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은 삼국시대 승려가 아도가 저녁 노을 속으로 황금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고 유래된다.
우리나라 민화에서는 까마귀를 저승길의 안내자라고도 한다.
금오산 정상 현월봉 달현(懸) 달월(月) 봉우리봉(峯)
금오산 현월봉은 밤의 달을 매달고 있는 봉우리라는 의미가 있다.
이름을 잘 분석해보면 금오산 현월봉은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큰 덕목중의 하나인 사후의 극락의 세계를 염원하는 좋은 산이며 양의 기운이 충만한 명당의 사찰(약사암)과 산이다. 실제로 금오산 정상에서 보면 구미시의 도시가 한눈에 보이며 낙동강의 줄기가 보인다. 즉 약사암에서 보면 임산배수의 명당이 되는 것이다.
그냥 산을 오르는 것보다 그 산의 산세와 산이름을 분석하면서 산행하면 더 좋은 산행 코스가 될 수 있다.
금오산은 또 하나의 명소는 돌탑이다. 이 돌탑은 오형돌탑이라고 부른다. 이 돌탑의 사연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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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고, 말도 할 수 없는 뇌병변 장애를 앓는 형석이란 아이가 금오산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전 10살의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형석이를 돌보던 할아버지는 너무 큰 슬픔에 빠졌고, 손자를 못 잊어 매일 이곳에 올라, 먼저 떠난 손주를 생각하며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몸이 불편한 형석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곳 이름을 금오산의 오자와 형석의 형자를 따서 '오형 학당'이라 이름 짓고 하늘나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 보내기를 기원하며 돌탑을 쌓았다. 손주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할아버지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돌탑에 이렇게 적었다. 큰 돌 작은 돌 잘생긴 돌 못생긴 돌 차곡차곡 등에 업고 돌탑으로 태어나서 떨어질까 무너질까 잡아주고 받쳐주며 비바람을 이불 삼아 산님들을 친구 삼아 깨어지고 부서져서 모래알이 될 때까지 잘 가라 띄워보내 낙동강을 굽어보며 못다 핀 너를 위해 세월을 묻고 싶다. 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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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글 처럼 할아버지의 애절함과 사랑이 오형돌탑에 묻어 있다. 이날 비오는날 오형돌탑을 보니~ 할아버지의 애절함이 더 보이는 듯 하다. 손자를 위해 학교를 만들고 (학당) 그 이름을 금오산의 오 손자 이름을 따서 형석의 형 학당 이름을 붙였으나 나중에는 오형돌탑으로 이름이 된다.
오형돌탑 주의에 잔돌을 보라. 금오산은 잔돌이 많은데 ~ 그 잔돌을 주워서 탑을 만들어서 주의에는 잔돌이 없다. 할아버지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오형돌탑이 금오산의 양의 기운과 명당의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한다.
맑은 날 보면 오형돌탑의 양의 기운과 앞쪽의 구미와 낙동강의 줄기가 보이는 천해의 명당 자리가 된다.
금오산은 몇번 가봤기에 이번에는 옛 화전민의 집터인 성안마을의 헌적을 보려고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서 정상 코스로 왕복했다.
비가 많이 와서 대해폭포가 장관이다. 물줄기가 하늘에서 큰 강물이 내려오는 듯 시원한 폭포를 봤다.
금오산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산행하면 참 좋은 풍경을 보고 약사암의 요세같은 극락의 암자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명산은 가면 좋은 기운을 얻는다. 좋은 사찰은 좋은 양의 기운이 있기때문에 잠시 머물러 있어도 좋다.
(참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핸드폰 카메라 작동이 잘 안되고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눈으로 찍고 마음으로 사진을 담았다. 약사암 가기전 50미터에 약수터 있음
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