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0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말씀이 전부다!’ - 2. 물음표를? 느낌표로!
본문 : 느헤미야 2장 17절
이렇게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나는 비로소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지금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성문들은 불탔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읍시다. 남에게 이런 수모를 받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새번역>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정말 많은 힘을 들이더라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속으로 수많은 타당해 보이는 물음표들이 가득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이 말씀에 정면으로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마가복음 9장 23절, 새번역>
정말 성경 말씀 그대로 다시 예수님께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 ‘할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믿음에 대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포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요?” 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많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감탄보다는 질문이 많아지고, 감격보다는 의문이 많아지고, 감사보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저는 느헤미야도 동일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를 한 후 곧바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왕의 도움을 힘입어 아주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왕께서 또 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왕에게 말씀드렸다. <느헤미야 2장 4~5A절, 새번역>
이런 순간에는 물음표가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감탄과 감격과 감사에 느낌표가 더할 뿐입니다. 거기다가 왕은 느헤미야를 아끼는 만큼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 주기 시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잘 보살펴 주셔서, 왕이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 왕은 나에게 장교들과 기병대를 딸려 보내어, 나와 함께 가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길을 떠나, 유프라테스 서쪽 지방의 총독들에게로 가서, 왕의 친서를 전하였다. <느헤미야 2장 8절B~9절, 새번역>
왕은 당장 느헤미야가 돌아올 때까지 금주를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느헤미야의 이 외출에 정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한 이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자, 이렇게 준비되었으니 걱정과 질문과 의문이 필요하지 않을 듯 보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 믿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고서는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을 구석구석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생 하나니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느헤미야 1장 3절, 새번역>
예루살렘을 모두 돌아 본 느헤미야의 결론도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나는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꼴은 너무 처참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었으며 성문들은 불에 탄 채로 있습니다.” <느헤미야 2장 17절A, 공동번역>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난감한 상황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처참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린 제법 자주 이런 상황을 만나곤 합니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 지 모를 정도로 힘든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원망이 나오고 절망의 한숨이 나오는 게 훨씬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이렇게 하소연 합니다. “아! 하나님 왜? 또?” 이런 반응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고 결심했고, 도와주심을 믿고 있으니 평탄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왜 도대체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들에 답을 좀 해 달라고 하나님을 보채기 일쑤입니다. 감사와 감격과 감탄의 느낌표는 이미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질문과 의문과 걱정의 물음표만이 원하지 않아도 가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도 그렇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말씀으로 기도했던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말씀을 소유한 자가 만나는 고난의 현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대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믿음이 무엇인지 말로 선포하게 됩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읍시다. 남에게 이런 수모를 받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 2장 17절B, 새번역>
결론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예상은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짓는 것을 포기합시다. 이 정도까지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기특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괜찮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 왕의 술을 따르는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가 아닐까요? 솔직히 누구 하나 이렇게 돌아선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을 다시 쌓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느헤미야의 대답에 저부터 감탄과 감격과 감사의 느낌표를 눌러봅니다!!!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불가능해 보여도 성벽을 쌓겠다는 결심을 보인 것입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느헤미야의 이런 결정은 실로 대단한 믿음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느헤미야의 마음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일하실 때라는 명확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답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상황보다 더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동일하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물음표가 많아도 되는 시점에서도 물음표를 쓰지 않고 느낌표를 썼을 느헤미야입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라고 확신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런 상황에서도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과 의심과 걱정이 아닌 감탄과 감격과 감사의 신비를 더욱 더 깊이 체험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한 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잘 보살펴 주신 일과, 왕이 나에게 한 말을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랬더니 그들은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나에게 다짐하였고, 힘을 내어, 기꺼이 그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하였다. <느헤미야 2장 18절, 새번역>
그럼 느헤미야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바로 일이 착착 진행 되었을까요? 이정도 느낌표의 감사를 표현했으니 하나님이 더욱 더 기름 부어주시어 순풍 달고 빨리 진행될 수 있게 하시지 않았을까요? 아니, 제발 그렇게 이야기가 풀려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지만 성경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충격을 더 하는 말을 전하게 됩니다. 여전히 느낌표를 다시 물음표로 되돌리려고 방해하는 세력이 더욱 더 강력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일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노릇을 하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랍 사람 게셈에게 알려지니, 그들은 우리에게로 와서 "당신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요? 왕에게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하면서,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었다. <느헤미야 2장 19절, 새번역>
쉽지 않은 일을 진행할 때 그 일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은 사실 일 그 자체가 아닙니다. 언제나 사람입니다. 환경적 요소보다 더욱 더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악독한 이야기입니다. 느헤미야에게도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의 말이 그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겨우 힘을 내어, 기꺼이 그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한 이들의 사기가 한 순간에 바닥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만약 느헤미야라면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 중 한 명의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원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말씀을 소유한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이루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싸움도 하지 않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따름입니다.
내가 나서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이오.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은 그분의 종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오.” <느헤미야 2장 20절A, 새번역>
이 주옥같은 말씀을 꼭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를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 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은 하나님의 종인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싸움도 하지 않고, 말다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에 대한 느낌표로 확고하게 선포하는 느헤미야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느헤미야였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느낌표가 많았을까요? 물음표가 많았을까요? 말다툼을 했을까요? 말씀 선포를 했을까요? 간절히 바라기는 느헤미야처럼 감사와 감격과 감탄의 느낌표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비난하고, 비방하고, 상대에 있는 이들과 굳이 말다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말씀 선포가 내 입술에서 나와야 할 때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순간과 상황에 전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야 할 때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환경과 상황이 더욱 더 나빠지고, 사람들마저도 괴롭게 할 때 수많은 물음표들로 삶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담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선포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말씀으로 힘써 싸워 이기도록 말씀을 무기로 삼으십시오!”
“걱정과 의문과 의심이 아닌 감사와 감격과 감탄을 노래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면 가능합니다!”
“말씀이 이길 것입니다!”, “말씀이 일할 것입니다!”, “말씀이 해결하실 것입니다!”
이 선포가 질문, 의문, 걱정의 물음표 가득한 초보 신앙인에서 벗어나, 오늘부터 감사와 감탄과 감격의 느낌표 가득한, 말씀을 소유한 성숙한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외침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024년 3월에는 여러분이 이 땅의 느헤미야가 되어 주십시오!
결단 찬양 -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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