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동 우체국의 박인선 집배원의 생애를 이야기합니다.
1. 지리적 위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은 성남시 서쪽과 서울공항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1년부터 개발제한 구역으로 지정되어 수십년간 개발 이 제한되어 낙후된 농촌마을로 비닐하우스 재배단지가 마을 주변에 산재하여 있으며 주민 대부분은 영농에 종사하고 인구는 약 2,000여 명에 이르고 동사무소 와 초등학교, 파출소, 농협, 우체국의 면단위 소재지로서, 덕수 이씨가 원주민으로 전체 주민의 1/3을 찾이 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1950년 6.25전쟁으로 강원도 철원지역에서 피난을 나온 주민들로서, 전쟁이 끝날 무렵 이들의 생계를 위하여 자연스럽게 5일 장터가 마을 한 복판에 생성하게 되었고, 막걸리 양조장이 생겨 장터가 파할 무렵엔 장꾼들이 막걸리를 먹는다고 하여 일명,“새술막”이라고 부르는 동내입니다.
2. 대상자의 시대적 배경
가. 대상자의 부모님은, 강원도 금화에서 6.25전쟁시 피난민으로 월남하여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마을의 개천가 옆에 인근야산에서 나무와 판자들을 주워 엉성한 반지하 움막집을 짖고 살았으며,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나면, 저수지(대왕)뚝이 무너져 휩쓸려 떠내려 갈 위기엔 가재도구 만을 챙겨 200~300미터 되는 초등학교로 피난가는 것이 년례 행사처럼 하던 때인 1955년도에 출생하였습니다.
나. 부모님이 이러한 매우 극빈한 생활을 하고 있던 만, 3세가 되고 동생 (남)이 1세가 되 던 때에 부친은 갑자기 불의에 사고로 작고하게 되었으며,
모친은 안면 왼쪽에 붉은 난치의 반점이 있었으며, 입마저 왼쪽으로 기울어 언어의 표현마저 제대로 못하는 불구의 상태에서 두 아들을 키우기 위 하여, 갓 낳은지 얼마되지 않은 동생은 등에 업고 겨우 3살인 대상자와 함께 동네의 잘사는 집에 식모살이에서 부터 온갖 허드레 일을 하며 겨우 밥이나 얻어 먹이며 살았으며 대상자는 주위의 마당에서 땅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며 놀다가 엄마가 집으로 데리고 오곤 하였습니다.
3. 유, 소년시절의 생활
가. 대상자는 너무나 가난하여 인근야산과 들에서 나무뿌리와 풀뿌리를 캐서 먹었으며 칡을 너무 많이 먹어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가을엔 주인이 배추나 무를 추수하고 버리고 간 푸른 겉잎과 서리를 맞은 허였케 변한 고추를 따서 김치를 해 먹기도 하였으며 초등학교 3학년쯤엔 너무나 먹을 것이 없어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먹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께 어린나이에 술을 먹었다고 야단을 맞은 적이 한 두 번 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선생님은 도시락을 2개를 싸가지고 와서 나누워 주기도 하여 60세임에도 당시의 여선생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 또래의 아이들보다 작은 키(현재,160cm)였으나, 머리가 총명하여 공부도 잘 하였으며 매우 활발한 성격으로 학급반장도 여러번 하였고 남달리 만들기를 잘하여 썰매, 연, 팽이, 장난감 총도 만들어 친구들에게 부러움 이 되기도 하였으며, 운동도 잘하여 초등학교 5~6학년 때에는 단거리 릴레이 선수와 축구선수까지 하기도 하였습니다.
4. 우체국 집배원 생활
가. 그러나, 가정이 너무나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해야할 무렵인,
만, 13세 되던 어린나이에 동네의 사설우체국에서 청소나 하고 잔 심부름(일명, ‘소사’라함)을 하며 쪽방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겨우 밥이나 얻어 먹는 형편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대신 전직원이 퇴근한 후에 총알 탄피로 심지를 만들어 어두운 등잔불 밑에서 동네 선배에게 중학교 책을 구해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나. 이러한 대상자는 근면, 성실함을 인정받아 또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인 1973. 2. 1.부로 정식 우체국 집배원으로 신규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게 되었으며, 당시, 우편배달부는 현재의 오토바이 대신 빨간색 2륜자전거로 우편물을 배달하였고 동네뿐만 아니라 이웃 관내지역이 30~50km되는 이웃동네까지 자신의 몸보다 큰 우편가방을 메고 배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지쳐 쓰러지기도 수차례 하였습니다.
다. 우편물은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배달하여야 하기 때문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모진 태풍이 몰아쳐도 자전거를 타고 관내지역인 이웃동네까지 배달하여야 했으며, 한 때는 이웃동네에 배달을 갔다 오다가 갑자기 폭우가 쏱아져 개울을 쉽게 건널 수 없게 되자 우편가방은 줄에 매어 강 건너 편으로 던지고 자신은 자전거를 끌고 강을 건너다 넘어져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수십미터를 떠내려가며 뒹굴어 온몸이 피멍 투성이의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면 국장님은 우편물은 하나도 분실하지 않아 천만다행 이라고 하며 격려까지 하여 주었습니다.
라. 그러한 우편배달을 하면서도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는 친절하게 인사하고 어린 초등학생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면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오기도 하였으며, 관내지역의 온갖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다 하였습니다.
5. 사회적인 역활
가. 수십년간 이러한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네일에 대하여는 누구 보다 잘 알게 되었고 초상(사망)이 나면 누군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밤 늦께까지 철핀글씨로 써서 등사기로 부고장을 만들어 집집마다 다니며 대문 앞에 꽂아두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장례의식 절차를 지도하고 동네의 제반 상, 혼례 의식절차를 상세히 알려 주기도 하였으며 동네의 어려운 일에는 반드시 그 곳에 있었습니다.
나. 이러한 동네의 길, 흉사 뿐만 아니라 동네의 친목과 단합을 위하여 청, 장년들을 초등학교에 조기축구회를 만들어 운동을 하도록 하고 동네에 40년이상 살아온 주민에게게 분기에 1번씩 만나 동네일을 논의하고 화합 과 단결을 위하여 ‘새술막회’라는 단체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현재는 약,120여명의 회원에 이르고 대보름 날이면 “윳놀이 대회”를 년례 행사로 하고 있습니다.
6. 가정생활
가. 우체국의 박봉속에서도 대상자는 다른 길을 택해 보려고도 하였으나,
현재의 일이 천직이라는 일념으로 오직 한 길만을 택하였으며, 1982년에 결혼하여 2남을 두고 첫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임관하여 최전방 보병 소대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는 항공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반도체에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효심이 지극하여 89세된 노모를 모시고, 넉넉하지는 않으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나. 성남시 수정구 고등우체국에 2002. 03. 18부터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우편창구에서 친절히 민원업무를 담당하며 주소나 우편번호 서식 이 잘못되면 수정하여 올바르게 우편될 수 있도록 적극 도와 주워 동네의 주민들로 부터 높은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7. 결 어
대상자의 위와 같은 사실은 동네의 귀감이 되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한 직장 한 곳에서 만 43년이란 평생 동안을 근무하고 정년퇴임(2015. 06. 30자)을 1년여 남겨두고 있으며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한 바 지대하여 왕남초등학교 동문을 위해 본 카페에 게재합니다.
2014. 6. .
제보자 한 경 환
010-2287-6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