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어제 하루 그쳤다가 오늘 다시 내린다.
추적거린다.
거리에 나뒹구는 나뭇잎이 애써 말하지 않아도
가을은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동이를 틀었다,
갑자기 추워졌다.
기온은 평년 기온이라 하지만,
그동안 가을답지 않게 낮 햇살이 뜨거워 가을이란 것을
잊은 것이 탈이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추위와 찬 바람이 낯설다.
불이 그리워진다.
따뜻한 곳이 더욱 그리워진다.
어젯밤,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을지로 입구역.
꽤 늦은 시각이었지만 분주했다.
주말이나 낮엔 공연장으로 쓰이기도 하는 을지로 입구역 지하 광장에
밤늦도록 사람 향기를 풍기며 분주한 이들은
(말하자면) 노숙자들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가는 행인들이나 그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 하루 사이, 갑자기 떨어진 바깥 기온으로 인해
몰려든 사람들.
겨울 나기가 걱정인 노숙자들이다.
어디 겨울나기 걱정이 끊이지 않는 이들이 노숙자 뿐이랴.
팍팍한 살림을 꾸려가는 서민들과 가난한 이들의 마음도
오늘 내리는 가을비와 더불어 축축히 젖어들 것이다.
추위를 몰고올 가을비가...
무심히 내리는 가을비가 못내 서러울 사람들이
올해는 유난히 많을 듯 싶다.
어제 만난 선배 영화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가죽 점퍼를 입고 퇴근 준비를 서두르면서
" 사람 마음이 이래.
사실 별로 추운 날도 아닌데, 춥다고 호들갑이야.
작년 이맘 때도 이랬는데말야."
" 아니, 오늘은 추워요, 바람이 휘리릭~~ 마치 겨울 같던데요?"
옷차림을 단단히 했지만 저녁 무렵 더욱 차가와진 바람을 맞고 프로덕션 사무실에
들어섰던 내가 대꾸했다.
"연탄불이 그립네. 오늘같은 날은. 며칠 전에만 해도
뜨거운 것은 싫었는데....그러고 보면 날씨도 사람 마음같아.
사람도 그렇잖아. 좋을 땐 무슨 말이나 행동도 다 좋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다 싫다면서 얼굴 마주하기도 싫어하잖아.
날씨도 춥고 더운 것에 따라 싫고 좋은 것이 극명하게 구분되듯....
변덕스런 것이 사람 맘이나 날씨나 똑같애."
그러면서 그 분은 옷깃을 세우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람 감정이 변덕스러운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사회성에 길들여져서 표현하는 감정법이
그리 변덕스럽게 보일 수 있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사람의 본성 속에 숨은 변덕스러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것은 어찌 그닥 좋은 표현 같진 않다.
날씨야...계절의 순환에 따라 자연스럽게 추워지고, 더워지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렇게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다만 그것을 느끼는 것이 또한 변덕스러운 사람의 마음인지라...
애꿎게 날씨를 변덕스럽다 탓하며....
갑자기 닥친 추위를 원망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 없는 자의 원망이란,
그것이 굳이 날씨에 대한 원망이라기 보다
삶의 팍팍함에 대한 원성이 아닐까.
나부터도.....그러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는 차갑게 불어대는 바람을 가르며
거리를 지나면서 내 팍팍한 가슴을 열어제쳤다.
언제나처럼 세상을 향해 내 가슴을 열듯이.
이 추위는 며칠 지나면 또 가셔지지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낙엽을 밟으며 차분히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할 수 있으리라.
도심의 지하도에 추위를 피해 들어온 노숙자들도,
하루 일을 끝내고 무심히 그들 곁을 스쳐 지나 지하철을 타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민들도,
흔들리는 경제에도 아랑곳않고, 자신들의 이윤 채우기에
급급한 부자들도
오늘 하루를 살아야하는 것은 똑같다.
한사람에게 각각의 하루가 주어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임에
나는 오늘도 내게 맡겨진 하루를 보듬는다.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있다,
새 봄을 위해 이 가을을 놓치지 않고
제 삶을 갈무리하기 바쁜 동물과 식물들에게도
나름의 애정을 보내며...
나도 이 가을비에 쫒겨 겨울나기 준비를 시작해보련다.
첫댓글 "이 추위는 며칠 지나면 또 가셔지지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낙엽을 밟으며 차분히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할 수 있으리라." 고맙습니다, 글빛고을님! 따뜻한 마음의 글에 한참을 머물러 앉았습니다. '한사람에게 각각의 하루가 주어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임에...' 이 가을 더욱 깊은 생각과 함께 더욱 가벼워질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늘도 행복하소서! ~.~*
쌀쌀한 아침입니다. 어제는 서울의 옛 쓰레기 더미였던 난지도에 조성된 하늘공원을 갔더랬습니다, 난지도에 조성된 생태공원은 가히 사람의 물결이 가시지 않았습니다만, 그 위에 억새풀의 물결이 환상이었습니다, 서울의 하늘 아래 하늘자락과 맞닿은 억새풀의 향연이란.....물론 광활한 대지 위에 건설된 나라의 국민들은 그런 광경들을 흔히 만나겠지만....아무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감기는 옴팍 들었지만요.ㅎㅎ 하늘님,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예. 하루를 보듬고 갑니다. 하루가 좋아할 듯 합니다. 잘 지내시는 지요?
걷기님....광안대교는 잘 있겠죠. 여전히 한번씩 질주를 하시는지요, 이 가을 불밝힌 광안대교를 만나는 것도 좋은 시간이겠죠? 늘 건강하게, 활기차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지나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 10월 마지막 주간도 행복하소서.
예. 오늘 아침 광안대교는 제법 싸늘했습니다. 이제 팔목을 내어놓기가 좀 그렇던데요? 하늘은 어느 아침 산사 빗질해서 깔끔히 빗어놓은 듯 했습니다. 광안대교 잘있습니다요. 대신 안부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