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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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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은 전라남도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북쪽은 노령산맥을 경계로 전북 정읍군·순창군 동쪽은 전남 담양군·광주 광역시, 서쪽은 전북 고창군·전남 영광군, 남쪽은 광주 광역시·함평군과 인접하고 있다. 경위도상의 위치는 35°11′N ∼ 35°31′N와 126°35′E∼126°56′E사이에 해당하고 남북의 길이는 36.7㎞ 동서의 폭은 약 22㎞이다. 북부·서부·동부 3면이 산악지대이며 군 중심부를 거쳐 남부로 빠지는 황룡강변과 동부 및 서부에 약간의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산악지대에서는 옛부터 감, 밤, 뽕나무, 닥나무 등이 재배되고 임산물이 많이 출산되었으며 평야지대에서는 근래 사과, 배, 포도, 단감과 딸기, 수박, 참외 등 원예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장성은 옛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남·북을 잇는 갈재(蘆嶺) 협곡으로 고속도로·철도·국도가 모두 지나고 있으며 동서를 잇는 올림픽도로의 담양 분기점에서 장성을 거쳐야 서해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장성의 형승을 조종생은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이 이루었다(山回水曲自天成)”라 하였고 박문수는 “전라도의 산수는 장성이 첫째라” 하였으며 조선 말기 김경찬은 황룡마을의 요월정에서 “조선 제일 황룡리”라 노래하였다.
고대에는 불교가 성하여 백양사와 같은 대찰이 자리잡고 조선시대에는 호남 유학의 본산지로 흥선 대원군은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했으며 국난에는 호남의병의 중심지였다. 이미 삼국시대에 부족국가가 형성된 곳이며 백제시대는 3개의 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직후에 진원현이 합병되고 구한말에 서부지역(구 삼계현)이 합병되어 오늘의 군세를 이루었다.
<장성군 연표>
시 대 |
연 대 |
주 요 사 항 |
고대 |
선사시대 |
지석묘가
군내 전역에 분포되어 있고 돌칼, 돌도끼, 돌화살, 동검 등이 발견됨 |
삼한시대 |
구사오단국이
진원면에 고랍국이 장성읍 부근에 임소반국이 삼계면에 비정됨 |
삼국시대 |
백제 |
군 내에 고시이현·구사진혜현·소비혜현
3개의 현이 있었으며 5방 중 남방구지하성을 진원에 비정함 |
통일신라 |
757 |
고시이현을
갑성군(岬城郡), 소비혜현을 삼계현(森溪縣), 구사진혜현을 진원현(珍原縣)으로
개칭하고 삼계현과 진원현은 갑성군에 예속됨 |
892 |
진성여왕
6년(892)부터 45년간 후백제에 속함 |
고려 |
936 |
고려의 영역이
됨 |
940 |
갑성군이
장성군으로 개칭 |
1018 |
삼계현과
장성군은 영광군에 진원현은 나주현에 예속됨 |
1172 |
장성현과
진원현이 독립되어 감무파견 |
1413 |
장성현과
진원현이 현감고을로 승격 |
조선 |
1600 |
장성현과
진원현 합병 |
1655 |
장성현이
도호부로 승격 |
1906 |
창평군의
갑향면이 장성군에 편입 |
근·현대 |
1914 |
영광과 함평에
속했던 삼서면·삼계면·동화면 장성군으로 편입되고 갑향면은 담양군으로
할양 |
1915 |
고창군 생촌리가
삼계면에 편입 |
1950 |
7. 23∼10.
22 까지 공산치하에 있었음 |
1975 |
장성댐 건설로
북상면이 없어짐 |
1983 |
남면 삼태리
치촌이 광주시에 편입 |
백양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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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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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과 현장 ◈몽고침입과 입암산성(笠岩山城)
고려 고종 43년(1256) 몽고 6차 침입시 송군비 장군이 주민들과 합세하여 입암산성에서 몽고군을 크게 이기고 관원 4명을 생포했다. 이 성은 정유재란 때 윤진 장군이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고 효종 때 크게 보수하여 호남의 보장지가 되었다.
◈임진왜란과 남문창의
임진왜란 때 호남 3대 의병의 하나인 장성남문창의는 3차 기병했는데 이때 의병청이 설치되었던 장성현의 남문터는 현 북일면 오산리 신흥역 부근이며 당시 의병 대표 72위를 모신 오산창의사와 창의비각이 북이면 모현리와 사거리에 있다.
◈천주교도 은신처
북이면 원덕리 갈재 부근 계곡과 백암리 수도골, 죽청리 망골, 언골, 대평이, 북일면 뙤얏 등 방장산 골짜기는 구한말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의 은신처였다. 충남 서천 병인박해의 순교자들과 이(李) 암브로시오 가족, 김수환 추기경의 조부(김보현, 요한)를 비롯한 많은 교도들이 이곳에서 피신하였다고 한다. 수도골에 장성 최초의 공소가 있었으며 많은 신자들이 살았으나 최근에 도시로 많이 떠나갔다.
◈동학혁명 황룡전적지(사적 제406호)
갑오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전주에 보내 이를 진압하려 했다. 양쪽 군대는 1894년 4월 장성군 황룡천변에서 격전을 벌여 동학군의 승리로 끝났다. 동학군은 이 여세를 몰아 전주 입성에 성공하여 조정과 화약을 맺게 되는데 이 황룡전투는 중앙의 정규군과 싸워 이긴 유일한 전투로서 동학혁명 사상 가장 큰 의의를 가진다. 황룡면 장산리 현장에 1996년 기념탑과 공원이 조성되고 1998년 4월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승전기념탑
◈한말 장성 선비들의 구국활동 유적
·장성향교 : 을미사변 이후 일어난 제 1차 의병 때 호남에서는 장성의 송사 기우만 선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장성향교는 이때 최초 모의 장소이며 격문 작성지이다.
·수연산 : 석수암 경술의 국치(한일합방) 이후 전국에서 다시 의병창의가 격렬하였다. 이때 장성의 성재 기삼연 선생은 황룡면 수연산 석수암에 호남창의회맹소를 설치하고 크게 활약하였다.
◈항일만세운동
현장 3·1운동이 일어나자 장성에서는 3월 10일 삼서면 소룡리 예배당에 주민 7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고 삼계면 사창리에서 김응주가 동지를 규합하여 시위하였으며 장성읍 성산의 정선유는 3월 12일 예배당과 학숙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군중 수백 명의 호응을 얻어 시위를 결행했다. 3월 25일 밤에는 장성읍 애국지사들의 주도로 각 면이 일제히 봉화를 올리고 산상시위를 하였다. 4월 3일 북이면 모현리 주민 200여 명이 만세 시위하여 주동자가 체포되자 이튿날 면소재지로 나가 장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격렬한 시위를 하였다. 이때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 12인의 위패를 모신 삼일사( 三一祠)가 북이면 모현리에 세워졌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내마 황진지(黃珍知)
통일신라 때 구질진현(현 진원면)의 내마(柰麻, 촌장)로 서라벌의 불사에 종이 기술자로 참여했다.
◈방등산가의 여인
『고려사』 악지 속악편에 나오는 백제가요 방등산가(方登山歌)는 방등산의 도둑에게 잡혀간 장성의 여인이 지아비를 기다리며 부른 노래다. 북이면 방장산(방등산)에는 지금도 도둑성터가 남아있다.
◈절효공 서능(徐稜)
고려 고종 때 북일면 작동 사람으로 문하시중이었는데 어머니가 병환에 눕자 벼슬을 버리고 겨울에 청개구리를 구하여 병을 낫게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가훈인 거가십훈을 남겼으며 세종대왕 때 『삼강행실록』에 올랐다.
◈홍길동(洪吉童)
소설속의 인물 홍길동이 연산군 때의 실존인물로 밝혀지고 있는데 황룡면 아곡리에는 옛날부터 홍길동 생가터라 전해 오는 곳이있다.
◈지지당 송흠(宋欽)
삼계면 정각 태생. 중종 때 청백리. 전라도 관찰사 부임 때 모친 및 부인과 함께 겨우 말 3마리로 행차가 간소했다고 하여 삼마태수라 하며 면앙정 송순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문인이기도 하다.
◈아곡 박수량(朴守良)
황룡면 아곡리 출신으로 명종 때 한성판윤과 호조판서를 지냈으나 너무나 청백하여 변변한 집 한 채가 없었다. 명종대왕이 탄복하여 99간 집을 지어 청백당이라 이름붙여 주었으며 세상을 떠나자 빗돌을 하사하였는데 아무 글도 새기지 않고 묘 앞에 그대로 세우니 오늘날 청백리의 표상으로 알려진 유명한 백비이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황룡면 맥동 출생. 인종 세자 때 시강원 설서를 지냈으며 인종이 승하한 후 벼슬에는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힘썼다. 송시열은 신도비문에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와 하서 김인후선생이(도학,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추고)태어났다고 썼다. 송강 정철의 스승이기도 하며 정조 때 문묘에 배향되어 전라도에서 유일한 선정이 되었다. 선생을 모신 필암서원은 호남의 대표적 서원이다.
◈오천 김경수(金景壽)
서삼면 출생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많은 선비들과 함께 3차에 걸친 장성남문창의를 일으켜 맹주가 되어 큰 공을 세웠다.
◈망암 변이중(邊以中)
어천 찰방 때 임진왜란을 만나 선조대왕의 의주파천을 호종하고 전라도 소모어사로 활약하면서 화차를 제작하여 권율의 행주대첩을 가능케 했다. 봉암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조영규(趙英圭)
북이면 백암 출생. 58세 때 양산군수로 임진왜란을 만나 송상현과 함께 동래성에서 순절하였다. 백암마을에 정려가 있고 부산 충절사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眞)
조선 6대 철학자 중의 한 분. 계속된 이·기논쟁을 유리론으로 극복하였다. 『납양사의(納凉私議)』, 『외필(猥筆)』 등의 저서가 있으며 ‘장안만목(目)이 불여장성일목’이라는 일화를 남겼다. 그의 많은 제자들이 한말 호남의병 활동을 주도하고 개화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산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송사 기우만(奇宇萬)
기정진의 손자이며 제자이다. 한말 제 1차 의병 때 호남의병 대장이 되어 항일 구국 활동을 전개했으며 후학 양성과 노사의 학맥을 이어가는데 크게 힘썼다.
◈성제 기삼연
노사의 당질이자 제자이다. 한말 1차 의병 때 송사 기우만의 휘하에서 군무를 맡았으며 2차 의병 때 황룡면 석수암에 의병청을 세우고 호남창의회맹소 총 대장이 되어 크게 활약하다가 왜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이상보(李相寶 1927∼?)
삼서면 출생. 호는 한실·죽헌. 동국대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명지대 교수,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한국고서연구회 회장. 『한국고시가연구』, 『한국가사문학연구』, 『사색의 편린』, 『초원의 백마』, 『눈들어 하늘을 보니』 등 저서 다수.
◈ 서능(徐稜, 생존시대:1213-1259, 출생지:북일동 작동마을, 유적지:모암서원, 용전사, 절효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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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흠(宋欽, 본관:신평(新平), 아호:지지당(知止堂), 생존시대:1459-1547, 출생지:삼계면 단삼리 정각, 유적지:수망사(壽罔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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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량(朴守良, 본관:태인(泰仁), 아호:아곡(莪谷), 생존시대:1491-1554, 출생지:황곡면 아곡리, 유적지:백비(白碑), 청심당(淸心堂), 모암서원(慕岩書院), 수산사(水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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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후(金麟厚, 본관:울산(蔚山), 아호:하서(河西), 생존시대:1510-1560, 출생지:장성현 맥동리, 유적지:필암서원(筆岩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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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이중(邊以中, 생존시대:1546-1613., 유적지:봉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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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정진(奇正鎭, 아호:노사(蘆沙), 생존시대:1798-1879., 출생지:전북 순창 구수동, 유적지:고산서원(高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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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길동(洪吉童, 생존시대:조선시대(연산군), 출생지:전남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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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의 문화유산 ■사적
◈필암서원
제242호, 황룡 필암리
◈백자도요지
제377호, 삼서 대도리
◈입암산성
제384호, 북하 신성리
◈동학 전적지
제406호, 황룡 장산리
■ 보물
◈필암서원 고문서
제587호, 필암서원 소장
■ 천연기념물
◈비자림
제153호, 백양사 주변
■ 유형문화재(도지정)
◈원덕 미륵석
제13호, 북이면 원덕리
◈백양사 극락보전
제32호, 북하면 약리수
◈대웅전
제43호, 백양사
◈사천왕문
제44호, 백양사
◈소요대사 부도
제56호, 백양사
◈기옹영정
제67호, 안평읍
◈장성 향교
제105호, 성산읍
◈남문창의 비
제120호, 북이면 사가리
◈내계리 5층 석탑
제131호, 삼계면 내계리
◈서능 정려비
제162호, 북일면 박산리
◈죽림사 고문서
제163호, 북이면 만무리
◈봉암서원
제54호, 장안읍
◈고산서원
제63호, 진원면 진원리
◈요월정
제70호, 황룡면 황룡리
◈조영규 정려
제78호, 북이면 백암리
◈청계정
제97호, 진원면 산동리
◈만곡사
제98호, 삼서면 보생리
◈기영정
제99호, 삼계면 사창리
◈관수정
제100호, 삼계면 내계리
◈진원 5층 석탑
제101호, 진원면 진원리
◈수산 5층 석탑
제103호, 유탕읍
◈백비
제105호, 황룡면 금호리
◈진원성
제112호, 진원면 진원리
◈모암 7현 유적
제119호, 서삼면 모암리
◈금성나씨 삼강문
제128호, 삼서면 우치리
◈익제 영정
제164호, 삼서면 흥정리
◈청유암 관음정
제179호, 백양사
■향토문화재
◈영사정
장안읍
◈기옹정
장안읍
◈야은제
백계읍
◈나옹석불
유탕읍
◈고재봉 신도비
영천읍
◈윤진 순의비
입암산성 내
◈ 입암산성(笠岩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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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덕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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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향교(長城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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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암서원문서일괄(筆巖書院文書一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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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암서원(筆岩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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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비(白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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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암서원(鳳巖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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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서원(高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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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불총림 백양사(古佛總林 白羊寺, 소재지: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0
, 비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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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나무(榧子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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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문창의비(南門倡義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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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전적지(黃龍戰跡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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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옹영정(碁翁影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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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능정려(徐稜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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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월정(邀月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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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규정려(趙英圭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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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정(淸溪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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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곡사(萬谷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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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영정(耆英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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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수정(觀水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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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 오층석탑(壽山 五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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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원성(珍原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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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현유적지(七賢遺蹟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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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나씨 삼강문(錦城羅氏 三綱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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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사정(永思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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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사 극락보전(白羊寺 極樂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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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사 대웅전(白羊寺 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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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사 사천왕문(白羊寺 四天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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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대사부도(逍遙大師浮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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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활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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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생활민속 ■세시풍속
설과 추석은 큰 명절로 귀성인파로 붐빈다. 2월 하래드랫날, 3월 삼짇날은 거의 없어졌다. 4월 초파일은 절에 가서 등불을 켠다. 5월 단오, 5월 유두도 없어졌다. 7월 칠석보다는 백중 때 하루 쉬는 마을이 많다. 중구는 없어졌으나 동짓날 동지죽은 지금도 쒀먹는다.
■관혼상제
◈관례
서민들은 행하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 댕기 풀이는 많이 하였다.
◈혼례
1960년대까지 구식 결혼을 많이 했으며 신부집에서 혼례를 올렸으나 신부집이 가난하면 신랑집으로 데려다가 식을 올리기도 하였다.
◈상례
대부분 3일 출상하고, 3년 복을 입었으나 1980년대부터는 대부분 기년 탈복한다.
◈제례
제수, 시간, 절차 등이 편의 위주로 많이 변했으며 합동제사도 많이 지낸다. 전통 예법에 어긋나는 사례가 많다.
■집성촌
◈행주 기씨, 황주 변씨, 울산 김씨, 광산 김씨를 4대 토성으로 보며 진원 박씨, 청송 심씨, 장흥 고씨, 금성 나씨, 이씨(함평, 경주, 전주, 봉산), 하음 봉씨, 송씨(신평, 진천), 수원 백씨, 강릉 유씨, 문화 류씨, 고령 신씨 등도 주요 성씨이다. 오래된 성씨로는 철원 주씨, 장성 서씨, 황주 변씨 등이 600년 이상 살아왔으며 가구수는 김해 김씨, 광산 김씨, 전주 리씨 순이다. 집성촌으로 울산 김씨는 황룡면 맥동 북하면 중평, 황주 변씨는 장성읍 장안·북일면 오산, 광산 김씨는 황룡면 황룡 삼계면 상도리 등지에 모여산다.
■소리
민요는 남자들의 들노래와 만가, 여자들의 밭노래 길쌈노래 등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면 단위에서도 잔칫날 북 한가락치는 것이 예사였다. 만가는 대부분 4마디 소리를 하였으나 진원·남면은 광주와 같은 6마디 소리를 하였다.
■농악
장성군은 호남 우도농악에 속하였다. 특히 우도농악의 원조인 최화집이 삼서면 두월리 사람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 장성군 삼서·삼계와 영광군까지 크게 이름을 떨쳤다.
■제(祭)
◈서원·사우 제사
옛날에는 많은 서원·사우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음과 같이 20여개가 있다.
<장성군 서원·사우제사 현황>
·향교 공자 외 창건:태조 3, 제일:2월, 8월 초정, 장성읍
·필암서원 김인후 외 1인 창건:선조 23, 제일:2얼, 8월 중정, 황룡면
·고산서원 기정진 외 8 인 창건:1924, 제일:3월, 9월 중정, 진원면
·봉암서원 변이중 외 6인 창건:숙종 23, 제일:2. 20·3. 20, 장성읍
·수산사 박연생 외 5인 창건:순조 32, 제일:3.5·9.5, 황룡면
·오산창의사 김경수 외 71인 창건:정조 18, 제일:2.27, 북이면
·죽림서원 이수 외 1인 창건:선조 23, 제일:3.4, 북이면
·사산사 공자 외 5인 창건:1910, 제일:2.18 ·8.27, 북이면
·서림사 기우만 외 2인 창건:1970, 제일:2.24, 북이면
·송계서원 유창 외 4인 창건:1546, 제일:3.15, 북이면
·용전사 서릉, 창건:선조 20, 제일:3.10, 북일면
·양계사 심덕부 외 2인 창건:순조 34, 남면
·동강사 김준식, 창건:1974, 황룡면
·도산사 고중연, 창건:1976, 제일:3.9, 삼계면
·가산서원 이제현 외 1인 창건:영조 42, 제일:8.10, 삼서면
·만곡사 박팽년 외 2인 창건:정조 15, 제일:3.20, 삼서면
·수산사 조헌 외 2인 창건:1967, 제일:3.6, 삼서면
·두동사 이양 외 4인 창건:철종 11, 제일:10.9, 삼서면
·표의사 심우신, 창건:숙종 29, 제일:8.21, 삼서면
·어랑사 김겸 외 4인 창건:1816, 삼서면
◈홍길동 추모제
황룡면 아치실 홍길동 생가터 에서 1999년부터 연1회 행사
◈동제(洞祭)
장성 지방에서는 주로 ‘당산제’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몇개 마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장성군 동제 현황>
·삼계면 생촌 천륭당산(노송):뒷산, 샘 2개, 할아버지당산(팽나무)-마을중앙, 할머니당산(입석)-마을입구, 제일:정월 보름날 새벽
·장성읍 유탕리 천륭당산(느티나무)-마을뒷편, 할머니당산(입석 2)-마을중앙, 아들당산(느티나무)-마을입구, 제일:정월 보름 새벽
·북하면 연동 천륭당산(노송10여주)-마을뒷산, 외당산(느티나무)-마을입구, 제일:정월 보름
·북하면 월성 당산(느티나무)-마을 앞, 제일:정월 초순
·북하면 단전 천룡당산(감나무 2주)-마을 앞, 외당산(느티나무)-마을앞, 당산(입석 2기)-당산나무 옆, 제일:정월 보름
·북하면 송정 천륭당산(소나무)-마을 뒷산, 당산(느티나무)-마을입구, 제일:정월 보름
·북하면 강선 천제단-마을 서쪽 천제등, 제일:정월초 택일
·북이면 목란 천륭당산(소나무)-마을뒷산, 돌당산(입석 2)-마을입구, 당산(느티나무)-입석옆, 제일:정월 4일
·북일면 금곡 천륭당산(할아버지당산)-마을 뒤 노송, 할머니당산(62그루 나무)-마을입구, 제일:정월 보름
·서삼면 해평 마을 뒷산 밭-산신제, 제일:정월 14일밤
·황룡면 우라리 장승제-3년마다 마을입구에 장승을 세우고 제를 지낸다, 제일:2.1
·동화면 구림 할아버지당산-마을중앙느티나무, 할머니당산-선독굴 귀목(큰망구), 평가테 귀목(작은망구), 제일:정월 보름
·삼서면 석마리 말바위-은행정뒤 밑바위, 제일:1.14, 새벽
◈백암산 국기제
옛날 조정에서 국태민안을 기 원했던 제. 1983년에 복원, 년1회 백양사 국기단에서 행사
백암산 국기제
◈ 생촌당산제(生村堂山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매년 정월 15일, 전승장소: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개최빈도: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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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리 장승제(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음력 2월 하드랫날, 전승장소:장성군 우라리, 개최빈도:3년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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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마리 말바우제(石馬里 馬岩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매년 음력 1월 14일 4시경, 전승장소:장성군 삼서면 석마리 마령, 개최빈도: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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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사 당산제(白羊寺 堂山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음력 1월 15일(現 정월 초3일), 전승장소:장성군 가인마을과 백양사, 개최빈도: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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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탕당산제(流湯堂山祭, 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음력 정월 14일 밤 8시경, 전승장소:장성읍, 개최빈도: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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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일면 갑동 기뺏기 풍장놀이(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하절기 농사일 끝나는 만드리 때, 전승장소:장성군 북일면 갑동(甲洞), 개최빈도: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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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리 동계 짐대세우기(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행사시기:음력 2월 1일, 전승장소:장성군 동화면 동호리 동계(東溪), 개최빈도: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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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설화 ◈누에의 전설
삼한시대 진원면에 있었던 구사오단국이라는 나라에 적군이 쳐들어 왔다. 임금님은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자는 공주와 결혼을 시키겠다고 하였는데 적장을 죽인 것은 말이었기 때문에 공주와 결혼시킬 수가 없어 말을 죽였다. 공주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가죽을 말리고 있는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말가죽이 공주를 감싸고 날아가 버렸다. 몇 달후 말가죽이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수많은 벌레가 나와 나무의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바로 누에와 뽕나무였다. 누에의 머리는 말을 닮고 몸은 공주의 살결을 닮아 희고 아름답다고 한다.
◈갈애바위 전설
갈애(蘆花)는 목란 마을에서 태어나 기생이 되었는데 미모가 빼어나 고을 원들이 정신이 팔려 민정을 돌보지 않으니 조정에서 암행어사를 보내어 처벌하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노화는 미리 어사를 유인하여 정을 맺는다. 며칠 후 어사는 속았음을 알았으나 어찌 할 수 없어 임금께 사실을 고하고 노화를 소실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갈애가 죽은 뒤 처용암이라 불러오던 바위가 갈애바위로 바뀌었다.
갈애바위
◈낙화암의 전설
황룡면 요월정 아래 절벽으로 임진왜란때 황룡 마을에 살던 진씨 집안의 여인들이 왜군이 쳐들어오자 모두 이 바위에서 강물에 투신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일비장(一臂葬, 팔무덤)
정유재란 때 하서 김인후 선생의 손자 며느리이고 고봉 기대승 선생의 딸인 행주기씨는 친정으로 피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놈들에게 팔목을 붙잡혔다. 부인은 몸에 지녔던 비수를 꺼내어 잡힌 팔목을 잘라 버리고 냇물로 뛰어 들었다. 그 뒤 부인의 시체를 찾을 수 없어 잘라진 팔 하나만 정성껏 장사지내 주었다. 이 무덤을 사람들은 일비장이라 부르며 부인의 거룩한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신거무장 전설
늙은 부부에게서 태어난 신거무는 힘이 세고 난폭하여 걸핏하면 행패를 부렸다. 이때 진원고을에는 현감이 부임해 오면 이유 없이 죽음을 당하였다. 마침 담양 송정승의 아들이 자원하여 부임하니 밤에 홀연히 한 여인이 나타나 신거무에게 억울하게 죽은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튿날 현감은 신거무를 사형에 처하였는데 그날 밤 현감도 시체로 변해 있었다. 현감의 장례 행렬 뒤에 신거무의 혼령이 시퍼런 칼을 들고 따라 오는 것이 보였다. 송정승은 회초리로 관을 때리면서 너 왜 신거무를 죽였느냐고 호통을 쳤다. 신거무는 오늘 대감댁 가족을 몰살하려고 했는데 대감의 덕에 감복하여 그냥 돌아가니 신가리 마을에 시장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송정승은 이 사실을 나라에 고하여 장이 서게 되었는데 장날 제일 늦게 돌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죽었다고 한다.
◈그 외 백양사 전설, 진묵대사 전설, 영천굴 전설, 황새들 전설, 붓바위 전설, 황금재 전설, 청계정 전설, 서산보 전설, 장군굴의 기바위 전설, 학정봉 전설, 가랫재 전설, 전일귀 전설, 못재 전설, 방울샘 전설 등이 있다.
◈만가(삼계면)
산지조종은 곤륜산이요 수지조종은 황해수라 / 곤륜산 일지맥이 떨어져서 어디로 간줄을 몰랐더니 / 의주 압록강 건너와서 백두산을 기봉하였다 / 백두산 삼기고 남은 명산 / 평안도로 내려와서 묘향산을 삼기고 / 남은 명산 황해도로 내려와서 구월산을 삼기고 / 남은 명산 강원도로 내려와서 일만이천봉 기봉하여 금강산을 삼기고 / 남은 명산 만호 장안터가 삼겨 있더라 / 왕심은 청룡이요 만리재 백호로다 / 한강이 수구를 막아 천부금탕 이루었으니 / 만호장안이 아니냐 / 장안터 삼기고 남은 명산 충청도로 나려와서 계룡산을 삼기고 / 남은 명산 고창의 방등산 삼겨있고 / 남은 명산 장성의 백양산 기봉하였다 / 백양산 일지맥이 떨어져서 요내 신후지지가 삼겨있더라 / 무학대사가 요내 신후지지 법규를 마련하는데 / 뒤에 주산을 돌아다보니 석가부처님이 자운 한 듯 하고 / 앞에 황룡강을 건네다보니 아홉룡이 성을 내어 백파만 치드라 / 천리행룡의 일석지가 요만하면 내의 신후지지 분명하도다.
◈향언(鄕言:지방속담)
·이만하면 황룡 부잣집이 부럽지 않다(황룡이 니냐 나냐) 잘 먹었을 때
·신거무장 파하듯 하다 흐지부지 빨리 끝나는 일
·아이고 추워라 징검장(신거무장) 다리가 달달 떨린다
·황룡장에서 빰 맞고 못재에서 눈 흘긴다.
·장성 가서 글 자랑말라
·생거장성 사거순창
·소가 죽을라면 법성포 놈이 침논다.
·이비야 무서움 주는 말. 정유재란 때 귀, 코 없는 시체가 많아 생김
◈방언(사투리)
·연기(표준어):냉갈(방언)
·굴뚝(표준어):귀뚝(방언)
·요전에(벌써)(표준어):폴세께(방언)
·냉이(표준어):나숭게(방언)
·질경이(표준어):빼뿌쟁이(방언)
·미꾸라지(표준어):옹구락지(방언)
·채소밭(표준어):넘세밭(방언)
·벽(표준어):벼랑박(방언)
주민의 종교생활 ◈유교
장성은 호남의 대표적인 유향이다. 고려 때 서능은 삼강오륜이 근간인 거가십훈을 남겼으며 김인후는 정조 때 문묘 배향을 받고 기정진은 조선조 성리학의 마지막 대가이다. 한말 호남 의병의 중심지이며 필암서원을 비롯한 20여 개의 서원·사우가 유지되고 있다.
◈불교
백제 무왕 33년(632)에 창건된 백양사를 비롯한 26개의 사찰이 있으며 200여개의 절터가 있다.
◈천주교
1839년 기해박해 때부터 북이면 방장산에 교인들이 숨어들어 김수환 추기경의 조부(김보현 요한) 등이 이곳에 피난하였다. 1884년 수도 공소가 생긴 이래 1935년 사거리 공소 1937년 장성읍 본당이 설립되었다. 현재는 장성 사거리 사창 상무대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각 종교의 현황>
·개신교 교회 76, 교직자 88
·천주교 성당 5, 교직자 8
·불교 사찰 26, 교직자 156
·유교 교당 20
·원불교 교당 1, 교직자 1
·기타 교당 5, 교직자 5
주민의 생활권역 ◈5일장
황룡장, 사창장, 사거리장이 있으며 황룡강은 우시장이 유명하다.
◈상무아파트
삼서면 학성리에 상무대가 옮겨온 후 삼계면 사창리에 아파트(1,350세대)가 들어서고 영외 PX(값싼 매장)와 음식 숙박업소들이 주변에 많이 생겨났다.
◈동화농공단지
1998년 동화면 구림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현재 15개 업체가 대부분 전자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역의 별미음식 ◈전중어탕(콩잎국)
옛날에 장성 콩잎은 맛이 좋아 진상품이었는데, 월평 울산김씨의 전통 음식으로 전중어탕(콩잎국)이 유명하였다.
◈천어요리
옛날부터 장성의 천어는 맛 좋기로 유명했다. 요사이도 장성호 주변에는 메기·장어의 구이와 찜, 메기탕, 추어탕, 동자개탕, 용봉탕 등 천어요리 전문점이 들어서 광주 등지에서 많은 식도락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산채정식
백양사 주변에는 많은 산채와 버섯들이 출산되었다. 근래 국립공원으로 개발되면서 산채정식이 전국에 알려져 백양사 특미로 자리 잡았다.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장성 3백(三白)
누에고치·한지·한천·양잠은 이미 삼한시대의 누에전설이 전해오며 일제시대와 1970년대에 매우 성하였다. 한지는 통일신라 때 종이 기술자가 경주의 불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산악지대에 닥나무가 많이 재배되고 지소(종이공장)가 많았다. 한천은 기후 조건이 좋아 일제 때부터 1980년대까지 가공되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토산품
화선지·시멘트·소주가 있다. 장성읍 상오리 덕성 한지 공장에서 화선지가 생산된다. 조선시대에도 북하면 월성리 등지에서 바위를 불에 구워 회를 만들어 팔았는데 장성읍에 고려시멘트 공장이 들어섰다. 그리고 목포의 보해양조 공장이 물 좋은 장성으로 옮겨와 주질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특산물
곶감·단감·사과·포도·딸기 등이 있다. 원래 곶감은 북하면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었는데 요새는 군 전역에 단감이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장성 사과는 돌연변이가 나와 국내 최고의 품질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황룡면·동화면 황토질 밭의 포도는 당분 함유량이 매우 많으며, 광주 인접 지역에 원예작물이 크게 성하고, 딸기는 질이 좋아 구매 경쟁이 심하다.
◈전통 목공예
장성읍에서 설석철이 2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가구를 제작하고 있는데, 서울 강남에 전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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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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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예술행사 ◈장성군 민속놀이 한마당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전후 장성문화원 주최로 8년째 개최된다. 일반부와 학생부로 나누어 각 읍·면 대항과 학교 대항으로 공설운동장과 군민회관, 문화원에서 열린다. 종목은 굿치기, 연띄우기, 윷놀이, 투호, 널뛰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씨름, 바둑, 장기 등이다.
민속놀이 한마당
◈문향축전
[상세정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글짓기, 시화, 사생, 붓글씨, 시낭송 개최. 매년 어린이날 전후, 장성문화원 주최로 20회째 개최되어 문향의 맥을 잇고 있다.
◈백양단풍축제
[상세정보] 전국 제일의 단풍 명소인 백양사에서 단풍 절정기인 10월 말경에 장성군 주최로 열린다. 국기단에서 봉행하는 백암산 국기제를 비롯하여 등반대회, 가요제, 민속놀이, 우수 농산물 전시판매, 사진전, 단풍분재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6년째 열리고 있다.
백양단풍축제
◈홍길동 축제
[상세정보] 홍길동이 장성 출신 실존인물임이 증명되면서 장성군에서 주최하여 2년째 열리고 있다. 황룡면 아치실 생가터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공설운동장에서 홍길동 선발대회·민속놀이 음식장터 등이 열린다.
지역문화예술단체 ◈국기제보존위원회
1983년 창립, 장성읍 영천리, ☎ (061)392-2796, 회원수 23명
◈문인협회 장성군지부
1990년 창립, 북이면 사거리, ☎ (061)392-8248, 회원수 60명
◈국악협회 장성군지부
1990년 창립, 장성읍 영천리 973-9, ☎ (061)392-5775, 회원수 83명
지역연고 예술인 ◈김우진(金祐鎭, 1897∼1926)
극작가, 연극이론가. 호는 초성(焦星) 수산(水山). 장성군수 성규의 아들로 당시 군청 관아에서 태어났다. 1924년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48편의 시,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남김. 연극활동을 하다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과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했다.
◈김영중(金泳中, 1926∼ )
황룡면 출생. 전시회 70여회.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독립기념관 석조군상 제작, 문화훈장 홍익인상 수상, 광주 비엔날레 상징 무지개다리 제작, 미술진흥연구회 공동대표.
◈임권택(林權澤, 1936∼ )
장성읍 출생. 1956년영화계 투신, 1962년 「두만강아 잘있거라」 로 데뷔「족보」, 「만다라」, 「길소뜸」,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 등을 내놓아 한국의 대표적 감독으로 인정 받음. 20세기 한국을 빛낸 문화예술인으로 선정
◈현당 김한영(玄堂 金漢永, 1914∼1988)
서삼면 출신. 동양화가 김은호 제자, 선전입선 호남의 대표적 인물화가.
지역소재 예술작품 ◈백제가요 방등산가
북이면 죽청리 방장산 속초봉의 도둑성에서 장성의 여인이 부른 노래로 알려지고 있다.
◈소설 「시장」(전병순 작)
북이면 사거리장
◈영화 「옥단춘」 촬영지
백양사 일원
◈영화 「선화공주」 촬영지
백양사 일원
◈영화 「삼국대협」 촬영지
백양사 극락교 부근
◈영화 「개벽」 촬영지
남창계곡
◈영화 「태백산맥」 촬영지
북일면 금곡마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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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광, 여가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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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 ◈내장산 국립공원 백양사지구
1971년 국립공원 지정
◈백양사
주변 경치가 뛰어나 옛부터 남금강이라 애칭했으며 전국 제일의 단풍명소로 알려져 있다. 백양사는 백제 고찰로 18교구 본산이며 고승 대덕이 많이 배출되었다.
◈방울샘
장성읍 오동촌 방울샘은 옛부터 호남 명천으로 알려진 신기한 샘이다. 이 샘물이 붉게 변하면 국난이 온다고 한다. 동학혁명, 6·25, 5·18, 광주 의거, I.M.F 때도 물이 붉게 변했다.
◈입암산성과 남창계곡
백양사 계곡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상에 국가사적 제384호 입암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몽계폭포를 비롯한 절경들이 6대 계곡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입암산성
◈국민관광지 장성호
1976년에 완공한 대안거리 8㎞의 인공 호수인데 1979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잉어, 초어, 백연어, 붕어 등이 많이 살고 있어 전국에서 낚시꾼이 모여들며 보트와 수상스키장이 있다. 하류의 미락단지를 비롯한 천어 전문음식점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고 상류에 잔디밭과 야외공연장도 마련되어 있다.
장성호
◈동학농민군 황룡전투 전적지
동학 혁명사상 가장 중요한 황룡전투 현장이 사적 406호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홍길동 생가터
소설 속의 홍길동이 장성 출신 실존인물임이 학계에서 밝혀지고 있으며 옛부터 홍길동 생가터로 전해오는 황룡면 아치실에 생가 복원계획이 수립되었다.
◈축령산 조림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조림지로서 30년 이상의 편백 삼나무 숲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서삼면의 조림지와 북일면 금곡마을은 영화 「태백산맥」 촬영지이기도 하다.
◈필암서원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호남의 대표적 서원, 사적 제242호이며 고문서가 보물 제587호이다. 장성은 선비고을 답게 20여 개의 서원·사우가 있다.
필암사원
관광시설 ◈백양관광호텔
북하면 약수리 백양사 입구 소재 객실 57실의 1급 숙박시설 회의실, 예식장, 세미나실 완비 ☎ (061)392-0651∼5
◈숙박ㆍ음식
백양사 부근에 많은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있음.
관광코스 ◈일주코스
방울샘 → 장성호 → 백양사 → 남창골 → 원덕리 미륵석불(갈애바위) → 오산창의사 → 삼일사 → 서릉비각 → 봉암서원 → 필암서원 → 홍길동생가터 → 백비 → 동학황룡전투승전비 → 고산서원
◈백양사 코스
백양사 → 국기단 → 영천굴 → 운문암
◈입암산성 코스
남창골 → 몽개폭포 → 남창골 → 입암산성 → 은선동 → 남창골
◈축령산 코스
요월정 → 동학탑 → 필암서원 → 백비 → 홍길동생가터 → 장성호 → 향교 → 방울샘
관광쇼핑 ◈덕성한지 공업사
화선지 제작판매. 장성읍 상오리 ☎ (061)393-4900
◈이조가구 공예사
전통 장롱, 궤, 바둑판 등 제작판매, 장성읍 대창동, ☎ (061)393-2192
◈솔잎차
솔잎차, 솔잎술, 솔잎비누 제조판매, 북이면 수성리, ☎ (061)392-7108·7410, 393-3951, http://www.paeky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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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문화시설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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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시설 ◈대화관광농원
1994년 개장, 야외수영장 500평 눈(물)썰매장 400평. ☎ (061)393-0303
◈애플썰매장
1989년 개장, 1500평. ☎ (061) 394-0141
◈장성볼링장
1993년 개장, 8레인. ☎ (061)392-2269
관광안내소 ◈장성군청 문화관광과
☎ (061)390-7224, http: //www.changsung.chonnam.kr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지구사무소
☎ (061) 392-7088·7288
도서관 ◈장성공공도서관
장성읍 영천리 1070, ☎ (061) 393-6674, 300석, 1970년 개관
공연장 ◈군민회관
장성읍 영천리, 1987년 개관, 약 800명 수용. ☎ (061)390-7560
◈야외 공연장(장성호)
1989년 개관, 북하면 쌍웅리 국민관광지 내,장성군 문화관광과 ☎ (061)390-7224
문화원 ◈장성문화원
1959년 창립. 장성읍 영천리 179-9번지 ☎ (061)392-1796 원장 이상용
☞ 장성군 관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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