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 산
밀양 산성산(391m)
밀양시민들이 아끼는 숨겨진 보물
9월은 가을이다. 들판에는 벼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들길 풀섶에는 풀씨가 여치의 눈을 닮아가며 여문다. 늦여름을 갉아먹는 풀벌레 소리가 맑은 여울처럼 귓속에 고이고, 고ㅓ추잠자리 날갯짓이 보일 듯 말 듯 허공 속을 들락날락 한다. 불그스름한 석류는 금방이라도 제 속을 드러내 보일 듯 어른 주먹만하다.
가을이 어디선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겠지만 목덜미에 달라붙는 뙤약볕은 한여름보다 더 뜨겁다. 먹구름이 하늘가를 휙휙 내달릴 때는 뜀박질을 하는 것처엄 온 몸이 후텁지근하다. 간 밤에도 채 식지 않은 듯 포장길이 아침부터 토해내는 열기가 들숨 속으로 파고든다. 산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샤워부터 하고 싶다.
들머리는 용두산이다. 밀양강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면서 굽이도는 곳에, 고개를 쑥 내민 산의 모양새가 용머리를 닮았나 보다. 용머리를 밟고 산으로 들어선다. 붉게 핀 백일홍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며 홍룡을 떠올린다. 소나무숲이 울창해 청룡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아름드리 소나무는 대부분 홍송이다. 홍 속에서 뜨거운 바람이 새어나오는 듯하다.
이 산은 나지막하고 일(一)자봉이란 별칭처럼 길도 완만하다. 숲도 우거져 운치가 있고 쉬어가기 좋은 곳에는 팔각정자도 있다. 조그만 체육공원도 있고 산자락 밑에는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금사당이 있다. 금사당 앞에는 사철 밀양강이 히른다. 밀양에는 높고 수려한 산이 많은데, 시민들은 그런 산보다 이 산을 더 잘 안다. 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고 짬이 날 때마다 부담없이 오르내릴 수 있어 종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밀양의 높고 수려한 산들은 이미 전국의 산꾼에게 알려져 있을 터. 하지만 산성산은 작고 낮아 밀양시민들의 숨겨진 휴식처 같은 곳이다.
지치지도 않는지, 더위가 뒤따라오며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한번 주저앉으면 나무그늘에 벌렁 드러눕고 싶다. 하지만 벌떡 일어나 정자가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쏴아... 소나기가 쏟아진다. 손바닥에 빗물을 받아 만져보니 불에 데운 것처럼 미지근하다.
소나기는 삼십분 간격으로 세번을 내린다. 산 너머에서 달려오듯 둥둥 먹구름이 몰려와 요란하게 비를 뿌린다. 세번째로 내리는 소나기가 한 사십분 남짓 길게 내린다. 빗줄기를 따라 내리는 구름과 땅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밀양이 사라진다. 비를 피해 모인 사람들이 멀뚱멀뚱 서로 못 본 척 서 있다가 갑갑증을 견디지 못하고 말문을 튼다.
시야가 넓게 트이는 일자봉에 올라서니 정자와 돌탑이 나란히 서있다. 정자에 올라가서 밀양시내와 산과 들판, 그 사이로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본다. 강물은 마을 앞에서 두 갈래로 흩어지고 마을을 지나 다시 한 줄기로 만난다. 삼문동을 휘돌면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린다. 물길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이라면 이 정자에 꼭 올라보기를 권한다.
정상에는 정상석만 서있다. 터가 좁고 시야도 막히는 탓에 인기척이 뜸하다. 산이름이 생겨난 유래는 이 산자락에 있는 자시산성인 듯하다. 산성이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지만 왔던 길로 돌아선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올라온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하고 스스럼없이 인사를 한다.
금시당 쪽으로 하산을 한다. 하늘이 개이자, 비에 흠뻑 젖은 나뭇잎들이 맑게 빛난다. 소나기로 푸름을 한 겹 씻어낸 숲이 개운한 듯 환한 표정을 짓는다. 금시당 주변에는 거목이 많다. 거목은 한여름 더위도 함부로 머물지 못하게 했을,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다. 이곳에서 가을이 열리는 것 같다.
금시당에서는 오솔길을 따라 간다. 산자락을 돌고 돌아가는 아늑한 길이다. 한 발을 내리 디디면 밀양강에 빠질 것 같은 길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의자에 앉아 강물을 내려다본다. 강물을 따라가던 강바람이 숲으로 올라온다. 9월 속에서 버티는 늦더위를 데리고 갈 모양이다.
*산행길잡이
밀양역-(20분)-팔각정매점-(1시간)-정자와 돌탑-(5분)-정상-(5분)-정자와 돌탑-(30분)-금시당 갈림길-(15분)-금시당-(35분)-팔각정매점-(20분)-밀양역
밀양역에서 나가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간다. 10분쯤 가면 탑마트가 나온다. 탑마트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기찻길 밑 육교에 밀양시의 로고인 '미르피아'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육교 밑을 지나 5분쯤 가면 포장길이 끝난다. 포장길 끝에서 왼쪽 길로 올라선 다음 집과 밭 사이를 지나면 용궁사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이내 포장길을 만난다. 왼쪽 길을 따라 5분쯤 가면 팔각정매점이 있다.
팔각정매점 앞에서는 오른쪽으로 간다. 이정표를 따르면 일자봉 방향이다. 25분쯤 올라가면 금시당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한다. 35분쯤 더 올라가면 정자와 돌탑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일자봉이다. 이 산은 밀양시에서 바라보면 한 일(一)자로 보여 밀양 시민들에겐 일자봉으로 통한다. 그리고 정자와 돌탑이 있는 이 봉우리를 그 정상이라고 부른다.
정상에서 정자와 돌탑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간다. 5분. 정자 앞에서는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도 되고 정자 뒤로 내려가서 산자락을 돌아가도 된다. 30분쯤 내려간 후 금시당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15분쯤 가면 금시당이다. 금시당에서도 오른쪽 길로 간다. 오르내림이 없는 오솔길을 35분쯤 가면 팔각정매점이 나온다. 팔각정매점에서 밀양역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직진하면 길 상태가 좋은 숲길이 쭉 이어진다. 임도를 만나 임도를 따라가면 밀양역 뒤에 있는 멍에실로 갈 수 있는데 임도가 무척 길다. 임도를 건너 넓은 산길로 들어서면 계속 산을 탈 수있다. 다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에 풀이 웃자라 길이 묻힌 곳이 몇 군데 있다. 이 길은 밀양시 남포동으로 이어진다. 또 정상에서 정자와 돌탑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간 후 정자 뒤로 하산을 하면 월연교가 있는 곳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 길 역시 길은 잘 나 있으나 풀이 무성하다.
*교통
부산역에서 밀양행 열차가 07:50(무궁화), 08:20(KTX), 09:15(무궁화), 09:30(KTX), 09:50(KTX), 10:30(무궁화) 등 많다.
밀양역에서 부산행 열차는 16:53(무궁화), 17:53(KTX), 18:02(무궁화), 18:11(새마을), 18:22(무궁화), 23:48까지 있다.
요금은 무궁화호 3,800원, 새마을호 5,600원, KTX 8,100원. 30~45분 정도 걸린다.
*잘 데와 먹을 데
밀양역 앞에 진미추어탕(055-356-4389), 밀양돼지국밥(355-5055)이 있다. 천경사 밑 용두목유원지에 자연산 은어와 쏘가리, 민물장어 요리를 하는 은어횟집(354-7956)이 있다. 밀양역 부근에 모텔 허브(354-5157)가 있다.
*볼거리
금시당(경남문화재자료 제228호) 조선시대 명조 때 승지로 학행이 높았던 금시당 이광진(1513~1566)이 은퇴한 후에 지은 건물이다. 이광진은 이곳에서 학문을 닦고 수양하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5대손 백곡 이지운이 다시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문중의 뜻을 모아 10대손 이종원과 11대손 이용구가 건물을 해체하여 중수한 것이다. 건물 내에는 백곡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백곡제가 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물로 영남 사족(士族)의 건물 형태를 잘 보여준다. 건물 앞에는 이광진이 심은 44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글쓴이:박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