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즐거운 명절 잘 보내시고 올해도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신용인> 부부 이야기 이 내용을 티비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아내가 대단하구나 생각만했지! 직접 이 글을 보니 감동! ! 감동!
! 돈이 많다고 행복한건 아니겠죠? 이 부부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가?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는 부부네~~ 명절에 가족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며 이 또한 행복하자
않은가? 친구들 설 명절에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이해숙> 이 부부 정말로 대단해요 아픈 남편이나 같이 활동하는 부인이나 두분 화이팅하기 바랍니다 특히 부인이 더 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
같으면 턱도 없는 생활인데 어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고 경이로움 까지 느낍니다
========================<이 련> 저의 이민초기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내 자체 건물을 사기까지는 부부가 하루 5시간 정도 잠자고 나머지는 일했습니다. 22년 정도
그렇게 살았어요.
아내는 샌드위치를 수만개 만들고 치킨튀김을 많이해 손이 트서 교회갈라고 스타킹을 신으면 올이터져 제가
신겨주어야 했어요 ========================<김인호> Deli & Mart을 7년 했는데 생닭을 사다 8피스로 자르고 생감자를 4~6조각으로 잘라 양념가루 뭍혀 기름에
튀겨팔고 jo-jo라 하고 온갖 미국 사람이 먹는 soup을 scratch 재료로 만들어 팔았다. 지금은 모든것이 냉동으로 나와
데워팔면 된다.
애들 키우면서 사는게 한국에서 신병훈련소 생활과 유격훈련 받는것과 거의 비슷한 전쟁터였다. 젊음을
준다해도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답니다 ========================<김인호> 16방의 모든 얼라들!!!!!!!!!!!!!!!!!! 🌷명절 잘 보내고~ 🌷봉 마이 밧꼬~~~ 🌷소원 승치 하기
바람니다~~ 그리고,세배 드림니다. ========================<전영달> 젊음도 싫다는 김장로 그 한마디가 맨땅에 헤딩하던 그 시절 삶이 얼마나 치열했었나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남은 세월 건강과 즐거움으로
충분한 보상이 있겠지요
========================<박현익> 이민초기는 김치를 6개월 정도 못 먹어 배추 무우등 김장거리를 사려 켄터키에서 시카고까지 500km를 6시간 운전해가서
사오곤했다오. 한국일보 신문을 구독해도 3~5일이 지난 구문을 보았어요. 시골 부모님한테 전화
한통화 하려면 미국 이웃집 전화를 빌려 신청해 놓고 30분 기다려야 했고 기본요금이 13불(3분통화)이고 고향 동네 리장집에 전화가
있는데 스피커 방송으로 우리 부모님 불러오는데 10-15분, 한 10분 통화하면 25~30분 가량 된다. 요금이 100불 이상
되었다
당시는 시간당 기본 임금이 2불 65전 인데 일주일 40시간 일해야 세금제하면 80불 전후 받는데 한국으로
전화 통화 한번하면 다 날아갔다.
차가 없어 브레이크도 없는 자전거를 8개월 동안 타고 일하려 다녔으니 이런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은거랍니다 인생은 산넘어 산이 아니고 연속되는 산 ^^^산 인것 같아요 ========================<김인호> 박사장님 오래만이요 !!! 건강하시고 자주 나오이소 한국배추와 고추로 김치를 담아먹기 전에는 양배추(간난)와 멕시컨 스타일 고추로 만들어 김치를 먹기도 했습니다. 삭기전에는 맛이
영 아니라도 익으면 배추김치 대용으로 먹을만 했었습니다 ========================<김인호> 김장로의 어려웠던 이민초기 생활의 회고에 대한 묘사가 와 닫네요~ 양배추에 멕시칸 고춧가루로 김치~^^
82년도, 남미
페루에 6살짜리 아들 데리고 가족이 군사유학차 리마에 도착, 며칠안되어 김치 고추장 타령하는 아들녀석 성화에 마눌이 시장에 파는 무우를 깍뚜기
모양으로 썰어서, 가지고간 고춧가루로 버무려 먹으니~ 아쉬운대로 김치 대용이 되더라니깐~! 나중엔 우리 배추와 비슷한것 사다가
젓갈은 없어도 명품(?)걷절이로 발전했고~^^ 역쉬, 궁하면 통한다?^^ 김장로~! 그래도 그때가 때론
그리웁기도 하겠지요? 오직 부부가 한곳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리던 그 시절이~!젊음이 있었고, 패기가 있었기에 그
모든것이 가능했던 그 시절~! ========================<하태용> 외식할 돈도 없었지만 미국 식당에 가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시킬줄도 몰랐다
그냥 한달에 한번 정도 McDonald
에 가서 Big Mc, Medium Coke, French Fry만 주문할 줄 알았다
교민 중에 어떤분이 종로
5가 종묘상에 가서 배추 무우 고추 상추 오이등 씨앗을 많이 사와서 인디아나주의 미국인 농장주에게 농사를 부탁해 수확철에
서로 연락을 하여 가서 사다가 김치를 담아 먹곤했었다.
지금은 '한아름 H-Mart"라해서 한국식품 아시아식품등
필요한 식품 부엌살림을 손쉽게 구입한다. 시애틀에는 4개의 H-Mart이 있다. 또 지금은 Online이 있고 배달
시스템도 너무 잘되어 편하고 좋은 세상이 되었다. ========================<김인호> 하장군은 이민자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을 직접 해 보셨구나. 전 작년 여름에 미국 고향인 루이빌 켄터키를
31년 만에 다시 찾아가 봤어요.
초기에 살던 빈민가는 UPS라고 미국 택배회사 비행기 활주로로 없어져 버렸고
평생 처럼 내집을 구입했던 집과 구두 수선 가게에도 가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며 아뭏던 살아있음에 감사했어요 ========================<김인호> 김장로님, 아멘리컨 드림을 이룬 스토리를 들어니 우리 집안 아버지가 배가 고파 일본을 밀항을 하여 가진 고생을 하여 이룩한
삶과 부의 터전의 고난 영웅스토리를 아버지와 숙부들로 부터 많이 들어 이해가 잘 됩니다. 생존정신에 바탕한 부와
권력이 후계자의 교육부족으로 크게 성장치 못하고 축소 되는 스케일에 삼십여년 근무한 회사에서 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황무지에서 헤딩을 하여 신앙을 베이스로 하여 성공적인 호텔사업등을 성취한 김장로님의 애환 스토리는 크게 박수를
보내고 리스펙트스러운 삶의 성공얘기입니다. 최근 느끼는게 우리 집안 숙부 박병헌님은 백전 땅골? 에서 아버지가 12살때 일본에
데려가 공장에 집어 넣어 야간학교로 전전하여 대학도 마치고 본인의 바로 위 형님의 덕으로 민단에서 5.6십년을 일을 하며
형으로 부터 괸리를 위임받아 8000억 규모의 기업.올림픽 명예위원장등으로 국내에 520억 모금 성금을 하여 전달. 함양시골
장학금사업.함양벗꽃 40리 길.신한은행 설립 발기.관리인 등 여러일을 했지만 순수한 자비.종교사상이 없다고 하여 지금에선
본인의 부.권력.명예 유지를 위한 것으로 평가를 하는 것을 보고 씁쓸함을 느낍니다. 솔로몬이 죽을때 헛되도다.헛되도다 외치며
크게 뉘우쳤다고 했다던데. 한치 앞을 못보고 헛발로설치는 국내외 세상사를 보며 어쩔 수 없는 인간사라 화낼 필요도 없고
그래도 세월은 지나가느니 하며 몸과 마음의 평화를 주는게 가장 큰 삶의 우선 순위라 느껴 지네요. 김장로님 미국생활 아주
보기 좋습니다. 최근 안의에 천주교에서 아주 유명한 황창연 신부님. 그리고 유명한 황 정치평론가가 있는데 두분다 잘 듣고
있지요. 새해에 동기 여러분 심신이 탄탄하게 과학적으로 건강관리를 잘하여 또 한해를 행복하게 보냅시다. 작년에
변주필.전단장.하대감.이련님.현박사.강성환친구. 김장로등 여러친구들이 글과 사진으로 크게 봉사하여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박태규> 태규씨 반갑구만요! ! 졸업하고 봤는지? 기억이 없네~~몇년전 중학교 친구들과 함양 놀러 갔었는데 마침
벚꽃 축제 기간이라 노래자랑, 먹거리... 볼거리가 많던데~~ 날이 추워 구경은 제대로 못했지만^^^ 벚꽃 길은
무지 길고 너무도 아름다웠는데~~ 숙부님이 벚꽃 길 조성에 공이 크신 분이네요~~^^
인호씨 삶이
너무 평탄하면 인생이 싱겁지 않나요? 누구든 굴곡은 있는게 아닐런지~~^^ 젊은 날 열정,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행복이 있는게 아니겠소? 전화비 많이 나왔다는게 이해가 되네요~~ 우리 동네도 이장 집에만 전화가
있어 방송해서 전화 받으러 가곤 했다오 동네에 티비도 한대만 있어 여름엔 마당에 모여 앉아 영화처럼 보곤 전기도
고딩때 들어와서 문화 혀택은 영~~~~
친구들 남은 연휴 잘 보내시구려♡♡ ========================<이해숙> 해숙씨 동네도 비슷했군요? 국제전화 한번하면 한주 주급이 날아가는 세상을 살때도 있었던 체험은 광야대학의 인생훈련과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인호>
친구들 좋은 글, 사진 감사! 첨단 시대 이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 현대판 고전들이 있었다니 감동적이네요. 며칠 전에 모교를
방문해서 고딩시절 졸업증명서, 생활기록부를 발급 받으러 갔는데, 담당직원이 왈 '아드님, 몇 년도 졸업생입니까?
이름은요?' '아니요, 제꺼요. 69년 1월요.' '예?' '수수료는 얼마입니까?' '그냥 가세요.'
학교를
돌아 나오면서 생각이, 그 옛날 운동장 끝, 잡초가 우거진 자리에 새로 지어 세워진 학교가 낯설고, 세월의 흐름은 감당할 수 없어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가 순간 교복입은 산,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이 뛰어 나올까 봐 두리번거리다 아쉬운 마음 간직한 채 돌아 나왔네요. 나의 삶에
엉뚱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심심하면 졸업증명서 한번 발급 받아 보시면 어떨까? 삶의 또 다른 시작이 생긴다니까! 삶은
언제나 수수께끼? ========================<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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