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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내전지인 다르푸르 지역에서 지난 2010년 6월 한 달 동안 221명이 피살됐다고 다국적 평화유지군 ‘유엔-아프리카연합 임무단(UNAMID)’이 밝혔다. UNAMID에 의하면 6월 다르푸르 지역에서 교전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21명인데, 이들 중 140명 가량은 적대적인 두 부족 간의 전투에서 희생됐다고 한다.
UNAMID는 경쟁 관계인 ‘레제이가트’와 ‘미세리야’ 부족이 6월 28일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다르푸르 지역에서 교전이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다고 덧붙였다. 수단 정부군과 반군이 7년째 내전을 벌이고 있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지난 5월에는 600여 명이 피살된 것으로 보고됐다. 이들 사망자 대부분은 정부군과 다르푸르 지역의 최대 반군 세력인 정의평등운동(JEM) 간의 교전 과정에서 숨졌다.
한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10년 7월 12일 수단 다르푸르 내전과 관련, 전쟁범죄 혐의로 지난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해 집단학살 혐의를 추가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재판부는 이날 결정문에서 “(바시르 대통령에게) 집단학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음을 입증할만한 충분한 증거를 확인했다”며 범죄 혐의를 추가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재판부는 2009년 3월 전범 등 6가지 혐의로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이 청구했던 집단학살 혐의를 죄목에서 제외했다. 이에 검찰은 재판부의 집단학살 혐의 배제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고, ICC 항소법원은 2010년 2월 재판부에 집단학살 혐의를 재검토하라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다섯 달 간의 재심리를 거쳐 바시르 대통령이 다르푸르에 있는 3개 부족을 전멸시키라는 지시를 자신의 부대에 개인적으로 하달한 혐의를 추가하고, 이 혐의가 적시된 두 번째 영장을 발부했다.
유엔은 2003년 2월 발발한 다르푸르 내전으로 그간 30만 명이 숨지고 2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ICC 검찰은 바시르 대통령이 내전 과정에서 정부군과 민병대를 동원해 최소 3만5천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보고 있다.
198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21년째 수단을 통치하고 있는 바시르 대통령은 2010년 4월 주요 야당 후보들이 출마를 거부한 가운데 치러진 대선에서 68%의 득표율로 승리, 재집권에 성공했다. 1986년 이후 처음 실시된 이번 다당제 대선은 알-바시르 대통령의 북부 이슬람 정부와 SPLM(수단인민해방운동)이 5년 전 체결한 평화협정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수단 내전의 역사
수단은 195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수단 독립 운동의 주체는 북부의 이슬람 교도였다. 북부는 아랍계의 이슬람교도인 반면 남부는 흑인의 비아랍계(일부 기독교 등)였고 영국의 통치 당시 남북을 분단 통치했던 것도 남부와 북부 분열의 원인이었다.
영국은 1920년대 이후 북부와 남부를 분리시켜 남부를 동아프리카 연방(우간다, 케냐 포함)으로 분리 독립시키려는 남부정책을 추진했다. 이슬람 상인과 성직자가 남부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남부 지역 주민에 대한 아랍어 교육을 금지하고 영어교육을 장려하는 것이 시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런 정책의 실시로 북부의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남부인의 적대적 감정이 증폭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영국이 입장을 선회하여 수단의 엘리트 계층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남부 흑인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결국 1955년 남부에서 흑인들의 봉기가 일어남으로써 남부와 북부간의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그 후 1956년 수단이 독립하자 내전이 발발하여 1972년 아디스아바바 합의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5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디스아바바 협약으로 인해 남부인들은 분리주의를 포기하고 휴전을 수용함으로써 남부 자치 지역을 창설할 수 있었다. 1969년 5월 쿠데타를 통해 누메이리를 의장으로 하는 혁명 평의회가 전권을 장악했고 1972년 1월 누메이리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1983년 누메이리 정권은 두 가지 정책을 실시하여 공개적으로 적대 행위를 재발시켰다. 첫째, 아디스아바바 협약을 파기하고 남부를 3개 지역으로 재분할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남부인들이 크게 반발하며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조직하여 게릴라 투쟁을 시작하면서 다시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1984년에는 한발과 에티오피아로부터의 난민 유입 등으로 수단의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고, 1985년 5월에는 쿠데타로 누메이리 대통령이 실각하여 이집트로 망명하게 된다. 1986년 4월 선거를 통해 문민 정권이 들어서 SLPA와 평화 협상에 들어가는 듯 했으나 1989년 6월 30일 알-바시르 준장이 국민이슬람전선(NIF)과 제휴하여 무혈 쿠데타를 성공 시키고는 스스로 원수, 수상, 혁명 위원회 의장,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여 NIF의 주장에 따른 이슬람화를 추진하는 한편 SLPA에 대한 탄압을 강화한다. 이로써 수단은 매우 심각한 내전 상태에 빠지게 된다.
1992년 5월 나이지리아의 중재로 SPLA와 평화 교섭을 재개하고 휴전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1996년 말 SPLA를 비롯한 7개 무장 세력이 민족민주동맹(NDU)으로 연합하고 반정부 공세를 강화한다.
1998년 신헌법이 통과되면서 1989년부터 금지되어 있던 정당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1999년 바시르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노리는 국민의회의 트라비 의장과 대립하면서 1999년 12월 3개월간의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민의회 해산, 내각 총사퇴 등을 통해 2000년 1월 친트라비 파를 배제하고 신내각을 발족시킨다.
트라비는 바시르 정권의 여당이었던 국민회의에서 쫓겨나자 인민국민회의(PNC)를 결성했으나, 2000년 12월의 의회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보이콧했기 때문에 바시르 대통령과 바시르 파 정당이 승리한다. 2001년 2월 PNC와 SPLA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내전 종결을 위한 각서에 조인하자 수단 정부는 트라비 등을 체포한다. 이후 바시르 대통령은 온건파 야당 인사들을 입각 시키면서 야당 세력을 분열시키는 한편 SPLM과의 평화 교섭에서도 유연한 자세를 나타낸다. 하지만 2003년 3월 정부군이 다르푸르 지역에서 주민들을 학살함으로써 내전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2005년 1월 9일 바시르 대통령과 SPLM 사이에 평화안 합의가 이루어졌고 7월 9일 바시르를 대통령, SPLM의 가란 최고 사령관을 부통령으로 하는 잠정 정부가 발족된다. 그리고 이 협정에 의해 2010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으며, 2011년 1월에는 남부 지역 주민의 분리독립 국민투표를 시행하기로 돼 있다.
사상 최초로 기소된 현직 대통령
알-바시르 정부는 또 2010년 4월 선거를 앞두고 서부의 다르푸르의 최대 반군조직인 정의평등운동(JEM)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이 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수단해방군(SLA) 등 다른 여러 반군조직이 여전히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내전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알-바시르 대통령이 선거를 강행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기소된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이 지지하는 합법적인 대통령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재천명하고 싶은 것이다. ICC는 2009년 3월 다르푸르 내전과 관련해 전쟁범죄 등 6가지 혐의로 알-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최근 그의 죄목에 ‘집단학살’ 혐의를 추가한 것이다. 하지만 ICC의 기소와 체포영장 발부에도 불구하고 수단 북부에서 그는 여전히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불에 기름 부은 유전
알-바시르는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정권을 출범시켰기 때문에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그 정치적 투쟁의 이면에는 ‘검은 황금’ 석유가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수단 북부에서 추가적인 유전이 발견되고 남부에서도 많은 석유 매장량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수단은 현재 아프리카 5위의 산유국으로 석유가 전체 국가 수출의 95%, 정부 수입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개발되는 유전지대는 남부 수단에 집중돼 있으며, 현재 23개 광구 중에서 4개 광구에서 석유가 생산 되고 있고 나머지는 탐사가 진행 중에 있다.
재정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유전을 보유하게 된 남부 반군세력은 어떻게든 북부로부터의 분리 독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북부는 연방제를 유지해 남부의 자원을 '국가발전'을 위해 이용하고자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브예 지역에서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다. 남·북부 군이 충돌한 아브예는 수단의 주요 석유 산지다. 수단에서 하루 생산하는 50만 배럴의 원유중 절반 가량이 이곳에서 나온다. 주변의 유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홍해의 수출항 포트 수단으로 운송되는 송유관이 지나는 길목으로 한마디로 싸울 가치가 있는 땅인 셈이다.
특히 아브예는 2005년 1월 평화협정에 따라 오는 2011년 주민투표로 어느 지역에 귀속시킬지를 최종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그 전부터 귀속권을 주장하기 위한 힘겨루기 적지 않다. 최근 북부에 기반을 둔 집권당 국민회의당이 이 지역의 귀속권을 주장하기 위해 북부지역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킨 것도 주민투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단은 석유 수출 소득이 전체 소득의 70%를 차지하는데 중요한 유전지대는 대부분 남부 수단에 있다. 사하라 사막의 가장자리에 있는 북부 수단이 아브예에 집착하는 것도 이같은 불리한 자연조건 때문이다. 현재 수단에는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으나, 갈등양상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대국 각축장이 된 수단
유전 개발은 수단 내부의 갈등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경쟁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수단의 내전을 방관해 오던 미국은 지난 수년간 적극적으로 수단 사태에 개입하고 있다. 2007년에는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직접 나서 다르푸르 사태 중재안을 관철시켰다.
미 국무부 부장관이 전격적으로 나서 수단 정부와 담판을 지은 데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수단 경제를 장악하다시피 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다. 중국은 이미 수단 내 대부분의 유전 개발권을 차지했다. 이집트가 그토록 반대해왔던 나일강 상류 발전 및 담수용 댐도 몇 개월 후 중국 업체에 의해 완공될 전망이다.
수단의 '중국화(Chinization)'를 막기 위한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알-바시르 대통령 몰아세우기다. 다르푸르 사태에 책임을 물어 현직 대통령인 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물론 인권적 측면의 고려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테러지원국 이슬람 국가 수단의 '불량정권'을 제거하고, 중국의 수단에 대한 경제적 장악을 막겠다는 서방의 의지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여기에 반이슬람 담론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 수단 남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독교가 확산하는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는 남부 주민의 약 70% 이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국제 기독교 단체들의 지원과 선교활동도 수단 남부에 집중되고 있다. 수단 남부가 분리 독립되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슬람 남하현상을 막을 수 있는 완충지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향후 전망
남수단의 분리 독립 투표는 2005년 1월 남북 간 맺은 평화협정에 포함된 사항이다. 수단에서는 아랍계 정부군과 기독교계 흑인 반군의 전면전으로 1983년부터 22년간 아프리카 최장 기간의 내전이 벌어져 200여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평화협정은 수단 남부가 2011년까지 자치정부 형태로 운영되도록 했다. 현재 남부와 북부는 사실상 별개 나라다. 국적과 화폐만 같을 뿐 각각 외교·군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남수단의 경우 각국 주요 도시에 대사관 역할을 하는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다.
양측은 평화협정 이후에도 석유 자원을 놓고 계속 충돌했다. 2009년에만 2000여명이 숨졌다. 분리 독립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정확한 남북 경계 설정과 석유 수입·배분 문제가 핵심 이슈다. 양측은 이 부분에 대해 완전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북수단 측은 국민투표 이전에 경계선 설정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프리카 5번째 석유생산국인 수단의 석유는 주로 남부에 풍부히 매장돼 있다. 특히 대형 유전은 남북 경계지역에 자리 잡아 분쟁의 불씨가 됐다.
수단 내전의 핵심은 돈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적 불안의 가장 큰 변수라는 것이다. 정치적, 민족적, 그리고 종교적 이유보다는 수단의 자원을 둘러싼 국내외 행위자들 간의 갈등이 현재 수단의 상황을 가장 적절히 설명할 수 있다.
이 자료는 http://cafe.daum.net/paisi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라는 카페에서 가져왔습니다.
2010년도에 만들어진 자료라서 남수단의 독립은 반영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2011년 2월 독립투표에서 99%의 찬성을 바탕으로 7월 9일 공식적으로 남수단이 독립하였습니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이태석 신부님이 봉사활동을 하신 곳이 남수단입니다.
현재 남수단의 문제는 남수단과 수단을 모두 산유국이지만 석유는 주로 남부에 있는 데, 남수단이 내륙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석유수출이익의 분배문제, 석유가 풍부한 국경지대에 대한 국경분쟁 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자원 확보를 위한 부족간의 분쟁, 80%의 기독교 신자들간의 종파차이로 인한 학살도 일어나고 20%의 소수종교를 믿는 부족들도 불안에 떨고 있으며, 군벌이 난립하고, 석유를 제외한 산업기반이 없는 와중에 2014년 9월 16일에는 남수단 정부에서 모든 외국인 소유 회사 및 NGO를 자국에서 추방하겠다는 발표를 하여 거센 반발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어린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서지기 쉬운 국가.’라는 평가와 함께, "다른 국가들의 도움 없는 상태에서 남수단이 근대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서 독립 3주년인 현재 소말리아를 제치고 취약국가 1위에 올랐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1&aid=0002203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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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웅진 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