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인생, 자연, 우주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연구방법은 참 여러가지이다.
예술이나 종교, 철학, 학문적 연구 등등의 많은 방법들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언어를 통해서건 아니건, 세계의 상이한 면들을 강조하는 상이한 기술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그 발생한 상황에서는 타당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는 단지, 실재에 대한 기술이나 표현에 불과한 것이거나 이 세계의 완전한 상을 제공할 수는 없는 제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방법들 중의 하나인 과학과 구도에 대해서 약간 고찰해보는 의미로
고전물리학(기계론적 우주관)과 현대물리학(유기적 우주관) 그리고 구도라는 관점에서
서로 어떻게 물려있는지 간략한 조명만 해본다.
우리의 삶에서는 기계론적 우주관과 유기적 우주관 둘다 정당하며 유효하다.
전자는 과학과 공업에, 후자는 균형있고 충만된 정신생활에 대해서 그렇다.
고전물리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는 물리적 현상인 일상적 주위환경을 다루는데에는 적절하다. 또 기술공학의 근본으로서 성공적인 발전을 해온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시적 영역에 있는 물리적 현상의 기술에는 부적당하다.
유기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동양사상의 선지식이나 철학의 견해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불가분하고 조화된 전체의 불가결한 부분들로서 간주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계론적인 세계 개념에 반대된다. 일반적으로 거시적 현상의 과학적 서술에는 부적절하다.
유기적 세계관은 기계를 조립하거나 인구과잉의 세계에 있어서 기술적 문제들을 다루는데에는 유리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 주위환경의 차원들을 넘어서면 기계론적 개념들은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유기적 세계관은 비록 인간적 규모의 과학과 기술에는 거의 가치가 없지만 20세기의 현대물리학의 원자적 그리고 아원자적 수준에는 매우 유효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기적 견해는 기계론적인 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 볼수 있다.
인간이 사물들의 본질적 성질, 즉 물리학에 있어서의 물질의 더욱 깊은 영역을 탐구할 때, 구도과정에 있어서 의식의 더욱 깊은 영역을 탐구할 때,
즉 일상생활의 외관적인 기계론적 현상 뒤에 있는 실재를 발견할 때 드러나게 된다.
물리학과 구도의 여정이 서로 다른 연구방법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유사성이 있다.
그것은 방법적인 것으로서 철두철미 경험적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은 그의 지식을 실험으로부터 유도해내고, 구도자는 명상적 통찰로부터 끌어낸다.
둘다 관찰행위인데 물론 두 경우에 있어서 관찰의 대상은 매우 다르다.
우리가 건강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몸속 각 기관들이 제각기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그것을 완전한 전체로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이 안녕과 행복의 감정을 일으킨다. 유사한 방법으로 구도자는 신체의 연장으로서 경험되는 전 우주의 전체성을 자각하기도 한다.
물리학자는 사물의 본질적 성질에 관한 그의 탐구를 물질적 세계를 연구하는데서 시작한다.
물질의 심층영역을 꿰뚫고 들어가면서 모든 사물과 사건의 본질적 통일성을 알게된다.
더 나아가 관찰자 자신과 관찰자 의식이 이 통일성의 불가결한 일부임을 알게 된다.(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원리)
구도자들은 각기 상이한 핵심을 가진 의식의 인상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체로 통합되는 좀더 고차적 경험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현대물리학에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존재하는데 이는 4차원적 시공간의 형태론이 발전되어서 3차원적인 일상적 세계에서는 상이한 범주에 속하는 개념과 관찰을 통일한다.(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 - 양자역학)
구도자와 물리학자는 하나는 내적인 영역으로부터 출발하고 다른 하나는 외적 세계로부터 출발하여 동일한(어디까지나 달개비가 이해한 관점에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더욱 유사한 점은 그들의 관찰이 일상적인 감각에서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현대물리학에 있어서는 이것들은 원자적인 그리고 소립자적세계의 영역이요, 구도과정에 있어서 그것들은 감각세계를 초월한 의식너머의 비일상적인 경험이다.
현대의 물리학은 추론적 정신의 극단적 전문화를 통하여 세계를 경험하고 구도는 직관적 정신의 극단적 전문화를 통하여 세계를 경험한다.
현실에서 과학은 깨달음을 필요로 하지 않고 깨달음은 과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둘 다 필요로 한다.
구도적 경험은 사물의 가장 깊은 본성을 이해하는데 불가결하고 과학은 현대 생활을 이루는 근간으로 긴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종합이 아니라 구도적 직관과 과학적 분석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본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전히 기계론적이고 단편적인 세계관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회이다. 현금의 사회는 추론적이고 남성적이며 그리고 공격적이고 양(陽)적으로 보인다.
우리의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료인 인간존재를 포함하는 우주의 전일성을 가리키고 있는 현대물리학의 세계관이 추론적이고 이론적인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체득되어 변혁의 경험이 되어질 때 우리의 사회가 제대로 진화해 나갈것이라 생각되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장에서의 출발인 구도의 과정에서 자타가 자체로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동일적인 우주의 전일성을 경험하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변혁이 일어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한 또하나의 구도의 장이라 생각된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한편에서는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년 동안 불교와 과학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대부분은 몇몇 불교 사상가들. 특히 달라이라마가 과학에 대해 보였던 관심 때문이었다.
1987년부터 사업가인 애덤 엥글과 과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주도 아래 달라이라마와 뛰어난 과학자들(신경학자들, 생물학자들, 정신과 의사들, 물리학자들, 철학자들) 사이에 정기적인 모임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마음과 삶'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모임에서 나온 보고서들은 출판되어 서로 다른 문화와 분야 사이의 대화. 특히 마음의 본성에 관한 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책으로는 [부드러운 다리], [치유의 감정], [잠, 꿈, 죽음], [과학과 불교]등이 있다. 또한 이 책들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함께 저술한 [유형화된 마음]과 앨런 윌리스가 쓴 [현실의 선택], [주체성의 터부]같이 더욱 깊이 있는 연구로 보완되어왔다.
(물론 이미 접하신분들도 계실것이고 당장 자신을 관찰하는 일이 더 급하신 분도 계실것이어서 그저 이런 관점에서의 책들도 있고 유용한 부분도 있다는 새삼스런 소개를 해본다.)
현대물리학의 유기적세계관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물리학도로서의 이론과 원리는 워낙에 전문적이고 방대한 지식이라 지금도 꾸준히 책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지만 참 요원하고 어려운 학문이면서도 흥미롭고 즐거운 공부이기도 하다.
또한 불교나 동양사상의 진리에 대한 표현과 일치되거나 경험해본 삼매의 체험을 표현해놓은듯한 이론과 원리들을 발견할때면 소름이 끼치도록 전율하거나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길은 그 근저에서 서로 연결되어 통하여 흐르고 있음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하이젠베르그(Wener Heisenberg)의 다음 말로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인류의 사상사에 있어서, 두 개의 다른 사상의 물줄기가 만나는 그러한 지점에서 가장 풍요한 발전이 자주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전적으로 타당한 얘기일 것이다. 이러한 물줄기들은 인류문화의 전혀 다른 분야에, 상이한 시대와 상이한 문화환경과 상이한 종교적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을 터이다. 그리하여 그들 둘이 실제로 만나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행여 그처럼 긴밀히 서로 연결을 맺어 하나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발전이 곧 뒤따라 전개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으리라.
참고문헌 : Fritjof Capra [The Tao of Physics] Foundations of Tibetan Mysticism.
W. Heisenberg, Physics and Philosophy
달개비마음
첫댓글 과학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수행자들이 꽤 있으신 것 같군요. 지엽적인 지적이지만, 양자물리학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도 엄청 많이 실생활(기술과학)에 응용되고 있는 줄 압니다. 단지 양자물리학의 인식론적인 측면 (가장 근본적인 정보 획득에 관한 이론)에 대해 한정하셔서 서술하신 것입니다만...^^ 또다른 명백한 전일성의 이론이 이른바 "복잡성의 과학"이라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질서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질서있는 것도 완전히 무질서한 것도 아닌 것이 복잡한 거라나요. 복잡계의 젤 대표적인 것이 생명체랍니다. 카오스이론도 그 이론에 포함되구요... 여기선 중중무진의 화엄세계을 실감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글쓴 분이야 잘 알고 계시는 것일테지만, 참고가 될 분들도 계실 거 같아서 사족 붙인 것입니다 ^^ ()
와~~~ 과학과 불교, 멋진 주제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멋모르고 읽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닐스보어의 상보성의 원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원리, 양자역학등의 이론물리학 교양서들이 동양철학으로 인생진로를 바꾸게 한 것이 참 아이러니 했습니다. 극즉반 이라더니, 동양철학을 통해 불교를 만나고 다시 과학을 기웃거립니다. 인드라망의 그물, 참 촘촘한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
변상섭님이 쓰신 '선 신비주의인가,철학인가'을 읽고 불교가 현대철학과의 접합을 통해서 현대적 합리성으로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서양사람은 물론이고,오늘날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사람도 전통적인 동양사상보다는 서구적 합리주의 교육을 받아 사고체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아마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은 과학과 과학적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첨단 물리학을 통해서 피상적인 감각세계에서 인지할 수 없는 실상의 세계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확인하게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종교를 현실화 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새로운 천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인문과학자나 자연과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하는 협제적인 연구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첨단 물리학과 뇌과학등 주변 첨단 과학지식과 함께 부다나 용수 원효같은 종교적 천재성을 두루 갖춘 초 천재가 나타나 진여을 대중에게 쉽게 풀이 해 줄 수 있다면 현재 이 세상에 활개치고 있는 수많은 외도들의 견해와 갈등을 해소 해 줄 수 있지 않을 까 망상해 봅니다. 구도역정이 수수께기 풀이가 아니라면 화두일심의 매진과 함께 현대과학과 철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불교사상의 재정립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권태욱님도 종래의 간화선을 비판한다면 그런 방향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료인 인간존재를 포함하는 우주의 전일성을 가리키고 있는 현대물리학의 세계관이 추론적이고 이론적인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체득되어 변혁의 경험이 되어질 때>> 우리의 사회가 제대로 진화해 나갈것이라 생각되며",,,,,, << >>부분이 과학자와 수행자와의 차이입니다. 얼핏 보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아도 마음으로 체득하는 부분에서 천지현격입니다. 그리고 이 심체득에서야말로 과학도 잘 알고 수행도 잘 하신 여러 도반님들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도반님들. () /주신 뎃글을 보면서 '도반(道伴)'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울림이 그 파동이 제마음에 조용히 와닿아 공명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잎과 줄기와 뿌리가 각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건강하게 나무가 자라듯이.... 이곳에서도 보이지않는 건강한 나무들이 또 이렇게 숲을 이룸을 발견하게 됩니다./무더위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