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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비’ 전설 간직한 영암사지 문화답사 에 연이은 글입니다.
지난 9일 영암사지 들리는 길에 새로 조성된 영암사 극락보전 벽화에서 심우도를 앵글에 잡아 보고 심우도와 관련된 벽화 이야기를 해 볼 까 한다.
절에 가면 전각의 좌우후면을 돌아 벽화를 본다. 벽화 속에서 부처를 만나고 화상을 만나고 고승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림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교훈이 있다. 불교 벽화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많은 사찰이 심우도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
소는 도가에서는 유유자적, 유가에서는 의(義)를 상징했지만 불가에서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의미했다.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비유한 ‘심우도’가 이같은 의미를 대표적을 보여준다. 그만큼 소는 다른 그 어떤 동물보다 불자와 친숙하다. 대부분의 법당 벽화에 ‘심우도’가 그려져 있고, 불경 곳곳에 소를 비유한 상징들이 들어 있다. 선사들도 이러한 소를 수행의 채찍으로 삼아왔다. 고려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했다.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뜻이다.
만해 한용운 선사도 만년에 서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 했다. ‘불성을 찾기에 전념하는 곳’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심우도’는 동자와 소를 등장시켜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과정을 묘사한 그림으로 이때 소는 인간의 진면목인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수행단계를 10단계로 나누어 표현하기 때문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10단계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하는, 김영환 <<우리 사찰의 벽화이야기>>에서 頌과 해설을 참조하였습니다.> ① 소를 찾아 나선다.(尋牛)
10단계의 수행단계를 선시(禪詩)를 통하여 이해해본다. ▣ 一. 尋牛(심우) 송(頌) 망망발초거추심 (茫茫撥草去追尋)
망망한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노니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바로 자기를 찾는 결심의 단계를 말한다. ▣ 二. 見跡(견적) 송(頌) 수변임하적편다 (水邊林下跡偏多)
물과 나무 아래 수많은 발자국
견적(見跡)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참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으로 상징해서 표현한 그림이다. ▣ 三. 見牛(견우) 송(頌) 황앵지상일성성 (黃鶯枝上一聲聲)
나뭇가지 위에 지저귀는 금빛 꾀꼬리
견우(見牛)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 끝에 자기를 찾고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다. ▣ 四. 得牛(득우) 송(頌) 갈진정신획득거 (渴盡精神獲得渠)
정신을 가다듬어 소를 얻었지만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경지를 선종(禪宗)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 속에서 아직 제련(製鍊)되지 않는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상태라고 한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한다. 아직 삼독에 물들어서 거칠고 일순간의 탐욕을 다스릴 길이 없다. 더욱 정진하고 공부에 힘써야 하는 상태이다. ▣ 五. 牧牛(목우) 송(頌) 편색시시불리신 (鞭索時時不離身)
채찍과 고삐를 쉼 없이 사용하여 곁에서 여의지 말라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서, 자신을 다스리고 자기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단계다.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하였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나 아직 이 마음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 六. 騎牛歸家(기우귀가) 송(頌) 기우이려욕환가 (騎牛이麗欲還家) (이 - 비스듬할 이 / 책받침+베풀시)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네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이제 내가 내 마음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 七. 忘牛存人(망우존인) 송(頌) 기우이득도가산 (騎牛已得到家山)
소를 타고 본향으로 돌아오니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애쓰며 찾던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본래의 자기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八. 人牛具忘(인우구망) 송(頌) 편삭인우진속공 (鞭索人牛盡屬空)
채찍과 소와 사람이 모두 공하니
인우구망(人牛具忘)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圓象)만을 그리게 된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주관적인 자신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본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를 모두 비웠으니 자타가 다르지 않고 내외가 다르지 않다. 전부가 오직 공(空)이다. ▣ 九. 返本還源(반본환원) 송(頌) 만본환원이비공 (返本還源已費功)
본향으로 돌아옴도 이미 헛된 공이니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한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모두 하나같이 사랑한다.
▣ 十. 入廛垂手(입전수수) 송(頌) 노흉선족입전래 (露胸跣足入廛來)
가슴을 헤치고 맨발로 거리에 서니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佛國)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심우도는 볼 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이다. 여러분은 위의 심우도를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난 아직도 나의 소를 잡지 못하였다.
시간이 나면 직지사 대웅전 벽화의 심우도를 앵글에 잡아 보아야겠다. 그때는 나의 소를 잡을 수 있을까? 출처: 보리숭이의 방
불교회화 (4) _ 심우도(尋牛圖)
심우도란 본래 도교에서 나온 팔우도(八牛圖)가 그 시작으로 12세기 무렵 중국의 곽암선사(廓庵禪師)가 도교의 소 여덟마리에 두 마리를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완성시켰다. 곽암선사가 보기에 도교의 팔우도는 무(無)에서 끝나므로 진정한 진리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 눈에 알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진리, 불교의 진실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소 두 마리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교의 팔우도를 무(無)의 결말이라면, 곽암선사의 십우도는 공(空)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 심우(尋牛) 첫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 버린 것이다. 2. 견적(見跡) 두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견적(見跡)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 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3. 견우(見牛) 세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이다. 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 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4. 득우(得牛) 네 번째는 득우(得牛), 즉 '소를 얻다' 이니,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5. 목우(牧牛) 다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게 꼬뚜레를 꿰어 끌고 가고 있는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랜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三毒)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여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7. 망우재인(忘牛在人) 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망우재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無) 속으로 사라졌다. 무(無)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10. 입전수수(入전垂手)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 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
출처: 달마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