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 앞바다에서>
- 2004. 2. 26. 목. 신형호-
*싱싱한 파도, 갈매기, 그리고 수평선을 안고*
모처럼의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동해바다로 떠났다.
호국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대왕암이 있는 감포바다로 향했다.
대구에서 10시 반쯤 출발.
길은 조금 밀렸지만 경주를 지나 12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펄떡 펄떡 뛰는 싱싱한 고래가 춤을 추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가슴속으로 가득 출렁이고 있는 감포 앞바다가 눈에 안긴다.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은 하늘과 함께 일직선을 이루고...
싸늘한 겨울바다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뻥 뚫린 가슴속을
앞뒤로 사정없이 통과한다.
비로소 도심의 답답함에서 벗어났다는 실감을 한다.
막혔던 오장육부가 서늘한 바람에 신이 난 듯 요동을 친다.
이번 겨울 내내 꿈꾸던 겨울바다가 이제 내 속에 들어온 것이다.
멀리 수평선을 보고 고함을 쳐본다.
점점이 떠 있는 작은 고깃배도 출렁이며 반긴다.
넘실대며 밀려오는 파도들의 몸부림......
자르르 자르르 자르르......
파도에 밀려왔다 밀려가며 눈앞에서 구르는 자갈들의 함성.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로지 순수의 세계이다.
발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멀리 방파제 쪽으로 걸어보았다.
오른쪽으로는 끝없는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이 뺨을 때린다.
왼쪽으로 잠시 눈을 돌리니 모래사장에 갈매기들이
군부대에서 사열을 하듯 수십 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다.
무리에서 벗어난 몇 마리가 우아한 날개 짓으로 선회하고.
발밑에는 연신 파도에 구르는 자갈소리가 포말과 함께 소리친다.
잊혀졌던 지난 시절 바다에 관한 노래가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 나 홀로 외로이 추억에 잠겼네......’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 하여도 내 마음 속 깊이 떠나지 않는 꿈 서러워라......’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바닷가에서 추억을 맺은 사람......’
‘손잡고 해변을 단 둘이 거닐던 파도소리 들으며 사랑을 약속했던......’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난 그 사람......’
‘파도위에 물거품처럼 왔다가 사라져간 못 잊을 그대여......’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안다성님의<바닷가에서>부터, 사월과 오월의 <바다의 여인>, 키 보이스의<바닷가의 추억>, 히 식스의<해변으로 가요>등의 바다 노래가 끊임없이 목에서 흘러나온다.
가슴속이 시원하다. 그동안 무엇인지 모르게 막혔던 답답한 응어리가
바닷바람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뻥
뚫린 가슴속에는 신이 난 오장육부가
싱싱하게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잔뜩 취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고문하건만 마음속은 고요한 호수보다 더 평온하고 잔잔하다.
왜 진작 동해바다를 찾지 않았던가?
두 시간 남짓 홀로 거닐었던 해변의 산책......
신선한 감격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위한 두뇌의 짜릿한 충전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 둘 가슴속에 안긴다.
햇살과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바닷가,
너도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겨울바다에서 신선한 삶을 재충전해보지 않을래?
참 그곳에서 가까운 바다는 어디니?
<바다는 부르는데>
- 2004. 3. 1. 월. 백장미-
낙조 물든 감포 바닷가
이층 횟집에 앉아
근 삼십 년 만에 만난
어제 본 것 같은 얼굴 보며
파도처럼 세월 치고
황혼처럼 정을 감고
살아 온 날은 어디고
살아 갈 날은 어디든가
가만가만 들여다 본
세월 흔적 속엔
가슴앓이 한 움큼
사랑앓이 한 자루
빠질 것 같은 주황빛 속에
너도 싣고 나도 싣고
바다야
말을 막고 입을 막았다.
그리움은
네가 아니라 나로구나.
사랑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로구나.
가슴 한 가득
파도 같은 사랑 밀려 올 때
아하.
이런 고요함이 오는구나.
경이로운 잔잔함이
너로부터 아니라
내게로부터 오는구나.
그리움도
사랑도
모두가
우주 같은 내 마음에 있나니
해 지는
감포 바다 속에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훌렁 훌렁 벗어 던져
시원하게 빠져 나와
그리움도 안고
사랑도 안은
터질 것 같은 마음
황홀한 감격에 겨워
바다는 자꾸 부르는데
몰래 몰래 달아나왔다.
그리움이랑
사랑만 갖고 싶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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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 이었구나.
여긴
바다가 30분 거리에 있어
가끔은
검푸른 바다 위를 거닐며
잔잔하던 작은 나라를 생각한다.
오랫동안 바닷가에 살아
익숙한 바다가 삶의 일부 같다만
감포 바다 위에 떠 있던
그 얼굴도 그 모습도
감격 보담
고요한 파도 속에 다 밀어 넣었다.
내 조용함이
요동치는 게 싫어 말이다.
봄이 오면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
삶의 원동력이 될 것 같아서
해몽 한번 거나하게 하고
나들이 가지 뭐.
삼월 이네.
연휴 잘 보내고
새 마음으로 시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