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창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것에 대한 페북 반응을 대충 보았다. “(안철수의)진보적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없다.” , 반대로 “명확하게 ‘중도’를 표방하지 않고 자유주의에 ‘진보’를 붙여서 진보세력을 의식했다.” 등의 비판도 보인다. 자신의 색안경에 따라 코끼리를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어떤 언론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유시민이 처음 주창했다고 소개하는데 조금 어이가 없다.
... 한두 해도 아니고 10여 년 전부터 논의되던 개념이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널리 소개되어 있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 시장 경제를 인정하는 자유주의 내에서도 편차가 없을 수가 없다.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타협, 연대에 대한 입장으로 ‘상대적 진보성’이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안철수 측이 ‘진보적(인) 자유주의’를 하겠다고 하는데, 굳이 그것이 진보적일 수 없다고 흥분하는 것은 안철수가 ‘이념적 좌파’가 아니므로 진보적이지 않다는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즉 ‘안철수는 좌파가 아니다.’라고 떠드는 꼴인데, 그렇다고 ‘안철수가 좌파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로 안철수를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 아니다. 오랜 시간 ‘진보’를 독점, 표방해 온 ‘좌파’분들이 손으로 가슴을 매만지면서 그간의 활동을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들은 안철수가 무슨 주의자인지에 별 관심이 없다.
그가 하는 정치와 정책의 구체적 실천과 내용에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안철수가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할 때처럼, 학자들과 모여서 학구적으로 ‘노선 설계도’를 그리고 ‘거시기 주의’라는 네이밍부터 깨작거리고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답답하다. ‘새로운 정치’는 ‘구체적 실천’과 ‘구체적 내용(정책)’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구태의연한 하향식 정치 문화가 아닌 국민과 함께 하는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틀이 함께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기득권 야당이 실천하지 못해서 안철수에게 기회가 온 것인데, 조금 안타깝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시작이 아니므로 더 지켜볼 셈이다.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