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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사찰은 전국에 3천여 사찰에 달한다. 이 사찰은 25개 교구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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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 22교구본사 대흥사 | | 되어 관리되고 있다. 25교구에는 교구를 관할하는 본사가 있다. 서울 조계사는 총무원장이 직할하는 교구본사이며, 경기도의 용주사 봉선사, 강원도의 신흥사 월정사, 충북의 법주사, 충남의 마곡사 수덕사, 경북의 직지사 은해사 고운사 불국사, 대구의 동화사, 경남의 해인사 쌍계사 통도사, 부산의 범어사, 전북의 금산사 선운사, 전남의 백양사 화엄사 선암사 송광사 대흥사, 제주도의 관음사이다. 조계종에는 총무원장이 관할하는 3개 직영사찰로 조계사 선본사(갓바위) 보문사가 있고, 중앙의 예산을 특별히 분담하는 도선사 봉은사 연주암 내장사 보리암 석굴암 낙산사 봉정암 등 8개 특별분담사찰이 있다. <출처: 대한불교조계종>
1.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본사 조계사 조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직할교구의 총본사로서 한국불교의 중심사찰이다. 1395년(태조 4) 창건된 사찰로 1910년 승려 한용운(韓龍雲) ·이회광(李晦光) 등이 각황사(覺皇寺)라 불렀던 유래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태고사(太古寺)로 불리다가 54년 불교정화 이후 조계사로 개칭하였다.
2.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용주사는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오르는 꿈을 꾸었다해서 지어진 이름이며, 효와 관련한 사찰로 유명하다.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일찍이 31본산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안성, 남양등 경기도 동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60여개의 말사,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3.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본사 설악산 신흥사 신흥사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에 위치한 사찰로 영동지역의 불교를 일으키는 중심사찰이다. 신라 진덕여왕6년 (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렸으나, 701년(효소왕 10) 수천칸(間)의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후 의상(義湘)이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能仁庵)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禪定寺)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절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파괴되었다. 1647년 새로운 터위에 중창하면서 지금의 신흥사가 되었다.
4.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본사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에 소재한 월정사는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일천사백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다. 월정사 일주문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전나무 숲이 있으며 절 마당 가운데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다각다층 석탑이 있다. 또한 월정사에 딸린 절인 상원사는 문수보살을 모신 절이며 기도처로 유명하다.
5.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본사 속리산 법주사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인 법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본사이다. 553년(신라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법주사라고 한 것은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또한 법주사내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마애여래의상 높이 약 6m나되는 큼직한 바위에 돋을 새김으로 조각되어있다.
6.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본사 태화산 마곡사 천년고찰 마곡사는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고, 순각(淳覺)이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802)·영산전(보물 800)·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사찰은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자연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템플스테이가 잘 자리잡은 사찰이기도 하다.
7.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사 덕숭산 수덕사 덕숭총림 수덕사는 선지종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사로서 그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배움과 덕성을 닦는 도량이다. 위덕왕(威德王) 재위(545∼597년) 때에 백제의 고승 지명(智明, 知命)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수덕사는 무왕 때의 고승인 혜현(惠現, 慧顯, 570∼627년)법사에서부터 많은 고승대덕들이 머물며 수도정진 하였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한국 근대 불교의 선풍(禪風)을 일으킨 경허(鏡虛惺牛, 1846∼1912년)선사와 만공(滿空月面, 1871∼1946년)선사가 이곳에 머물며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그뒤로 김일엽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여류시인 하엽(荷葉, 1898∼1971년)스님과 혜암·벽초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덕사는 근·현대 선불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8.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 황악산 직지사 직지사는 418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절의 이름은 아도화상이 절터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는 뜻에서 ''''직지사''''라 부른다. 직지사는 동국제일 가람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신라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전파되기 전에 이미 창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의 터전이다. 또한 사명대사의 숨결이 서린 곳으로도 유명한데, 사명대사가 15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한 곳이자 승과에 합격한 후 30세에 돌아와 주지로 부임했던 곳이 바로 이곳 직지사다. 직지사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그 모습이 화려하다. 내부에는 원래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나 이곳에는 약사·석가·아미타불의 세 불상을 모시고 있다.
9.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본사 팔공산 동화사 약사여래 근본도량인 대구 팔공산 동화사는 493년(신라 소지왕)에 극달화상이 창건한 절로 천년이 넘은 사찰답게 많은 문화재와 암자를 보유하고 있다. 처음엔 사찰이 유가사였으나 832년(흥덕왕 7년)에 심지왕사가 중창하면서 겨울날에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영상전, 봉서루, 심검당 등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조선조 영조 때 중창한 건물들이다. 지난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10.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은해사는 대한불교 제 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 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며,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 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11.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 불국사(佛國寺)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며, 세계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함께 간직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불국사는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으며,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12.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본사 가야산 해인사 가야산 해인사는 대한 불교조계종의 최대 총림 종합수도장이다.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태조는 이 절에 머물렀던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 한편 1398년 선 태조 7년에 강화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팔만대장경판전은 1995년 12월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적광전, 구광루등 문화재및 암자들이 즐비하여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13.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본사 하동 쌍계사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창건하였다. 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그 후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대찰로 중창시킨 후 887년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다. 봄철의 벚꽃이 특히 유명하며 계곡의 맑은물, 기암과 고목들이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룬다. 경내 볼거리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친필 쌍계석문,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47호)를 지나 북쪽 500m 거리의 국사암 뜰에 천연 느릅나무(사천왕수), 또한 동북쪽으로 2km남짓거리에 청학봉과 백학봉의 두 계곡을 끼고있는 높이60m, 폭3m의 불일푹포(지리산 10경중의 하나) 등의 이름난 곳이 있다. 한편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신라 흥덕왕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 사신으로 처음으로 차 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쪽 줄기 쌍계사 일원에 심었다고 하며 일주문 못미쳐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차밭에도 차 시배지 기념비(도기념물 제 61호)가 있다.
14.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본사 금정산 범어사 금정산 동쪽 중턱에 위치한 범어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세웠으며,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유명하다. 창건사적이나 고적기에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것이라 기록되어 있고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문무왕 때 창건하여 흥덕왕 때 중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문무대왕의 명으로 대규모의 불사를 하여 요사 360방, 토지가 360결, 소속된 노비가 100여호로서 국가의 대 명찰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에 모두 소실되어 거의 폐허가 되었으며, 그 후 광해군 5년(1613년)에 묘전현감스님, 해민스님 등이 법당과 요사 등을 중건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대웅전과 일주문은 그 때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 대한불교조계종 제15 교구본사 영축산 통도사 영축총림 통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중 하나로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이다.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모셔 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통도사의 금강계단에 모셔져 있다. 그러기에 적멸보궁이다. 통도사 경내의 건물들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대웅전과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극락보전외에 12개의 법당과 보광전, 감로당 외에 6방 그리고 비각, 천왕문, 불이문, 일주문, 범종각 등 65동 580여칸에 달하는 대규모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34)과 41년(인조19)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대광명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근세의 건물들이다.
16.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孤雲社) 고운사는 지장보살영험성지로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인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고운사에는 30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 규모있는 사찰이다.
17.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되었으며 국보 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해 노주, 석련대, 혜덕왕사 진응탑비, 5층석탑, 석종, 6각다층석탑, 당간지주, 대적광전, 심원암 3층석탑 등 보물급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18.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본사 백암산 백양사 고불총림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632년)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선조 때 환양조사가 불경을 읽을 때마다 흰양이 설법을 들었다해서 백양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일제 때 2대 교정(종정)을 지낸 환응, 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 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 등 근래에 와서 서옹당 종정 등 고승만도 5명이나 된다. 산내암자인 약사암과 운문암, 천진암 등은 경관도 뛰어나다.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은 지방문화재로 소요대사부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9.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지리산 화엄사 화엄성지,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서기 544) 연기스님에 의해서 창건된 천년의 고찰이다. 이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와 4사자 3층석탑(불사리공양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주석하시면서 문무왕 10년(서기 670)에 3층의 장육전을 건립하고 사방벽면을 화엄석경으로 둘렀는데 이로써 화엄사는 대도량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어 나말여초에 화엄사에 주석하셨던 도선국사가 화엄사를 총림으로 키우니 이 때 개창이래 최대 규모를 가진 대총림이 되었다. 화엄사의 유물로는 각황전, 대웅전, 4사자3층석탑, 동서 5층석탑, 사자탑, 석등, 화엄석경, 괘불 등이 있다.
20. 대한불교조계종 제 20교구본사 조계산 선암사 선암사(仙巖寺)는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曹溪山, 884m)에 자리한 사찰로 송광사와 더불어 이 지역의 대표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6세기에 아도 스님이 청량산 해천사(海川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그 뒤 9세기에 도선 국사가 절 뒤쪽에 선암이 있는 것에 따라 절 이름을 선암사로 고쳤으며, 비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고 한다. 선암사의 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 삼층석탑, 보물 제955호 삼층석탑 사리장엄, 보물 제1117호 대각 부도, 보물 제1184호 북부도, 보물 제1185호 동부도, 보물 제1311호 대웅전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선암사의 오랜 역사와 정취를 보여주는 여러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21.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본사 조계산 송광사 한국의 명찰이며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했다.
22.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본사 두륜산 대흥사 대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대흥사 경내와 산내 암자에는 중요한 성보문화재가 상당수 존재한다.
23.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본사 제주 한라산 관음사 제주 한라산 기슭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본사인 관음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 이형상이 잡신이 많다는 이유로 폐사시켰었으나 1912년 비구니인 봉려관이 다시 창건하여 법정암(法井庵)이라 불렀으나 후에 신도가 늘어나게 되며 현재의 관음사로 이름을 바꿨다. 관음사를 재창건한 비구니 봉려관은 본래 무당이었으나 비양도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이다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어 그 몇년 후 출가하여 관음사를 재창건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종루, 산신각, 불이문, 큰방 등이 있다.
24.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본사 도솔산 선운사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계종 24교구본사이기도 하다. 선운사에 보존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 당시 한때는 89 암자에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본사와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만이 남아 있으며, 보물 5점, 천연기념물 3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2점 등 총 19점이 있다.
25.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고려 광종 20년(969년)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다. 여러차례 난리를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 1469년 정희왕후 윤씨(7대 세조의 왕비)가 세조의 영혼을 봉안코자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봉선사라 개칭했다. 이 후 봉선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실과 중건을 7차례 했다. 봉선사에 가면 가장 먼저 찾아볼 것이 대웅전 처마 밑에 걸린 현판이다.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쓴 것이 이채롭다. 1970년 운허선사가 대웅전을 세우면서 써서 달았다. 또한 경내의 대종(보물 제397호)은 예종 원년(1469)에 왕실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동종 중에서 몇개 남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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