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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선착장(0)-영흥대교(10, 0.2)-염벗나루길 삼거리(10, 1.1/1.3)-내7리삼거리(10, 0.4/1.7)-영흥도수련장 내동삼거리(30, 2.4/4.1)-고개넘어고개도로 사거리(50, 1.9/6)-國思봉(156.3, 2/8)-소로 십자안부(90, 0.3/8.3)-장경리해수욕장입구 12번군도 삼거리(30, 0.7/9)-도자기마을 삼거리(30, 1/10)-팔각정(110, 0.7/10.7)-養老봉(154.5, 0.9/11.6)-헬기장(130, 1.5/13.1)-에너지파크 사택 도로 삼거리 시흥골고개(50, 1.7/14.8)-소장골도로(30, 1.6/16.4)-피렌체모텔 도로(10, 2.2/18.6)에서 끝나는 영흥도 섬산줄기 환종주코스 약18.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신경수님 글] |
★산행코스:
영흥터미널-염벗나루길 삼거리-내7리 삼거리-영흥도수련장 내동삼거리-고개넘어고개도로, 버스정류장-잉카모텔-國思봉(156.3)
-國思봉△129.4-國思봉(156.3)-팬션마을-12번군도 삼거리-도자기마을 삼거리-x85.2 -도자기마을 삼거리(팬션)-팔각정(x121.4
)-양로봉(156.3)-조망처-양로봉-x105.4-x127-외2리(엄벌마을)-에너지파크 사택도로 삼거리 시흥골고개-x93.2-소장골도로x69.2-
임도-비닐하우스-농로-도로-붉은노을삼거리-영흥면사무소-영흥터미널
[산행지도]
7월 24일
무더운 날씨 장마철이라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낮고 바다구경이나 하러 가 보자,
며칠 전 걸었던 산줄기의 끝, 탄도에서 버스를 타고 대부도와 시화방조제를 건너면서 약속했던 영흥도로 내 마음을 끌기에 충분
했던 길들을 다시 걸어 가보자.
영흥도는 여행삼아 십리포 해수욕장과 장경리 해수욕장을 벗삼아 놀며 국사봉에 올랐던 기억을 더듬어 영흥도의 산줄기를
시계방향 반대방향으로 돌아 원을 그리는 산줄기를 따라 가보자구나.
제물포역 맞은편 도로에서 7시 48분 790번 좌석버스에 올라 오이도와 시화호를 가르는 긴 방조제를 시원스럽게 버스는 달리고
이 길을 몇 번쯤 와 봤을까.
행여, 대부도 길가에서 구워먹던 석화구이를 먹으러 갔던 겨울도, 포도를 먹으로 갔던 여름날도, 영흥도의 다리가 새로 놓아진 길
을 구겸삼아 갔던 그 길도 이 길이었으리라.
스치는 사진첩을 돌리고 또 돌리며
영흥대교를 지나 수협공판장의 산줄기 끝 바다를 보면서 영흥터미널에 안착하게 된다.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를 믿고 바다
로 비를 피해 왔는데 비가 내린다.
터미널의 텔레비젼을 보면서 비가 그칠까 기다려 보다가
우중산행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영흥대교 못 미쳐 수협공판장의 드넓은 바다를 보기만 해도 시원스러웠다.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과 배들이 있는 서해바다에 비가 내린다. 날씨가 말해주듯 안개가 자욱한 날 구름속에 빠진듯 선경으로 다
가 서는 곳, 영흥도!!
'진두낚시'간판 뒤 산줄기를 시작한다.
비가 폭우로 바뀌어 건물 계단 입구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그치지 않은 비를 맞으며
비와 바람을 피해가자는 마음으로 마루금 왼쪽 길을 따라 간다.
원룸들이 산줄기 아래 자리잡고 '시골집 왕갈비'란 식당를 지나 염벗나루길 삼거리에 도착한다.
[염벗나루길 삼거리]에 이르러서야 염벗나루길의 지명을 알게되고 이곳 삼거리 이정목에 '영흥도 버스터미널 0.55km, 염벗나루길
0.8km, 염벗나루길 0.38km'의 영흥 翼靈君길이라 쓰인
간판안내가 설치되고 삼거리 맞은편에 작은 집이 주인을 잃은 듯 임대광고의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다.
'바다의 향기를 맡으며 길을 걷다'
하늘보다 투명한 바다를 감싸는 은빛 모래사장
깍아지는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손에 잡힐 듯 아련히 손짓하는 아름다운 해안이 펼쳐진
길을 걷노라면 한편의 영화가 된다.
옹진군에 설치해 놓은 염벗나루길을 걷는데 시 한편이 발길을 묶고 있었다. 갈 길이 먼데, 비는 그치지 않고 갯벌이 있는 바다
가 보이고
염벗나루길 따라 간다.
뒤를 돌아보면
배로만 왔던 길이 옛날로 기억되어져 가는 영흥대교의 모습도 구름속에 묻는다. 노를 젓으며 뱃길을 열던 그 분들은 지금 어데서
무얼할까,
[내7리 삼거리]의 해안 도로따라 펼쳐지는 바다에는 갯벌에 멈춘 작은 배들과 물결따라 만들어진 모양새와 수평선의 풍광이
어느곳과 같았다.
비가 내리는 날, 산줄기가 아닌 발품을 팔아도 후회 없는 풍광이 되리라.
[내7리 삼거리]에 가마깨촌, 부포촌은
본래 마을이 없던 곳이며 바다물이 들어오든 산기슭 해변이었다. 6.25후 1.4후퇴 때 황해도 옹진구 봉구면 부포리 살던 주민들이
월남하여 이곳에 집단 거주 정착을 하며 마을이 생겼으며 고향이 가마깨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하여 '가마깨'촌이라고 부른단다.
바다가 내리생태 체험장이다.
가마깨촌 마을앞 바다에
내리생태 체험마당이란 현수막을 걸고 관광객을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 간단다. 길마여미란 섬에 바지락을 뿌려놓고
삶의 현장을 오가는 차이다.
믿겨지지 않아 바다를 쳐다보니 바다에 길을 만들어 그곳으로 드나드는 특별히 만든 차였다. 비가 많이 내려 차 안에 앉아
그치기를 기다려 보아도 시간만 가고
성난 파리들이 달려들어 있을수 가 없어 걷기로 한다.
저편 모텔 뒤 오르는 산줄기를 쳐다만 보다가 뒤돌아 서 나와 축대가 있는 가마개촌 마을도로를 걷게 된다.
애향가마깨기길의 이정목을 지나
내리7리(가막개)의 버스정류장에 앉아 계시는 환경지킴이 어른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도 덧없이 흘러가고
내5리는
염벗터가 왕성했던 '염벗나루길이며 옛날 나룻배질을 하던 곳으로 선착장을 진두라고 한다.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생산 위해 바다
에 만든 염벗나루터란다.
들머리 선착장 진두란 말이 생각났다.
내7리는
실향민의 그리움을 담은 애향가마깨길이다. 방개골은 '밤나무가 많아 방개골이라 전해지고 '방'씨들이 많이 살아 '方家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음으로 방개골이 되었다고 전한다.
염벗나루, 진두, 방개골과 가마깨촌으로 마을이름을 곰곰히 더듬었다.
[영흥 翼靈君길]이란?
고려의 유적과 유물로 출토된 토기 패총의 발견으로 조사된 것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주민과 같이 사람이 살았으며 삼국시대에 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영흥도 지역까지 보호하려는 삼국(신라, 백제. 고구려)간의 쟁패가 있었으며 고려 중기 원종에서 충 숙왕(1267-1319)때에는 정치범의 유배지였고 원종13년(1270)년 경에는 삼별초의 운둔지가 되었으며 대몽 항쟁기에는 영흥도의 삼별초의 항쟁 기지로 역사에 뚜렷이 등장했 던 시기이며 영흥도의 주민 입주와 개간이 이루어진 때이기도 하다. 고려말기에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왕족 출신인 익령군 왕기(王琦)가 피신을 와서 신분을 숨기고 은거하며 후손들의 화를 피하 위해 성을 바꾸어 옥(玉)씨와 전(全)씨로 성을 바꾸고 목장의 말을 기르는 목자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영흥도에 주민 입주가 본격화 된 것은 17세기 마성이 생기며 목장의 확대에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한말까지 강화도와 도성 방어 체계의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오며 영흥도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가 지대하여 지면서 업벌의 영흥진을 설치한 것이 그러한 대표적 사례다. |
위 안내도에 살펴보면
내리의 바닷가 동쪽 끝 망재산이라 적혀 있어 옮겨 보았다. 영흥도에는 국사봉과 양로봉보다 낮은 망재산이 표기되어 있
어 옮겨본다.
이정목에 '애향가마깨길 0.16km, 애향가마깨길 0.36km, 애향가마깨길 0,32km'의 모두가 애향가마깨길로 표기되어 있는 길의
삼거리를 지난다.
2차선 도로의 12번 군도를 따라 가다 보면 '전통한옥 팬션, 보경'이란 한옥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뿐이랴, 은골 바이오농
원의 포도, 가지, 복분자를 키우는 농원 간판을 보며 저 낮은 산줄기의 은골이란 걸 알게 되고 오른쪽 산줄기를 보면서 걷는다.
은골위에 붙은 산줄기는 어느새 도로에 붙어 올라가 보려했지만 '고란아 나도 먹고 살자'란 나무문이 막고 있고 그 안에 목조주택
이 보였는데 이 길마져 오를 수 없어 도로로 내려선다.
가로수에 흐드러지게 핀
[목백일홍]과 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익령군길을 이어간다.
연흥도수련장을 지나
[내동삼거리]에 이른다.
내동삼거리의 버스정류장에는 장경리 해수욕장과 십리포 해수욕장과 방개골의 갈림 길이 된다. 십리포 해수욕장 길을 버리고
도로따라 장경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따라 간다,
내2리 경노당을 지나,
[부들레야 ]
비가 너무 쏟아져 길을 갈 수가 없었다. 잠시 쉬어 가자 했는데 집안에 원두막이 있어 우비를 벗고 수박을 먹고 있으니
어르신이 나오셔 한마디 할까 걱정되어
먹고 있던 수박을 드렸더니 다 드신다. 드시는 동안 몇 마디 물어봐도 답은 없고 벙어리인가 했는데~~` 배낭을 꾸려 나
서며 잘 쉬었다 갑니다라 인사하니 겨우 네~ 하신다.
등산로입구의 이정목을 지나.
데발이네 팬션을 지나
[산넘어 고개]의 버스정류장이 있는 잉카모텔 입구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등산화에 양말이 헝건하고 내 꼬라지가 물에
잠긴 새같아 보였다.
국사봉에 오르려니 이제부터 산으로 입산해야 되는 등산로를 버리고 스틱을 접고 장경리 해수욕장에서 나오는 1번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오게 된다.
긴 시간을 보내다 790번 버스로 탑승하여 귀가하게 되고
7월 26일
영흥도로 또 배낭을 꾸렸다. 그제의 비를 대신해 오늘은 태양열이 가마솥같았다. 아침부터 이글대는 7월의 장마철
두 번째 영흥도로 간다.
그제 버스를 타고 갔던 그 길따라 영흥도에 닿고
오늘은 느긋하게 걸어도 될 듯 터미널 안 텔레비젼을 보다 1번의 장경리행 버스에 올랐다. 이곳 영흥도에는 소형버스
가 두 곳을 운행한다.
1번 버스는 장경리 해수욕장을, 2번 버스는 십리포 해수욕장을 운행하고 있었다.
버스는 영흥도를 시계방향으로 돌아 장경리 해수욕장을 지나 산넘어고개에 내려준다. 기사님은 산넘어고개의 버스정류
장을 잘 모르고 잉카모델 입구라 해야 알아 들었다.
[산넘어고개]에 국사봉 오름길에 이정목과 통일사로 가는 곳도 잉카모텔 가는 곳도 이곳 입구 도로를 따르게 된다.
포장도로로 이어지며
[잉카모텔]의 입구에 2마리의 개 중 1마리는 목줄을 매 놓지 않아 달라 들 것 같아 무서움에 빠른 걸음을 재촉해 갔다.
포장도로는 비포장도로로 바뀌고
[통일염원길 삼거리]의 이정목에는
'통일염원길 국사봉 0.49km, 통일사 0.35km'와 또 하나의 이정목에는 '국사봉, 장경리 해수욕장, 통일사'의 갈림길을
표기한다.
이곳 왼쪽 산길로 들어 국사봉으로 오른다. 소사나무가 나그네를 맞고 국사봉 오름길의 이정목은 '국사봉 145m, 통일사
650m, 고개넘어고개 1.2km'과 작골의 갈림길을 지나 오르게 된다.
국사봉(國思봉) 156.3m의 정상에 선다
국사봉의 정자 위 태극기가 펄럭이며 정자 위에 올라서면 드넓은 바다가 조망된다. 영흥화력발전소의 풍력발전기가 바람
따라 돌고 바다에 떠 있는 점들의 작은 섬들의 풍광이 보인다 했다. 국사봉에 올랐던 것을 기억하며
국사봉의 얽힌 내용은 영흥도의 익령군 왕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까지 따라와 있었다. 익령군은 두고 온 개경이 그리워
매일 산 정상에 올라 북쪽의 송악산 쪽을 바라보며 조국의 안녕과 앞으로의 융성을 기원하였다 하여 이 이름을 국사봉(國思峰)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사봉은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해발 123m의 봉우리로소 팔미도 등대와 인천항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있는 강화도 마니산과
당진 화력발전소, 백령도와 황해도 해주의 수양산까지 보인다고 전한다고 되었으나, 해발 123m의 높이는 수정되어야 하지 않겠
나,,,
국사봉의 [소사나무]와 이정목
[국사봉의 소사나무 보호지역]이며
국사봉에서 서남쪽으로 삼각점을 찾으러 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소사나무가 빼곡하게 차지하였고 굴피나무, 졸참나무,
팥배나무, 해송(소나무) 등 이름표를 달아 등산객들의 나무이름을 알려주어 정겨웠다.
[국사봉 삼각점, 용유 302, 2008 재설]△129.4m의 높이로 양로봉과 화력발전소의 굴뚝이 손짓하는 듯 발걸음을 서두른다.
정자가 있는 국사봉으로 되 돌아와 소사나무의 보호지역 간판 옆으로 진행하게 된다. 등산로로 걷기 편한 길이 시작된다.
[버드니 1.7km, 도장골 0.8km, 통일사 0.4km,국사봉 0.28km]의 이정목엔 긴의자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좀 더 진행하다 보면 긴의자가 있는 봉우리같은 곳에 설치되어 있고 직진하여 x112.6봉에 올라 윗말봉이라 쓰인 코팅지
를 뜯어 버리고 먹지 못하는 버섯들이 지천으로 땅위에 솟아나 구경하며 걷게 된다.
긴의자까지 오기 전에 등산로를 버리고 풀속에 묻혀있어 희미한 길을 따라 잡목과 잠시 씨름하여 오르면 길은 좋아져며
[팬션단지]와 양로봉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팬션단지로 내려와 '팬션풀하우스'간판이 있는 2차선 도로로 내려서 장경리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를 잠시 따르면
옹벽위 현림건설의 간판뒤 선배님의 자주색 표지기가 눈에 띄어 그리 오란다. 잠시 잡목을 헤쳐 오르면 폐묘가 나오고
녹색철그물 담장과 만나 담장 오른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녹색철그물 담장따라
철그물 담장으로 이어지다 고구마밭을 끝으로 철그물 담장도 끝난다. 동네가 내려다 보이고 가시잡목을 헤쳐 마루금을
가늠하여 진행하게 된다.
공터를 깎아 놓은 모습이 보이는 곳으로 가야하는 생각도 잠시 그 곳 왼쪽으로 마루금이다.
팬션에 사람소리가 들리며 [도자기마을 삼거리]로 내려선다.
삼거리의 팬션 뒤로 올라 잡목과 가시넝쿨 사이를 비집고 넝쿨 밟아 오르면 선배님의 자주색 표지기가 있으며
잔솔나무 사이로 [방갈로]가 놓여져 있는 뒤를 따른다. 이내 오르자 x121.4봉을 지나 '양로봉 1km'의 나무 팻말따라
전망대가 있는 팔각정으로 내려서게 된다.
팔각정에 올라
[팔각정]
[팔각정]에서 보는 조망대는 사진 왼쪽으로부터 대이작도, 소이작도, 자월도, 그리고 소초지도와 대초지도의 섬들이 풍력발전기
와 함께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바다 바람타고 도는 발전기가 어떤 것은 빨리 돌아가고 어떤 것은 정지 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발전기의 활력을 내품는 곳이다.
[풍력발전기]를 확대하여 보고
소사나무 사이 등산로를 따르게 된다. 그러다 잔솔나무 숲사이를 나오면
[철대문]과 '한국남동발전(주) 영흥화력본부장'의 경고문이 붙고
철대문을 지나 오르면
[양로봉 정상]이다.
양로봉 정상에 이정목은 '장경리 해수욕장 2,140m, 에너지파크 4,480m, 전망좋은곳 160m' 이며 전망좋은곳으로 진행하면
곧 양로봉 전망대에 이른다.
[자월도, 대초지도, 소초지도 등 등]이 조망되는데 안내도의 훼손되어 있으며
풍력발전기 돌며 해안이 수평선을 펼치며 반긴다. 수평선처럼 펼쳐진 바다의 끝이 어데인지 모를 것처럼 보인다. 한낮의
구름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뜨겁다.
수십 개의 발전기가 돌아가는 장면은 평생을 기억할 압권이다. 이 바다를 독차지하고 있는 영흥섬에서 지나온 산줄기의 여독
을 푸는데 그만이다.
[영흥화력 발전소]
가 그대로 조망되어 당겨 보았다. 외리에 위치한 화력발전의 운영처는 한국남동발전이며 2004년 7월 완공되어 발전중이란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2002년에 23가구가 외2리로 외주하였으며 그 외 주민은 타지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양로봉 정상으로 와
'에너지파크 2.5km, 양로봉 정상'의 이정목이 있는 첫 번째 철대문까지 되돌아 오며
[두 번째 철대문]을 빠져 나오게 된다. 이곳에도 화력발전소의 경고문이 붙어있다.
아쉬운 듯 풍력발전기를 당겨 보고
[장경리 해수욕장]이정목 뒤 지도에 없는 삼각점을 지나
'양로봉 0.2km, 중박골 1.0km, 에너지파크 1,8km, 절골 1.2km'의 이정목을 지나 에녀지파크 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등산로를
따르며 드문드문 향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영흥발전소가 더 가까운 듯 당겨 보고
잔솔나무 사이를 걸어
깃대봉이 있는 헬기장을 지나
'에너지 파크'의 이정목을 지나
이정목에 쓰인 '봉수대 0.2km'을 보면 지나온 깃대봉이 있는 헬기장이 봉수대였나 보다.
에너지파크쪽으로 진행하며 작은 바위들이 몇 개 깔린 길을 지나 골프연습장 옆으로 내려선다. 외2리의 쉼터에 사람소리
가 들려
우선 식수를 채울겸 외2리로 내려선다. 어르신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해 이곳에 계시며 이곳 어르신들은 영흥도 발전소가
생기기 전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단다.
쉼터 앞 뜰안에 있는 지하수로 한 병 채우고 커피 한 잔 얻어 먹고
긴 여정을 끝낸다.
에너지파크의 사택을 돌아 사택 정문으로 2차선 포장도로로 올라선다.
정문앞 선배님의 표지기따라 산으로 오르는데 지저분하며 잡목과 넝쿨을 뚫고 밟아 올라 선다. 시간이 물쓰듯 가고
커다란 봉분없는 평묘의 '창녕성공은영지묘'앞에 서면
[영흥대교]와 지나온 산줄기, 진행하게 될 산줄기을 펼치며 반긴다.
더듬더듬 산줄기를 내려서서 소장골 오른쪽으로 동네의 밭가로 내려서면
[소장골 고개] 2차선 도로로 내려서게 된다.
도로 건너 사진 왼쪽으로 집, 농기구 뒤로 산으로 오를 수 있었다. 능선에 올라서면 길이 있으며 풍력발전기와 동네의
모습이 보이며 바다가 조망된다.
솔숲따라 걸으며 임도를 건너
짖어대는 개소리에 놀라 비닐하우스 옆 길따라 내려서는데 문이 닫혀 있어 갈 곳을 잃었다. 개는 짖어대 민망스럽기 그
지 없고 산아래를 돌아
농로를 따라 산을 내려서 2차선 도로에 닿는다. '청송마을 단지조성공사'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곳으로
이 도로는 소장골 고개에서 영흥면으로 연결되는 그 도로로 다시 온 것이다.
오른쪽 마루금을 보면서
한전KPS사택을 지나
바다에 닿는 산줄기를 확인하여 오늘의 산행을 끝마친다.
붉은노리 삼거리 위 망태산x128의 지명을 보면서 영흥도의 국사봉과 양로봉과 미답지인 망태산과 망재산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되돌아본 해안선 따라 도로를 따르며
내3리 영흥충의길이란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천혜의 섬 영흥도]을 산줄기따라 영흥대교에서 좌측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환종주를 마쳤다.
뚜벅뚜벅, 영흥도의 해안선이 오늘따라 길게 느껴진다. 바람따라 금방이라도 다가설 듯 영흥면사무소를 지나 진두가 보
이는 그곳까지
내 발자욱 잇는 소리는 영흥터미널앞에서 멈추었다.
[내사랑 영흥도] 태동철님의 시석앞에 멈춘다.
'영흥도는 바다의 꽃 섬이었다'
신화 세계의 가슴을 열어
서해 바다에 수유하기 위해
젖셈 불은 꽃망울을 내민 섬
손돌이 추위가 시샘하다 사라진 뒤
물때에 내뱃짖하듯 꽃 물 든 바다가
섬 둘레에 연꽃을 수 놓았다.
~~~~~~생략
영흥도에 모든 걸 한편의 시로 표현해 놓았으니 내 아니 기쁠까. 산 전체의 18.6km로서 속속들이 발품을 팔았어도 후회
없는 풍광을 보여 주며 완만한 원을 그리는 산줄기,
여행삼아 돌아 보자 했던 산릉에서 보았던 바다의 발전기 돌리는 장면을 기억할 압권이다.
오이도에서 시화호로 연결된 다리가 대부도로, 선재도로,영흥도로 연결되는 섬, 탄도와 선감도로,대부도로, 영흥도로 연
결되는 섬의 끝 영흥도!!
발전소 건설은 영흥대교가 놓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보다 육지에서 배타지 않고 섬에서 섬으로 갈 수 있는 서해바다의 파
도는 천만리로 이어지는 가 보다.
[끝]
첫댓글 전번에 전화할때 여기다녀왔나봐요~?
무더위 8월 잘 대처하시고 무리하지마세요~^^
시간될때 함 산행같이해요~
8/11~13 동창모임 땜시로 시골갑니다 모친도볼겸^^
네~~
시골 잘 다녀오시고 담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