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Boomer
최 화 웅
‘오케이, 플리즈(Ok, Please)’. 이 말은 태어난 지 17개월 된 외손녀, 유나가 뛰려고 설치면서 내뱉는 말이다. 유나가 할머니로부터 배운 ‘오케이, 플리즈’를 반복하며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채 미소를 머금으면 천사다. 그 상대되는 말이 요즘 화제가 된 ‘오케이, 부머(Ok, Boomer)’가 아닐까? 외신에 따르면 지난 11월 5일 뉴질랜드 의회에서 25살 난 클로이 스와브릭 녹색당 여성의원이 자신의 연설을 방해하는 나이 든 중진 의원들을 향해 ‘오케이 부머’라는 조커를 던지며 연설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 의원의 발언에 전 세계 밀레니얼(Millennial)이 열광했다. ‘오케이 부머’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 기성세대에게 ‘꼰대’ 같은 말을 하면 '됐네요, 이 사람들아!‘라고 받아치는 말이다.
이 발언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자 수천 개의 트윗이 달리고 유투브 조회수가 70만 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뉴질랜드 의회의 ‘오케이 부머’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는 순간 우리 정치현실과 허울 좋은 가짜 민주주의가 떠올랐다. 왜일까? “당신들은 틀렸고 우리만 옳다.”는 여야의 극한대립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제 자리에서 국정의 발목을 잡고 반대를 위한 반대, 갖은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네 정치현실이 한심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 어느 나라 어느 시대건 반대가 있고 꼰대가 있기 마련이다. 어원을 따질 필요도 없이 ‘꼰대’는 자신만이 옳고 자신의 경험만이 최고라는 옹고집으로 상대을 부정하며 불통의 태도로 남을 인정하지 않고 깔보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Ok, Boomer'가 던지는 의미와 반응이 선명하다. 우리는 왜 ’Ok, Boomer'라는 말을 가볍게 생각하면서도 토론과 협치를 끌어내지 못하는가? ‘Boom'이라는 의미는 어떤 사회현상이 갑자기 유행을 타거나 경제적으로 가격이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Boom'은 경제적으로 ‘성황, 유행’이라고 번역한다. ‘boom'에 접미어 ’er'을 붙이면 ‘경기(景氣)를 부채질 하는 사람’, 또는 ‘몰이꾼’이라고 일컫는다. 사업 또는 투기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기세, 자원과 인구의 급속한 증가, 가격·상업상의 발전 현상 등에 쓰이나 일반적으로 갑자기 경기나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호황을 붐이라고 말한다.
붐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병폐의 하나다. ‘꼰대’는 요즘 이삼십 대에서 보수단체나 조직 구성원, 정당인이 되면 소속감과 자기이익을 앞세워 하루아침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던지고 권위적인 꼰대로 변하고 만다. 정당 안에서도 다를 바 없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며칠 전 황교안 대표를 향해 '보수 꼰대' 이미지가 두려워서 '자유우파'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다면 정치를 그만두라고 윽박질렀다. 보수, 진보를 가르는 좌우 개념은 프랑스 혁명 때 완만한 단계적 개혁을 주장한 왕당파와 성직자, 귀족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롱드(Girond)파와 범법자를 즉각 처단하고 왕정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요구한 급진적인 개혁을 내세운 자코벵(Jacobin)파의 대표가 국민공회 때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어 마주 앉은 자리에 불과했던 일이 잘못 전해지면서 좌우익 사상 개념으로 고착되었다.
우리 사회를 대결과 반목의 건널 수 없는 계곡으로 갈라놓은 좌우라는 사상과 이념의 갈등은 그 뿌리가 깊다. 해방 이후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미군정의 지원을 업은 이승만 독재정권이 여순항쟁과 4·3제주항쟁을 비롯한 민중항쟁을 탄압하는 구실로 삼았고 5·16 군사쿠테타 이후 박정희 정권이 비판세력을 진압하는 방법으로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북을 추종하는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 간첩죄를 씌워 죽이거나 가두었다. 이 같은 공포정치로 국법질서를 부정하고 계엄령과 긴급조치로 개인의 기본권을 마구 짓밟았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은 민주항쟁과 촛불혁명 등 민중항쟁에 목숨을 걸었고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훼방 속에서도 소중한 통일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고 희망의 끈을 지켜왔다. 분단의 아픔만큼 우리의 정치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뉴질랜드 국회 수준에 충격을 받는다.
교과서적으로 국회의 기능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민의의 기관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하며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입법부로 제 역할을 다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는 토론과 협치를 거부한 채 개인의 이익과 소속정당의 결정만을 따르는 거수기로 반대를 위한 반대와 극한 대결을 일삼고 있다. 그것은 공천으로 재선을 하겠다는 야욕으로 국민들의 “불편하다”, “아프다”, “불안하다”는 민의를 귀담아 듣지 않는 우이독경(牛耳讀經) 때문이리라. 뉴질랜드에서 다른 중진의원들의 의사진행 방해에 ‘Ok, Boomer'라고 응수한 25살 난 클로이 스와브릭 여성의원의 조크를 우리 국회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은 국회의원들의 막말을 낱낱이 기억한다. 제4차 정보혁명시대의 빅데이터와 블록체인을 비롯한 인공지능(人工知能, AI, 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 선량의 탈을 쓴 무능하고 부패한 국회의원들을 AI형 의원으로 대체하는 일이 시대정신의 요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