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젖은 채 맞은 11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들어있으니, 겨울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이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5시 30분. 갑작스런 한기(寒氣)에 놀란 듯 가로등 불빛도 초점을 잃고 비실거렸다. 여러 역(驛)들을 건너뛰면서 달리는 9호선 덕택에 6시 20분쯤 잠실 종합운동장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잠실벌은 계절의 변화에 관계없이 새벽부터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2015 중앙서울마라톤 대회 참가자들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계절과 더불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계절이 우리들을 바꿔놓지 않는다"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말을 역행(逆行)해서 계절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런가. 차가운 새벽부터 반바지 차림으로 펄펄 뛰고 있으니 말이다. 참가자들은 성별·연령
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기업 '솔베이 코리아(Solvay Korea)'의 김상환(55) 전무가 먼저 말했다.
"40대 중반부터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하프코스(half course) 100회, 풀코스(full course/42. 195km) 26회를 뛰었습니다. 마라톤을 시작한 후로 건강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뒤를이어 대우건설의 자문역 손명곤(50) 상무가 사뭇 긴장된 어투로 말했다.
"저는 올해 3월 마라톤에 입문한 초년병입니다. 하프 코스는 몇 차례 뛴 경험이 있으나 풀코스는 처음입니다. 어제는 최근에 본 영화 '제임스 클락' 주연의 '에베레스트'의 장면들이 떠올라서 잠을 설쳤습니다. 긴장이 된 모양입니다."
영화 '에베레스트'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산악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뜻하지 않은 눈 폭풍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장면들이 처절하게 나온다. 초년병 마라톤 선수(?)인 손상무가 긴장해서 영화의 장면들이 자신과 오버랩(overlap)된 모양이다. 주변에서 '무리 하다가는 큰일난다'고 하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42.195km를 완주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그것도 첫 도전은...두 사람은 대학원 동문으로 등산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했다. 선배인 김전무가 손상무를 중앙서울마라톤대회에 참여토록 권유한 것이다. 필자는 그들과 '파이팅!' 을 외치고 집결지로 이동했다.
영상 3도의 잠실. 바람이 제법 강해서 가만히 서 있으면,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때 단상위의 치어걸(cheer girl)들이 흥을 돋웠다.
"여러분! 음악에 맞춰서 몸을 푸세요!"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고층 아파트 사이로 태양이 고개를 불쑥 내밀자 가로수의 단풍과 참가자들의 의상이 가을 분위기에 딱 맞았다. 아직은 몸이 풀리지 않은 탓에 참가자들의 몸동작이 엉거주춤했다. 그러나, 음악과 힘찬 율동이 분위기를 살렸다. 참가자들은 소속 동호회 별로 삼삼오오 몸을 풀었다.
7시 30분이되자 '집결지로 모이라'는 안내 방송에 따라 각기 색깔이 다른 배번을 단 참가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졌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거대한 군중으로 변했다. 군중들은 출발선으로 이동했다. 여학생 고적대가 퍼레이드를 벌이며 이들을 리드했다. 교통이 완전 통제된 잠실 거리. 큰 도로에는 사람들의 물결로 넘쳐났다.
필자는 A그룹 소속의 송파 육상협회 김영걸(63) 고문과 대화를 하면서 출발지점으로 이동했다. 경험이 많은 그는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마라톤은 나와 대화하는 운동이지요. 앞만 보고 무작정 뛰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도 하고요."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가 '체중 감량을 위해서다'고 했다. 마라톤을 하기 전 85kg의 체중이 지금은 65kg. 컨디션이 항상 최상이란다.
"지금까지 각종 마라톤 대회에 300회를 참가했습니다. 그 중에서 풀코스(42.195km)가 295회입니다. 중앙마라톤이 1999년부터 시작됐는데, 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의 최고 기록은 2시간 51분. 3시간 내로 뛴 회수만 약 50회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록갱신에 염두를 두고 있는 듯 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그는 요즘도 한 달에 300km정도를 뛰고 있다. 마라톤이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셈이다. 필자는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출발 선상에 도착했다.
7시 50분. 내빈 소개와 인사말 등 간단한 공식행사가 있었다.
마라톤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포효(咆哮)-
08시 정각. '탕!' 출발 총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휠체어 선수들이 힘차게 바퀴를 굴리며 전진했다. 뒤를 이어 에티오피아·케냐 등 유명 선수들이 대세인 엘리트 선수들이 비호처럼 날랐다.
드디어 14,000여 명의 마스터스 참가자들의 차례가 됐다. 그들은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아니라 마라톤과 같이 즐기려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들처럼 보였다.
첫댓글 사진도 멋지시고 글귀도 좋네요 회장님은 진정으로 달림이들의 우상이십니다
부상중에도 열심히 끊임없이 달리시고 좋은기록으로 완주하심 늘대단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몸도 생각하시면서 즐런하시길 빌어요~^^
언제 또 인터뷰까지 하셨데요? ㅎ
하여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