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 건 수 천년을 이어 온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다.
옛 선인들의 삶의 애환과 지혜가 닮긴 일화 기담,
그리고 구전되어 온 옛날 이야기는 인공지능이 판을 치는 현대라고 하지만 상당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십여년 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야기 할머니라는 새로운 유아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에서 이야기 할머니를 선발하여 16개 시도에 산재한
유아교육기관에 이야기할머니 교사로 발령를 냈다.
물론 교육은 백년지대계이기에 사전 충분한 연수와 훈련을 통하여
먼저 교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여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는데
내자도 그 일원으로 참여하여 십년 째 교육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 십년을 옆에서 지켜 본 나로서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다.
이야기 할머니는 고령층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단원의 이야기 교재를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게 완벽하게 암기해야 하고
그 위에 언어적 구사력과 감정을 넣어서 유아들에게 이해와 함께 감정이입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고난도의 수업과정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내자는 그 십년 세월 동안
한 단원도 허술함이 없이 완벽하게 소화하였다
나 역시 40년을 교직에 몸담아 왔었기 때문에
래도 교육이라는 영역만은 남다른 식견과 관심이 있다고 보았지만
내자는 한 단원도 소홀함이 없이 외우고 시연을 하고 율동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수업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감동 하였었다
수업을 하기 전 날 밤이면 내자의 낭낭한 이야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왔고
출근하는 아침이면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는데
어제 아침에는 이야기 소리를 듣던 내 마음이 울컥해 짐을 가눌 수 없었다.
자꾸 울적해 졌다. 그날 수업이 당해 교육기관의 마지막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 때쯤 되면 겨울 방학을 앞두고 모든 수업 일정이 끝나는 시점이지만
어제는 그게 아니었다 처음 이야기 할머니로 발령을 받고 기대와 부푼 꿈을 안고 출근하였는데
벌써 십년 정년 은퇴일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내자의 핸드백을 건네 주면서 잘 다녀 오라고 미소를 보냈지만 돌아서서 문을 닫는 순간
울컥하는 맘이 동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이러자니 내자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교직 시절에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국어 단원이 생각난다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
그 교재는 국가가 외침으로 인하여 타국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서
도래한 안타까운 자국어 수업이었지만
내자는 제도의 틀에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러나 저러나 본인 의지와는 다르게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된 상황은
교사로서의 입지를 잃게 되는 것으로서 같은 입장이었다
날이 바뀌어서 또 다른 마지막 수업은 오늘 모 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 최종의 막을 내렸다
하루 전에 유치원 담임선생님의 사전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내자에 함께 출근하였다
유아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내자의 수업을 참관하였다
과거 교육청 장학직과 학교장을 역임한 나로서는
수업활동이 예사로 보이지 않아 매의 눈으로 보았는데 정말 수업을 잘 하였다
수업의 성패는 유아들의 주의력에 달렸다 얼마만큼 유아들을 수업에 몰두하게 하느냐는
이야기 할머니의 수업능력에 달렸을 뿐이다 유아들이 수업에 빠져서 완전몰입하는 상태는
지도선생님의 탁월한 수업능력에 죄우된다.
내자의 마지막 수업에 유아들은 고개하나 돌리는 일 없이 완전 몰입하였다
40년 교직생활을 한 나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내자도 모르게 준비해 간 꽃바구니를 건네고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초롱초롱한 유아들의 눈망울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서자
내자의 눈매도 살짝 흐려지는 듯하였고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맘도 무척 짠하게 저려왔다
유아들의 고사리 손짓을 뒤로 하고 교실문을 나서자 발걸음이 조금 무딘 것처럼 느껴졌다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지 내자의 눈가도 아득해지는 하늘 가를 닮아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강숙희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참으로 수고로운 세월 보람된 날들을 축하드립니다 백년지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