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화색(和色)을 찾아서
이승훈
4월 마지막 날이다. 구름장이 부딪치듯 천둥소리가 달뜬 봄을 옴쏙하게 한다. 여린 꽃잎을 태울 듯이 섬광도 번쩍이니 불안해하는 그들의 낯꽃이 내 죄 안으로 훌쩍 들어온다. 리드미컬하게 쏟아지는 소나기로 물초진 나무들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느님은 아신다. 저 4월 마지막 날이 내 안에서도 져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화색을 잃은 채 살아왔다. 노란 개나리며 분홍 철쭉의 색감이 고감도로 흐드러져도, 그 안에서는 그저 ‘노랗구나. 분홍이구나.’ 하는 돈담무심(頓淡無心)이 흘렀다. 어쩌다 문을 한 번 나서면 벌써 그 생들이 끝나갔다. 스스로 느껴 봐도 그늘진 내 낯꼴은 우거지상이었다. 이제는 스스로 숨이 막혀 내 영혼의 화색을 찾아 나선다.
토요일 저녁, 특별미사가 있다. 내일 본당 식구들이 성지순례를 떠나는 터라 주일미사를 대신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냉담을 해온 나는 부활주일에 이어 두 번째 발걸음을 준비한다. 한때는 발씨 익은 길이었지만 이제는 그 길이 설어서 오후부터 가슴속 잔물결이 일었다. 궂은 날씨로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의 이랑이다. 나 혼자만 냉담을 풀어갈 뿐 본당에서 아직 교적이 회복 안 되어 공동체 안에서는 여전히 냉담자일 뿐이다. 냉담도 어느 날 갑자기 푼다고 하여 풀리는 것이 아니라 풀어가는 여정이 있음을 깨닫는다. 10년 넘게 나목으로 살았으니 당신의 푸른 기운을 쐬어 잎망울을 터뜨릴 수 있도록 조리를 잘해야 그 사랑을 쾌복(快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는 설은 길이 아니 되도록 이후로도 영성의 섭생을 잘해야 할 일이다.
아무튼 나는 뜨뜻미지근한 마음으로 머뭇거리다가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본당을 향해 빗길을 나섰다. 버스로 가면 서너 정거장, 전철로 가면 한 정거장을 가서 다시 두어 정거장 남짓 거리를 걸어가면 된다. 내가 나서는 사무실은 전철역이자 버스 종점인데 길을 나설 때면 늘 대기하던 버스가 오늘따라 없다. 시간을 보니 그리 여유가 없어서 전철역으로 올라갔다. 자동개찰기가 내 지갑을 인식하더니 붉은 X가 뜨면서 사용할 수 없는 카드란다. 그러고 보니 카드를 두고 왔다. 서둘러 자동판매기에서 1회용 승차권을 뽑아 다시 나가려니 이번에도 붉은 X가 든다. 개찰기가 잘못되었나 싶어 개찰기마다 카드를 대보지만 역시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어느 뜬것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지, 그 순간 되돌아설까 하는 마음이 울뚝 일어선다.
파란 단추를 눌러 직원을 불렀다. 다가온 공익요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내 카드를 들고 개찰기 여기저기 대보더니 잠깐 기다리라며 사무실로 들어간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직원은 나올 줄 모른다. 사람들이 개찰구를 분주히 오가듯이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이 내 마음을 불풍나게 드나든다. 공익요원은 한참 지나서야 인식기를 들고 나와 내가 보는 앞에서 또 작동을 해보고는 그래도 안 되니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아무래도 미사 시간을 못 맞출 거 같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거품처럼 부걱부걱 괴어 터지면서도 가슴 한 자락에서는 자개바람을 일으킨다. 다시 들어간 직원은 함흥차사이다. 그 사이 나는 현금지급기 앞에서 지갑을 채웠다. 결국 정식 직원이 나와 멍청한 카드를 도로 내밀며 그대로 통과하란다. 어이가 없었지만 돌아서려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터라 급히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빗물이 첨벙첨벙한 보도를 따라 종종걸음을 쳐서 겨우 미사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두 번째 성당을 찾은 내 모습이 마치 나뭇가지에서 부접대는 잠자리 같았다. 짜락짜락 소나기가 퍼부어서인지 성당에는 빈자리가 제법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의 힘이 내 등을 성당 안으로 떠밀었음을 안다. 서로 약속한 일은 없었으나 그 기도를 실망시킬 수 없는 마음 한 구석도 있었다. 미사가 끝나자 까닭 없이 울컥 눈물이 솟아 심호흡하듯 잠시 더 앉았다가 일어섰다.
지난밤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꿈을 꾸었다. 넋 놓아 울다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꿈의 의미가 변스럽게 다가오지만 지혜가 부족해 그 의미를 읽어내지는 못한다. 아직 노모가 건강해서 길몽이려니 해도 잠자리 한 번, 식사 한 번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처지라서 가슴이 우둔거릴 뿐이다. 꿈속의 죽음이 오랜 번뇌와 고통의 끝, 새로운 시작임을 암시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어제 내린 비 탓인지 5월 첫날이 좀 더 푸르게 열렸다.
내일이면 삶이 더 불안할 이웃이 있다면, 내일이 더 아프게 다가올 이웃이 있다면, 굵은 소나기로 말끔히 씻긴 이 햇살이며 연둣빛 이파리들이 그들에게는 슬프도록 무심할 것이다. 저 무심하게 슬프기만 한 것들을 차마 아름답다고는 못하겠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로수 플라타너스들은 여전히 겨울 냉담 중이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 남김없이 뭉툭뭉툭 전지를 당한 채 마치 거대한 포크처럼 서 있는 저들은 벌써 오월이지만 깨어날 줄 모른다. 충만하지 못한 몸뚱이요, 잔정이라고는 없어 보여 삭막하다. 겨울 냉담이 아주 긴 저들이 낯이 익어 내 몸 여기저기가 아리는 듯하다.
지난밤에는 잠을 자다가 세 번이나 코피를 양껏 쏟아냈다. 금연을 시작한 두어 해 전부터 코피를 자주 흘린 편이었지만, 지천명이 넘어서 아이들처럼 코피나 흘린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젯밤 코피는 잠을 자면서 흘려서인지 감이 좀 달랐다. 잠결에 얼핏 콧속이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 몸을 일으켜 코를 풀었더니 캄캄한 가운데서도 하얀 휴지에서 흥건한 것이 보였다. 생피라기보다는 코피가 엉긴 핏덩이였다. 세 번을 자다가 일어나 숨구멍이 시원하도록 핏덩이를 쏟아냈다.
나는 자주 내 안의 나쁜 기운을 느낀다. 그 기운들이 빙의처럼 달라붙어 내 영혼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당신께 순결한 마음을 드러내고자 금욕을 결심하면 꿈에서 뱀의 눈 같은 영이 몽정케도 한단다. 나는 꿈속에서 그 사악한 영들을 본다. 이즈음 난분분하게 흐르는 내 안의 그 기운을 멸해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꿈보다 해몽일지라도, 어젯밤의 그 붉은 것들은 네게 빙의한 뜬것이 빠져나가는 흔적이기를 바란다. 꿈도, 코피도 그곳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평화로운 꿈이 깃들 영혼을 꿈꾼다. 차츰 성화되어 화색이 돌아오기를 꿈꾼다.
*뜬것: 떠돌아다니는 못된 귀신. =등신(等神)
첫댓글 지하철 1회용 승차권이 왜 그렇게 발목을 잡았는지...'A~ 진짜~!' 정말 화가 나셨겠어요. 그나저나 자다가 코피를 세 번이나 쏟아내셨다니요~! 건강도 잘 챙기시고, 기운도 내시고요. 무엇보다 다시 마음에 신앙을 찾아 가는 모습이 좋아 보여요. 어떠한 종교든 누군가에게 의지할 부분이 있다는건 참으로 큰 위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버이 날이 다가 오는군요. 올해는 꼭 선생님의 어머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오늘 어린이 날이라 온종일 바쁘시겠네요.^^
유 선생님의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린이 날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맨입으로.ㅎ
앞으로 4년...막내가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 그땐 푹~쉬는 어린이 날이 되겠지요..? ㅎㅎ ^^*
그래도 지금의 어린이 날을 챙길 수 있는 세월에 감사하며, 고단했던 하루가 어느새 자정 5분 전입니다. ^^*
코피흘린 일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실게 아니라 병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일 같습니다.
나이들면 건강 챙기는 일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기침만 조금나도 병원으로 뛰어갑니다.
호미로 막아야 할 일을 가래로도 못막을 수있으니까요. ㅎㅎㅎ
선생님, 저는 그냥 초월해서 삽니다.^*^
어제 행복한 시간 보내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