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심양서 돌아오는 날
오늘은 귀국하는 날, 가기가 싫어진다. 신역은 고달팠지만 꽤 달콤했나 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줌마하고도 정이 듬뿍 들었다. 남은 먹을거리를 주려했더니 당뇨가 있어 싫다고 뿌리친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한 덕분에 요녕성 구경을 제대로 잘했다. 만약 호텔을 선택했다면 일일이 물어 볼 수도 없고 애로사항이 참 많았을 것이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다. 단순히 말 뿐이 아닌 같은 문화를 이루고 이해한 덕분에 소통뿐 아니라 모든 것이 용이했다싶다. 그녀가 우리말을 참 잘해서 조선족이 다 이정도인가 했는데 내가 박박사와 입씨름 장난하는 것을 듣더니 불쑥 '박박사를 갈구지 마시라요.' 하는 말이 나오기에 다들 이 말은 북조선에는 없는 말일 것인데 대단하다 하였더니 그때서야 그녀가 말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우리와 중국이 수교한 1992년, 그녀는 곧 바로 돈 벌러 서울에 와 2004년까지 살았다고 했다. 그제야 그녀 말솜씨를 알아차릴 것 같았다. 그런데 굳이 그것 때문만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침 TV 드라마를 끼고 사니 서울 길이 아니라 해도 저절로 터득할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초창기 우리나라에 왔다면 그녀는 목돈을 쥐기는 쥐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과 수교 전 탁구 챔피언 자오즈민 선수가 안재형하고 결혼할 때 3천만 원이면 중국서는 엄청난 부자라고 한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발전 수준이 비슷한 지금은 어림도 없는데 그녀 역시 그때 돈을 벌어 이 집도 샀노라고 했다. 이 민박집 가격이 우리 돈으로 쳐 2억 원쯤 된다하니 요즘은 한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당시 숨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고 했다. 그녀가 뭘 배웠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국이라고 덕을 보고 배웠다 하니 듣기에도 좋다. 모국이 가난하고 형편없다면 동경 대상은커녕 자랑삼아 말하기도 꺼렸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진정으로 한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작년에는 제주도도 다녀갔다는데 느낌 상 한국을 염원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봉고차에 올랐다. 중국인 기사는 어제 밤늦게까지 무리한 출정이었는데도 별 말 없이 잘 따라 주었었다. 어제 주전부리를 보니 오징어를 무척 좋아했었다. 나는 오징어 한 마리하고 우리나라 담배 한 갑, 남은 인삼사탕 등등을 그에게 건넸다. 고맙다는 말은 없었지만 우리의 작은 정성이라는 것을 아는지 그가 환하게 웃는다. 나는 봉고에 오르기 전 슈퍼에서 해단식 때 쓸 배갈 4병을 사두었다. 슈퍼 아저씨가 3일 간의 단골손님인 나를 알아보고 아침부터 무슨 술을 마시냐며 핀잔까지 하면서 술을 봉지에 담는다. 그 참견이 싫지가 않은 것이 그게 동족에 대한 염려고 정이 아니겠는가 싶어지는 것이다. 차는 이곳에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현풍할매집을 돌아 서탑 도문로를 벗어난다. 차창 밖 한글 간판들, 조선족 동네, 이곳은 만주 벌판의 한민족 동포들의 둥지로 영원하리라. 또 다시 만주를 찾는다면 나는 이 골목을 통하여 동포들을 만나고 우리임을 확인하고 또 안부를 물으리라. 차는 어느 참 심양역을 돌아 뒤편 시장통으로 향한다. 처음 올 때는 어디가 어딘지 답답하기만 하였는데 거리 이름만 보아도 대충 알듯 하다. 차를 한편에 세우고 우리는 견과류 시장에 들어섰다. 건어물 코너에는 오징어 말린 것이 꽤 많았다. 만주 땅에서는 오징어가 제 값을 하고 있었다. 당연 해산물이 비쌀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남은 돈 480원으로 우리는 자연산이라는 잣과 건포도를 샀다.
(심양 역 근처 견과류를 사러 가다가)
나는 옆 가게에서 사탕류를 샀다. 무게로 파는데 40원어치가 엄청난 양이다.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많이 사간다는 물렁물렁한 젤리 사탕이다. 근무처 사무실에 사갈 게 없어서 끌탕을 했는데 나중 이 사탕이 그런대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장을 보고 나올 때, 눈여겨 보아둔 꽈배기를 단돈 2원에 6개, 또 만두 6개를 5원 주고 샀다. 11시 45분 비행기인데, 저가항공이라 아무래도 점심을 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짐을 부치고 점심으로 만두와 꽈배기를 먹었다. 텅텅 빈 비행기, 덕분에 눕다시피 편하게는 왔지만 즐겁지가 않았다. 언제까지 메르스가 우리를 괴롭히려나. 이제 겨우 정신이 들어 현실로 돌아가는 듯 조금은 우울해진다. 이는 즐겁게 지내고 난 후유증이기도 하다.
(텅 빈 비행기 기내, 역관이 감기기운이...)
이번 여행을 부추긴 나로서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다들 즐거워 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예정대로 무사 무탈하게 순항하여 즐겁게 보낸 시간들이 포개지고 포개져 6월의 즐거웠던 어느 날이라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게 되리라. 민박 아줌마의 “선생님들 같이 똘똘 뭉쳐 재밌게 지내는 사람들은 민박집 이래 처음인 것 같아요” 하던 말 그대로 우리는 같이 해서 즐거웠고 그 즐거움은 바로 의기투합에 있지 않았나 싶다. 한 번도 화내지 아니하고 짜증 없이 즐겁게 지낸 데에는 양보하고 서로를 믿는 마음에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번여행에서 최고로 수지맞은 사람은 뭐라 해도 바로 나다. 고구려 땅도 연암의 열하일기 길도 되짚어 밟아 본 덕분에 나의 역사기행 글 집에 대한 다소의 미안함도 덜게 되었다. 거기에 나는 또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는 용기까지 얻었다.
(청주공항 마약탐지견)
서로를 위하며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동지들, 짧고 힘든 여정이라 다들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역관이 제일 수고를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때론 작은 소통 장애가 발생되기도 했지만 무지한 초행길에 버팀목이 되어 늘 든든했다. 그로 인해 두렵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하얼빈의 아이스크림은 그 도시의 마스코트다. 그들의 번화가에서는 비록 먹지 못했지만 하얼빈 서역에서 역관의 숨은 책무 덕으로 맛있게 먹었다. 알게 모르게 아낌없이 봉사한 덕분에 누군가 ‘하얼빈에서 아이스크림 먹어봤어요?’ 하고 묻는다면 우리가 ‘당근이지~’ 하며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로 오히려 늘 흥미로웠고 낭만도 있었다. 연이은 약주 탓에 돌아오는 날 감기기운이 있어서 혹시 입국에 무슨 걸림돌이 되지 않나 우려는 했지만 원래 용감한 것인지 술이 용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매사 끊임없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그 덕분으로 우리는 소정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제사장 도박사님의 고마움 또한 컸다. 70이 넘은 연세는 중국에서 특혜가 많다. 비싼 입장료, 그가 아낀 돈이 바로 우리의 견과류 값 480원이다. 다들 여기서 눌러 사시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권할 정도로 경로사상이 아직 이곳은 바래지 않았다. 버스비 1원, 지하철 2원, 공원입장료 공짜, 만두값 3원, 타고 먹고 놀고 쉬기 딱 적합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 아닌가. 말이 안 통한다고 도박사님은 말하시지만 연암은 필담으로 통하여 열하일기를 꾸리지 않았는가. 그 정도 한자실력이면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래도 돌아가야 한다고 우기시기에 내가 중재안을 냈다. 추운 날은 한국에서 보내고 더울 때는 심양에서 보낸다. 민박집 한 달 숙식비가 우리 돈 65만 원쯤이니 가능한 이야기다.
호리한 체구로 사뿐사뿐 시종 쏘다니는 우리의 책사님, 무협소설을 많이 읽어 웬만하면 무협의 한 대목을 인출해 말을 시작하는 박박사는 우리의 공식 책사이고 국가가 아끼는 핵공학자이다. 나는 그가 혹여 납치라도 당할까 싶어 늘 그를 지켜보아야 했다. 아마 그는 혼자 독파를 한 만큼 지금은 심양의 청년대로를 다 꿰고 있을 테다. 지금은 방향을 선회하여 '삭' 이란 단어에 집중을 하고 있다. 아마도 다시 칼을 휘두르는 무협지 쪽으로 다가서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 다음으로 수지맞은 사람은 단연 김이사다. 그가 청주에 도착 해 한 일성은 '4박 5일에 이정도면 아마 패키지로는 1백만 원을 훌쩍 넘을 거야.' 였다. 거기에 그는 보이차를 단돈 50원 주고 한보따리 사지 않았는가. 아마 이번 여행이 재미났던 모양이다. 다음에는 충칭을 가자고 벌써부터 아우성인 그다.
집이 흥하려면 집안에 사람을 잘 들여야 한다. 곳간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맡길 수는 없다. 돈이 많다고 풍덕새 마냥 흥청흥청 써서도 곤란하지만 돈이 없다고 마음 씀씀이까지 야박해서도 문제다. 실로 중심을 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자리는 그러게 아주 중요한 자리이고 지금 현세는 그래서 살림꾼이 중요하고 실제적인 주인이기도 하다. 돈이 다 말해주는 세상이니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런데 돈으로 위세하지 않으며 돈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여유로운 마음 풍경을 지닌 사람이 더러는 이 세상에 있다. 돌아오기 전 날 안산 케이블카에서 100원을 실수로 더 건넨 것을 끝까지 아쉬워하던 그는 그 날 저녁, 그래도 돈이 제법 남아 더 걷을 필요가 없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과 회계장부를 보여주었다.
돈이 남는다는 것도 신기한데 다 맞춰보았는데 20원이 빈다는 세밀함도 놀라웠다. 그 돈은 바로 나 때문 생긴 착오이다. 인절미를 사고 맥주를 사고 물을 사고 돈이 모자라 20원을 더 달라고 했는데 아마 그 기록을 빠트린 모양이다. 이박사 그 분 덕분으로 귀국 후의 쫑파티, 해단식 비용까지 남겨두고 그야말로 우리는 알뜰살뜰 써 당초 여행비에 꼭 맞춰 썼다. 사 먹은 음식 중 제일 비싼 것이 88원짜리 양갈비, 이참에 부록 편으로 그가 적은 회계장부를 첨부한다. 너덜너덜한 봉투 껍데기에 촘촘히 써내려간 내역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 자기가 맡은 업에 충실하고 즐겁게 놀아주어 이번 여행은 모두 행복했다. 원래 화려한 무대가 막을 내리면 허무해진다. 지금 내가 그렇게 침몰 중에 있다. 나는 그런 내려치는 어둑함이 싫다. 그러기에 나는 다시 꿈을 꾼다. 꿈속에서라도 또 다시 그곳을 가보는 거다. 남들은 한 번 간곳을 뭐 하러 가냐고 하지만 여행은 새로움만은 아니다.
마음에 둔 쉴 곳을 찾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잠재한 나를 찾고 싶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탈은 새로움으로 모두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움도 남기 때문이다. 나는 또 구상을 하고 있다. 이번에 교두보를 심양에 확보한 이상 다음 여정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심양에서 미처 못 들른 동릉(누루하치 묘가 있는 곳인데 한적하고 볼 것이 더 많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북릉공원으로 가는 길에 북시장이라는 간판을 그냥 흘려 지나쳤는데 곳에 실승사가 있으며 청나라 황제 12인이 동상으로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연주성이라 부르는 고구려의 백암성을 찾아 갈 것이다. 백탑보에 백탑도 그렇고 조선족이 몰려 있었다는 소둔터라는 곳도 흥미롭다.
(바로 앞에서 쳐다만 본 북시장 입구)
그리고 심양에서 가까운 본계시의 본계수동을 찾을 것이다. 그곳은 400만~500만 년 전에 형성된 대형 수중동굴로 보트를 타고 기이한 종유석과 석순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수중동굴은 매우 넓으면서 수심도 깊어 수심이 평균 1.5미터에서 깊은 곳은 7미터나 되며 특히 구불거리는 지하 강을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동굴을 지나게 되는 구곡은하는 삼협, 칠궁, 구만으로 나눠져 곳곳이 눈을 뗄 수 없는 경치로 이름 그대로 마치 은하수를 건너는 기분이 들게 한다고 한다. 아마도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고 절세신공을 손에 넣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일 것이다. 하루 경치를 즐겼다면 나는 신민둔이나 영안대교를 찾아 미처 못 가본 연암의 발자취를 찾아볼 것이고 고속열차를 타고 길림 용정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윤동주도 만나 볼 것이다. 이 말을 아내한테 하니 아내가 ‘미쳤군 미쳤어’ 한다.
그 말이 달콤하고 듣기가 좋다. 일탈은 미친 면이 어느 정도 있다. 일상과 다를 바 없다면 용기나 호기는 금세 사그라진다. 나는 아마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다시 서탑 도문로를 꼭 한 번은 찾을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중국 땅에 제일 많이 써 있는 인민해방이고 인민광장이다. 짧은 여행인데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 고리타분한 점도 없지 않으며 장황하기 까지 하다. 일행들과의 멋진 여행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일부러 세세하게 남겼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탈도 여의치 않을 때 일말의 잔 꼬투리가 민들레 홀씨처럼 저 멀리 오래도록 날아가 남은 여흥을 마저 만들지 않을까 싶어서다.
**************** 회계 장부 ****************
전체 회비: 4,170,000원(65×4 + 75×1 + 67×1 + 15×1)
심양항공료(6인) : 1,474,800원
단체비자 : 210,000원
항공료 추가: 200,000원
탑승자 변경 항공료 추가: 61,700원
개인특별비자: 115,000원
민박집(860 242 346 1942)
봉고차아저씨(861 384 031 5140)
신탄진기차(7시 17분)
심양역-시타-전화할 것. 모란봉.명주아파트. 투먼루.밍주빈관
중국돈 바꾼돈: 10,900위안 (×187.53=2,044,077원)
한국돈 잔액: 64,423원
<1일째(심양)/5745>
신탄진-청주: 14,400원 / 심양북역공항뻐스 : 93/ 점심(한국식당.고기) : 426 / 택시(식당-민박집) :30 / 고속기차표구입(심양.하얼빈):3072 /시내버스:6 / 고궁:210 / 과일:12/ 맥주:16 /버스:6 /슈퍼:49 /저녁:125 /민박집:1700
<2일째(하얼빈-장춘)/783>
택시:20 / 아침(옥수수죽):51 / 생수:18 /하얼빈버스:6 / 택시(송화강-기차역):69 / 점심:79 / 택시비:80/ 입장료:240위만황궁 / 지하철:12 /택시(장춘역-장춘서역):67 / 택시(장춘서역-장춘역):70 / 라면.맥주:58 /수박:13
<3일째(심양시내)/549>
교통비:6 /북능:18 / 아이스케키:15 / 지하철:12 /점심:135 / 지하철:18 / 트램:10 / 트램:10 / 지하철:15 / 저녁:260 / 택시:15/ 과일:35
<4일째(백탑.안산.천산)/3121>
물:30 / 등산용컵:100 /휴게소:80 / 광우사:100 /맥주:15 /점심:261 / 조성원:10 / 천산:240 / 코끼리 차:60 /케블카:280 / 케블카:180 / 코끼리 차 :60 / 옥블원:280 /목욕:336 /아이스케키:16 / 렌트카:800 /저녁:251 /맥주:22
<5일째(심양공항)/682>
공항버스.렌트카:200 / 견과류:482
돌아와서 해단식 5만원... 아직도 3만원 잔액이 있음.