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슨은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비행기 연착 때문에 늦게 도착하는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한잔 하던 도중 모리슨은 바 끝에서 눈에 익은 얼굴을 발
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지미? 지미 맥칸 맞지?"
지미 맥칸이었다. 지미는 작년에 애틀랜다 전람회에서 보았을 때보다 약간 몸이
불어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주 건강해 보였다. 지미는 대학 다닐 때에는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줄담배를 피우는, 여위고 창백한 청년이었다. 지금
은 안경을 안 쓴 것을 보니 콘택즈 렌즈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딕 모리슨이지?"
"맞아, 자네 참 좋아보이네."
모리슨은 손을 내밀었다. 둘은 악수를 했다.
"자네도 그런데."
맥칸이 말했다. 하지만 모리슨은 그 말이, 맥칸이 그저 지나치는 인사말로 하
는 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요사이 과로에, 과식에, 담배도 많이 피
워대고 있었던 것이다. 맥칸이 물었다.
"자네 뭘 마시고 있나?"
"버번 앤드 비터즈일세."
모리슨이 대답했다. 모리슨은 바 밑의 의자에 다리를 얹고 담배에 불을 붙였
다. 모리슨이 물었다.
"누굴 만나기로 했다, 지미?"
"아니, 회의가 있어서 마이애미에 가는거야. 중요한 고객을 만나야 하거든. 6백
만 달러짜리 상담이야. 가서 그 사람을 꽉 붙잡아야 하네. 내년 봄에 아주 큰일
을 벌여야 하거든."
"자네 아직도 크레거 바튼 회사에서 일하나?"
"이제 부사장이 되었네."
"이야! 축하하네! 어떻게 그렇게 승진을 한거야?"
모리슨의 뱃속에서는 질투심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모리슨은 그것을 위산과다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모리슨은 제산제 한 알을
꺼내 입에 넣었다.
"지난 8월에 승진했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일이 있었거든."
맥칸은 생각에 잠긴 눈길로 모리슨을 바라보더니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도 관심이 있을 걸세."
모리슨은 속으로 움찔했다.
'맙소사, 지미 맥칸이 종교를 가지게 됐다니....'
모리슨도 술을 한 모금 꿀꺽 들이키고 나서 대답했다.
"물론이지."
"난 당시 상당히 안 좋은 상태였었네. 샤론과의 개인적인 문제, 아버지의 죽
음.... 아버진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네. 그리고 마른 기침... 어느날은 보비 크레
거 사장이 내 사무실에 들르더니 자기가 뭐 내 아버지나 되는 것처럼 나한테
격려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네. 자네도 크레거 같은 사람들이 어떤지 알지?"
"물론이지."
모리슨도 지금의 모톤 에이전시로 옮기기 전에 그레커 바튼에서 18개월 동안
일한 적이 있었다. 모리슨이 대꾸했다.
"겉으론 뭐라 그러든, 사실 그치들이 하는 얘기는 일을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나가라는 얘기지."
맥칸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도 아는구먼.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의사는 나한테 초기 궤양 증세가 있다
고 했다네. 그러면서 담배를 끊으라고 하더군."
맥칸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숨을 끊으라고 하는 게 낫겠다 싶었지."
모리슨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들은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아주 쉬운듯이 말한다. 모리슨은 자기 손에 들려 있
는 담배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나서 그것을 눌러 껐다. 그러면서도 5
분후에 또 새 담배에 불을 붙일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모리
슨이 물었다.
"그래서, 끊었나?"
"끊었네. 처음에는 나도 못 끊을 줄 알았지. 내가 어디 담배를 끊으려고 한두
번 시도해 본 사람인가. 그러다가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46번가에 있는
패거리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더구먼. 전문가들이라고 하면서. 나는 속는 셈 치
고 한번 가보았지. 그런데 거기 갔다 온 다음부터 끊게 되었네."
모리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데? 무슨 약을 먹이던가?"
"아니."
맥칸은 지갑을 꺼내 뒤적이더니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네. 뒹굴어 다니던 걸 하나 가지고 있었네."
맥칸은 하얀 명함을 바위에 올려 놓았다.
"가지고 싶으면 가지게. 거기 가면 담배 끊을 수 있어. 장담하네."
"어떻게 끊게 하나?"
"그건 말해줄수 없어."
"아니, 왜?"
"처음에 가면 서명하는 계약서에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어쨌
든 거기 한번가서 만나보면 그 사람들이 얘기해줄 거야."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고?"
맥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한테 말을...."
"그렇네"
맥칸은 모리슨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모리슨은 생각했다.
'나, 참, 이 친구도 그 담배 안 피우는 점잖은 자식들 틈에 끼어들었구먼.'
모리슨이 비꼬듯이 물었다.
"그렇게 훌륭한 일들을 하시는데 어째서 비밀로 하시나? 텔레비젼 광고에서도
한번 본 적이 없고, 광고판에서도, 잡지 광고에서도...."
"그 사람들은 입으로하는 선전을 통해서 고객들을 모으네."
"자네 선전원 다 됐군, 지미. 원래 광고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안믿
는 법이지."
"난 믿네. 그들은 98퍼센트의 치료율을 가지고 있어."
"잠깐만."
모리슨은 술을 한잔 더 주문하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이 자네를 묶어놓고 질릴 때까지 담배를 피우게 하던가?"
"아니."
"무슨 약을 주어서 자네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구역질이 나게...."
"아니, 전혀 그런게 아니야. 직접 가서 만나 보게나."
맥칸은 모리슨의 손에 있는 담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정말 그 담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안 좋아하지만...."
"담배를 끊고 나서 정말 모든게 바뀌었네. 남들도 그러리라고는 말 못하겠지
만, 하여간 나한테는 그게 꼭 도미노 같은 거였어. 그 문제가 해결되자 다른 문
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었지. 기분이 나아지니까 샤론과의 관계도 좋아졌네. 몸에
힘이 나니까 일의 능률도 훨씬 올라갔지."
"이봐, 계속 내 호기심을 끌어당기는데, 자네 정말 거기에 대해 조금만 알려
줄 수 없나."
"미안하네, 딕. 난 정말 거기에 대해 말할 수가 없네."
맥칸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몸 무게가 늘지는 않았나?"
잠시 모리슨의 눈에 맥칸이 무서운 표정을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맞아. 사실 좀 많이 늘었지. 하지만 다시 줄였네. 지금은 괜찮지 않은가. 전에
는 뚱뚱했었어."
"206번 비행기는 9번 출입문으로 탑승합니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내 비행기야."
맥칸이 말하면서 일어났다. 맥칸은 5달러짜리 지폐를 바에 던지며 말했다.
"생각 있으면 한잔 더 하게. 그리고 내가 한 이야기도 생각 좀 해봐, 딕. 진심
이야."
그러고 나서 맥칸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가버렸다. 모리
슨은 명함을 들고 생각에 잠겨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런 뒤, 모리슨은 명함을
지갑에 넣고는 얼마 후 그것에 대해 잊어버렸다.
한달 후, 그 명함은 그의 지갑에서 떨어져 다른 바위에 놓였다. 모리슨은 일
찍 사무실에서 나와 바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오후를 보낼 생각이었다. 모튼
에이전시에서의 일은 잘 풀려나가지 않았다. 사실 아주 끔찍한 지경에 이르
러 있었다.
모리슨은 바텐더 헨리에게 10달러를 지불하고, 돈을 꺼낼 때 우연히 함께
떨어진 명함을 집어 다시 읽어 보았다.
'46번가 동부 237번지라? 여기서 두 블록만 가면 되는군.'
바깥은 10월이래서 그런지 화창하긴 했지만 쌀쌀했다.
'좋아, 한번 웃음거리를 만들러 가보지, 뭐.'
헨리가 잔돈을 가져오자 모리슨은 술잔을 마저 비우고 일어나서 나왔다.
금연 주식회사는 새로 지은 빌딩에 있었다. 모리슨은 그 빌딩의 한 달 사무실
임대료가 아마 자신의 일년 연봉과 맞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리슨은 로
비에 들어가 사무실 안내판을 보고 나서 금연주식회사가 한층을 전부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돈이 들 텐데......
모리슨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을 나오자 카페트가
깔린 휴게실이 우아하게 끄며진 대기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기실에는 커다
란 창문이 나 있어서 그 아래로 거리에서 사람들이 벌레 같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남자 셋과 여자 하나가 벽을 따라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
다. 모두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듯 했다. 모리슨은 책상으로 다가가
명함을 내밀면서 말했다.
"내 친구가 나한테 이걸 주었소. 내 대학 동창이지요."
안내원은 미소를 지으며 타자기에 양식 용지를 말아넣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리차드 모리슨이오."
찰칵, 찰카닥, 찰칵. 타이프 치는 소리는 그렇게 시끄럽지 않았다. IBM사 제
품이었다.
"주소는?"
"뉴욕, 클린톤, 메이플 레인 29번지요."
"기혼이십니까?"
"예."
"자녀는요?"
"하나요."
모리슨은 아들 앨빈을 생각하며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하나'라는 것은 사
실 틀린 말이었다. '반'이라는 것이 더 정확했다. 모리슨의 아들은 정신박약아
였으며, 뉴저지에 있는 특별학교에 가서 살고 있었다.
"누가 선생님께 여기 오시도록 권했지요, 모리슨씨?"
"옛 학교 친구요, 제임스 맥칸이라고 하지요."
"좋습니다. 좀 앉아 계시겠습니까? 좀 바쁜 날이라서 기다리셔야 하겠습니
다."
"괜찮습니다."
모리슨은 여자와 남자 사이에 앉았다. 여자는 짙은 푸른 색 정장을 입고 있
었다. 젊은 남자는 오늬 무늬 재킷과 유행하는 짧은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
는데, 관리자 타입이었다. 모리슨은 담배갑을 꺼냈다.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재떨이가 없었다. 도로 담배갑을 집어넣었다. 담배를 좀 못 피운다고 안 될
것은 없었다. 여기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다 지켜본 다음에 나가
면서 피워도 늦지 않았다. 정 오래 기다리게 한다면 여기서 그냥 피우다가
재를 이 고급스러운 양탄자 위에다 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리슨은 '타임
즈'를 들고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한 15분쯤을 기다렸다. 모리슨은 푸른 색 정장을 입은 여인 다음 순서였다.
그의 몸속의 니코틴 센터에서는 지금 니코틴을 보내달라고 난리였다. 모리슨
뒤에 온 사람도 담배갑을 꺼냈다가 재떨이가 없는 것을 보고 도로 집어넣었
다. 모리슨은 그 사람이 약간 죄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을 보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마침내 안내원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어가세요, 모리슨씨."
모리슨은 접수대 뒤편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은 조명이 흐려 어
둡게 느껴지는 복도였다. 꼭 가발처럼 보이는 백발의 건장한 사내가 손을 내
밀어 악수를 하면서 상냥하게 웃었다.
"나를 따라오십시오, 모리슨씨."
그 사내는 모리슨을 데리고 아무 표지도 없는 문을 여러 개 지나갔다. 문들
은 다 닫혀 있었다. 사내는 복도를 반쯤 내려가더니 그 문 가운데 하나를 열
쇠로 열었다. 문 안에는 꾸미지 않은 작은 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벽에는 구
명으로 뚫린 코르크 판들이 붙어 있었다. 책상 하나와 양편에 놓인 의자가
유일한 가구였다. 책상 뒤의 벽에는 작은 직사각형의 창문같이 보이는 것이
있었지만, 짧은 녹색 커튼이 그것을 가리고 있었다. 모리슨의 왼쪽 벽에는 그
림이 하나 걸려 있었다. 강철 색깔 같은, 회색 머리를 가진 키가 큰 사람이었
다. 그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건장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믹 도나티라고 합니다. 모리슨 씨가 우리 프로그램을 따르겠다고 결
정하는 경우, 내가 모리슨 씨를 담당하게 됩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모리슨이 말했다. 모리슨은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앉으시지요."
도나티는 아까 안내원이 기재한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 놓더니, 서랍에서
또 하나의 서류 양식을 꺼냈다. 그러고 나서 거침없이 모리슨의 눈을 마주보
았다.
"담배를 끊고 싶으십니까?"
모리슨은 목을 가다듬고 다리를 꼬았다. 좀 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방법
을 생각해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예."
"여기에 서명하시겠습니까?"
도나티가 모리슨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모리슨은 빠르게 그 서류를 훑어보
았다.
"아래 서명한 자는 방법이나 기술을 누설하지 않겠으며...."
"좋습니다."
모리슨이 대답하자, 도나티가 펜을 넘겨주었다. 모리슨이 자기 이름을 긁적
거리자 도나티가 그 아래 서명을 했다. 잠시 후 그 서류는 다시 책상 서랍으
로 들어갔다. 그는 냉소적으로 혼자 생각했다.
'내가 서약을 했단 말이지.'
그는 전에도 그런 서약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틀 동안 담배를 안 피
운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도나티가 말했다.
"좋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선전 문구로 선생을 괴롭히지 않습니
다, 모리슨씨. 건강이나 비용에 대한 질문도 없고, 굳이 사교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선생이 왜 담배를 끊으려 하는지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실용주의자들입니다."
"좋습니다."
모리슨은 별 생각없이 대꾸했다.
"우리는 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 데일 카네기 같은 사람을 불러 선생에
게 설교하지도 않습니다. 별다른 식이요법을 권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
이 일년 동안 담배를 끊을 때까지는 돈도 안 받습니다."
"맙소사."
"맥칸 씨가 말씀드리지 않던가요?"
"아니오."
"아, 그런데 맥칸씨는 어떠십니까? 잘 지내십니까?"
"잘 지냅니다."
"잘 됐군요. 아주 잘 됐습니다. 자, 이제 몇가지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모리
슨씨. 이 질문들은 약간 개인적인 것이지만, 선생이 하신 답변에 대해서는 철
저히 비밀을 지켜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예?"
모리슨은 대답하는 듯 묻는 듯 애매하게 대꾸했다.
"부인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러신다 모리슨입니다. 처녀 때 이름은 램지구요."
"선생은 부인을 사랑하십니까?"
모리슨은 고개를 들고 도나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도나티는 온화한 표정
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물론입니다."
"결혼 생활에 뭐 문제는 없었습니까? 예를 들어 별거라든가........"
"그게 담배 끊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모리슨이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화나게 들렸다.
모리슨은 정말로 지금 이 순간 담배가 절실했다.
"아주 큰 관계가 있지요. 자, 나와 함께 한번 얘길 해봅시다."
"없습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사실 최근 들어 아내와의 관계에서 약간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다.
"자녀가 하나 뿐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앨빈이라고 하죠.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학교입니까?"
모리슨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도나티는 선선히 대답했다. 도나티는 모리슨을 향해 자기는 아무런 무장도
안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생이 하고 싶은 질문에 대해서는 내일 첫 치료 때 답변해 드리겠습니
다."
"좋습니다."
모리슨은 대답하며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한 시간 동안 담배를 안피우셨
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모리슨은 거짓말을 했다.
"참 잘됐군요!"
도나티가 탄성을 질렀다. 도나티는 책상을 돌아나와 문을 열면서 말했다.
"오늘 밤에는 담배를 즐기십시오. 내일부터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될
테니까요."
"정말입니까?"
"모리슨씨, 장담합니다."
도나티가 엄숙하게 말했다.
다음날 오후 세시 정작, 모리슨은 금연 주식회사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모리
슨은 하루종일 안내원이 지정해준 약속을 그냥 넘길까, 아니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면서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킬 것인가 고민했었
다.
결국 지미 맥칸이 한 말, 그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는 말 때
문에 모리슨은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도 바뀔 것인지 혹시 알
아?, 그리고 사실 모리슨은 금연주식회사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모리슨은 엘리
베이터를 타기 전에 담배를 필터까지 타도록 한 대 피웠다. 만일 이것이 마
지막 담배라면 이 얼마나 악몽 같은 일일가. 그러나 담배 맛은 아주 나빴다.
이번에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전번보다 짧았다. 안내원이 들어가라
고 해서 들어가니 도나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나티는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모리슨한테는 그 미소가 아주 호전적으로 보였다. 모리슨은
약간 긴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담배 생각이 났다.
"자, 갑시다."
도나티는 말하고 나서 전번의 작은 방을 향하여 앞서 걸어나갔다. 방안에
들어가서 도나티는 전번처럼 책상 뒤의 의자에 앉았고, 모리슨은 맞은 편에
앉았다.
도나티가 입을 열었다.
"다시 오셔서 매우 기쁩니다. 많은 분들이 첫 번째 면담 이후에 다시는 나
타나지 않지요. 아마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기가 실제로는 그렇게 담
배를 끊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하여간 선생과 함
께 일을 하게 되서 기쁩니다."
"치료는 언제 시작합니까?"
이렇게 물어보면서 모리슨은 치료 방식이 최면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어, 최면술일 거야.'
"아, 이미 시작한 것입니다. 아까 복도에서 악수를 할 때 시작한 것이지요.
지금 담배 가지고 계십니까, 모리슨 씨?"
"예."
"이리 주시겠습니까?"
모리슨은 어깨를 으쓱하며 도나티에게 담배갑을 주면서 중얼거렸다.
'저 담배갑에 담배가 두 개빈가, 세 개비밖에 안 남았으니까, 뭐.'
도나티는 담배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더니 모리슨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도나티는 주먹으로 담배갑을 쾅
쾅 내리쳤다. 담배갑은 찌그러지더니 곧 납작해졌다. 끊어진 담배 끝이 밖으
로 튀어나왔다. 담배 가루가 흩어졌다. 그렇게 세게 내리치면서도 도나티는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모리슨은 그 모습을 보고 섬찟함을 느꼈
다.
'아마 나한테 바로 이런 섬찟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는 행동인 모양
이군.'
마침내 도나티는 두드리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형편없이 찌그러
져버린 담배갑을 집어들어 쓰레기통에 던지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한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선생은 모르실 겁니다. 이
일에 뛰어든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이 일은 아직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치료로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빌딩 아래 로비에 신문
가판대가 있더군요. 거기서는 온갖 종류의 담배를 다 팝니다."
모리슨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도나티는 그 말은 들은 체도 안하고 손을
펴면서 딴 소리를 했다.
"선생이 말씀하신 아들, 앨빈 도즈 모리슨은 장애아를 위한 페터슨 학교
에 다니고 있더군요. 선천적으로 두개골 손상증세고, 아이큐는 46, 교육 가능
한 지체아 범주에는 들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 부인은......"
순간 모리슨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놀라기도 하였고 화가 나기도 하였다.
"어떻게 그걸 알아냈고? 당신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내 주변을 조사......"
도나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리슨의 말을 끊었다.
"우린 선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압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그 비밀은 철
저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난 여기서 나가겠소."
모리슨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일어섰다.
"잠깐만 더 앉아계십시오."
모리슨은 도나티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그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
다. 어떻게 보면 즐거워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모리슨과 같은 반응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보아온 사람의 표정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앉아 계시는 게 기분 좋은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도나티는 의자 등받이로 등을 기댔다.
"물론입니다. 난 선생한테 우리가 실용주의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용주의
자로서 우리는 니코틴 중독이 얼마나 치료하기 힘든가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담배의 경우, 끊었다 하더라도 재발하는 비율이 85퍼센트입니다.
헤로인 중독도 그것보다는 낮습니다. 따라서 니코틴 중독은 특별한 문제입니
다. 정말 특별합니다."
모리슨은 쓰레기통 안을 슬쩍 들여다 보았다. 그 중 한 개비는 비록 찌그러
지긴 했지만 아직 피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나티는 선량하게 웃으며 쓰레
기 통 안을 뒤져 그 담배마저 손가락으로 두 동강을 냈다.
"때때로 사람들은 교도서 안에서 일 주일마다 담배 배급하는 것을 없애야한
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은 늘 묵살됩니다. 실제로 어떤 주
에서는 그런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그러자 교도소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났
습니다. 폭동입니다, 모리슨씨. 상상해 보십시오."
"난 별로 놀랍지 않은데요."
"하지만 그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감옥에 갇힐 때는 그 사람의
정상적 성생활, 술, 정치, 움직이는 자유가 다 박탈됩니다. 그러나 폭동은 일
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감옥의 숫자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요. 하지만 담배를 뺐었더니, 쾅!, 폭동이 일어났단 말입니다."
도나티는 "쾅"을 강조하기 위해 책상을 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후방에서는 아무도 담배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 귀족들이 하수구에서 꽁초를 줍는 것은 보기 흔한 광경이었답
니다. 2차세계대전 때는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많은 미국 여인들이 담배
대신 파이프를 피우게 되었답니다. 진정한 실용주의자에게는 아주 매력적
이고 도전해 볼 만한 문제 아닙니까, 모리슨 씨?"
"치료로 돌아갈까요?"
"잠깐만 이리 와보시겠습니까?"
도나티는 일어나서 모리슨도 어제 본 적이 있는 그 녹색 커튼 쪽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는 커튼을걷었다. 그러자 네모난 유리창이 드러나고, 그 안으로
빈방이 들여다 보였다. 그러나, 완전히 빈방은 아니었다. 바닥에서 토끼 한
마리가 접시에 놓인 작은 알약들을 먹고 있었다.
"귀여운 토끼군요."
모리슨이 말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 토끼를 보십시오."
도나티는 창가에 있는 단추를 눌렀다. 토끼는 먹는 것을 멈추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더 높이 뛰어오르는 것 같았
다. 토끼의 털이 마치 가시처럼 사방으로 뻗쳤다. 눈빛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만두시오! 저 토끼를 감전시켜 죽이려는거요?"
도나티는 단추에서 손을 뗐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닥에는 아주 약한 전기가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모리슨 씨, 토끼를 보십시오!"
토끼는 알약이 든 접시로부터 한 10피트쯤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토끼의 코가 벌름거렸다. 갑자기 토끼는 아예 구석으로 뛰어가버렸다.
"토끼가 저걸 먹는 동안 반복해서 자극을 받으면, 토끼는 곧 그 자극과 음
식을 연관시키게 됩니다. 먹으면 고통이 온다고 생각하는거죠. 다라서 토끼는
안 먹게 됩니다. 충격을 몇번 더 주면, 토끼는 음식을 앞에 놓고도 굶어 죽습
니다. 이것을 혐오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모리슨의 머리 속에 갑자기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모리슨은 문
쪽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고맙지만 난 사양하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모리슨 씨."
그러나 모리슨은 멈추지 않았다. 모리슨은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손잡
이는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 문을 여시오."
"모리슨 씨, 잠깐만 앉아계시면...."
"이 문이나 어서 여시오. 아니면 당신 앞에다 경찰을 불러다 놓겠소."
"앉아!"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모리슨은 도나티를 바라보았다.
모리슨의 갈색 눈은 겁에 질려 눈동자가 흐려져 있었다.
'맙소사, 여기서 정신병자와 함께 갇혀 있게 되었구나.'
모리슨은 입술을 핥았다. 그는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담배가 절실하게 피
우고 싶었다.
도나티가 입을 열었다.
"치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죠."
모리슨도 도나티의 태도에 맞추어 차분하게 말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시나 본데, 난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겁
니다. 난 치료를 안 받기로 결정했어요."
"아닙니다, 모리슨 씨. 이해 못하시는 건 선생입니다. 선생한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내가 선생한테 치료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씀드렸을 때, 나는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린 겁니다. 난 이제 선생이 그 정도는 아실 걸로 생각했는데
요."
"당신 미쳤소?"
"아닙니다. 난 실용주의자일 뿐입니다. 이제 치료에 대해 다 말씀드리겠습니
다."
"좋소, 다만 한가지만 알아두시오. 난 여기서 나가는대로 담배 다섯 갑을
사서 경찰서까지 가는 동안 그걸 다 피울 거요."
모리슨은 문득 자기가 업지 손가락을 물고 그것을 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
다. 그는 얼른 손을 내렸다.
"좋으실 때로.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면 마음이 바뀌실 거라고 생각
합니다."
모리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
"치료의 첫 한달 동안, 우리 직원들이 선생을 항상 감시할 겁니다. 선생이
그 가운데 몇 명은 보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 보실 수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그들은 언제나 선생과 함께 있습니다. 언제나. 만일 그들 눈에 선생이
담배를 피우는 게 보이면, 난 그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나를 이리 불러다가 토끼처럼 만들겠다는 말이군요."
모리슨이 말했다. 모리슨은 자기 말이 차갑고 냉소적으로 들리도록 하려고
애를 썼지만, 갑자기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건 악몽이야...
"아닙니다. 선생 부인이 토끼처럼 되는겁니다. 선생이 아니죠."
모리슨은 멍한 눈으로 도나티를 바라보았다. 도나티는 미소를 지었다.
"선생은 그냥 구경만 합니다."
도나티가 내보내 준 뒤에 모리슨은 완전히 정신이 멍한 생태에서 두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 전날처럼 날씨가 화창했지만, 모리슨은 그런 것을 느낄 여
유가 없었다. 괴물 같은 도나티의 웃는 얼굴이 다른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도나티는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은 실용적 문제가 실용적 해결책을 요구한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
다. 또한 우리가 선생의 가장 큰 관심사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셔
야 합니다."
도나티 말에 따르면 금연 주식회사는 일종의 재단이었다. 벽에 걸린 초상화 주
인공이 시작한 비영리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 초상화 주인공은 몇 가지 가족
사업에서 아주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 사업이란, 대체로 슬럿 머신과
같은 도박이나 뉴욕과 터키 사이의 암거래 같은 것들이었다. 초상화의 주인
공인 모트 미넬리는 골초였다.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웠다. 초상
화에서 그가 들고 있는 서류는 의사의 진단서였다. 폐암이라는 진단이었다.
모트는 죽기 직전에 자기 돈으로 금연 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1970년에 죽었다.
도나티는 말했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회사를 파산 직전의 상태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돈보다
는 사람들을 돕는 데 더 관심이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되면 세금 문제도
원활해지죠."
첫댓글 너무 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