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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원문보기 글쓴이: 정중규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 세네카 족 추장 사고예와타 -
마사소이트 추장은 우정과 평화를 실천하자는 조약을 끝까지 지키며, 많은 땅을 백인들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땅에 대한 소유 개념이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내준 땅을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하며 울타리를 박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인티언들의 시각은 달랐다. 땅을 제공한 것은 백인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땅을 함께 나눠 쓰자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땅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생각을 인디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들이 소유한 땅에서 왐파노그 족 인디언들이 계속해서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자. 백인 이주자들은 그들을 침입자로 간주하고 체포했다. 재판이 열리자 이주자들은 주장했다.
"우리는 1천만 평에 이르는 땅을 옷 일곱 벌, 괭이 여덟 자루, 도끼 아홉 자루, 무명 옷감 9미터, 칼 스무 자루를 주고 샀다. 이제 이 땅은 우리의 것이다. 누구도 우리가 소유한 지역을 침입해선 안 된다."
마사소이트 주장이 말했다.
"당신들이 소유라고 부르는 그것이 무엇인가? 땅은 누구도 소유할 수가 없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들인 동물과 새, 물고기, 그리고 모든 인간을 먹여 살린다. 숲과 강물 등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모두에게 속한 것이며, 누구나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떻게 한 인간이 그것들을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만 주장할 수 있는가?"
이주자들이 따졌다.
"그럼 왜 우리에게 이 땅을 팔았는가?"
인디언 추장이 말했다.
"당신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낯선 곳에 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함께 사용할 권리를 당신들에게 준 것이다. 당신들 혼자 그것을 독차지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논쟁은 끝이 없었다. 땅을 개인 소유로 못박고 주인 혼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유럽인들의 관념을 인디언들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백인들 역시 땅은 모두가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인디언들의 철학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인디언들의 땅을 사유지로 만들어 나갔다.
메사추세츠 해안에 정착한 청교도드은 스스로를 '해안의 성자들'이라 청했다. 이 백인 사람들은 왐파노그 족, 피쿼트 족, 나라간세트 족, 니프무크 족 인디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길 거부하자 더욱 화가 났다. 마침내 존 메이슨 대장이 이끄는 청교도들이 갑자기 신비주의자의 강(미스틱 리버)이라고 이름붙은 샛강 하구에 사는 피쿼트 족 마을을 공격했다. 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마을 주민7백 명 대부분을 학살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공격의 대열에 참가했던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포로로 잡힌 인디언들 중 남자들은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눠 가졌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숱한 피의 역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이 '달콤한 희생' 위에 보스턴을 비롯한 동부의 내로라 하는 도시들이 찬란하고 영광스런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p 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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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 수콰미쉬 족 추장 시애틀 -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왔다고 해서 마치 전투를 벌일 양 온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우리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 이 대이의 아들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없이 만들어진 이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린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가? 얼굴 흰 사람들의 도시 풍경은 얼굴 붉은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의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야만인이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라는 곳이 없다. 봄의 나뭇잎 소리를 듣거나 곤충의 날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만한 곳이 없다.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은 물웅덩이 수면으로 내리꽂히는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내린 비에 씻긴 바람 그 자체의 냄새를 좋아한다. 소나무 향기로 마찬가지다.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공기는 더없이 소중한 것! 동물이든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똑같은 숨결을 나눠 갖기 때문이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사람처럼 당신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악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잠자리를 계속 파헤치고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인가 당신들은 스스로의 폐허에서 숨이 막혀 깨어날 것이다.
들소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야생마들은 모두 길들여지고, 숲의 은밀한 구석까지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하다. 그리고 산마다 목소리를 전하는 전선줄이 어지럽게 드리워져 있다. 덤불숲은 어디에 있는가? 없어져 버렸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져 버렸다.
들짐승이 사라지면 인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들짐승들이 저 어두운 기억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혼의 깊은 고독감 때문에 말라죽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짐승에게 일어나는 일은 똑같이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당신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니 사냥이니 날쌘 동작이니 하는 것에 대해 굳이 작별을 고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는 더 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연어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떼의 반짝이는 춤을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p 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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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 아리카라 족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 쥬니 족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바람 부는 달 / 체로키 족
2월
물고기가 뛰노는 달 / 위네바고 족
홀로 걷는 달 / 수우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 오마하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3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 / 체로키 족
암소가 송아지 낳는 달 / 수우 족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 아라파호 족
4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 블랙푸트 족
머리밑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 체로키 족
거위가 알을 낳는 달 / 샤이엔 족
옥수수 심는 달 / 위네바고 족
5월
들꽃이 시드는 달 / 오사지 족
말이 털갈이 하는 달 / 수우 족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 아라파호 족
6월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 / 위네바고 족
더위가 시작되는 달 / 퐁카 족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 체로키 족
7월
사슴이 뿔을 가는 달 / 키오와 족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 / 유트 족
들소가 울부짖는 달 / 오마하 족
8월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 / 퐁카 족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 쇼니 족
노란 꽃잎의 달 / 오사지 족
9월
사슴이 땅을 파는 달 / 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 / 수우 족
작은 밤나무의 달 / 크리크 족
옥수수를 거두어 들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10월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 / 샤이엔 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 키오와 족
큰 바람의 달 / 쥬니 족
잎이 떨어지는 달 / 수우 족
11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 크리크 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 체로키 족
강물이 어는 달 / 히다차 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 / 키오와 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아라파호 족
12월
다른 세상의 달 / 체로키 족
침묵하는 달 / 크리크 족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 수우 족
무소유의 달 / 퐁카 족
늑대가 달리는 달 / 샤이엔 족
(출처 : 인터넷 서핑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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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쿼이족(Iroquois)의 인디언 기도문]
밤과 낮을 쉬지 않고 운항하는 어머니 대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운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해를 향하고 서서 빛을 변화시키는 아파리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하늘을 쏘는 칼새와 새벽의 말 없는 올빼미의 날개를 지탱해 주는 공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노래의 호흡이 되어 주고 맑은 정신을 가져다 주는 바람에게.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우리의 형제 자매인 야생 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비밀과 자유와 여러 길들을 보여 주고,
그들의 젖을 우리에게 나눠 줍니다.
그들은 스스로 완전하며 용감하고 늘 깨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구름과 호수와 강과 얼음산에게도.
그들은 머물렀다가도 또 여행하면서 우리 모두의 몸을 지나
소금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눈부신 빛으로 나무 둥치들과 안개를 통과해 곰과 뱀들이 잠자는 동굴을 덥혀 주고,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태양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수억의 별들,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담고 모든 힘과 생각을 초월해 있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하늘, 할아버지인 우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인디언에게 교육은 온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자연에 있다. ‘위대한 신비’라는 절대자는 따로 존재한다기보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다.
자연이 신전이며, 바람이 그의 손길이다.
어머니 대지와 위대한 신비가 펼쳐놓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인디언이 사는 방식이다.
인디언의 언어에는 문자가 없다.
인디언들은 위대한 신비가 깃든 자연을 ‘기호’로 표시하는 것 자체를 불경스럽게 여겼다.
인위적인 이름표가 본질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디언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특징은 시간에 대한 말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대로 사는 그들에게 시와 분으로 쪼개진 시간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만나러 올까요?”라고 묻는다면 “해가 저 나무에 걸리면”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자연스러운 것, 혹은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시간은 사회적 합의일 뿐이다.
시간을 대하는 인디언의 태도와 그들의 말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노코미스는 히어와서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네.
불꽃 같은 타래 머리 이쉬코다 보여 주었지.
죽음의 춤,
얼어 붙을 것 같은 겨울 밤에
깃털 꽂고 방망이 든 전사들의 영령이
저 멀리 북쪽을 향해
너울너울 추고 가는 춤 보여 주었지.
하늘에 난 넓고 하얀 길,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그림자, 영혼들로 가득한 길 보여 주었지.
여름날, 저녁 어린 히어와서,
문 앞에 앉아
소나무가 속삭이는 소리 들었네,
물결이 출렁이는 소리 들었네,
노랫소리를, 신비한 말소리를.
“미네-와와!” 소나무가 말하면
“머드웨이-아쉬카!” 물결이 대답하네,
해거름 속으로 휙휙 날아가는
개똥벌레 와와타시를 보았네,
꽁짓불을 깜박이며
풀숲과 덤불을 밝히는 와와타시를.
히어와서는 노래 불렀네,
노코미스가 가르쳐 준 노래를.
“와와타시 꼬마 개똥벌레야,
파닥이는 하얀 꼬마 개똥벌레야,
춤추는 하얀 꼬마 개똥벌레야,
너의 작은 불로 나를 비춰 주렴,
내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나의 눈꺼풀이 감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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