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을 연애고수로 바꿔드립니다. 이름하여 시라노 에이전시. 연애 무능력자들을 위한 전문 에이전시라는 독특한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추석 극장가에 도전장을 낸다(16일 개봉).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등의 김현석 감독 작품. 악역은 없고, 착하고 소심한 사람들의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을 포착해내는 감독의 장기가 십분 발휘됐다. 신선한 발상, 탄탄한 시나리오, 유머와 감성을 적절히 변주한 연출이 발군이다.
‘꽃보다 남자(꽃남)’ 등 TV드라마와 CF로 이름을 알려온 이민정(28)의 재발견도 주목거리다. 극중 최다니엘의 짝사랑을 받는 ‘까칠녀’ 희중을 맡아, 캐릭터와 씽크로율 101%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상처 때문에 사랑에 주저하는 희중이 관습적인 뻔한 캐릭터를 벗어나는 것도 그의 물오른 연기 덕택. 시종 빛나는 미모와 연기력을 두루 갖춘, 새로운 로맨틱 히로인의 탄생을 예고한다는 평이다. 실제 김 감독은 첫 촬영을 마치고 “민정씨의 감정연기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이번 영화는 아주 쉽게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오해를 반성한다”며 전폭적인 신뢰감을 보이기도 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제 가까운 친구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도 하고 싶었고요. ‘꽃남’은 저를 널리 알려준 고마운 작품이기는 하지만 주로 10대들이 많이 봤거든요. ‘꽃남’에서는 저만 잘 하기보다 예쁜 그림에 묻어가는 연기를 하려고 했죠.” 스스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에 “경쾌한 리듬과 유머 속에 정색하지 않고 감동을 주는” 김현석 감독에 대한 신뢰도 컸다.
“20~30대는 더 이상 현실에 백마 탄 왕자님은 없다는 걸 깨닫고 점점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잖아요. 사랑으로 상처받은 희중도 그래서 냉소적이고 불친절한 여자가 됐죠. 제 연애경험도 떠올리며 연기했어요. 사실 제게도 희중이하고 비슷한 면이 많아요. 시니컬하고 소심하고 생각도 많고.”
‘꽃남’에서의 도도하고 자신감 충만한 럭셔리걸 이미지와는 딴판의 얘기다. “희중은 극중 가장 속을 잘 알 수 없는 캐릭터예요. 100중 40 정도만 보여줘야 했죠. 산이 있다면 아래는 생략하고 물 위에 뜬 일부분만 보여준달까. 그 물 아래에 결이 잘 쌓여있지 않으면 아주 단면적 캐릭터가 될 수 있어, 상상놀이를 많이 했어요. 희중이의 과거는 뭘까, 과거의 희중이 남자친구를 만난 첫 날 두 사람은 무얼 했을까? 감독님이나 (엄)태웅 선배 등과의 술자리도 도움이 많이 됐지요. 촬영 중에는 내일도 촬영인데 왜 이렇게 늦게까지 마시나 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잘 마셨단 생각이 드네요.”(웃음)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출신인 그는 스물넷이던 2006년 MBC 드라마 ‘있을 때 잘해’로 데뷔했다. 올해로 4년차 신인. 영화 ‘백야행’, SBS 드라마 ‘그대 웃어요’ 등에 출연했다. 10대 때 데뷔하는 요즘 풍토에 비해서는 데뷔가 늦은 편. “원래는 제작 연출을 지망했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연기자로 결정했어요. 데뷔가 늦었다고 부담스럽진 않아요. 그간 부지런히, 의미 있게 걸어왔으니까요. 아침·주말드라마를 한 게 매체 적응력을 많이 키워줬죠. 많은 분들이 저를 화려한 신데렐라로 보시는데, 그렇게 어메이징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탄 적 없고요. 흔히들 겪는 어려움을 다 겪었답니다.”(웃음)
비슷한 또래의 상대역 최다니엘과는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기다리기 등 영화현장의 문법을 함께 배웠고, 권위적이지 않은 엄태웅 선배 덕에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면서 역할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연기에 연자도 모르는 신인이지만, 가급적 많은 분들께 저를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그 다양한 모습을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구요. 지금은 저도 저를 테스트해보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경험치를 넓히고, 감정에 대한 기억력을 키워나가고도 싶네요.”
여고시절 한 때 성악가를 지망했던 그는 이번에 박신혜와 함께 주제곡 ‘당신이었군요’를 부르며 프로급 노래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양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