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한 특사로 파견되었다. 임무를 마치자마자 박태준은 대한중석 사장에 임명하고, 여기서 경영의 실제를 배우며 만성적자와 부패의 온상이었던 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돌려놓게 되면서 기업인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제철소 건설에 대한 제반 준비에 착수한 박태준은, 그러나 자금 원조를 해 줄 모든 외국 기관들로부터 불가판정을 받고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1967년 제철소 건설의 첫 삽을 떴지만 정작 외국에서 차관 불가 입장을 내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와중에 한일국교정상화 때 받아낸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결국 일본의 동의를 받아내어 제철소에 자금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건설해 왔으며, 1992년 결국 양 제철소 8개 고로 건설을 완성함과 동시에 포스코 창업자로서 역사를 마감하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포스코의 명예회장으로, 경제계의 몇 남지 않은 원로로 자리매김 했다. 능력있는 경영은 놀라우나 전형적인 성공한 한국 기업인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 경제발전에 있어서 다른사람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업적을 쌓은 거물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