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눈멀게 하는가?]
안녕하세요. 고현숙입니다. 조직 내 ‘부서 이기주의’는 전체의 목적을 해칩니다. 이슈가 생기면 관할 부서가 어디인지만 따지며 시간 보내는 모습, 전체의 효율성을 위한 부서 통폐합을 추진할 때 기를 쓰고 반대하는 모습 등은 그동안 봐왔던 문제였죠. 이런 걸 보면 부분의 최선이 전체의 최적화가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런 부서이기주의 현상과 극복방안을 논의한 책, <사일로 이펙트>를 소개합니다.
[똑똑한 바보가 조직을 망친다]
美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한 지 두 달이 되는 시점(2008. 11. 4.)에서 런던정경대(LSE)를 방문한 엘리자베스2세 英여왕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 있는데 이런 위기가 닥칠 것을 왜 아무도 예측 못했습니까?” 당시 학자들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죠. 1년 뒤 英 왕립학술원 콘퍼런스에 모인 경제계 원로들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금융시스템은 점점 세분화되고 새로운 파생상품이 속출했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를 통틀어 이해할 개념이 부족했다. 거시경제학자들은 금융통계를 살펴보았지만 세밀한 금융상황은 무시한데다가, 금융 규제기관들은 개인은행들을 지켜보았지만, 非은행권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이 채무 과잉상태에 빠졌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자는 이 사례가 ‘사일로 이펙트’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사일로’는 원래 곡식저장을 위해 깊게 판 구덩이를 말하는데요, 생각, 행동을 가로막는 편협한 사고의 틀 또는 심리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일로에 갇혀버리면 세계 최고의 천재들도 엉터리 결론을 내리거나 상황 변화에 속수무책이 되어 버립니다.
[사일로가 초래한 영향]
한때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등 혁신적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업계 선두로 군림했던 소니는 다양한 사업군에 맞춰 사업부서가 19개로 세분화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자립적인 팀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사일로’가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팀 중심의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가 만연하면서 혁신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죠. 사업부 별로 대차대조표에 책임을 지게 되자 자기 사업부를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 된 겁니다. 그러니 他사업부와는 아이디어를 공유하지 않았고, 우수 직원 이동(전배)을 허용하지 않았죠. 사내 협력작업은 완전히 중단되어버렸습니다. 또, 즉각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실험적 브레인스토밍이나 장기적인 투자는 꺼렸죠. 일례로 디지털 음악이 생겨나던 시기에 소니뮤직 사업부는 음반 및 CD 판매가 줄어들까봐 소비자 가전부나 컴퓨터그룹과 협력을 철저히 거부했던 것입니다.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경영자 ‘이데이’는 협력과 네트워크 정신을 강조하면서 ‘소니 유나이티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한번 자리 잡은 관행을 바꾸기란 무척 어려웠습니다.
이는 애플과 완전히 대비되었는데요. 애플에서는 사일로가 형성되면 기존 제품의 아이디어와 과거의 성공을 지키려는 마음이 생길까봐 경계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면밀한 통제를 통해 모든 팀이 단일 손익구조 아래 통합적이고 유연한 하나의 조직이 되도록 했고요. 회사 전체가 하나의 손익 계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내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획기적 아이디어로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겁니다.
사일로의 폐해는 소니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금융 기업으로 알려졌던 스위스연방은행(UBS)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충격적인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수천 명의 리스크 관리자가 있었지만 미국의 불량 모기지에 투자하면서 그 누구도 리스크를 알아채지 못한 이유가 바로, 각 부문마다 데이터를 독점하고 방어적인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 내 조직 구성 및 의사소통은 놀라울 정도로 분열돼 있었고, 그 세계관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주 세분화된 금융상품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전체적인 통제 능력을 상실했던 겁니다.
[사일로를 넘어선 조직들]
반면 사일로를 넘어선 사례도 있습니다. 시카고 경찰국은 데이터 전문가들을 고용해 각 부서별로 축적되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각종 정보와 데이터를 모아 그것간의 연관관계를 분석하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범죄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그에 맞게 경찰을 배치, 파견함으로써 범죄율 자체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뉴욕시 역시 화재 취약 가구를 분석할 때 소방서, 세무서, 시청 건축부 등 여러 부서의 분산된 데이터를 취합하여 각 데이터로는 볼 수 없었던 입체적인 분석과 예측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안전성을 매우 높일 수 있었죠.
기업에서는 사일로를 없애고 조직의 혁신을 이끈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은 ‘전문가 집단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공학 실험을 열고 장려했습니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한 여성임원은 자신의 실수로 전사 이메일 시스템을 다운시켰을 때, 질책하기보다는 모든 부서에서 관심을 가지고 원인을 파악하며, 이에 대한 조언과 처방을 보내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문화에서 직원들은 조직의 문제를 더 큰 그림에서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능력과 경험을 축적해나간 겁니다.
[사일로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보통 많은 조직에서 "사일로를 없애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라고 외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바로, ‘사일로’에 갇힌 이들은 문제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전문가이자 인류학자이기도 한 저자 ‘질리언 테트’는 사일로를 해결하려면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내부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외부의 관찰자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고 물려받아서 너무나 익숙해진 그 틀과 분류체계를 오히려 낯설게 보고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부서의 장벽이 높다면, 여러 부서에서 뽑아 스컹크조직 같은 프로젝트팀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기서 전사적인 해결과제를 주고 각 부서에 단절되어 있는 데이터를 큰 관점에서 모으고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또 한가지 인력을 한 부서에 너무 오래 두기보다는 주기적으로 전환근무를 시켜서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사일로 사례와 해결방향에 대한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