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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 |
독립영화는 재미없다?
-조: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재미없다는 것은 편견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오히려 독립영화가 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형식적인 새로움, 압축적 스토리 전개 등은 관객들의 몰입을 배가 시킨다. 독립영화가 재미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난다면 자본과 제도권에서 벗어난 다양한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낮은 목소리>(1995)는 어떻게 만들었나.
-변: 욕망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를 좋아하면서 선동적인 영화만 만드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뉴스 필름을 갖다 붙여도 되는 관객을 선동하는 영화가 아닌, 관객들에게 영화적인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1편의 제작비가 1억 2천 만원이었다. 지금 각종 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후원뺏지의 원조가 바로 우리였다. 또 전화번호부를 보고 이름이 착해보이는 사람들에게 친필 편지를 써서 후원을 받았다. 50만원 이하의 돈을 받으면 빌려준 사람들은 꼭 받아야한다는 생각은 안한다. 지금 내 빚이 7천 만원이지만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언젠간 다 갚겠지만 말이다. 이 방법은 1990년대 사망한 일본 감독 오가 산스케를 보고 배운 것이다. 15편 이상 다큐멘터리를 찍은 그가 죽을 때 남긴 빚이 우리 돈으로 12억이었다.
<낮은 목소리> 때와 지금의 독립영화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변: 독립영화는 예전보다 지금 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이 있지만 영화와 관객이 만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다. 예전에는 대학가라는 고정 상영루트가 있었지만 지금 대학가가 어디 그런가. 극장상영 또한 힘들어졌다. 1990년대 중반 WTO 체결 시 프린트 벌수 제한(한 편의 영화가 30% 이상의 극장을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 이 풀리면서, 소수영화의 극장점령이 시작됐다. 이전에는 극장을 찾아가 “(흥행영화 프린트를 구하지 못해) 어차피 돈 못벌 거 신문에나 한번 나시죠?”하고 독립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끔 꼬드길 수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업영화가 스크린을 다 휩쓸고 있어 독립영화는 점점 힘들어졌다.
-조: 1998년 독립영화 지원책이 생기고 제작에 대한 환경은 좋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상영이다. <낮은 목소리> 1편 때보다도 영화상영이 더 힘들어졌다. 멀티플렉스는 늘어나고, 스크린쿼터는 축소되고, 지금 작은 극장에서는 <쉬리>, <태풍> 등 어떤 영화를 틀어도 안된다. 극장간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100억짜리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1억짜리 독립영화 사이에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위원장. |
현재 독립영화 진영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변: 독립영화를 연출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일반관객들과 만나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독립영화는 감독 중심의 영화이면 안된다. 보다 많은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만나야 한다. 2000년대 제작환경은 좋아졌지만 상영의지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관객과 만나는 영화는 줄어들고 있다.
조: 독립영화 진영에 스탭 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현재 독립영화 하는 사람이 500명이 있다면 그 중 450명이 감독 지망생이다. 연출부 이외의 스탭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촬영 등 많은 부분에서 충무로 스탭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독립영화 진영에 프로듀서 등 배급과 관련한 전문 인력이 없다. 프로듀서가 없어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배급, 상영, 영화제 출품 등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몇 번 상영하고 끝나는 영화가 많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배급, 상영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독립영화 배급, 상영 확대 방안은 무엇인가.
-변: <낮은 목소리>의 경우 프린트 1벌을 갖고 전국 40군대 순회상영을 해 15만의 관객이 봤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흥행이 더 잘됐다. 일본은 10명 이상 주민들이 신청하면 시민회관을 무료로 빌릴 수 있다. 그들은 영화가 가진 교육적인 힘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1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상영됐다. 우리 독립영화도 지역 활동가들의 필요로 인해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 운동 단체 중 상영료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건 문제다. 독립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조: 영화진흥위원회 마케팅 지원작이라고 해도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두 편의 영화상영을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독립영화의 인프라가 쌓여있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적인 허점이 생기는 것이다. 극장상영이 어려워지고 스크린쿼터로 의무 상영 일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새로운 배급형태에 대한 대안이 제안됐다. 기존 예술영화전용관과 비극장 상영이 결합된 형태로, 판권을 구입하여 전국 순회상영을 하는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전국순회상영 같은 경우 영화들의 판권을 구입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강릉이나 청주의 경우 ‘유랑극장’, ‘좋은 영화 감상회’라는 이름으로 자체단체의 지원을 받아 시민들에게 무료 상영을 하고 있다.
대전영화제가 열린 대전아트시네마 내부 전경. |
스크린쿼터 축소와 독립영화와 관계가 있는가.
변: 스크린쿼터가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9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프린트 벌수 제한이 그 기능을 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중요한 이유는 헐리우드 자본에 대항해 한국영화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스크린쿼터는 문화다양성을 기초로한 제도로 세계 모든 나라가 하고 싶어하는 제도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라는 프랑스 깐느영화제 이사회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에 만장일치 지지 선언을 한 것이 이런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쿼터 있어도 영화인들이 조폭영화 등의 상업영화만을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런 비판을 볼 때마다 “그런 영화 제발 보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영화는 보는 관객이 있으니까 만드는 것이다. 또 흥행을 결정하는 것은 관객이 아니라 거대 배급 자본이다. 그들이 상영관을 결정하고 관람을 유도해 전체 흥행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 사이 작은 영화들은 상영기회조차 박탈당한다. 관객들이 눈에 쉽게 보이는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좋은 영화, 다양한 영화를 찾아가야 한다.
한 시간 반에 가까운 좌담회가 끝나고 변영주 감독, 조영각 위원장과 씨네클럽 회원들의 뒷풀이 행사가 이어졌다. 그 곳에서는 독립영화 뿐 아니라 영화 전반에 대한 관심들을 주고 받았다. 독립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말했던 이번 좌담회. 늦은 밤까지 계속 된 이 이야기들 또한 먼 훗날 독립영화사 한 페이지에 남을 수 있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