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백석을 보듯
손수진시인
나는 박노식 시인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최근에 배달된 시집 두 권이 그를 아는 전부 인데 차라리 잘되었다 내가 그를 알지 못하기에 오롯이 시에 집중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시집에서는 “죄스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려서” “얼굴이 붉어져서” “부끄러움이 가득 차올라서” 라는 표현이 많다 누구에게 그토록 부끄럽고 죄스러운가 그것은 사람에게라기보다는 자연에게 느끼는 감정이고 작고 여리고 안쓰러운 것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다.
그런데 두 번째 시집에는 유독 눈물이 많다. 요즘 사람들은 하늘을 잘 보지 않는데 하늘을 보려고 해도 세상의 불빛에 가려 별들이 잘 보이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박노식 시인은 도시에서 다니던 직장도 떼려 치고 별을 찾아서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산골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눈과, 빗방울과, 별, 꽃을 따라 그의 시집 <<시인은 외톨이처럼>>을 따라가 보자
별을 좇다가 목이 휘어졌다는
한 사내를 알고 있지만,
우는 별을 보았는가
지상의 모든 폭설은
별들이 한꺼번에 울어버렸기 때문이야
지상에 내리는 모든 폭설에서는
별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야
밤새 시집 속에서
계절이 드나들고 애인의 눈빛을 마주 보고 또 노래를 불러 봐
안보이지?
별은 안보이지?
우는 별이 안보이지?
별은 좇는 게 아니야
폭설처럼 가슴에 묻는 거야
폭설에 묻히듯 나를 묻는거야
우는 별을 보았는가<전문>
시인은 별이 운다고 한다. 폭설이 내리는 것도 ‘별들이 한꺼번에 울어 버려서’ 라고 한다. 그러면서 ‘별이 안보이지?’ 라고 채근하며 하늘의 별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별은 좇는 게 아니라 가슴에 묻는 거라고 말라고 있다.
그의 시집에는 눈물이 많다
<우는 별을 보았는가>, <우는 여자>, <어제 울던 그 사람의 눈동자>, ‘혼자 길을 걸으며 눈물 흘려 본이는 안다’<백합 질 무렵> 또 ‘사방 신록의 산들을 보며/ 그 자리에서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고도 한다. <신록의 산 중>
그의 눈물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스무 살 무렵 성수동 봉제공장 담벼락에 등기대고 서서 오지 않는 누이를 기다리며 눈사람이 되어 가던 때를 기억해서 인가? <눈사람 중> 좌판에 손님 찾아 와 갈치 토막 내는 소리에 귀가 열리고 십리를 걸어 당도한 어머니의 앓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기 때문인가?<새우잠> 어둔 강의실 한편에 앉아 제 발끝을 내려다보며 조는 아내를 보았기 때문인가 <나비의 잠 중> 80년대 불온서적을 뒤적이며 우울했던 때를 떠올리기 때문인가<시인의 어머니 중>
‘한 시인이 나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사연이 그득해서 측은하단다.’ <눈물이 가까이 있는 줄 그때 알았다. 중> 무엇이 시인을 그렇게 울게 하는가?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의 눈을 봐야겠다. 감정이 메마른 시대에 시인의 눈은 늘 낮은 곳을 향해 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짠한 것들에게 머물러 있다. ‘자판기 뒤에 숨어서 도시락 맨밥을 먹던 그녀와 눈이 마주 쳤을 때’ <쓸쓸한 양식 중> ‘울면서 걸어가는 낯익은 젊은 여자를 보던 그날’<노을 앞에서 꽃들은 어두워진다. 중>그는 아팠다고 말한다.
또 그의 시에는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가 보이고 백석이 보인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 시인들에게 백석의 이 시편은 얼마나 큰 찬사인가? 시인들은 이 시처럼 살고 싶어 하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나 실제 그의 삶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읽은 박노식 시인의 시집에서는 백석의 시편처럼 살아가는 시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잠시 들렀던 그 암자의 독방은 문고리가 없어서 나는 손과 눈과 머리를 비웠다
돌아온 저녁 무렵부터 눈이 내렸고 아침엔 고무신 안을 가득 채웠으나 그대로 두었다
지금쯤 토방과 한 발 가웃 툇마루의 그늘 안에 쌓인 눈이 얼고 바람이 자주 다녀가서 산새들의 발자국만 조각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냉골에 앉아 흰 밖을 내다 볼 노승은 이제 나의 얼굴을 벽면에 붙들어 놓았다.
그 암자 <전문>
또한 시인은 대중 속에서 유독 외로움을 느낀다. 대중 속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다가 홀로 선술집을 찾는다. <시 낭송>은 그의 성품과 문단의 내력을 잘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시집 출간 뒷풀이 자리는 시끌벅적 했으리라 시인의 조근 조근한 목소리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 속으로 스며들었을 테고 그러니 출판 당사자의 입맛에 맞지 않았을 테지 그렇다 한들.....
첫 시집 원고를 보냈을 때 KO 펀치가 없어 출간을 못하겠다는 말도 그렇다 요즘 독자들은 시집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어려워서 시를 읽기 싫다고 한다. 세상에 시인들은 너무도 많은데 모두가 KO펀치만 날리면 되겠는가 해설을 쓰신 신종호 시인의 말처럼 그에게는 무리하게 KO 펀치를 휘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의 시는 가랑비처럼 내려 온 몸을 조용히 적시지 않는가?
최근에 읽은 시집 중 가장 오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시집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어떤 한 문장 앞에서는 머물러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문장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이해를 못해서도 아니다 그저 먹먹하여서져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없을 때가 있다. 그의 말처럼 늦깎이로 문단에 나왔으니 천상 시인으로 백석의 시처럼 가난하고 높고 쓸쓸한 길이어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하였으니 <<시인은 외톨이처럼>>이라고 말하였으니 그 길이 부디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