비단을 두른 듯하구나
延頸秀項 皓質呈露 芳澤無加 鉛華不御 연경수항 호질정로 방택무가 연화불어
길고 가녀린 목덜미에 절로 드러난 흰 살결은 향기로운 연지도 호사한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구나
雲髻峩峩 脩眉聯娟 운계아아 수미련연
구름같은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그 아미는 가늘고 길게 흐르며
丹脣外朗 皓齒內鮮 단순외랑 호치내선
붉은 입술은 밖으로 빛나고 백옥같은 이는 입술 안에서 곱구나.
明眸善睞 靨輔承權 명모선래 엽보승권
눈웃음치는 눈동자는 아름답고 그 보조개가 능히 마음을 끄나니
瓌姿豔逸 儀靜澤閑 괴자염일 의정택한
그 맵시 곱기가 이를 데 없고 거동이 고요하여 윤기가 흐르니
柔情綽態 媚於語言 유정작태 미어어언
부드러운 마음과 갸날픈 자태에 말씨 또한 아름답구나.
奇服曠世 骨像應圖 기복광세 골상응도
기이한 옷차림은 세상에 없으니 그 자태 그림같으니
披羅衣之璀粲兮 珥瑶碧之華琚 파라의지최찬혜 이요벽지화거
몸에 걸친 비단옷은 찬란하고 귀에는 아름다운 귀걸이가 빛난다
戴金翠之首飾 綴明珠以耀軀 대금취지수식 철명주이요구
금 비취 머리 장식에 밝은 구슬을 꿰어 몸치장하고
踐遠游之文履 曳霧綃之輕裾 천원유지문리 예무초지경거
꽃신 신고 얇은 명주치마를 끌며
微幽蘭之芳藹兮 步踟蟵於山隅 미유란지방애혜 보지주어산우
그윽한 난초향기에 묻혀 산모퉁이를 거니네
於是忽焉縱體 以遨以嬉 左倚采旄 右蔭桂旗 이시홀언종체 이오이희 좌의채모 우음계기
이에 몸을 놓아 즐겁게 노니니 왼쪽엔 채색 깃발을 세웠고 오른 편엔 계수나무 깃발을 드리웠네
攘皓腕於神滸兮 采湍瀨之玄芝 양호완어신허혜 채단뢰지현지
물가에서 흰 팔 걷고 여울에서 현초 캐는데
余情悅其淑美兮 心振蕩而不怡 여정열기숙미혜 심진탕이부이
내 뜻이 그 맑은 아름다움에 흠모되어 마음이 흔들려 기쁘지 않네
無良媒以接歡兮 託微波而通辭 무량매이접환혜 탁미파이통사
좋은 매파가 없어 마음 전하지 못하여 잔 물결에 부쳐 전하노니
願誠素之先達 解玉佩以要之 원성소지선달 해옥패이요지
사모하는 내 뜻을 알리고자 구슬 노리개를 풀어 바라네
嗟佳人之信脩 羌習禮而明詩 차가인지신수 강습예이명시
아, 가인은 믿음 있게 행하고 예를 익혔고 시에도 밝으니
抗瓊珶以和予兮 指潛淵而爲期 항경제이화여혜 지잠연이위기
옥구슬을 집어서 답하기에 깊은 연못을 가리켜 화답하였네
執眷眷之款實兮 懼斯靈之我欺 집권권지관실혜 구사령지아기
진정한 정을 지녔으니 그 속음을 두려워하니
感交甫之葉言兮 悵猶豫而狐疑 감교보지엽언혜 창유예이호의
정교보이 버림 받음을 생각하고 슬퍼져 머뭇거리며 의심하네
收和顔而靜志兮 申禮防以自持 수화안이정지혜 신례방이자지
온화한 얼굴을 거두고 뜻을 조용히 가지며 예의를 차려 자신을 지키니
於是洛靈感焉 徙倚彷徨 어시낙령감언 사의방황
이에 낙신도 느낀 바 있어 이리 저리 헤매는데
神光離合 乍陰乍陽 신광이합 사음사양
광채가 흩어졌다 모이며 그늘이 되었다 밝아졌다 하더라.
竦輕軀以鶴立 若將飛而未翔 송경구이학립 약장비이미상
다소곳하고 날렵한 자태 발돋음하여 나는 듯 날지 않고
踐椒塗之郁烈 步蘅薄而流芳 천초도지욱렬 보형박이류방
산초 우거진 향기 자욱한 길을 밟고 풀꽃 향기 날리는 데를 걸으며
超長吟以永慕兮 聲哀厲而彌長 초장음이영모혜 성애려이미장
길게 읊어 영원히 사모하노라 그 소리 서러워 더욱 길어지네.
爾乃衆靈雜遝 命儔嘯侶 이내중령잡답 명주소려
그리하여 갖은 신령들이 모여들어 서로 짝들을 부르게 하니
或戱淸流 或翔神渚 혹희청류 혹상신저
혹자는 맑은 물 속에 노닐고 혹자는 신령스런 물가를 날며
或采明珠 或拾翠羽 혹채명주 혹습취우
혹자는 밝은 구슬을 찾고 혹자는 비취빛 깃털을 줍네.
從南湘之二妃 攜漢濱之游女 종남상지이비 휴한빈지유녀
남쪽 상강의 두 비(蛾黃과 女英)을 따르게 하고 한수가의 여신을 대동하니
歎匏瓜之無匹 詠牽牛之獨處 탄포과지무필 영견우지독처
포과성이 짝 없음을 탄식하고 견우성이 홀로 삶을 읊조리네.
揚輕袿之綺靡 翳脩袖以延佇 양경규지기미 예수수이연저
아름다운 옷자락을 나부끼며 긴 소매 가려 우두커니 바라보네
體迅飛鳧 飄忽若神 체신비부 표홀약신
날렵하기가 나는 오리 같고 표연하기가 신령과도 같네.
陵波微步 羅襪生塵 능파미보 나말생진
물결을 밟아 사뿐이 걸으니 버선 끝에 먼지가 일고
動無常則 若危若安 동무상즉 약위약안
그 몸짓 대중 없으니 위태한 듯 평안한 듯
進止難期 若往若還 진지난기 약왕약환
나아가고 멈추어 섬이 예측하기 어려워 가는 듯 돌아서는 듯
轉眄流精 光潤玉顔 전면류정 광윤옥안
돌아서 바라보니 옥안이 눈이 부시고
含辭未吐 氣若幽蘭 華容婀娜 令我忘餐 함사미토 기약유란 황용아나 영아망찬
말을 머금어 내지를 않으니 그윽한 난초와 같아 화용이 눈부셔 식음을 잊게하네
於是屛翳收風 川后靜波 馮夷鳴鼓 女媧淸歌 어시병예수풍 천후정파 풍이명고 여와청가
이에 병예(바람의 신)가 바람을 거두고 천후(바다의 여신)가 물결을 재우며 풍이(물의 신인 하백)가 북을 울리고 여와(황제 복희의 아내)가 고운 노래를 부르네.
騰文魚以警乘 鳴玉鸞以偕逝 등문어이경승 명옥란이해서
문어를 띄워 수레를 호위하고 옥 방울을 울리며 떠나가누나.
六龍儼其齊首 載雲車之容裔 鯨鯢踊而夾轂 육룡엄기제수 재운거지용예 경예용이협곡
육룡이 머리를 맞대 공손히 수레를 끌고 고래가 뛰어올라 바뀌를 돌보며
水禽翔而爲衛 於是越北沚 過南岡 수금상이위위 어시월북지 과남강
물새도 날아올라 호위하며 북쪽 물가를 넘어 남쪽 산을 지나네.
紆素領 廻淸陽 動朱脣以徐言 陳交接之大綱 우소령 회청양 동주순이서언 진교접지대강
흰 목을 돌려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열어 천천히 만남의 일을 말하니
恨人神之道殊 怨盛年之莫當 한인신지도수 원성년지막당
사람과 신의 길이 달라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네.
抗羅袂以掩涕兮 淚流襟之浪浪 항라몌이엄체혜 누류금지랑랑
비단 소매를 들어 눈물을 가리나 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적시니
悼良會之永絶兮 哀一逝而異鄕 도량회지영절혜 애일서이이향
좋은 만남이 영원히 끊어질 것을 슬퍼하며 한 번 가니 다른 곳에 일을 일을 슬퍼하네.
無微情以效愛兮 獻江南之明璫 무미정이효애혜 헌강남지명당
미미한 정으로 다하지 못한 바가 있어 강남의 빛나는 구슬을 바치고
雖潛處於太陰 長寄心於君王 수잠처어태음 장기심어군왕
비록 저승에 거할지라도 이 마음 깊이 군왕께 거하겠다고 하네
忽不悟其所舍 悵神宵而蔽光 홀부오기소사 창신소이폐광
문득 그 있는 곳 보이지 않더니 섭섭히 사라져 빛을 가리네.
於是背下陵高 足往心留 어시배하릉고 족왕심류
이제 돌아서서 높은 곳 오르려하니 발걸음은 가고자하나 마음은 머무르려하고
遺情想象 顧望懷愁 유정상상 고망회수
남은 정을 되새기며 돌아보며 탄식하네.
冀靈體之復形 御輕舟而上泝 기령체지부형 어경주이상소
그 모습 되찾기를 바라며 작은 배를 몰아 강에 오르니
浮長川而忘反 思緜緜而增慕 부장천이망반 사면면이증모
아득한 강물에 배 띄우고 돌아갈 길 잊은 듯 생각은 연이어 그리움만 더하고
夜耿耿而不寐 霑繁霜而至曙 야경경이불매 점번상이지서
밤은 깊었는데 잠들지 못하고 엉킨 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노라
命僕夫而就駕 吾將歸乎東路 명복부이취가 오장귀호동로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내게하고 이제 나는 동로로 돌아가리니
攬騑轡以抗策 悵盤礡而不能去 람비비이항책 창반박이불능거
말고삐 잡아 채찍을 들었으나 그 마음 서운하여 돌아서지 못하네.
226년, 제위에 오른 지 7년 만인 마흔 살의 나이로 曹丕가 죽자 견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曹睿가 황제로 등극하였다.
조예는 타계한 어머니 견후를 文梳皇后에 추봉하고 곽부인에 대해서도 극진히 대접하였다.
곽부인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어렵게 살다가 미모를 앞세워 조비의 총애를 받고 文德皇后에 봉해진 인물이다.
그러나 조예가 제위에 오른 지 9년이 지나 견후에 대한 사건을 재 수사하도록 하여 결국 곽부인을 사사하고 목을 벤 다음 궁궐에 효수하였다가,
견후와 똑 같이 머리카락을 훼손하고 그 입에 쌀겨를 채워 넣은 다음 매장하였다.
魏 武帝 曹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曹植은 열 살 때 이미 십일만 자의 문장을 왜운 천재였다.
건안문학을 일으키고 오언시를 완성하여 훗날 唐나라의 이백과 두보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시문에 뛰어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조식은 이백과 두보가 나오기 이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힐 만큼 사람이며
屈原의 초사와 漢代의 부를 계승하고 세련된 언어와 정연한 대구로 시경, 악부, 민요의 사실주의적 전통을 계승발전 시킨 당대의 걸출한 시인이었다.
그런 조식은 자유분방한 성격과 과음 그리고 일탈된 처사로 신임을 잃어 조비와의 후계 다툼에서 밀려나
봉지를 전전하다가 아내와 가족을 잃고 마지막 봉지 陳에서 죽었다.
이에 조예가 시호를 '思'라고 내리니 봉지와 시호를 합하여 '陳思王'이라 불린다.
이 시호는 조예가 자신의 어머니를 '사모하고 원망한' 그를 기리며 내린 것으로 이 뜻을 함축한 것이 '思'이니 숙부에게 표한 연민의 정을 말한 것이라 한다.
조식은 복비(宓妃)의 고사를 들어 洛神이라는 미녀를 창조하고 생전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노래하였다.
원래의 제목은 '感甄賦'였으나 아버지의 의심으로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항상 애통해 여겼던 조예가
어머니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洛神賦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첫댓글 승기야. 건강하게 잘 사냐?
자네가 올린 이번 글을 내 집사람하고 잘 읽었다.
내 처가 중국의 진짜 역사에 대해 원체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든.
정말 고맙다.
2015년 설이 곧 다가오니 자네 가족 모두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오랜만일세.
오늘 광주 사는 동기와 27기 후배와 놀다 왔네.
이 낙신부는 내가 참 좋아한다네. 그래서 요즘 이것을 草書로 옮겨 쓰고 있다네.
易中天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중국인 작가가 쓴 <삼국지 강의>라는 책도 요즘 사 보고 있네.
다시 어릴 적 읽은 삼국지의 세계로....
곧 설날이 돌아오는데 새해에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