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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홍상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봉준호 감독.
우리는 왜 거장의 말에 귀기울이나. 아마도 그건 그들의 ‘말’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시대와 영화에 대한 거장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신작 <기적>을 들고 부산을 방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취재하던 <씨네21> 모 기자가 눈물을 머금을 정도로 감동적인 특강을 진행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스크린에서의 모습처럼 우아하고 품위있는 이야기를 들려줬고, 뤽 베송의 마스터클래스는 두 시간 내내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홍콩 독립영화계의 거장 욘판은 특강에 앞서 오랜 벗이었던 고 장국영의 사진을 영화제쪽에 기증하며 객석에 감동의 물결을 선사했다.
한편 올해 영화제에선 학술대회인 부산영화포럼이 처음으로 출범했다. 포럼에 참석한 세계 영화인들은 1회 포럼의 주제인 아시아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봤다. 그 열기의 현장을 지면에 옮긴다. 첫 타자는 10월10일 오후 5시30분 부산영화포럼 3부에 대담자로 나선 홍상수, 봉준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다. 이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이수원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 필진들(현 편집장 슈테판 들로름, 전 편집장 티에리 주스와 샤를 테송)과 함께 아시아영화의 현재와 각자의 영화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 홍상수, 봉준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슈테판 들로름_부산영화포럼에서 이 세분의 감독을 모시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말하고 싶다. 홍상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봉준호 감독은 <카이에 뒤 시네마>가 가장 열렬하게 지지해온 아시아영화를 만들어온 분들이다. 홍상수 감독은 현대적이면서도 에릭 로메르 감독과 유사한 경향의 작품을 만든다. 지난해 <옥희의 영화>를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봤는데 4개의 에피소드가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이 2003년 파리에 소개됐을 때 우리 모두가 이 영화를 좋아했다. 그 이후에도 <괴물>과 같이 다양한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 영화를 통해 폭발적인 힘을 보여주고 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카이에 뒤 시네마>와 아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엉클 분미>가 칸에서 상영되기 이전 우리는 <엉클 분미>의 제작기를 보도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에는 프랑스 개봉작이 아닌데도 우리 잡지의 커버 기사로 여러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했다. 그 이유는 아핏차퐁 감독이 영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화적인 요소와 음향효과, 힘있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상실했던 무언가를 다시 찾아주고 있다.
티에리 주스_세 감독님께 질문이 있다. 올해 우리는 부산영화포럼에서 계속 아시아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아무도 질문을 안 했다. 아시아영화가 정말 존재하긴 하는가? 유럽의 시각에서 부르기 쉽게 아시아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세 감독님이 아시아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시아영화라는 것에 동의하는지, 혹은 전혀 관심이 없는지 궁금하다.
홍상수_일단 나는 아시아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아시아에서 만든 영화들의 공통점은 ‘아시아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만드는 재미밖에 없는 듯하다. 나는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영향을 받고 스승을 찾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시아영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카테고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_아시아영화에 대해 홍 감독님과 비슷한 생각이다. 특히 요즘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더 모호해지거나 굉장히 보편적으로 변했다. 이것이 나쁜 현상인지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아시아영화’라는 의미가 많이 희석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시아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타이영화를 다른 영화인들보다 더 잘 알 뿐이다. 그러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자면 대부분의 영화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기존 영화로부터 복제에 복제에 복제를 거듭해서 시나리오의 맥락이나 줄거리가 너무나 보편적으로 변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영화가 스타일이 비슷해지면서 국적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이 있듯, 나는 영화의 국적도 상상 속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시아 국가의 영화마다 변함없이 등장하는 특징적인 요소들이 있다. 타이영화에는 종종 유령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내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만 동시에 타이영화의 요소들을 품고 있는 나의 영화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인가, 타이영화인가? 나는 그런 점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이 내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_나도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아시아 사람이며 아시아영화를 만든다는 자의식을 가진 채 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감독이기 이전에 영화팬으로서 내게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한국의 김기덕 감독과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을 말하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어릴 때부터 70년대 미국영화와 히치콕 영화도 굉장히 좋아했다. 이미 그들 모두의 피가 내 몸 속에서 뒤섞여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추출하거나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 아시아영화를 규정하기 이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해외영화제에 가면 홍상수, 이창동, 김지운 감독님 등과 나의 작품을 ‘한국영화’로 뭉뚱그려 질문을 받게 될 때마다 난감하다. 홍상수 감독님이든 이창동 감독님이든 김지운 감독님이든 각자의 작품세계가 이미 철저하게 다른 우주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한국영화라는 틀로 묶어서 얘기해야 할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세계관과 우주관이 별개로 존재한다. 더불어 나에게는 영화의 족보 안에 넣을 수 없는, 카테고리 분류가 불가능한 영화들, 돌연변이 같은 영화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티에리 주스_아주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다. 영화의 국적에 대해 얘기하는 건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잡종, 혼종 영화는 1950년대 이후부터 나타났던 경향이다.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기요시 역시 1930년대 영미권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셀리니나 파스빈더처럼 자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명감을 느끼는 영화감독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한국사회라는 맥락을 떠나서 얘기할 수 없는 영화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괴물>에 드러난 국적의 정체성에 대해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
봉준호_<괴물>은 몬스터 장르의 영화다. 이건 미국과 일본 선수들의 장르지, 한국의 장르는 아니다. 나는 괴수물을 만들며 가장 한국적인,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관계와 혼돈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일부러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컨셉과 전략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은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를 찍을 때 저절로 내 안에서 나오는 듯하다. 미국적인 장르를 좋아하고 많이 보지만 그 장르의 관습이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 절대 적용이 안된다. 필름누아르도 미국의 금주법 시대나 갱스터라는 원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장르였다. 한국의 전라도 조폭과는 분위기와 지역차가 너무 크지 않나. 나는 장르의 규칙이나 관습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망가지는가, 장르의 전통이 한국에 와서 어떤 수모 내지는 굴욕을 당하는가, 그런 점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장르를 해코지하고 싶은 충동으로 영화를 만든다. 아마 그 틈새로 내 주변에서 목격했던 한국사회의 모습들이 보이는 듯하다. 그건 리얼리스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설파하려는 목적 때문이 아니다. 장르를 비트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홍상수_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결과물로 카테고리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어떨 때는 한 작품에 대해 깊이 파고들겠다는 의지 때문에 영화의 한 부분일 뿐인 작은 요소를 보고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는 듯하다. 그렇게 영화나 영화인을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는 건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영화 감독으로, 아시아영화 감독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 감독이 자기만의 요소를 가지고 만든 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수원_카테고리 이야기가 나와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님께 질문을 드린다. 감독님의 영화가 수용되는 태도에 있어서 타이와 해외의 간극이 크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점이 다르고 왜 다른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_내 영화에 대한 호응도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타이보다 다른 나라에서 호응이 좋았다고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타이는 중앙집권제도가 강한 작은 나라다. 타이 국민들은 다양한 영화에 노출되는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 자체가 다르기에 비교가 불가능한 지점이 있다. 좀더 시간이 흘러야 타이 국민들이 다양한 영화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아시아영화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덧붙이자면 아시아적인 것과 아닌 것에 대해, 아시아영화의 규칙에 대해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가를 예로 들어보겠다. 타이 화가가 인도로, 아프리카로 가서 그림을 그린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영화는 자본과 제작 시스템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영화처럼 공동작업이 필요한 경우, 투자자들 입장에서 국적을 못박아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이 자본이 조금만 투자되어도 타이영화라고 부르지 않나. 이런 식의 시스템을 보면, 아무리 나라마다 언어와 문법 체계와 어순이 달라도 우리 영화인들이 활동 기반으로 삼는 환경은 비슷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아시아영화인지를 정의하는 건 더더욱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글:씨네21 취재팀 사진:씨네21 BIFF 데일리 사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