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를 물질하다
박치원
술에 취해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가 없다
집안 가득 아내가 뱉어낸 가시들이 머리를 찌른다
거실의 공기도 화분도 가구도 모두 파랗게 질려있다
어젯밤 퍼즐이 맞추어지지 않는다
뱃속에 둥둥 죽은 고기들이 떠다닌다
안양천변 벚꽃구경을 가자했는데
북어해장국만 한 냄비 남기고
핸드폰도 놓고 사라졌다
싱크대가 깨끗하다
나란히 놓인 숟가락 젓가락
반찬뚜껑이 얌전이도 입을 닫고 있다
차갑게 정돈된 슬픔의 끝
날 찾지마라
아내는 나에게 무언의 경고를 남겼다
TV채널 사이에 갇힌
먼 산을 돌고 내려온 봄
갑자기 진한 허기가 걸어와
납덩이처럼 식탁위에 앉아있다
나는 어제의 바다를 벗지 못했다
반복되는 허무의 물질
냄비 속 북어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오십 중반을 넘어오는 습한 기운들
어딘가의 바다는
자유롭게 숨쉬며 자맥질 할 수 있을까
어딘가의 바다는
작은 망사리에 소라 전복을 담을 수 있을까
가슴 깊이 긴 숨을 들이 마신다
뜨거운 등짝에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른다
끝없이 파란 휴일 오후
나는 감태마냥 흔들리며
빗창으로 바닥을 찍고
더 먼 바다를 물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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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후를 물질하다
박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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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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