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축복일까 재앙일까
4차 산업혁명 얘기가 무성하다. 지난 대선 기간, 주요 후보의 공약에서도 적잖은 비중으로 등장했을 정도다. 최근엔 그중에서도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란 주장이 눈길을 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자신의 저서 ‘노동의 종말’(1995)에서 “진보의 대가로 노동자 계급이 죽을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펼친 이래 유사한 연구 성과와 담론은 거의 끊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최근 국내 출판물 중 눈에 띄는 콘텐츠로 ‘2030 고용절벽 시대가 온다’(2016)를 들 수 있다. 일본 경제학 박사로서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저자 이노우에 도모히로(井上智洋)는 ”오는 2040년이면 소위 ‘범용 인공지능’[1] 개발이 완성될 테고 2030년대부턴 오늘날 사람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거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적어도 정규직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로 전망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일을 하고 인간은 가끔 관리만 해줘도 되니 필요에 따라 인간을 고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자유계약 형태가 주를 이룰 거란 전망이다. 그렇잖아도 최신 트렌드 중 하나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2]가 인공지능의 범용적 구현 중 하나로 대세가 될 거란 예측이다.
가뜩이나 청년실업률 증가와 고용 불안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등 기술로 대표되는 4차 혁명의 물결이 밀려오면 대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란 의문이 확산되는 건 당연하다. 혹자는 ‘노동에서 자유로워지니 한층 질 높은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대다수는 부정적 측면의 영향에 신경이 쓰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 비관주의 시나리오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근거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선 일단 두 가지로 압축해 설명해보려 한다. 경제 원리가 하나, 문화변동 원리가 다른 하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한다고?
우선 경제 원리 측면에서 보면 인공지능의 수요와 공급이 그토록 불균형하게 확산되진 않을 전망이다. 수많은 전문가가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다품종 소량 생산 등 맞춤형 생산&8729;소비 문화가 더욱 파급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소비자 취향은 날로 다양해질 테고, 생산(혹은 소비) 유형 역시 그걸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해갈 거란 얘기다(이와 관련된 논의는 2015년 7월 8일자 스페셜 리포트 “‘3D 프린팅 유니버스’가 몰려온다”를 참조할 것).
그런데 인공지능은 간단한 노동을 하게 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 투자가 요구된다. 게다가 엄청난 투자를 거쳐 특정 노동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해당 노동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은 금세 닥쳐올 수 있다. 1차 산업혁명의 기반에서 탄생, 2차 산업혁명의 물살을 탔던 포드형 공장 생산(Fordism) 당시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인간이라면 이런 상황에도 탄력적으로 적응하겠지만 인공지능은 거기서부터 또 인간이 연구하고 노력해 바꿔주지 않으면 주어진 패턴대로만 일할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원활히 쓰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창의력 같은 고도의 기능은 물론, 모니터링(관리) 능력처럼 비교적 단순한 기능에 이르기까지 두루 필요해질 거란 얘기다.
다음으로 문화변동 원리다. 이 측면에서 볼 때 기술&8729;경제 분야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 심지어 사고방식까지 바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과 산업 유형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없어지는 직업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새로 생기는 직업 역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와 수가 다양하고 많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던 1차 산업혁명은 석탄을 원료로 하는 증기기관 기술 개발과 함께 막을 올렸다. 당시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여러 종류의 기계가 개발됐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방적기와 기관차였다. 방적기의 도입으로 노동자 한 명이 1파운드의 면화에서 실을 뽑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0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됐다. 기관차가 등장하며 마차로 며칠 걸려 이동해야 했던 여행 시간은 단 몇 시간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없어진 직업은 몇 개나 될까? 얼른 떠오르는 건 (손수 면화에서 실을 뽑는) 기술자와 마부 정도다. 그럼 같은 기간 새로 생긴 직업은? 방적기의 경우,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 △부품을 조달하는 사람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사람 △기계를 작동시키는 사람 △(방적기 도입으로 급증한) 면화를 활용, 의복과 침구류를 만드는 사람 △면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 △보편화된 면화 제품 세탁량을 처리하기 위해 세탁기를 만드는 사람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직업이 떠오른다. 기관차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기관차 제조와 보급 관련 종사자뿐 아니라 운전사&8729;정비사&8729;역무원 등 무수한 직종을 탄생시켰다.
변화, ‘새로운 창출’의 원동력일 수도
1차 산업혁명은 한 세기 전 이미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그 이후 벌어진 일’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 혹은 진행 초기에 세부 변화를 구체적으로 내다본 이는 사실상 없었다. 1차 산업혁명 자리에 4차 산업혁명을 끼워 넣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혁명 이후 세상에 대해 확실히 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4차 산업혁명 역시 앞선 산업혁명 때처럼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꿔갈 테고, 변화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를 것이다. 또한 그 결과로 탄생할 새 세상의 모습은 지금보다 한층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금껏 인간이 해온 모든 일이 담긴 세상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인간은 산업혁명의 대두와 무관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일의 흐름을 읽으며 그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그에 맞춰 가장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건 인공지능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1] 바둑 두는 ‘알파고’, 음성을 인식하는 ‘S보이스’처럼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과 비슷하게 두루 일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일컫는다
[2] '긱(gig)'은 대중음악가가 돈 받고 한 번 해주는 행사 공연을 말하는 영어 속어이지만 요즘은 ‘필요에 따라 고용되는 계약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